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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팝아트와 올덴버그의 스프링
    미학(美學) 2022. 4. 7. 07:16

     

    팝아트는 통속적인 이미지를 미술로 수용해 예술로 승화시킨 사조를 일컫는 것으로 10여 년 전만 해도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생소한 분야였다. 그런데 그것이 2008년의 어느 날, 그야말로 느닷없이 우리에게 훅 다가왔다. 당시 삼성 비자금을 내사하고 있던 특검에 다음과 같은 제보가 들어와 수사에 나섰기 때문이었다. 

     

    "삼성재단 홍라희 관장이 삼성 비자금으로 '행복한 눈물'이라는 그림을 뉴욕 크리스티경매에서 고가에 매입해 보유하고 있다. 돈세탁이 목적이다."

     

    그래서 서울의 한 갤러리가 소장하고 있는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이라는 그림이 온 국민 앞에 선을 보였는데, 당시 이 그림에 대한 추정가는 300억 원을 상회했다. 그래서 국민들은 누구나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아니, 저런 만화가 300억이라고? 왜?"

     

    팝아트는 우리 앞에 그렇게 충격적으로 출현했다. 특검의 수사는 그것이 삼성재단의 소유가 아니라 본래 소장하고 있던 갤러리의 것이라고 판명나며 비자금 수사 자체가 흐지부지 되었지만, 이후 팝아트는 급격히 대중적인 미술로서 우리 곁에 존재하게 되었으니, 같은 작가가 그린 '우는 소녀', '공을 든 소녀', '절망', '차 안에서' 같은 작품들이 속속 소개되었다.  

     

     

    '행복한 눈물'(Happy Tears) / 리히텐슈타인의 1964년 작품으로, 고급 유화 물감 인 마그나를 사용해 캔버스 위에 그렸다. 94 X 94 cm
    당시 검찰이 의뢰한 전문가가 그림의 진위 여부를 살펴보고 있다.
    Crying Girl / 1964년, 116.8 x 116.8 cm
    Girl with Ball / 1961년, 153.7 x 92.7 cm
    Hopeless / 1963년, 111.8 x 111.8 cm
    In the Car / 1963년, 172.7 x 203.2 cm
    로이 리히텐슈타인(1923-1997) / 뒤의 작품은 1963년 작 '꽝!'(Whaam!)이다.
    대표작 중의 하나인 '간호사'(Nurse) 1964년

     

    그러면서 앤디 워홀, 케니 샤프, 키스 해링과 같은 팝아트 작가들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래서 지금은 작품 제목이나 작가의 이름은 몰라도 그림을 보면 '아, 이거.....' 하고 반응을 보이게 된다. (이들 세 사람은 '팝아트 회화의 3대 거장'으로 불린다)  

     

     

    앤디 워홀의 '마릴린 먼로' / 실크 스크린 판화
    케니 샤프의 대표작 모음
    키스 해링의 대표작 모음

     

    꼭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위의 작가들은 대개 회화 쪽이다. 그런데 팝아트는 회화보다 오히려 설치미술에서 활발히 전개되었던 바, 올덴버그, 브로프스키, 스텔라와 같은 작가는 우리나라에도 작품이 전시돼 있다. 신세계 백화점 입구에 설치된 '손수건'(Handkerchief), 청계천 광장의 '스프링'(Spring)은 클래스 올덴버그의 작품이고, 광화문 흥국생명 앞의 '망치질하는 사람'은 브로프스키, 강남 포스코 빌딩 앞의 '아마벨'은 프랭크 스텔라의 작품이다.

     

    유감스럽게도 이중 '아마벨'은 2016년 해외 유명 미술비평 인터넷 매체인 '아트넷뉴스'로부터 '가장 미움받는 세계 10대 공공 조형물'로 뽑힌 적이 있다. 그들의 선정 기준은 특별한 무엇이 있는 것이 아니고 해당 지역민들의 평을 담는 쪽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것을 '사고로 찌그러진 비행기의 잔해', 혹은 '그저 흉측한 조형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아마벨'에 비행기의 부품이 들어갔기는 하다)  

     

     

    미국 작가 프랭크 스텔라(Frank Stella,1936~ )의 1996년 작 '아마벨'

     

    그런데 이와 같은 악평은 2006년 청계광장에 스웨덴 출신의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클래스 올덴버그(Claes Oldenburg, 1929~   )의 '스프링'이 세워졌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미국 뉴욕에서 활동 중인 올덴버그는 숟갈, 립스틱, 우산, 아이스크림 등 일상의 사물을 독특하게 재해석해 엉뚱한 장소에 설치하는 것으로 유명한 작가로서,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과 함께 팝아트의 대표 작가로 평가받고 있는 사람임에도 세인들은 평은 '그런 이름값은 필요 없고, 그저 X 같은 조형물'이라는 것이었다. 

     

     

    미국 넬슨 아트킨스미술관(the Nelson-Atkins Museum of Art) 경내에 있는 캔자스시티 조각공원 내의 '셔틀콕' / 클래스 올덴버그와 아내 코제 반 브루겐(Coosje van Bruggen)의 공동 작품이다.
    일본 도쿄 국제무역전시장 앞의 '톱'
    미국 필라델피아 시청 앞의 '거대한 빨래집게'

     

    서울시는 2005년에 청계천 복원사업을 기념하는 조형물을 올덴버그에게 의뢰한 후 "주변 환경에 어울리고 청계천의 친환경적 이미지를 살릴 수 있는 작품을 설치할 것"이라고 발표했었다. 하지만 막상 '스프링'이 세워지자 세평은 악평 일색이었고 국내 유명 미술가들 사이에서도 좋은 소리가 안 나왔다. 올덴버그는 팝 취향의 작품이 더 어울리는데 '스프링'은 서울의 도시 환경과 맞지 않는 전혀 생뚱맞은 작품이라는 것이었다.

     

     

    ' 스프링' / 높이 20m 무게 20톤

     

    처음에는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세금 낭비도 유분수지, 뭘 저런 걸 40억씩 주고 사왔냐"고 굼시렁거렸다.(33~40억 정도 들었다고 한다. 매체마다 가격이 다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그 작품이 조금씩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있을 법도 한데 청계천에서는 보이지 않는 다슬기가 '스프링'으로 인해 돌아왔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웬만한 민물에는 다 서식하는 다슬기가 청계천에는 왜 살지 않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극심하게 더러운 물 때문일 게다. 그 더러운 물이 계속 강제 순환되는 구조이니 아무리 많은 다슬기를 방생한들....)

     

    어찌 됐든 '스프링'은 영락없는 다슬기의 형상이다. 그리고 우연찮게도 서울시에서 2030년까지 중학천(백악산 중턱에서 발원하는 삼청동천) 물을 청계천으로 끌어들여 살아 있는 생태 하천을 만들 계획이라는 소식마저 들으니 문득 '스프링'이 사랑스러워지려고까지 한다. '올덴버그가 선견지명이 있었나' 하는 생각도 들고.... 그 '스프링'에 대한 서울시 안내문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청계천 조형물 스프링은 세계적인 작가' 클래스 올덴버그와 코사 반 브루군의 공동작업입니다. 조형물의 외부는 탑처럼 위로 상승하는 다슬기 모양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다이내믹하고 수직적인 느낌을 연출함으로써 청계천의 샘솟는 모양과 문화도시 서울의 발전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통 한복의 옷고름에서 착안된 붉은색과 푸른색의 내부 리본은 자연과 인간의 결합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청계천 조형물 스프링은 도심 속에서 재생된 자연의 기념물이며, 청계천 복원 프로젝트의 상징입니다.  

     

    차제에 말하고 싶은 것이 흉물 조형물로 회자되는 대구시 달서구 도로의 '원시인'이다. 처음 본 사람은 그 흉물스러움에 놀라 비명까지 지른다는 그 거대한 조각상은 달서구가 '깊은 잠에 빠진 원시인'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대구시 달서구에 이 조각상이 설치된 이유는 2006년 달서구 월성동 아파트 개발지에서 흑요석, 좀돌날 등 1만 3184점의 구석기 유물이 출토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하는데, 그것이 아니라도 그간 대구에서는 지석묘 석관묘 선돌 등 무수히 많은 선사시대 주거 유적이 발견되었다.

     

    대구시 달서구 진천동의 '원시인' / 한겨레 사진

     

    그래서 고고학자들은 대구를 전국 최고의 고인돌 유적지로 꼽았었지만 안타깝게도 대구의 도시 개발과 더불어 99%가 사라졌다. 더불어 안타까운 것이 호수의 실종으로, 대구에 존재했던 약 70만 년~1만 년 전에 형성된 수많은 호수 역시 개발의 와중에서 무차별적으로 사라졌다. 대구에 많은 선사인류가 살았던 것은 바로 그 호수 때문이기도 했으니 많은 호수로 인해 동식물들이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개발의 과정에서 호수 몇 개쯤을 살려두었다면 아름답기도 하고 한여름 도심의 열기도 끌어내릴 수 있었겠건만..... 하는 생각에 아쉽기 짝이 없었는데, 그즈음  달서구의 '원시인'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반가웠음에도 불구하고 주변 주민 3천 여 명은 철거를 요구하는 서명을 모아 달서구에 제출했다 한다. 어쩌면 이해 부족이기도 한데, 내 생각으로는 오히려 대구의 선사시대 인프라를 개발하는 쪽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여겨진다. 이를테면 아래의 빛나는 아이디어 같은 것을.....

     

     

    달서구 여러 곳에 설치된 선사시대 상징물 (그렇지만 대구에 이런 동물은 안 살았을 듯) / 달서구청 사진
    '스프링(Spring)' 등으로 유명한 조각가 클래스 올덴버그가 미국 뉴욕 맨해튼 자택에서 2022년 7월 18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9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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