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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버트 인디애나가 노래한 사랑과 희망
    미학(美學) 2022. 6. 6. 16:23

     

    미국 작가 로버트 인디애나(Robert Indiana, 1928~2018)는 앤디 워홀과 함께 미국 팝아티스트 1세대로 치부된다. 미국 팝아트의 서막을 연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의 대표작 '러브(LOVE)'는 세계 주요 도시에 전시되어 많은 이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뉴욕 센트럴파크와 모마(MOMA,뉴욕 현대미술관 /The Museum of Modern Art) 사이 맨해튼 6번가에 설치된 원조 '러브'는 뉴욕의 핫플레이스로서 세계 관광객들의 포토존이 된 지 오래이다.

     

    그의 '러브' 시리즈는 1964년 모마에서 거의 무명이다시피 한 팝아트 작가 인디애나에게 크리스마스 카드 디자인을 의뢰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어릴 적 교회에서 보았던 "God is love"라는 간판에서 영감을 받은 '러브'를 만들어냈고, 이 디자인은 훗날 미국 내의 베트남전 반전 운동과 맞물리며 선풍적 인기몰이를 하게 되었다. 이것이 로버트 인디애나 명성의 시작이자 불행의 시작이었다. 

     

     

    뉴욕 맨해튼 6번가의 '러브' 조형물


    이와 같은 단순한 단어의 조형이 어떻게 예술품이 될 수 있는가, 저런 건 나도 만들 수 있다고 말할는지도 모르겠으나 그것은 마치 콜럼부스의 달걀과도 같다. 그럼 당신이 하지 왜 안 했는가 되묻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로버트 인디애나 당사자에게 부딪힌 문제이기 한데, 그는 결국 '러브'에 대한 저작권 등록에 실패했다.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일반적 단어라는 것이 당시 미국 법원의 판단이었다. 일반적 단어이기는 하나 선명한 색으로 표현된 사랑의 격정, O를 비스듬히 배치해 감출 수 없는 사랑의 감정을 역동적으로 표현한 것 등은 전적으로 작가의 역량이었음에도.....

     

     

    미국 인디애나폴리스 뮤지엄 앞의 '러브' / 1970년에 설치된 최초의 '러브'라고 한다. 인디애나폴리스는 작가의 고향으로, 자신의 이름도 지명에서 빌려왔다.

     

    하지만 '러브'에 대한 각지의 관심은 높아져 뉴욕, 인디애나폴리스, 필라델피아, 밀워키 등의 미국 대도시는 물론이고, 캐나다 몬트리올, 일본 도쿄, 홍콩에서도 러브콜을 받았다. (현재 세계 곳곳에 설치된 ‘러브’ 조형물은 총 54개라고 한다) 당연히 서울에도 ‘러브’가 있으니 부암동 서울미술관에서는 반짝이는 메탈 재료의 작은 '러브'를 만날 수 있고, 서울 명동 대신파이낸스 사옥 앞에서는 맨해튼의 것과 동일한 크기의 '러브'를 부담 없이 마주할 수 있다.

     

     

    서울미술관의 '러브' / 높이 91.4㎝
    서울 삼일대로 대신파이낸스 사옥 앞 '러브' / 2016년 대신증권의 과감한 투자로 마련된 작품이다.
    밀워키 아트뮤지엄 앞 '러브'
    일본 도쿄 신쥬쿠의 '러브'
    필라델피아 러브파크 속의 '러브'
    '러브'의 불어버전 '아모르'
    필라델피아 아트 뮤지엄 센터의 '아모르'

     

    이렇듯 세계 곳곳에서 러브콜을 받았던 만큼 돈도 많이 벌었을 듯했지만, 앞서 말한 독점적 저작권을 획득하지 못한 탓에 수입은 미미했고, 오히려 글자를 돈벌이에 이용하는 '상업적 그래픽디자이너'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이에 스스로 "모두가 ‘러브’를 알지만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는 자조적인 푸념을 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한데, '러브'의 성공 이후에는 <뉴욕타임스>의 미술비평기자 존 캐너데이로부터 "인디애나 다음 작품의 주제는 ‘돈(Money)’이 되어야 한다"는 동정어린 비평을 받기도 했다.

     

     

    앤디 워홀과 로버트 인디애나(오른쪽)
    앤디 워홀 스튜디오에서의 두 사람 / 로버트 인디애나와 앤디 워홀은 1928년 생 동갑으로 같은 팝아트의 길을 걸었으나 조명은 늘 앤디에게만 집중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러브'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지속적인 작품 활동을 했고, 이와 별개로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러브'도 많이 생산되어 미국 정부의 우표와 홍보물, 심지어 티셔츠, 머그잔, 관광엽서와 같은 상업용품에도 도용되었다. (따로 저작권이 있지 않으니 '도용'이란 단어가 적당치 않기는 하지만) 이와 같은 분위기가 그를 절망으로 내몰았을 것임이 분명할 터, 당시의 작품 중에는 '죽음'을 암시한 것도 상당수 눈에 띈다. 그리고 즈음한 1978년, 돌연 미술계를 떠났다.  

     

     

    죽을 것이냐, 악착같이 매달려 먹고 살 것이냐를 고민하는 듯한 로버트 인디애나
    생과사의 기로에 섰던 작품들
    '아메리칸 드림 II, Eat, Die, Hug, Err' (1996년)

     

    그러다 결국은 다시 미술을 해 먹고살자는 쪽으로 선회한 듯, 어느 날 나타나 'EAT'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문득 '희망(HOPE)'을 노래하기 시작했는데, 정말로 그 희망이 이루어져 1998년부터 '러브'에 대한 저작권이 주어지게 되었다. 그의 나이 71세 되던 해였다.  

     

     

    먹고 사는 고민은 누구에게나 힘겨운 문제
    로버트 인디애나 작업실에 남겨진 먹고 사는 고민들
    '희망'을 노래한 말년의 로버트 인디애나
    버럭 오바마 후보를 돕기 위해 제작되었다는 뉴욕 맨해튼 7번가의 '호프' 조형물
    '호프' 는 희망의 정치를 외치는 오바마의 연설에 감동을 받아 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왼쪽 'Obama Portrait HOPE: Red, White, & Blue' (2009년), 오른쪽 'HOPE: Red, White, & Blue' (2008년) / 헐리우드 뮤지엄
    완쪽 'HOPE: Red, Green, & Blue' ( 2009년) 오른쪽 'HOPE: Red, White, & Blue' (2009년) / 헐리우드 뮤지엄

     

    그는 말년이 되어서야 부와 명성을 함께 이루었지만 공개석상에 거의 나타나지 않고 뉴욕에서 650여 km 떨어진 메인주 바이널헤이븐 섬에 있는 자택에서 조용히 지내다 지난 2018년 5월 19일 호흡 부전으로 사망했다. 향년 89세로, 인생의 쓴맛과 단맛을 모두 보고 떠났는데, 그래도 말년에 단맛을 보았다는 게 다행이었다. 그가 생전의 인터뷰에서 성공작 ‘러브’를 '세상살이에 아주 화근이 되는 위험한 물건'이라 언급한 사실은 그의 지난날이 얼마나 지난(至難)했는지를 웅변으로 증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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