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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행했던 색면추상의 거장 마크 로스코의 삶
    미학(美學) 2022. 4. 12. 07:26

     

    색면추상(色面抽想)은 20세기 말 태동한 추상표현주의의 한 장르임에도 낯설지 않고 익숙하다. 이유는 우리가 많이 보아온 까닭이다. 설명도 쉬워서, 넓은 색면에 강렬하고 단순한 색채로 표현한 회화를 말한다. 색면추상의 세계가 추구하는 것은 색채 자체의 이미지와 순수성으로서 이로 인해 다른 표현적 요소가 배제되는데, 아래 그림을 보면 이해가 더 빠르다. 

     

     

     

    이 그림들은 모두 색면추상을 대표하는 작가 마크 로스코(Mark Rothko, 1903~1970)의 작품이다. 맨 위의 그림 '무제'는 그의 1965년 작으로 가격이 수백 억 원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그림인데도 그간 우리에게 홀대받았다. 가격적으로 볼 때 일반인이 취급할 수 있는 물건은 아니니 홀대라는 표현은 적당치 않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검찰은 그랬으니 2008년 삼성 비자금 사건으로 호암미술관을 압수 수색할 때도 관심권 밖에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검찰이 모셔갔던 전문가도 그 가치를 등한시했던 것인데, 그래서인지 마크 로스코의 그림들은 얼마 전 삼성이 사회에 환원한 이른바 '이건희 컬렉션'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리움미술관 측에서는 내심 무척이나 기뻐했을 것 같다) 실상을 말하자면 로스코의 그림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 100선에 무려 6개가 랭크돼 있다. 아래 그림과 가격을 보면 로스코 그림의 파괴력을 알 수 있는데, 그는 비교적 다작(多作)을 했음에도 소품(小品)이라도 가격이 싸지 않다. 아니, 무시무시하다. 그가 오늘 말하려는 주인공이다. 

     

     

    'No. 6'

     

    위 마크 로스코 작품의 제목은 'No. 6'이나 다른 그림과의 구별을 위해 편의상 '바이올렛, 그린 앤 레드'라는 부제가 붙여졌다. 'No. 6'는 2018년 스위스의 유명한 그림상을 통해 '살바토르 문디'(현재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의 전 소유주인 드미트리 리볼로블레프(AS 모나코 구단주)에게 약 1억 8,600만달러(2,100억 원)에 판매되었다. 현재 피카소의 '알제의 여인들'을 밀어내고 비싼 그림 순위 5위에 랭크되어 있다. (☞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 5점 감상하기'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 5점 감상하기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 5점을 올려보았다. 오늘은 고급지게 그 그림들을 감상해보자. 5위 잭슨 폴록의 'No 5' 제작시기: 1948년 거래년도: 2006년 (소더비 경매소) 거래가  : 1억 4000만 달러 (약 1,469

    kibaek.tistory.com

     

    그동안 이 순위는 별로 변동이 없었는데, 윌렘 드 쿠닝의 '인터체인지'(3억 1710달러)가 끼어들며 폴 고갱의 '언제 결혼할거니?'를 밀어내고 2위가 되었다. 윌렘 드 쿠닝 역시 '액션 페인팅'이라 불려지는 추상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 양식의 작가이다.

     

     

    '인테체인지'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마크 로스코의 작품과 그의 생을 들여다보려고 하는데 먼저 그림 몇 점을 감상하고 가자.  

     

    '마티스에 대한 경의'(Homage to Matisse) 1954년 작 / 로스코의 추상 회화 가운데 유일하게 구체적인 제목이 붙은 이 그림은 2005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2,240만 달러(약235억)에 낙찰되며 사상 최고가 기록을 세운 바 있다.
    워싱턴 국립미술관의 '마크 로스코 방'
    워싱턴 국립미술관의 마크 로스코 작품
    2014년 뉴욕 소더비에서 4500만 달러(약 540억)에 거래된 'No. 21' (Red, Brown, Black and Orange)
    보스톤 미술관의 마크 로스코 작품
    보스톤 미술관에 전시된 'No. 1'
    2010년 뉴욕 추상표현주의 작가 전시회에서의 마크 로스코 작품
    2014-2015년 하버드대 예술 박물관에 전시된 마크 로스코 작품

     

    마크 로스코는 러시아 출신의 미국 화가로 미국 추상표현주의, 색면추상 장르의 대표 작가이다. 그에 대해 특기할 만한 것은 정식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작가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잭슨 폴록, 윌렘 드 쿠닝 등과 더불어 제2차세계대전 후 변화하는 미국 화단을 이끈 것인데, 이는 매우 놀랍고 이례적인 일이다. (한국에서 정식 미술 교육을 받지 않고, 한마디로 말해서 유명 미대를 나오지 않고 작가로 성공할 수 있는 길은 사실상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는 당시의 미국도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로스코가 아예 무식쟁이거나 고흐처럼 맨땅에 헤딩하는 식은 아니었다. 그는 1923년 뉴욕으로 온 뒤 예일대학을 다녔다. (하지만 인종차별과 엘리트주의에 실망하고 자퇴한다) 이후 1924년 뉴욕 시의 아트 스튜던츠 리그(ASL)에서 조지 브리지먼의 해부학 강의를 듣고 맥스 웨버의 회화 수업을 들었으며 밀턴 에버리에게 그림을 배웠다. 다만 학교가 아니라 예술가 공동체 같은 곳이어서 학벌로서의 받침은 되지 못했다.

     

    1928년, 로스코는 처음으로 전시회를 열었으나 일부 비평가들에게만 주목을 받았을 뿐 대중적 반응은 없었다. 이후로도 그랬으니 무명 화가로서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다. 아내 에디스는 로스코가 그림 그리기를 그만 두기 바랬으나 성사되지 못했고, 이후로는 언제 사랑했나 싶게 허구한 날을 다투더니 결국 1944년 이혼을 했다. 당연히 위자료 줄 돈도 없었으니 에디스는 그저 그림 몇 점만을 집어갔다.

     

    이후로도 나아진 게 없어서 1945년 구겐하임에서의 공동 미술전람회 때 750달러짜리 그림을 판 것이 그나마 팔았다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때 만난 바넷 뉴먼, 클리퍼드 스틸 같은 작가와의 교류는 그에게 큰 힘이 되었고, 그들의 조언으로부터 자신의 색면 회화(Color Field)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때부터는 사물을 재현하던 기존의 화풍을 버리고 형태, 공간, 색채의 이미지 등 형식적인 면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2013년 일본의 한 기업이 103억엔(약1135억 원)에 구매한 바넷 뉴먼의 작품 '안나의 빛'

     

    그리하여 나름대로의 색면 회화를 추구하던 그는 뉴욕 맨하튼 페기 구겐하임이 운영하던 Thr Art of This Century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게 되었고, 뉴욕 미술계로부터 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1950년에는 한스 호프만, 바넷 뉴먼, 클리퍼드 스틸, 잭슨 폴록 등 유명 화가와 미술가로 구성된 18명 뉴욕 학파의 일원이 되었고, 1954년부터는 시드니 제니스 화랑의 전속작가가 되었다. 전속작가가 되었다는 것은 그림만 그리면 팔릴 수 있는 신분이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비로소 돈의 맛을 보기 시작한 로스코는 자연히 브루주아 생활에 탐닉하게 되었다. 

     

    로스코는 점점 명성이 높아갔고 눈 앞에 돈이 쌓였다. 그는 1961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식에 초대 받을 정도로 유명 인사가 되었으며 취임식장에서는 대통령의 아버지 죠셉 케네디의 곁에 앉았다. 클리퍼드 스틸로부터 그간 자신이 주었던 그림을 모두 돌려달라는 편지를 받은 것도 그즈음이었다. 뉴욕 학파 친구들은 자본주의에 찌들어가는 로스코를 경멸했고 급기야 바넷 뉴먼과 클리퍼드 스틸은 절교를 선언했다. (이후 이들의 관계는 평생 회복되지 않았다)

     

    그래도 로스코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으니 여전히 자신이 정통이요, 가장 잘 나가는 화가로 여겼다. 그는 당시 미국에서 새로운 장르의 미술로 자리 잡던 팝아트(☞ '팝아트와 올덴버그의 스프링')를 '사이비 예술, 기회주의자들의 반동'이라고 대놓고 비판했다. 그런데 이것은 오히려 성공한 미술가로서의 불안을 보여준 사례로서, 그는 속으로는 자신의 내리막을 크게 걱정했고 두려워했다.

     

     

    1968년 작 '블랙 블루 페인팅' / 그의 그림은 뒤로 갈수록 색채가 어두워진다.

     

    로스코는 자신의 창의력이 고갈되어 예술적 한계에 부딪힐까 늘 불안해 했고, 결국 우울증이 오고 말았다. 게다가 1968년에는 알코올 중독에서 비롯된 대동맥류로 인해 한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했는데, 그 2년 후인 1970년 2월 25일 피바다를 이룬 자신의 작업실에서 손목 동맥이 절단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유서는 없었고, 경찰은 항우울증제 과다복용으로 인한 자살로 판명하였다.   

     

     

    자신의 작품 앞에 선 마크 로스코

     

    * 2015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마크 로스코 전시회는 관심이 뜨거웠고 문화계 파워 100인에 의해 당해 최고의 전시회로 평가받아 '올해의 미술' 1위에 올랐다. 역대 최고의 보험료를 담보로 개최되었다 하여 (이에 미국 국립미술관이 한국에 대규모로 그림을 빌려준 첫 사례가 되었다 하여) 화제가 되기도 한 이 전시회를 기획힌 사람이 코바나컨텐츠 대표 김건희였다. 그가 방한한 바이든 미 대통령에게 부인 질 바이든의 선물로 마크 로스코 전시회 도록을 선사했다 하기에 아래 사진을 추가해 올렸다. 

     

    마크 로스코 전 포스터
    마크 로스코 도록
    김건희는 2017년 자코메티 국내 첫 전시회도 주관했다. / 왼쪽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조각 '걷는 사람Ⅰ(L' homme qui marche I)'은 2010년 런던 소더비경매에서 6500만1250파운드(1억432만7006달러, 약 1202억원)에 팔려 당대 최고가를 경신한 직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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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스페르츠의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