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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다리 효과'는 진실일까?전설 따라 삼백만리 2022. 7. 6. 01:43
관광수입을 노려 전국의 산과 강에 세워진 서스펜션 브리지가 200개를 넘어섰다고 한다. 부르는 명칭도 하늘다리, 구름다리, 출렁다리, 흔들다리 등 제각각인데, 여기서는 가장 오래된 명칭인 흔들다리를 차용하겠다. 어찌 됐든 이 흔들다리는 각 지자체가 저마다 관광상품으로 개발한 까닭에 한달에 1~2개씩의 다리가 새로 지어졌고, 지금은 가히 포화상태로 여겨지는데도 계속 건설중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다리의 길이 경쟁이 필연이 됐다. 그래서 관련 보도는 흥미진진하기까지 하니, 2016년까지 국내 최장을 자랑하며 관광객을 독식하던 충남 청양군 천장호 흔들다리(207m)의 왕관은 2019년 인근 예산군이 이보다 두 배 긴 예당호 흔들다리(402m)를 완공시키며 뺏어갔는데, 이 또한 2년 만에 인근 논산시의 탑정호 흔들다리에 왕좌를 빼앗겼다. 정식 명칭이 논산 탑정호 출렁다리인 이 다리의 길이는 570m로 현재 국내 Top이자 동양 Top이다.
여기에 경북 안동시가 도전장을 내밀었다. 안동호에 길이 750m, 폭 2m짜리의 세계 최장 흔들다리를 건설하겠다는 것이었다. (현재 최장 흔들다리는 721m의 체코 스카이 브리지로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당초 예산 236억원보다 두 배 이상 불어난 565억의 사업비에 현재 건설이 보류된 상태인데, 아무튼 지금부터의 경쟁은 국내를 넘어 기네스북 등재를 목표를 하고 있는 바,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라 아니할 수 없는 지경이다.
그 비용이 사실은 모두 세금인지라 예산 낭비의 다리 짓기 경쟁은 이쯤에서 끝냈으면 하는 마음이나 어찌 됐든 국민들로서는 선택지가 많아졌다. 그래서 2020년 그중에서 가장 그럴싸해 보이는 높이 50m, 길이 200m의 포천 한탄강 하늘다리를 찾아가보았다. 하지만 코로나로 입장금지! 대안으로 찾은 파주 오두산성 · 통일전망대 역시 입장금지였다.
이쯤 되면 화가 나지 않을 수 없다. 실내도 아니거늘 코로나와 다리 구경이 무슨 관계가 있다고....? 다리를 건너다 스치는 사람에게 코로나가 옮을 수 있다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시추에이션을 상상한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며 씩씩대는데, 그때 다리 입구에서 어떤 젊은 청춘의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이게 뭐야? 정말 말도 안 돼!"
바라다보니 한 쌍의 청춘남녀가 난감한 얼굴로 서 있었다. 여자는 그저 어이없다는 표정이었지만 남자의 얼굴에서는 심한 낭패감이 읽혔다. 나이대로 보았을 때 기혼 커플이나 불륜 커플은 아닌 듯했다. 나는 그들에게, 특히 이 데이트를 기획했을 듯 보이는 남자에게 괜한 연민을 느꼈다. 그러면서 갑자기 '흔들다리 효과'가 생각이 났다. 혹시 저 남자는 '흔들다리 효과'를 기대해 여기까지 온 곳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남자가 더욱 안돼 보였다.
'흔들다리 효과'는 대중에게 비교적 잘 알려져 있는 심리학 현상으로, 흔들다리에서의 실험을 통해 이끌어낸 학설인 까닭에 그와 같은 이름이 붙여졌다. 어떤 실험이었을까? 1974년, 컬럼비아대의 아서 아론과 도널드 더튼 박사는 밴쿠버에 있는 캐필라노 강의 서로 다른 두 다리에서, 다리를 건너는 사람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했다. 첫 번째 다리는 좁은 폭을 가진 길이 137m, 높이 70m로 심하게 흔들리는 현수교 다리였고, 두 번째 다리는 높이 3m의 안전한 인도교였다.
실험은 다리를 건너는 18~35세의 남성에게 여성 조사원(실험 도우미)이 다리 중간에서 (별 쓸데없는) 설문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설문을 끝낸 조사원은 이 설문에 관해 궁금한 점이 있거나 더 알고 싶은 것이 있다면 전화를 달라며 전화번호를 주었다. 실험 결과, 흔들리는 현수교에서 설문에 응한 남성들은 50% 이상이 전화를 걸어왔고, 안전한 인도교에서 설문에 응한 남성들은 12.5%만이 전화를 걸어왔다. 물론 그냥 조사원에게 관심이 있어서 한 전화였다.
실험의 결론은 안전한 다리를 건넌 이성보다 흔들리는 다리를 건넌 이성이 전화를 걸어온 확률이 훨씬 높다는 것으로, 이로써 인간은 극적이고 위태로운 상황에서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사랑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원인은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황과 그로 인한 신체의 각성 상태에서는 이성(理性)보다 감성이 먼저 작동하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이를 테면 긴장해서 손에 땀이 났다던가, 격한 환경으로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던가 하는 경우, 감성이 먼저 작동한다.
환경은 꼭 현수교가 아니더라도, 등산을 할 때, 놀이기구를 탔을 때, 공포영화를 관람했을 때도 비슷한 결과가 도출된다고 한다. 그래서 등산 동호회와 같은 스포츠 동호회에서 불륜이 많은 이유도 종종 '흔들다리 효과'로 설명되는데, 생물학적으로는 교감신경의 흥분상태에서 분비되는 아드레날린 호르몬의 영향으로 설명된다. 사실 호르몬 분비 앞에서는 생각 외로 이성이 쉽게 마비된다.
대표적인 예로, 2005년 런던 지하철 폭탄 테러에 같이 도망친 사람들이 서로 순식간에 유대감이 생기는 경험을 느꼈다고 하는데, 당시의 한 생존자는 "1분 전까지 낯선 사람이었던 사람이 어느덧 세상에서 가장 가깝고 중요한 사람처럼 느껴지는 경험을 했다"고 언급했다. 이 역시 긴장감에서 분비된 아드레날린 호르몬의 영향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현수교는 남녀 간의 벽을 좁히거나 허물 수 있는 조건으로 충분히 작용할 수 있다. '흔들다리 효과'는 일단 진실인 셈이다. 그러나 능사는 아니다. 이런 효과로 인해 만난 커플들은 긴장 상태가 풀려 호르몬 분비가 멈춰버리면 금방 냉정한 현실로 리턴되기 때문이니, 위기 상황에서 목숨을 구해준 상대마저 시들해지는 경우가 있다. 실제로 그런 예가 예시된 경우는 없지만, 영화 '스피드'의 라스트씬은 여자 주인공 산드라 블록이 키아누 리브스에게 그런 말을 하며 끝난다.
"극한 상황에서 맺어진 커플은 오래가지 못한다고 하던데....."
하지만 영화는 일단 해피엔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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