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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연방군이 분전한 가평지구 전투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2. 7. 21. 06:34
산책로로 유명한 런던 템즈 강변의 템즈 엠뱅크먼트를 따라 걷다보면 영국 국방부 건물을 만난다. 그 뒤뜰에는 영국의 한국전 참전을 기리는 메모리얼 모뉴먼트가 서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상념에 젖은 토미 앗킨(Tommy Atkins, 영국 최하위 병사)이 다음과 같은 글을 딛고 서 있다.
대한민국의 자유와 민주주의의 수호를 위한 영국군 장병들의 희생에 감사드립니다. (With gratitude for the secrifices made by the Brutish Armde Forces indepence of freedom and democracy in the Repubric of Korea.)
한국전쟁 당시 영국군은 총 56,000명의 병력을 파견하였다. 그리하여 저 유명한 장진호 전투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싸웠으며,(☞ '역사상 가장 추운 곳에서 벌어진 싸움, 초신 전투') 약 5,000명이 사망, 부상, 실종, 포로가 되는 희생을 치루었다.(전사 1,078명 부상 2,764명 실종 179명 포로 978명) 이는 이후 영국이 치른 포틀랜드 전쟁, 이라크전, 아프가니스탄전의 전사자 숫자보다 많은 것이었다.
영국군이 참전한 전투 중에서 가장 기념비적인 전투가 오늘 포스팅하려는 가평전투이다. 가평전투는 특히 한국군이 퇴각한 사창리를 통해 들어온 중공군을 저지해 서울이 재점령되는 것을 막았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데, 단 이 전투는 영국군 단독으로 수행한 것이 아니라 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로 구성된 영 연방군이 주력이었고, 여기에 미군 213부대의 지원이 있었다.
앞서 '국군이 중공군에 첫 승을 거둔 용문산 전투'에서도 말했듯, 중공군은 참전 이후 미군은 되도록 피하고 상대적으로 전력이 약한 한국군을 집중공격했다. 그 중공군의 쪽수와 화력에 밀린 한국군은 청천강에서부터 경기도 가평과 강원도 화천을 잇은 선까지 후퇴했다. 말이 좋아 후퇴일 뿐 사실 정신없이 도망쳐 온 것이었는데, 다시 말하지만 '포위당하면 끝장'이라 강박이 낳은 결과였다.
1951년 4월 22일, 중공군은 다시 대공세를 퍼부어 한국군 제6사단이 집결해 있는 화천군 사창리를 들이쳤다. 미 제9군단장은 한국군 6사단에 제발 진지를 고수해달라는 사정조의 명령을 내렸지만 이미 사기가 저하된 국군에게는 무리한 주문이었다. 국군은 겨우 1시간 정도만을 버티다 온갖 것들을 다 팽개치고 다시 가평 계곡을 따라 철수했다. 그리고 그 뚫린 구멍으로 중공군이 침투했고, 이에 예상치 못한 공격을 당한 미군 제1군단과 9군단도 심각한 타격을 입고 후퇴를 해야 했다. 어쩌면 절체절명의 위기라고도 할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몰려오는 중공군을 영국군 제27여단을 주축으로 한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의 영연방군이 3일 동안 분전해 저지했다. (1951년 4월 23~25일) 당시 제27보병여단과 왕립 오스트레일리아 연대 제3대대, 패트리샤 왕녀 캐나다 경보병대 제2대대가 전방을 지켰고, 뉴질랜드 왕립포병여단이 이들을 지원했는데, 같은 영연방군이라는 연대의식과 원활한 언어소통은 서로에게 격려가 된 듯, 영연방군은 새까맣게 밀려드는 중공군 20군단의 공격 속에서도 가평전선을 여하이 지켜냈다. (숫자적으로는 5:1의 열세였다)
영연방군의 필사적인 저지에 중공군은 결국 북한강을 넘어서지 못하고 4월 25일 가평 북쪽으로 철수했다. 이 전투는 한국 전쟁 당시 호주군과 캐나다군이 수행한 전투 중 가장 위대한 전투로 평가받는데, 당시 이 전투에 참전했던 왕립 오스트레일리아 연대 제3대대는 지금도 '가평3대대’라는 별칭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가평전투 60주년인 2011년, 가평에서 열린 기념행사에는 영연방 참전용사들, 그리고 이례적으로 현직 호주 총리인 줄리아 길러드 총리가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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