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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설의 스나이퍼들과 한국군 박관욱 일병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2. 7. 22. 08:07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가 의외로 고전하는 것이 우크라이나 스나이퍼 때문이라는 말이 있었다. 실제로 지난 3월 안드레이 수호베스키 소장(러시아 제7공수사단장 겸 제41연합군 부사령관)의 사망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입을 통해 전해졌을 때 서방 언론은 그의 사망이 우크라이나 스나이퍼의 저격에 의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수호베스키 소장은 크림반도 병합의 공로로 훈장을 받은 바 있다) 
     
    이어 야코프 레잔체프 중장(러시아 제49연합군 사령관)의 사망 사실이 확인되었는데 이는 7번째 러시아군 장성의 죽음이었다. 이렇듯 짧은 기간에 다수의 장성이 전사한 경우는 매우 보기 드문 예로서, 미 외교전문 매체 포린폴리시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전에 투입된 러시아 장성  20명의 중의  3분의 1이 사망한 것이라고 한다.  
     
    서방 매체들은 이들의 사망이 대부분 스나이퍼의 저격에 의한 것이라고 보고 있는데, 안드레이 수호베스키 소장 외에 하르키우 인근에서 사살된 비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소장과 안드레이 콜레스니코프 소장, 그리고 마리우폴 전투에서 죽은 올렉 미티아예프 중장 등도 저격에 의한 사망으로 간주되고 있다.    
     
    특히 BBC는 그 원인이 러시아군 사기 저하와 관련이 있다고 분석했다. 즉 러시아 고위 장교들은 병사들의 사기 저하에 대처하기 위해 일선 참여를 강요받고 있으며, 러시아군 자체가 개인 휴대전화나 구식 무전기 등 보안이 잘 안 되는 통신 시스템에 의존하고 있는 까닭에 은폐로부터 쉽게 노출된다는 분석이다.
     
    그런데 이렇게 보면 뭔가 좀 이상하다. 러시아는 제2차세계대전 등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전설의 스나이퍼들을 줄줄이 배출한 나라이기 때문이니, 대표적으로는 표도르 오클로포프 하사와 바실리 자이체프 대위를 들 수 있다.
     
    표도르 오클로포프 하사(1908~1968)는 구 소련군 소속의 군인으로, 확인된 표적 사살자 수만 429명에 달하는 역대 최고 저격수이다. 그는 제2차대전에서 세운 이 화려한 공로로서 1965년 레닌으로부터 국가 최고훈장까지 받았지만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인해 훗날 서훈이 박탈되고 훈장을 반납해야 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그의 출신지는 극동 연해주로서 필시 고려인으로 추정된다.
     
     

    표도르 오클로포프(Fyodor Okhlopkov)

     
    그 다음으로 꼽을 수 있는 사람이 바실리 자이체프 대위(1915~1991)이다. 2차세계대전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투입된 그는 1942년 11명의  독일군 스나이퍼를 포함한 242명을 표적 사살했는데, 당시 사용한 총알은 243발이었다는 전설 같은 스토리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그야말로 원샷원킬이었다는 얘기다. 그는 이후 스나이퍼 부대의 책임자로서 저격수들을 양성했는데, 그가 양성한 저격수들은 2차대전 동안 6000명의 적을 사살했다고 한다.
     
     

    바실리 자이체프 (Vassili Zaitsev)

     
    영화 '에너미 앳 더 게이트' 의 실제 주인공이기도 한 그는, 1973년 윌리엄 크레이그(William Craig)가 쓴 《에너미 앳 더 게이츠: 스탈린그라드 전투(Enemy at the Gates: The Battle for Stalingrad)》라는 논픽션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영화 역시 이 논픽션이 바탕이 되었다. 
     
     

    영화 '에너미 앳 더 게이트' 속의 귀신 같은 사격 솜씨

     
    '죽음의 숙녀'(Lady Death)라는 무시무시한 별명으로 불리던 류드밀라 파블리첸코(1916~1974) 역시 손꼽히는 저격수이다. 세계 역사상 최고의 여성 스나이퍼로 일컬어지기도 하는 류드밀라는 제2차세계대전 중 10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에 독일군 저격수 36명을 포함한 309명을 사살하는 놀라운 실력을 보였다. 1942년 6월, 박격포에 맞아 은퇴한 후로는 저격수를 양성했는데, 종전(終戰) 때까지 활약했다면 충분히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했을 것으로 보인다.
     

    류드밀라 파블리첸코 (Lyudmila Pavlichenko)
    뛰어난 미모로도 유명하다.

     
    그런데 여기서 류드밀라는 공교롭게도 우크라이나 출신이며, 바실리 자이체프는 우크라이나와 가까운 우랄이 고향이다. 그래서인지 우크라이나 지역에서는 스나이퍼가 많이 배출되었다고 하며, 이번에도 돈바스 지역 여성 저격수가 10여 명의 러시아군을 사살한 사실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차콜'(숯)이라 불리는 미모의 여성 저격수가 외신을 타기도 했는데, 그녀의 전력과 신상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없다.  
     

    얼굴과 총을 천으로 감싼 모습에서 스나이퍼의 포스가 뿜어난다.

     
    한국전쟁 때에는 미 해병대의 홀메스(G. Holmes) 중위가 뛰어난 스나이퍼로서 명성을 떨쳤는데, 반면 중공군에서는 24군단 소속의 장 타오팡이 유명하다. 휴전 직전의 고지전에서 두각을 나타낸 그는 삼각고지 전투 기간 중인 32일 동안 국군과 미군 214명을 저격해 살상시켰다고 알려져 있다.
     
     

    장 타오팡

     
    한국군 중에서는 이름을 날린 저격수는 없으나 고지전에서 용맹을 떨친 김재호 일병과 박관욱 일병이 유명하다. 김재호 일병은 수도사단 제26연대 1대대 소총수로 1952년 중부전선 수도고지 전투에서 이름을 알렸다.
     
    1952년 10월 6일 저녁, 그는 중공군과의 백병전에 참가했다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중공군의 진지를 향해 홀로 뛰어들어가 수류탄을 투척했다. 그리고 놀라 달아나는 적을 향해 총을 발사해 6명을 사살한 후 적의 소총 등을 노획해 돌아왔다. 안타깝게도 그는 정전협정 체결 12일 전인 1953년 7월 15일, 중공군과의 가장 치열한 접전이 이어졌던 금성지구 전투에서 전사했다. (1953년 을지무공훈장이 수여됐다)
     
     

    김재호 일병에 관한 국가보훈처 포스터

     
    1952년 12월 노리고지 전투에서 보여준 1사단 소속 박관욱 일병의 활약은 가히 전설적이다. 그는 당시 중공군이 점령하고 있던 경기도 연천의 노리고지를 뺏기 위한 전투에 참가했는데, 중공군의 완강한 저항에 소대장 전원이 전사하고 이병과 일병 몇 명만이 살아남았다. 그리하여 패색이 완전히 짙어질 즈음 박관욱 일병이 무거운 브라우닝 자동소총을 메고 적진으로 돌진하는 돌출행동(?)을 보였다.
     

    M1918 브라우닝 자동소총 / 흔히 BAR(Browning Automatic Rifle)로 불리던 30구경 자동소총으로 20발의 자동사격이 가능했다.
    BAR는 들고 쏘기도 하나 무거워서 대개 아래처럼 거치해 쏜다.

     
    박 일병이 홀로 진지를 향해  돌격해오자 중공군들은 오히려 당황한 듯 사격을 멈추고 바라보았는데, 박 일병은 그 틈을 이용해 적진에 자동소총을 난사했다. 당연히 중공군 쪽에서도 반격이 있었다. 하지만 박 일병은 용케 엄폐해 응사했고, 그로 인해 우리 군은 고지의 적군이 얼마 없음을 판단할 수 있었으며, 이에 총공격을 감행해 고지를 탈환할 수 있었다. 
     
    이 모습을 대대 관측소에서 지켜보던 미 제1군 단장 폴 윌킨스 켄달(Paul W. Kendall) 장군은 "군 생활 30년을 넘게 했지만 저렇게 용감한 사람은 처음 본다. 저 병사는 초인이다!"며  경탄해 마지 않았다고 한다. 이 공으로 박 일병에게는 미군 훈장 중 세 번째로 격이 높은 '은성 훈장'이 수여됐다.
     
     

    "That soldier is a superman!"

     
    박관욱 일병은 그때 "우리가 이 고지를 점령하면 상관과 동료들의 죽음에 보답할 수 있을 거 같기에 몸을 아끼지 않았다"는 말을 했다 한다. 그는 이 일로 인해 미군들 사이에서 '노리고지의 불사신'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더불어 진급도 했으나  4개월 후인 1953년 3월 12일 연천 임진강 전투에서 중공군의 포탄에 의해 전사하고 말았다.
     
     

    영화 '고지전'의 스틸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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