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왕국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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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와 <송서>에 등장하는「왜」& 신묘년 기사잃어버린 왕국 '왜' 2020. 9. 14. 00:43
왜가 본래 한반도 남부에 존재하던 나라라는 것을 앞서 여러 경로를 통해 밝힌 바 있다. 이번에는 초기 기록과 의 기록을 통해 '한반도의 왜'를 조명해보기로 하겠다. 거기에 실린 아래의 기록들 역시 왜(倭)가 일본열도에 있었다면 생겨나기 어려운 기록들이다. 4세기의 일본열도에는 통일세력이 존재하지 않았음은 물론이요 겨우 원시시대를 벗어난 문명이었으므로 한반도를 침공할 만한 세력이 존재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그때의 왜는 한반도에 있어야 했다. 그럼에도 일본은 물론이요 우리나라의 역사조차도 이 '왜'를 바다 건너의 왜라고 기술하고 있으니 답답하기 짝이 없다.(일본의 역사 왜곡은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가 거기에 동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광개토대왕비문의 신묘년 기사를 놓고 일본에 끌려다니는 이유도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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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대왕비문 속의 고구려와 왜(倭)의 한판 승부잃어버린 왕국 '왜' 2020. 6. 5. 20:22
광개토대왕비문에 기술돼 있는 한반도의 패권을 놓고 붙은 고구려와 왜(倭)의 한판 승부 우리나라 전래의 역사 기록이 박약함은 앞서 '기록의 중요성'에서 충분히 떠들었다. 그 중 몇 줄을 옮겨오면 다음과 같다. 우리 민족의 뿌리 고조선은 이렇듯 중국과는 고대부터 밀접한 관계에 있어왔지만 서로 독립적인 관계였다. 그런데 중화인민공화국이 강성해지며 지금의 중국 영토 안에 속했던 모든 나라를 자국의 역사 안에 편입시키 위한 공식적인 역사 왜곡 작업을 시작했으니, 그중 고조선과 고구려와 발해가 존재하던 동북쪽 땅에 대한 중국 역사로의 편입 작업이 이른바 '동북공정'이다. 그런데 그와 같은 역사 왜곡 작업에 우리가 속절없이 당하고 있는 것은 이를 반박할 만한 '우리의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이것은 사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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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일본부의 정체(III) - '왜'는 어디에 있었나?잃어버린 왕국 '왜' 2020. 3. 23. 00:07
* '임나일본부의 정체(II) - 나주 옹관 무덤의 주인은?에서 이어짐 그 옹관묘 묘제를 사용하던 사람들은 3~6세기의 약 400년 동안 한반도 남부에서 활동했다. 그들의 체구가 보통 사람들보다는 조금 작았음일까, 이웃 나라인 고구려, 신라, 백제 사람들은 그들을 왜인(倭人)라고 불렀다. 왜소한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체격과는 무관하게 용감했으니 백제의 아신왕은 자신의 아들 전지를 볼모로 잡히고 고구려와의 전투에 원병을 청했고,(396년) 신라 역시 왕자 등을 볼모로 보내 그들의 자비를 구했다. 왜인들이 쉴새없이 신라를 침입해 노략질을 하는 까닭이었다. ~ 중국도 그들을 왜인이라 불렀으니 위서(魏書) 한전(韓傳)과 동이열전(東夷列傳) 한전(韓傳)에서 말하는 그들의 영역을 I편에서 이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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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일본부의 정체를 밝힌다 - 신라를 침략한 왜인잃어버린 왕국 '왜' 2020. 3. 19. 23:52
최근 한일 관계가 악화되면서 일본의 극우단체들에 의해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설이 다시 들춰지고 있다. 설명을 덧붙이자면 4세기 일본을 통일한 야마토 정권이, 구체적으로는 진구(神功)황후 정벌군이 369년 한반도에 건너가 군소 7국을 점령하고 식민지를 건설했다가 562년 신라에게 멸망당했다는 설이다. 말하자면 임나일본부는 한반도 남부를 근 200년 동안이나 지배한 식민통치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데, 그 주된 근거는 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마디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그에 대해서는 차차 설명을 해도 여유가 있을 정도로 허구성이 짙어 특별히 방어하거나 공격을 할 필요성도 느끼지 않지만,(그래서 그런지 우리의 방어도 느슨해 관련 논문이 의외로 적은 데 놀랐다) 그래도 저들은 임나일본부설을 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