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스페르츠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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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대왕과 신라 석굴암(III)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17. 11. 2. 04:39
문헌상의 특별한 기록은 없지만 알렉산드로스가 동방 원방을 떠날 때 학자나 예술가도 동반했을 것임은 그 상상이 어렵지 않다. 또한 알렉산드로스는 어릴 적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를 스승으로 두고 사사했던 바, 그 역시 상당한 학문과 심미안을 갖췄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학문적 경지는 자신이 이룩해 낸 헬레니즘 문명으로 표출되었던 바, 비록 그의 치세는 짧았으나 그 영향력은 우리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할 듯싶다. 그는 실제로 살아생전에도 동서 문화의 융합인 헬레니즘의 사상을 몸소 실천하였으니 박트리아에 이르러서는 그곳 여자와 결혼하였으며, 페르시아 수사에서는 그리스 · 마케도니아 장병 1만 명과 페르시아 여자의 합동결혼식을 주관하기도 하였다. 앞서 거론된 디아도코이 니카토르 1세도 알렉산드로스의 권유로 박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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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대왕과 신라 석굴암 (II)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17. 11. 1. 01:53
알렉산드로스와 페르시아의 3번 째 대전(大戰)은 가우가멜라 전투였다. 가우가멜라는 티그리스강 상류에 위치한 벌판으로 페르시아어로 '낙타의 집'을 의미한다. 옛날 페르시아의 어떤 왕이 적에게 쫓길 때 자신의 낙타가 매우 빨리 달려 목숨을 구할 수 있었는데, 이에 낙타에게 그때의 땅을 봉토로 주었던 까닭에 그렇게 불리게 된 것이었다. 지금의 지명으로 설명하면 가우가멜라는 이라크 모술 동쪽 27km에 위치한 벌판으로서, 이 일대는 지난 3년간 금세기 최악의 테러집단 IS에게 점령당했다 올해 7월 10일 국제연합군에 수복된 지역이기도 하다. 전투는 BC 331년 10월 1일에 벌어졌다. 플루타르쿠스는 월식이 있던 날로부터 12일 째 되는 날 전투가 벌어졌다고 기록하였던 바, 날짜는 이를 역산하여 산출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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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선지 장군과 종교개혁 (II)지켜야할 우리역사 고구려 2017. 10. 26. 00:46
종이는 중국 후한(後漢) 시대의 환관 채륜의 발명품으로 알려져 있는데, “후한서” ‘채륜전’에는 ‘105년, 채륜이 여러 방법을 시도한 끝에 황제에게 종이를 바쳤다. 황제는 그의 노고를 크게 치하하고 앞으로는 채륜의 방법으로 종이를 만들도록 명했다. 이때 채륜이 만든 종이를 세인들은 채후지(蔡侯紙)라고 불렀다’고 하는 기록이 전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역사가들은 중국의 종이는 이보다 200년 정도 앞서 발명됐고, 채륜은 기존의 종이를 보다 얇고 견고하게 만들었으니 이것이 바로 채후지일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20세기 고고학자들의 발굴 결과, 전한(前漢) 무제(기원전 140~84) 때의 고대 종이가 발견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와 같은 종이가 757년, 사라센 제국의 영토인 사마르칸트에서 재현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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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선지 장군과 종교개혁 (I)지켜야할 우리역사 고구려 2017. 10. 26. 00:41
올해가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라 한다. 루터는 1517년 10월 31일, '95개조 반박문'을 비텐베르그 성 교회 문 앞에 게시하고 그릇된 제도에 대해 토론할 것을 제의했다. 그것이 종교 개혁의 시발점이었다. 그 500주년에 즈음한 오늘, 나는 그 거대한 개혁의 초석이 된 고구려 출신의 한 남자를 소개하려고 한다. 그 이름은 고선지이다. 고선지(高仙芝)는 고구려의 유장(遺將) 고사계의 아들로, 20세 초반의 나이에 당(唐)나라 유격장군이 되어 당시 당나라의 가장 골칫거리였던 토번국(티벳)과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대당(大唐) 제국 전선(戰線)에의 화려한 데뷔였다. 이후 그는 740년, 달해부 전투에서 2천 기병을 이끌고 승리하여 중앙 무대에 이름을 올리고, 이후로도 서방 정벌전에 승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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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네안데르탈인의 슬픈 죽음 (II)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17. 10. 24. 20:07
(I 편에서 연결됨) 그러던 중 2015년 4월, 네안데르탈인의 멸종에 관한 새로운 소식이 들려왔다. 그 전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네안데르탈인의 멸종 원인을 두고 학계의 의견이 여전히 분분한 가운데, 이들이 현생 인류와 달리 불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것이 멸종의 화근이라는 주장이 나왔다고 라이브사이언스 등 과학전문매체의 22일자 보도했다. 약 3만 년 전까지 유럽에서 서아시아지역에 걸처 분포한 초기 인류인 네안데르탈인은 현생인류의 조상인 호모사피엔스가 아프리카 대륙에 등장한 뒤 지구상에서 사라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보스턴대학교와 영국 배스대학교의 합동 연구진은 네안데르탈인이 호모사피엔스와 달리 불을 사용하지 않은 채 음식을 해 먹었고, 이것이 멸종의 원인 중 하나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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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네안데르탈인의 슬픈 죽음(I)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17. 10. 23. 23:24
1856년 8월의 어느 더운 날, 독일 뒤셀도르프 근방의 석회암 채석장에서 정체불명의 유골 화석이 수습되었다. 형태로 보아서는 분명 사람의 뼈인데, 그 모양새가 현대인과는 많이 달랐다. 대퇴골이 매우 굻고 휘어져 있었으며 해골의 이마는 낮았고, 무엇보다 툭 튀어나온 눈 주위 뼈가 눈길을 사로잡는 인골이었다. 해골은 정수리 부분에서 이마와 위 눈덩이까지만 있었다. 후세 사람들은 이 인골을 네안데르탈인(人)이라 이름 붙였다. 인골이 발견된 채석장이 네안데르(neander) 계곡(thal)이기 때문이었다. 한 마디로 ‘네안데르 계곡에서 발견된 사람’이라는 뜻인데, 그 명명이 나름 의미 있다. 그 계곡이 네안데르라고 불린 이유는 독일의 작곡가이자 시인인 요하임 노이만(Joachim neumann)의 이름에서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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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의 수수께끼 단어 '우리', 그 비밀의 열쇠를 찾아서 (IV)성서와 UFO 2017. 10. 18. 22:43
앞선 챕터에서 설명했듯 삼위일체론은 그 사상적 투쟁을 통해 이제는 신·구교의 확실한 신론(神論)으로 자리잡았다. 그럼에도 그 결론은 아직도 생각있는 많은 신학자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는데, 이유인즉 삼위일체론을 바탕으로 한 칼케돈 신조에는(뒤의 콘스탄티노플 신조를 포함하여) 문장 그대로 3명의 하나님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성부인 하나님이 있고, 성자인 하나님이 있고, 영적인 하나님(성령)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삼위일체론의 토대를 마련한 터툴리아누스나 이를 완성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생각은 결코 그렇지 않았으리니 그들은 분명 하나님은 한 분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 말한 아리우스의 일신론, 네스토리우스의 이성론(二性論), 에우디케스의 단성론(單性論) 등과 싸우는 과정에서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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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의 수수께끼 단어 '우리', 그 비밀의 열쇠를 찾아서 (III)성서와 UFO 2017. 10. 17. 15:41
칼케돈 공의회와 ‘기독교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네스토리우스는 그렇게 정죄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세력 자체가 몰락된 것은 아니었던 바, 그들은 나름대로의 살 길을 찾았다. 그리하여 흐트러진 세력을 규합하고 전열을 정비하여 이후 다시 한판 붙은 것이 451년(10월 8일부터 11월 18일까지) 보스포러스 해협 인근 도시 칼케돈에서 개최된 칼케돈 공의회였다. 네스토리우스파가 다시 공의(公議)를 요구하게 된 것은 앞서 개최된 에페소스 공의회의 결과가 다분히 정치적이었고 게다가 사감(私感)에 좌우된 결정이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그들은 여전히 논리적 이해를 요구하고 있었던 바, 그 이유는 아직도 동방교회가 다음 질문에 대한 속 시원한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동질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