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스페르츠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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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과 그의 딸 경혜공주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5. 6. 20. 00:30
문종은 29년 동안이나 세자의 자리에 있었던 준비된 왕이었다. 1450년(세종 32) 2월 세종이 죽자 문종은 마침내 왕위에 올랐다. 그는 우리 역사상 최고 성군인 세종이 심혈을 기울여 키운 최고의 왕재(王才)였고, 세종 마지막 치세 8년을 문종이 노쇠한 아버지를 대신해 대리청정을 했으므로 아무런 무리 없는 순탄한 대물림이 이어질 수 있었다. 문종이 대리청정 기간에 한 일은 매우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일은 1446년(세종 28년) 10월 9일에 훈민정음을 반포한 일일 터, 만일 문종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고유문자 없이 지금도 '문자가 서로 사맛디 아니한' 한자를 사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후 조선은 내내 중국을 사대했기에) 문종은 30세인 1443년부터 대리청정을 했는데, 이 기간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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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왕후의 무덤 사릉과 임시 개방된 소나무 숲속의 무덤들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5. 6. 18. 23:50
단종 비 정순왕후(定順王后, 1440~1521)는 여산 송씨 송현수의 딸로 1454년(단종 2)에 왕비로 책봉되었다. 정순왕후는 당시 열 다섯 살로 단종보다 한 살 위였는데, 야무지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드라마 같은 데서도 야물딱지게 나와 수양대군이 오히려 쩔쩔매는 장면이 그려지곤 한다. 실제로도 왠지 그러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양대군을 위시한 한명회 · 권람 · 신숙주 · 홍윤성 · 양정 등의 기라성 같은 문무 책사들의 음모인 계유정난을 극복해 낼 수는 없었을 터, 혼인한 지 이듬해 단종이 수양대군(세조)에게 왕위를 넘겨주고 상왕이 되자 의덕왕대비(懿德王大妃)가 되었다. 그리고 3년 뒤, 사육신의 단종 복위운동이 실패로 돌아가며 단종은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등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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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당의 허망함ㅡ박영효 무덤의 경우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5. 6. 16. 22:25
인간의 목숨은 유한하나 역설적이게도 사후(死後)는 무한하다. 따라서 인간이 생전에 살 집은 억지로나마 늘려갈 수가 있어도 유택(幽宅)을 무한히 늘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영원히 사는 인간은 없기에 언젠가는 땅에 묻혀야 되는데, 그들이 묻힌 곳은 영원이라고 하지는 못하겠지만 꽤 오랜 시간을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므로 땅이 점점 부족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우주로 땅을 넓히지 않는 한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다. 우리가 살고 있는 더멘션(dimension, 次元)으로 볼 때 우주는 무한하다 하므로 우리가 우주 식민지와 같은 땅을 갖게 된다면 묘지 문제는 해결된다. 말하자면 우주장(宇宙葬)을 하면 되는 것인데, 실제로 다른 암석 행성 어느 곳에 묻히지는 않았지만 1997년 노환으로 세상을 떠난 미국의 천문학자 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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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여의사 김점동과 조국 딸 조민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5. 6. 15. 21:18
앞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 의사 박서양과 김필순의 이야기를 다룬 적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의사가 탄생한 시기만을 상기하자면 한일합방 전인 1908년으로, 박서양과 김필순은 당시 서울역 앞 세브란스 병원 자리에 있었던 제중원의학교를 졸업함으로써 동급생 다섯 명과 함께 의사가 되었다. 이들의 위인전적 삶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최초 의사 박서양과 김필순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자세한 얘기를 실은 바 있다. 우리나라 사람으로 최초로 의사가 된 사람은 서재필로, 갑신정변의 4인방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람이기도 하다. 1884년 갑신정변 실패 후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간 서재필은 우여곡절 끝에 1890년 필립 제이슨(Philip Jaisohn)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시민권을 취득했다. 이후 주경야독으로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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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암산 불암사와 석씨원류응화사적책판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5. 6. 14. 22:44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에 자리한 불암사(佛巖寺)는 불암산 자락에 있다. 즉 불암산에 있다 하여 불암사인데, 사찰 입구에는 '불암산은 봉우리가 모자를 쓴 부처 형상과 비슷하다고 해서 이 같은 이름이 붙여졌다'는 안내문이 서 있다. 그렇다면 불암산은 '산 전체가 불국토(佛國土)인 신(神)적인 산인 셈'이라고 생각하다가 이내 마음을 고쳐먹는다. 부처는 신이 아니기에 '신적'이라는 말 자체가 오류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야훼는 두 말할 것 없는 절대자요 신이다. 하지만 불교의 석가모니는 깨달은 자일뿐 신은 아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누구나 깨달음을 얻으면 석가모니와 같은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바, 성불(成佛)하시라는 말은 불가의 더없는 덕담이다. 까닭에 서양인들은 불교에 대해, 1)부처가 창조주와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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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산 유격대장 이정숙과 불암산 유격대장 김동원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5. 6. 13. 22:30
앞서 쓴 '최후의 빨치산 정순덕 여사'는 조회수가 별로 높지 않은 본 블로그에서 제법 효자 노릇을 했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골수 빨갱이에 관해 쓴 글의 첫머리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기억하실 분은 거의 없겠지만 20년 전 오늘은 정순덕이 죽은 날이다. 제목대로 그는 최후의 빨치산이라 불리는 사람으로, 내가 여사라는 호칭을 붙인 것은 그저 그가 여자임을 강조하고 싶어서이다. 정순덕에 대해서는 "하동 사람은 아이들이 울면 '그러면 호랑이가 와서 잡아간다'가 아니라 '정순덕이 와서 잡아간다'고 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공포의 대상이었다고 하는데, 놀랍게도 여자였던 것이다. 정순덕은 먼저 빨치산이 된 남편 성석근을 만나기 위해 1951년 2월 지리산으로 들어간 후 무려 13년간을 빨치산으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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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윤부의 망세정(忘世亭)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5. 6. 11. 20:53
또 멀지 않은 곳을 찾아 옛 흔적을 더듬어보았다. 이번에 찾아 나선 것은 경기도 남양주시 오남읍 양지리에 심윤부가 세웠다는 망세정(忘世亭)이다. 심윤부는 조선 전기 문신으로 본명은 심선(沈璿, ?~1467)이며 윤부(潤夫)는 자(字)이다. 호는 망세정(忘世亭), 본관은 청송이며, 고려말 왜구와 홍건적 격퇴에 공을 세워 이성계에 이어 무장 서열 2위까지 올랐던 청성백(靑城伯) 심덕부(沈德符)의 증손이다. 심윤부는 1453년의 계유정난(癸酉靖難)에는 참여하지 않았으나 신숙주, 양정 등과 더불어 2등 정난공신이 된 홍윤성과 사돈을 맺었고 이후 수양대군의 즉위를 도왔으며 이에 예조참의를 비롯한 육조의 관직을 맡게 되었다. 1464년(세조 10)에는 경기도관찰사(지금의 경기도지사)에 부임하였는데, 이것이 그의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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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되는 박원순표 유령 마을 돈의문박물관마을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5. 6. 10. 20:00
"480억 공중분해 됐다."서울에 있는 이른바 '박원순표’ 유령 마을'의 철거가 결정됐다는 소식이 나온 후 언론이 보인 반응이다. '박원순표’ 유령 마을'은 서울 종로구 신문로2가에 위치한 '돈의문 박물관 마을'을 말하는 것으로서 본 블로그에서 이미 몇 차례 소개한 바 있다. 하지만 나쁘게 말한 적은 없고, '시민 휴게 공간도 아니고, 박물관도 아닌 그저 애매한 장소라는 게 특이하다'는 정도로서만 소개했는데, 결국 철거될 모양이다. '돈의문 박물관 마을'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야심 차게 추진한 도시 재생 프로젝트 중의 하나로서 2017년 개관했다. 이후 나는 근방에 갈 때마다 역사적 장소(경기감영, 새문안, 서대문 터, 김구 선생이 살해된 경교장 등)에 둘러싸인 그곳에 들러 주위를 걸어보곤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