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스페르츠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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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학아세의 전형 國家安康 君臣豊樂과 헌법재판소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5. 3. 3. 23:26
곡학아세(曲學阿世)는 '학문을 왜곡하여 권력과 인기에 영합하는 일'을 이르는 말로, 학문을 하는 자가 가장 경계하고 금기시해야 할 행동으로 꼽힌다. 역사적으로 보면 그릇된 행동으로 권력에 야합한 예는 비일비재하다. 학문을 하는 자라고 해서 반드시 올바른 사고를 가지고 있으란 법은 없기 때문인데, 그중에서 일본 전국시대 말기에 벌어진 호코지(方広寺)란 절의 범종에 새겨진 글씨를 잘못 해석한 일은 대표적 곡학아세의 사례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의 승리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1537~1598)의 세력을 누르고 가장 강력한 권력자가 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1543~1616)는 히데요시 파의 잔존 세력을 누르기 위한 작업을 획책한다. 그중에 교토 호코지 대불전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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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에 생각해본 낙랑국 왕조(王調)의 독립운동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5. 3. 1. 23:22
낙랑은 기원전 108년 한무제가 조선을 멸망시키고 그 고토에 세운 4개의 군(郡) 가운데 가장 오래 존속했던 번국이며 또 고대 한민족에 영향을 큰 영향을 미친 번국으로, 우리나라의 북방 고대사는 이 낙랑국(혹은 낙랑군)과의 패권 다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설이긴 하지만 낙랑국 멸망을 배경으로 한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비운의 러브 스토리는 고구려의 낙랑국 멸망이 얼마나 힘든 역정이었는지를 대변한다. 낙랑공주가 사랑하는 고구려 왕자를 위해 찢었다는 자명고(自鳴鼓)는 '스스로 울리는 북'이라는 뜻이다. 낙랑국이 보유하고 있는 이 북은 적군이 칩입하면 스스로 울려 위급을 알렸다. 이에 방비가 용이할 수 있었던 바, 고구려군은 낙랑 공략에 번번이 실패를 해야 했다. 그러던 중 고구려 대무신왕(재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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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문동 보문사와 남로당 박헌영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5. 2. 27. 21:36
서울시 성북구 보문동에 위치한 보문사는 고려 예종 10년(1115)에 담진국사에 의하여 창건되었다고 하는 확실한 기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사적기(寺跡記)가 있는 것은 아니고 이어지는 기록도 없어 고려시대 창건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힘든 노릇이다. 사적기로 가장 오래된 기록은 퇴경(退耕) 권상로(1879~1965)가 저술한 로서 이 절이 예로부터 비구니 사찰임을 말하고 있다. 그러다 2017년 대웅전 중수 공사 중 1747년(영조 23) 최초 중건되었다는 상량문이 나와 사찰의 연혁이 18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되었는데, 1972년에는 조계종이나 태고종 등에 속하지 않은 대한불교 보문종이라는 독립된 종단을 설립함으로써 세계 유일의 비구니종단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이 독보적 길을 걸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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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광동 보광사와 둔지미 부군당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5. 2. 25. 23:37
전국에 보광사라는 이름을 가진 사찰이 적지 않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파주 보광사로, 대웅보전을 비롯해 은근히 많은 국가유산을 보유한 사찰인데, 최근에는 보광사 동종이 보물로 지정되어 모두 9개의 국가유산을 자랑하게 되었다. 보광(普光)은 '부처님의 지혜와 광명이 널리 사해에 미친다'는 뜻이라고 하니 사찰명으로는 더 없이 적합한 이름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남양주 천마산 아래에서도 보광사를 만날 수 있으니 남양주시 화도읍 수동리의 보광사가 그것이다. 이 절은 일반인에게는 그리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계곡에서 추사 김정희의 글씨들을 대면할 수 있는 뜻밖의 장소이다. 지금까지 확인된 글은 사찰 입구 다리 앞 바위의 '碧波洞天'(벽파동천) 및 계곡 바위에 새겨져 있는 '石丈(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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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발견된 18왕조 투트모세 3세의 무덤신 신통기(新 神統記) 2025. 2. 23. 19:53
지난 20일 이집트 룩소르 '왕가의 계곡'(Valley of the Kings)에서 발견된 고대 이집트 신(新)왕국 18왕조 4대 파라오 투트모세 2세(BC 1502~1448)의 무덤방에 이어 내친 김에 5대 파라오 투트모세 3세의 무덤방을 들여다보려 한다. 투트모세 2세의 무덤방이 도굴된 채 워낙 오래 방치돼 왕의 유택인지 철거되는 재개발 빈촌의 폐가인지 분간할 수 없는 꼴이 되었지만 '왕가의 계곡' 18, 19왕조 파라오의 무덤 중 그렇게 꼴사나운 모양새는 없다. 19왕조 세티 1세의 무덤방은 아래와 같다. 투트모세 3세(Thutmose III, ? ~ BC 1425)는 이집트 제18왕조의 파라오(재위: BC1479~1425)로, 투트모세 2세의 아들이다. 54년에 달하는 긴 재위기간 중 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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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발견된 이집트 18왕조 투트모세 2세의 무덤신 신통기(新 神統記) 2025. 2. 22. 20:39
지난 20일 이집트 룩소르 '왕가의 계곡'(Valley of the Kings)에서 고대 이집트 신(新)왕국 18왕조 4대 파라오 투트모세 2세(BC 1502~1448)의 무덤이 발견됐다는 보도가 외신을 탔다. 투트모세 2세의 무덤은 18왕조의 유일한 미발견 왕릉이었다고 하는데, 사진을 보니 무덤 입구에 철문이 있다. 그새 철문을 만들어 달았을 리 없을 터이니 이 무덤은 '발견'이라기보다는 '확인'이라 말하는 편이 정확하겠다. 기사를 읽어보니 아닌 게 아니라 그러했던 바, 하트셉수트 여왕(BC 1501~1480)의 무덤방과 연결되는 통로를 조사하다 투트모세 2세의 이름이 새겨진 항아리 조각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무덤의 입구는 지난 2022년 발견됐다. 하지만 처음에는 이 입구가 하트셉수트 여왕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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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 박세채의 황극탕평론과 마포 창랑정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5. 2. 21. 22:18
서울시 마포구 현석동은 지하철 6호선 광흥창역을 나오면 만나게 되는 동네다. 앞서도 말했지만 광흥창(廣興倉)은 조선시대 관원의 녹봉(祿俸)으로 쓰일 양곡을 저장하는 창고이데, 단순한 양곡창고라기보다는 호조에 딸린 관청으로, 봉급날 관리나 그 대리인이 이곳에서 녹패(祿牌)를 제시한 후 녹봉을 받아갔다. 비슷하게 중요한 창고로서 염창(鹽倉, 소금창고)이 있었는데, 지금의 동막역 부근에 있었다고 전해진다. 광흥창과 관계된 지명으로는 창내(倉川)가 있었으나 지금은 복개되어 사라지고 창천동과 창전동(倉前洞, 창내의 앞 동네)의 동명만 남았다. 창전동에는 공민왕 사당이 지어졌는데,(연대 미상) 지금도 광흥창 옆에 존재한다. 사당 안에는 공민왕, 공민왕의 비(妃)인 노국대장공주 및 왕자, 공주, 옹주, 충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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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야청청했던 태종의 8자 근녕군 이농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5. 2. 18. 18:28
앞서 태종의 일곱째 아들 온녕군 이정과 그 후손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언급했다시피 온녕군의 아들 우산군과 그 아들 6형제는 연산군의 폭정에 뇌동하지 않은 죄로 모두 귀양을 가고 결국 죽음을 맞이했다. 한 가문이 이와 같은 절의를 보인 예는 사적(史的)으로도 드문 경우이니, 이들 7공자(公子)를 배향한 고양시 대자동의 혜덕사 안내문에는 온녕군의 4대손까지 명시해 가문의 충절을 자랑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7공자의 절의와 반골 성향은 온녕군이 아닌 태종의 8자 근녕군(謹寧君) 이농(李襛, 1411~1462)에게서 물려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사서에 남아 있는 기록을 보면 근녕군이야말로 역사에 길이 남을 충의지사(忠義之事)로서, 왕권 제일주의의 조선시대에 정말로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하는 의구심까지 불러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