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반수 반수교에서 흥덕사 · 증주벽립까지서울의 다리 2024. 11. 20. 23:07
2020년 초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성균관과 반촌'이라는 이름의 특별전을 본 기억이 있다. 솔직히 그때는 빈촌에 대해 잘 몰랐던 때였음에도 3d로 생동감 있게 재현된 반촌 이야기가 무척 재미있고 감명 깊었다. 그래서 주체 측에 부탁해 아래의 전시 포스터를 한 장 얻어와 방에 붙여 놓고 오랫동안 음미하기도 했다. 반촌은 우리에게 생소한 단어지만 한자로 풀면 금방 이해가 간다. 여기서 반은 '학교 반(泮)' 자다. 즉 반촌은 요즘말로 대학촌이며 여기서 말하는 대학은 당연히 성균관이다. 성균관은 조선 건국 후 곧바로 세워진 교육기관으로, 아래 성균관대학교 탕평비각 앞 표석에는 1398년(태조 7)이라는 설립연도를 각자해 놓았다. 그리고 근자에는 설립 600주년 행사를 갖기도 했지만, 사실 이것은 실소할 일이다..
-
흥덕동천 장경교에서 반궁천 서반수 빨래터까지서울의 다리 2024. 11. 18. 18:40
장경교(長慶橋)는 종로구 연건동과 이화동 사이 대학로를 흘렀던 흥덕동천의 대표적 돌다리로, 정조가 임금이 되던 해인 1776년 여름, 경모궁(景慕宮)에 행차하기 위해 만들었다. 길이는 10.5m, 폭은 6m 정도였다. '장경'(長慶)은 '경사와 상서로움이 천만년 지속된다'는 뜻으로서, 장생전(長生殿) 앞에 있다 하여 장생전교 혹은 장교로 불리기도 했다. 장생전은 왕실의 관짝을 만들어 국상에 대비하던 관청으로 1444년(세종 26) 설치됐다. 정조는 할아버지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를 위해 옛 창경궁 정원인 함춘원 자리에 경모궁을 지었다. 아울러 경모궁으로 가는 첩경을 가로막은 창경궁의 담장을 헐고 월근문(月覲門)을 내었다. 정조는 매월 초하루에는 이 문을 통해 사도세자를 뵈러 ..
-
백자와 가을을 그린 도천 도상봉미학(美學) 2024. 11. 15. 21:40
도천(陶泉) 도상봉(1902~1977)은 1902년 함경남도 홍원군 신익면 남당리(현 홍원군 남천노동자구)에서 태어났다. 홍원군은 우리에게는 낯선 지명이지만 산과 평야와 바다가 어우러진 매우 아름다운 고장이다. 이런 환경이 도천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던 것일까, 그는 1916년 보성고등보통학교 재학 시절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인 고희동으로부터 따로 그림을 배웠다. 당시로서는 드문 일이었다. 도천은 학생시절인 1919년 3월 1일 서울 탑동공원에서 일어난 독립선언 행사에 참가했고 이어 계속 만세시위에 참가하다 3월 5일에는 남대문 역전에서 일본경찰에 체포되었다. 그는 이 일로 징역 6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1921년 일본에 건너간 그는 메이지대학 법과에 진학했는데, 부모님의 바람도 있었지만 피식..
-
큰 빛을 보지 못한 시카고학파의 박인준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4. 11. 14. 22:49
1세대 건축가 박길룡(朴吉龍, 1898 ~ 1943)은 비교적 알려진 반면 (☞ '종로에 남은 박길룡의 건축물') 박인준(朴仁俊, 1892 ~1974) 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본 블로그에서도 '윤치왕과 윤치창이 살았던 가회동 집'에서 잠깐 언급되었을 뿐이니, 편의 대로 옮겨 싣자면 다음과 같다. .... 윤치왕은 1982년 말 여의도 수정아파트에 사는 큰아들 윤도선(서울대 산부인과의)의 집에서 장염 합병증으로 사망하였는데,(향년 87세) 이후 그가 살던 가회동 1-10번지 집은 부근 가회동 1-6번지 윤치창의 집과 함께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관에 매입되어 대사관 사택으로 이용되었다. 이 두 집은 1927년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학 건축학과를 졸업한 후 시카고학파(Chicago School)*의 일원으로 ..
-
광암 이벽은 정말로 순교했을까?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4. 11. 13. 01:07
1635년 4월 10일 만주 선양에 도착한 소현세자가 처소인 심관(審館)에만 머물지 않고 북경으로 가 명나라 침입을 참관하고 서역 원정에도 강제 참전한 사실을 앞서 말한 바 있다. 그리고 청나라의 실권자 도르곤이 유화책으로써 소현세자를 다시 북경으로 불러내 예수회 선교사 아담 샬(Johann Adam Schall von Bell, 1591~1666)을 소개시켜 준 사실도 더불어 말한 바 있다. 이 사실은 일본인 종교학자 야마구치 마사유키(山口正之, 1918 ~ 1999)가 아담 샬의 라틴어 회고록 〈Historica Relatio〉을 통해 알게 된 내용을 자신의 조선서교사(朝鮮西敎史)>에 실으며 세상에 알려졌다. 또 남당의 신부 황비묵(黃斐默, 1830~1909)도 자신의 저서 에서 두 사람의 만남에 ..
-
이재명 판결이 몰고 올 퇴행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4. 11. 11. 23:28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1심 판결이 드디어 이번 주말에 나온다. 참으로 오래 진행된 재판이지만 1심이니 당연히 선고가 나와도 다 끝난 것은 아니다. 기타 위증교사 사건 판결과 대장동·위례, 성남 FC·백현동 등도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나는 이 자리에서 이렇다 저렇다 말하고 싶지는 않으나, 다만 판결 후 벌어질 이 나라의 극심한 혼란에 대해서만은 심히 걱정된다. 말리고 싶은 마음이야 간절하지만 필부의 글 한 줄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앞서도 말한 바 있거니와 우리민족의 붕당 정치와 그로부터 비롯된 극단의 정치 지향성은 뿌리 깊다. 그래서 따로 민족적 DNA가 내재돼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해본 적도 있는데,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문인인 이건창(李建昌, 1852~1898)은 저서 에서 같은..
-
소현세자와 아담 샬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4. 11. 10. 18:54
몽골의 침입 때 고려 무신정권이 강도(江都, 강화도)를 의지해 38년 동안 항전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인조도 1636년 12월 28일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강화도로 도피하려 했으나 우물쭈물거리다 청나라 군대에 길을 차단당해 별수 없이 남한산성에서 농성해야 했다. 다행히도 봉림대군과 인평대군을 비롯한 비빈종실(妃嬪宗室)은 먼저 강도로 피신했는데, 오히려 그것이 독이 되었다. 믿었던 강도가 침공을 받은 지 단 하루 만에 함락돼 버렸기 때문이다. 천혜의 요새 강도가 이렇듯 무력하게 함락된 것은 강도 방어의 최고책임자로 임명된 강화검찰사 김경징의 무능 때문이었다. 그는 제 아버지 김류(인조반정의 1등 공신)가 시험문제를 유출해 알려준 덕에 과거에 급제하였고, 또 제 아버지의 빽으로 강도검찰사가 ..
-
이문(里門)과 삼천리연탄 공장이 있던 이문동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4. 11. 8. 00:56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은 동네에 있던 이문(里門)에서 비롯됐다. 이문은 조선시대 도둑을 막기 위해 각 마을마다 설치한 문(門) 모양의 초소로, 형식이나 기능이 오늘날의 방범초소와 비슷했다. 이문은 문자 그대로 마을 입구에 설치됐으며 서울 종로구 인사동, 중구 세종대로 삼성본관 앞, 성동구 상왕십리동, 마포구 염리동 등에도 이문(里門)의 터가 있었다고 하는데, 종로 탑골공원 앞 도로와 세종대로 삼성본관 앞 도로에는 이문 표석이 설치돼 있다. 종로의 이문은 흔히 종각 부근에 있었던 것으로 회자되나 1901년 제작된 아래 한성지도를 보면 순화궁 아래이다. 그래서 현재 순화궁 표석이 있는 종로중앙 종합금융센터에서 인사동 골목 방면으로 위치한 '아름다운 차 박물관', 혹은 '아리랑 참숯불갈비'나 그 부근에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