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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원의 시 유점사작가의 고향 2022. 10. 22. 05:07
금강산 유점사(楡岾寺)는 사명대사가 머물렀던 관동 제일 가람으로 장안사, 표훈사, 보살사 등 60여 개 사찰을 말사로 거느렸다. 그 유명한 절들을 말사로 두었다니 유점사는 예로부터 고승대덕이 법통을 이었을 법한데, 김금원도 고불(古佛, 나이가 많고 덕이 높은 승려)의 설법을 들었던 듯하다. 하지만 그 한마디에 깨달음을 얻기는 본인의 말대로 그저 꿈이었을 테고 다만 능인보전 안에 존치된 유명한 유점사 53 불상에는 감화됨이 없잖았던 것 같다.
懸崖天畔一禪庵
北淸鍾響向在南
打起白雲閑出洞
招來明月靜沈潭
惺惺頓覺浮生夢
寂寂如聞古佛談
五十三佛淸淨界
靈通百劫慧燈參
하늘가 낭떨어지에 있는 선승의 암자 하나
북쪽 산 맑은 종소리 남쪽을 향해 퍼지고
흰구름이 일어나며 한가로이 계곡을 감싼다
초대받은 밝은 달은 조용히 연못 속에 잠기는데
깨달음을 얻기는 그저 뜬 구름 같은 희망인 듯
고승의 이야기 그저 적막하기만 하다
유점사 53불상의 청정한 세계여
백겁토록 그 영통한 지혜의 등불을 밝혀주소서
유점사 능인보전과 7층석탑 유점사 7층석탑 입구의 산영루 1915년에 찍은 유점사 사진 비슷한 시기의 사진 1898년 이사벨라 비숍이 찍은 유점사 부도밭 1912년의 유점사 부도밭 일제시대 <조선고적도보>에 실린 유점사 53불 / 세키노 다다시는 이 불상들에 대해 '기적적인 대발견'이라 기술했다. 신라 남해왕 1년(AD 4년) 인도에서 전래됐다는 전설이 전하는 불상으로(삼국유사 기이편) 크기는 7~41cm로 다양하다. 유점사 53불의 컬러사진 / 1924년 발간된 <일만이천봉 조선 금강산>에 실렸던 것을 색보정한 듯 보인다. (출처: 불교신문) 1916년 일본인이 훔쳐갔다는 능인보전 불상 / 나머지 52불도 일제시대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죄 사라졌다. 1815년 김하종이 그린 <해산도첩> 속의 유점사 / 입구의 산영루가 웅장하다. 유점사 산영루 흔적 / 지금 유점사는 완전 폐허가 되었고 남은 것은 이것 뿐이다. 유점사의 종이 묘향산 보현사에 이전돼 전한다. 진짜유점사 불상일까? / 2014년 12월 15일 안민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독일 오틸리엔 수도원에서 금강산 유점사 53불 가운데의 하나라고 추정되는 고려말~조선초 목조불상을 확인했다고 SNS에 밝혔다. ▼ 관련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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