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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원의 시 헐성루와 금강산 정양사작가의 고향 2022. 10. 22. 21:16
'조선 여류시인의 살롱 삼호정' 호스트 김금원을 그냥 보내기가 좀 아쉽다. 그래서 그의 시 몇 편을 더 올리려 하는데, 우선 세인들이 흔히 김금원의 대표작으로 드는 '헐성루'(歇惺樓)를 덧붙이려 한다. 금강산 유람길의 그녀가 정양사(正陽寺) 헐성루에 올라 지은 시이다. 그 누각은 '별이 쉬어가는 누각'이라는 멋진 이름을 지녔다. (그저 나의 해석일 뿐이다)
歇惺樓壓洞天中
纔入山門卽畵林
指末千般奇絶處
芙蓉無數萬峯尖
헐성루가 하늘 중천에 우뚝한 가운데
겨우 산문에 오르니 곧바로 그림 같은 숲 속이다
손끝 마디마다 기암절벽이 와닿고
부용꽃은 무수히 봉우리 꼭대기마다 피어 있다
정양사 헐성루는 부석사 안양루나 전등사 대조루처럼 비탈을 올라 올라서 누각 밑으로 들어가게끔 만든 구조의, 출입문과 강당을 겸하는 형태의 누각으로 보이나 확인할 길이 없다. 지금은 누각이 아예 사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림으로는 무척 많이 남아 있다. 예로부터 전해오는 "정양사 헐성루에 서면 금강산 일만이천봉을 다 조망할 수 있다"는 구전 때문에 그곳에서 그린 금강산 그림이 많고, 또 그 덕에 그려진 정양사의 그림도 많은 까닭이다.
금강산은 조선 후기까지도 100여 개의 절이 있었다고 하니 사찰이 많기도 많았는데, 그중 팔람구암자(八藍九庵子, 8개의 절과 9개의 암자)가 유명하다. 그 8개 절이 정확하게 어느 절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장안사(長安寺)ㆍ표훈사(表訓寺)ㆍ유점사(楡岾寺)ㆍ신계사(新溪寺)ㆍ건봉사(乾鳳寺)ㆍ정양사를 꼽을 수 있음은 분명한데, 지금은 있는 절도 있고 없는 절도 있다. 맏형 격인 유점사와 장안사는 가곡의 가사 그대로 찬 재 되고 터만 남았는데, 그나마 한국전쟁 때 완전 폐허가 되었다.
* 강원도아리랑과 정선아리랑의 '일만이천봉 팔만구암자'는 팔람구암자가 와전된 가사로 여겨진다.
정양사는 당우 중에서는 반야전과 약사전만 전해진다. 그래서 헐성루의 모습은 살필 길 없으나 일제시대 때 찍은 아래의 사진을 보면 확실히 강당의 형태이다. 헐성루는 한자를 달리하여 헐성루(歇性樓) 또는헐석루(歇錫樓)라고도 불려졌는데, 이때는 '세속의 꿈에서 깨어난 각성의 경지'를 의미한다고 한다. 즉 헐성루 아래를 지나 반야의 세계로 나아가는 그 시점을 '헐성'이라 했던 것이니, 정양사를 그린 겸재 정선의 그림에서는 헐성루 누각의 모습이 보다 확실하다.
아래 정양사 그림은 겸재 정선의 금강산 모음집 '해악전신첩'(海嶽傳神帖) 속의 일점(一點)으로, 강원도 관찰사 홍봉조가 쓴 삼연(三淵) 김창흡의 시가 함께 실렸다. '해악전신첩'은 1712년 김화 현감으로 있던 이병연이 자신의 벗 정선을 초대하여 금강산 여행을 함께 한 후 그때 정선이 그린 그림을 시와 버무려 엮은 화첩이다. 화첩에는 자신의 시와 스승 김창흡의 시를 실었다. (김창흡에 대해서는 '김창흡의 '갈역잡영'과 내설악' / '김창흡의 '입추야사' 저자도' 참고)
樓拓敞軒臺挺高杉
若有拱向而不見其
處阿睹中可想基無限寄觀
丹靑所苦心基在此乎
헐성루 누각은 탁 트인 처마를 열었고, 천일대 위로는 삼나무가 높이 솟았네
두 손 공손히 모아 그곳을 바라보지 않아도
눈동자 속에서 끝없이 기괴한 광경 떠올릴 수 있으니
화공이 고심한 것이 바로 여기 있지 않겠는가
헐성루가 금강산 제1의 전망대라는 것은 1815년에 제작된 궁중화가 김하종의 '헐성루망전면금강도'라는 그림으로도 알 수 있다. 이 그림은, 그가 금강산의 명소를 그려 엮은 <해산도첩> 중에서도 발군의 작품으로, 2019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마련한 조선시대 실경산수화 특별전의 포스터로 쓰이기도 했다. 그만큼 빼어난 그림이란 뜻이렸다. 서양화풍이 가미된 회화로도 유명한 이 그림은, 제목 그대로 정양사 헐성루에서 바라본 전체 금강산의 모습이다.
그밖에 조선후기 정선파의 대표적 화가 김응환이 헐성루에서 그린 '헐성루도'(歇惺樓圖) 및 조선후기 화가 정충협이 그린 '헐성루망이천봉' 그림도 유명하다. 그리고 잘 알려져 있지는 않으나 1307년(고려 충렬왕 33년)에 노영(魯英)이 제작한 흑칠 불화 '고려 태조 담무갈보살 예배도' 또한 정양사를 배경으로 그린 그림이다. 고려 태조가 정양사 배재(拜岾, 절고개)에서 만난 금강산 담무갈보살*에게 예를 표했다는 <여지승람>의 이야기를 그렸다. 송나라 이곽파(李郭派) 화풍을 반영한 그림으로 알려져 있다.
* 금강산은 담무갈보살의 성지(聖地)로도 유명하다. 담무갈보살은 법기보살(法起菩薩)로도 불리기도 하는데, '법을 일으킨다'는 뜻의 범어 다르모가타(Dharmogata)의 발음과 뜻을 각각 옮긴 것이다. <대방광불화엄경>의 '제보살주처품'(諸菩薩主處品)에 "동북방 바다 가운데에 금강산이 있고 이곳에서 담무갈 보살이 1만2000의 보살과 함께 항상 <반야경>을 설법한다"고 되어 있는 바, 아래 노영의 불화는 1만2000 보살과 함께 나타난 담무갈보살을 친견한 후 놀라 경배하는 왕건을 그렸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정양사 헐성루는 겸재가 1740년대에 가을 금강산을 그린 '풍악내산총람'(楓岳內山總覽) 속의 그림이 최고다. 이 그림은 제목 그대로 내금강의 가을 풍경을 온전히 담고 있으며 단발령에서 내려다보이는 내금강의 경관을 기본 구도로 삼았다. 겸재는 이 그 '풍악내산총람'에서 이례적으로 그림 속 절과 암자의 이름을 세세하게 기록했는데, 왼쪽 끝 산 중턱에 있는 큰 사찰이 정양사이다. 정양사는 구도 상 한쪽에 치우칠 수밖에 없었음에도 그림 전체를 이끄는 절집의 당당한 위세를 드러내고 있다.
2018년 발굴된 겸재의 금강산 그림 7점 속에도 정양사가 있다. 경북 영양 주실마을에 위치한 조운도(1718~1796)의 후손가에서 기탁한 이 7점의 수묵화는 비로봉, 비홍교, 정양사, 마하연, 보덕굴, 구룡폭, 단발령을 그린 세로 40㎝, 가로 30㎝ 정도의 그림인데, 이중 절집은 정양사, 마하연뿐으로 정선은 특별히 정양사를 사랑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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