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성호 이익이 말한 지구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3. 6. 5. 23:55

     

    1888년, 스물다섯 살의 나이의 미국인 선교사 제임스게일이 부산항을 통해 조선 땅에 도착했다. 그는 정동에 모여 살면서 좀처럼 그곳을 벗어나지 않던 대부분의 외국인과 달리, 부산에서부터 서울, 평양을 거쳐 압록강에 이르기까지 폭넓고 심도 깊은 여행을 했다. 구한말 그와 같은 심도 깊은 여행을 한 외국인은 영국의 지리학자 이사벨 비숍 여사,  미공사관의 무관이었던 조지 포크, 그리고 간첩질을 목적으로 이 땅을 돌아나딘 일본인 혼마 규스케 정도일 것이다.

     

    게일은 1888년부터 1897년까지 10년의 시간을 담은 책을 <Korean Sketches>라는 제목으로 미국, 영국, 캐나다에서 출간하였는데, 그 책에 소개된 아래의 일화는 당시의 조선 사람이 얼마나 세상을 모르고 있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게일이 여행 중에 만난 어느 고을의 원님은 게일 일행이 온 곳, 즉 출신지를 물었을 때 게일은 가장 알기 쉽게 지구 반대편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원님은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보였다. 

     

    "여기에서 보면 어느쪽에 당신들 나라가 있는가"를 되묻던 원님은 아주 큰 충격에 빠져 "혹시 당신들은 땅 속에 사느냐"고 다시 물었다. 우리는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우리가 사는 곳은 지구 반대편이라고 재차 설명을 했지만 이미 대답은 그가 수용할 수 있는 한계를 완전히 넘어버린 것이었다. 그는 급히 주제를 바꿔, 안전하게 배웅해 줄 테니 얼른 마을을 떠나라고 했다. 

     

    19세기말에도 조선인의 세계 인식 상황은 이러했다. 이렇게 보자면 그 100년 앞의 사람인 이규경(李圭景, 1788~1856)이 자신의 호를  '오주'(五洲)라고 붙인 것은 대단하다 할 만한 일이다. 그의 저서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는 '오주 가 쓴 연문(衍文, 거친 문장)을 장전(長箋, 긴 쪽지)에 이어 붙인 잡다한 원고'라는 뜻이며, 그의 호 오주는 '5대양 6대주'를 지칭한다는 것을 앞서 '오주 이규경, 순암 안정복, 성호 이익이 본 기독교 I'에서 이미 말한 바 있다. 

     

     

    중국의 선교사 페르비스트(Ferdinand Verbiest, 1623~1688)가 그린 곤여전도

     

    그러니 그보다 또 100년 전의 사람인 성호 이익(李瀷, 1681~1763)은 그 얼마나 답답했겠는가? 그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일찌감치 깨쳤고,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과 마젤란의 세계일주도 알고 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설명함에 앞서 세인(世人)들에게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먼저 설명해야 했다. 이익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할 질문, 즉 만일 지구가 둥글다면 지구 밑에 있는 사람은 왜 떨어지지 않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구는 둥근 하늘 가운데 있어서 오르고 내리지 못한다. 하늘은 하루에 한 번 왼쪽으로 도는데 그 주위의 크기가 얼마나 되냐 하면 12시간에 걸쳐서 돈다. 그 움직임은 이와 같이 아주 빠르다. 따라서 하늘 안에 있는 것은 그 세력이 한가운데를 향해 모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하나의 둥근 물건 안에 물건을 넣고 기구를 이용하여 회전시키면 물건이 언제나 한가운데에 밀려져 모여 멈추는 것은 실험으로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땅은 밑으로 꺼지지 않고 위로도 솟구치지 않고 균형을 유지한다. 상하 사방은 모두 땅을 밑으로 하고 하늘을 위로 한다. 만약 땅 밑의 하늘에 물건을 떨어뜨려도 언제나 땅에 떨어진다. 바다가 땅을 덮고 있는 곳도 몸을 두르고 있는 의대와 같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어 통하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서양인이 서쪽 끝으로 항해해 가봤더니 동양이 나왔다. 그들이 항해를 계속하면서 별자리를 관측해 보았더니 천정(天頂)이 각각 차이가 있어서 이로써 지구 밑에 있는 바다도 역시 지구 위에 잇는 바다와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익이 55세 때인 1735년 윤 4월, 사촌형에게 보낸 안부 편지이다. / 실학박물관
    성호집 / 이익의 학문과 사상이 담겨진 70권 36책이다. 후대에 목판본으로 출간됐다. 실학적인 내용으로는 「일월식변(日月食辨)」 「황도변(黃道辨)」 「망해도해(望海島解)」 등이 있다.
    항해용 나침판 / 나침판은 중국에서 최초로 발명한 것이지만, 항해에서 사용할 수 있는 나침판은 1302년 이탈리아의 플라비오 조야가 현재와 같은 형식으로 만들었다. 일본 후쿠오카 시립박물관의 것을 실학박물관이 복제해 전시 중이다.
    천리경 / 영국에서 제작된 굴절원경으로 데지마 항을 통해 1700년대 일본으로 수입되었다. 위의 것은 1803년경 영국선박 내항시 마츠무라 가문에 전달된 것으로 전한다. 이와 같은 양기(洋器)들을 당시 중국과 일본은 가지고 있었으나 조선은 없었다. 이것이 시대를 갈랐지만, 그보다는 19세기까지 별 무익한 학문인 주자성리학에 매달려 있었던 것이 더욱 조선을 퇴행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댓글

아하스페르츠의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