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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타고라스 이전에 존재했던 메소포타미아의 고등수학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3. 11. 28. 22:02

     

    앞서 '예수 탄생에 관한 성서의 거짓 예언들 (II)'에서 구약성서 <열왕기 하권>과  <역대기 하권>에 나오는 히스기야 터널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재론하자면, 유다 14대 왕 히스기야(Hezekiah, BC 719-690)는 고대 유다왕국의 가장 위대한 왕 중의 한 명으로, 안으로는 남북으로 분단된 민족의 화합을 도모했으며 밖으로는 대제국 앗시리아와 맞서 싸웠다. 그 힘겨운 싸움의 흔적이 지금 이스라엘의 중요 관광자원이 되었다. 유명한 히스기야 터널이 그것이다. 
     
    고대 이스라엘의 도시들은 대부분 고지대에 건설됐다. 그것이 외적의 방어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은 대부분 낮은 곳에 위치해 있어 도시가 장기간 포위될 경우 식수 조달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이는 예루살렘도 마찬가지였다. 이에 히스기야 왕은 예루살렘 밑으로 525m의 지하수로를 파 수원지로부터 성벽 안 실로암 저수지까지 물을 끌어들였는데, 수로 안에는 그 당시 터널 관통의 기쁨을 적은 고대 히브리어의 명판(일명 실로암 명판)이 부착되어 있다. 

     
     

    히스기야 터널
    터널의 명판 / 석공들이 서로 맞 파들어가 만나게 되는 감격적인 굴착 광경을 담았다. 관광객이 보고 있는 안내문 아래 석판으로 복제품이다.(진품은 이스탄불 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실로암 명판 복제품 / 1880년 발견되어진 이 명판을 1890년 그리스인 도굴꾼이 떼내 팔다 붙잡혔다. 이후 명판은 당시 이곳을 지배하던 오스만 제국에 손에 들어갔고 이스탄불 박물관에 보관되어졌다. 반환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중요 문화재 중의 하나다.
    실로암 명판의 고대 히브리어 글씨 / 아래는 현대 히브리어
    히스기야 터널의 단면도

     

    이 명판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동굴을 보라. 동굴의 굴착 작업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졌노라. 석공들은 정을 쪼아 서로 맞 파 들어가다가 마지막 남은 굴착거리가 3규빗에 이르렀을 때 반대편에 있는 동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밖의 샘물에서 저수지까지 물이 흐르는 거리는 1200 규빗이요, 석공들의 머리 위쪽에 있는 바위의 두께는 100규빗이다."
     
    그런데 오늘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역사가 아니라 메소포타미아의 역사이다. 특히 그들의 고등수학을 말하려 하는데, 그전에 고대에 굴착된 또 하나의 진기한 터널을 구경하고 넘어가자. 이번에는 그리스 사모스 섬 엠페로스 산에 있는 1036m의 직선 터널이다. 건설자의 이름을 따 에우팔리노스의 굴이라 불리는 이 터널은 2600년 전 사모스 섬의 참주 폴리크라테스가 물길을 끌어들이기 위해 만든 것으로, 이 역시 양 방향에서 맞뚫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헤로도토스의 기록에 따르면, 또 사모스 섬에는 외적을 방어하기 위한 수중 방파제가 축조되었고, 길이 6.5km의 성채 궁전과 거대한 헤라 신전이 있었다고 하는데, 신전의 유적은 아직 남아 있다. 그 사모스 섬은 그리 큰 섬이 아니다. 따라서 노동력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음에도 이와 같은 대형 건축물들이 축조된 사실인즉 고대 그리스인들에게도 불가사의로 여겨졌을 정도이다. 이에 호사가들은 그 비밀의 열쇠를 참주 폴리크라테스와 수학자 피타고라스(BC 575-495)에게서 찾았다.  
     
     

    사모스 섬의 위치
    사모스 섬 풍경
    헤라 신전의 유허
    헤라 신전의 복원도

     

    사모스 섬은 전설의 천재 수학자 피타고라스가 태어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폴리크라테스의 독재와 피타고라스의 수학적 능력이 이와 같은 건축물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고 보는 것인데, 특히 일직선으로 방향을 정하고 양쪽 방향에서 파 들어가 완성시킨 인류최초의 터널 에우팔리노스의 굴에는 이른바 '피타고라스 정리'라고 부르는 피타고라스의 직각삼각형이 응용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오래전 이에 대해 방영한 EBS의 '피타고라스 정리의 비밀'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본 기억도 있다. 

     
     

    사모스 섬의 피타고라스 동상 / 피타고라스의 직각삼각형을 형상화했다.
    에우팔리노스 터널 입구
    에우팔리노스 터널
    에우팔리노스 터널의 단면도
    터널 관통에 있어서의 피타고라스 정리 응용법
    EBS '피타고라스 정리의 비밀'의 컷

     

    아울러 히스기야 터널의 축조에도 피타고라스 정리 같은 것이 응용되었으라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터널 들은 모두 양방향을 동시에 뚫어 중간지점에서 만나도록 되어 있었던 바, 측량과 설계와 시공에 있어 아주 작은 오차라도 발생한다면 양쪽에서 파 들어간 사람들이 서로 만나기는 영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피타고라스 정리와 같은 정확한 기하학적 셈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에 절대 피타고라스 정리가 응용되었을 리는 없다. 헤로도토스의 기록에 의하면, 에우팔리노스 굴의 터널공사는 기원전 672년 시작되어 기원전 687년에 완성되었던 바, 피타고라스 탄생 이전의 일이다. (피타고라스는 기원전 575년 태어났다)  히스기야 터널의 경우는 에우팔리노스 굴보다도 앞선 히스기야 왕 재위기간 중인 기원전 745년 ~ 717년 사이에 이루어졌다. 시간적으로 볼 때 피타고라스 정리가 개입될 여지가 없는 것이다. 
     
    다만 '피타고라스 정리 같은 것'이 응용되었을 수는 있다. 이를테면 위의 사진 EBS '피타고라스 정리의 비밀'의 컷 4번째 그림에 등장하는 직각삼각형 같은 것이다. 즉 "모든 직각삼각형에서 빗변의 제곱은 다른 두 편의 제곱의 합과 같다"라는 피타고라스의 정리에 대해 피타고라스 이전의 사람들도 알고 있었다는 것인데,  EBS <다큐프라임> '피타고라스 정리의 비밀'에서도 말하고자 한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리고 그 증명으로 등장한 것이 플림톤 322(Plimpton 322)라는 점토판이었다. 이 점토판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수학에 관한 수식(數式)이 담긴 것으로 미국 컬럼비아 대학 플림톤 수집품의 하나이다.(322는 분류 번호로 여겨진다) 플림톤 322는 그 밖의 수식이 담긴 큰 점토판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것으로 4개의 열과 15개의 행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수식은 무려 기원전 1800년 경의 것들이다.

     
     

    바빌로니아 태블릿 플림톤 322 / ABC 뉴스
    플림톤 322 속의 수식 일례
    플림톤 322 속의 피타고라스 정리

     
    "모든 직각삼각형에서 빗변의 제곱은 다른 두 변의 제곱의 합과 같다"는 피타고라스 정리(a²+b²=c²)는 두 변의 길이가 1일 때 유리수 해(解)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난점을 푸는 과정에서 무리수(無理數) √2가 발견됐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그 당시 사람들은 얼마나 당황했을까?  
     
    무리수라는 것은 이치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뜻이다. 전설에 따르면 피타고라스는 사원 바닥에 깔린 블록으로부터 이 비밀을 알아냈다고 한다. 피타고라스 정리에 따르면, 두 변의 길이가 각각 3과 4이면 나머지 빗변의 길이는 반드시 5가 되어야 한다. 3, 4, 5는 정수로서 피타고라스 정리를 만족시키는 최소 단위이다. 하지만 변의 단위가 1인 정사각형이 등장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정사각형의 대각선의 길이를 C라 하고, 이 직각삼각형에 피타고라스 정리를 적용하면 C는 √2라는 값을 얻게 된다. 그 값은 1과 2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수이지만 이치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피타고라스는 숫자(무리수)를 '설명할 수 없다'는 뜻의 '알로곤(Alogon)'이라 이름 붙였다. 그리고 이 '알로곤'은 여러 전설을 파생시켰으니, 피타고라스는 자신이 밝히지 못한 이 무리수가 세인들에게 알려질까 두려워 곁에 있던 제자 히파수스를 죽였다고도 한다. 또 다른 버전으로는 '만물은 수로 이루어져 있다'라고 주장하던 피타고라스 학파가 이 무리수를 발견한 후 영원히 묻어두기로 하였으나 그중의 히파수스가 비밀을 발설해 에게해에 수장시켰다는 전설도 전한다. 
     
    그런데 피타고라스보다 천년 앞서 이 사실을 안 고대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이에 대한 고민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이를 증명하는 것이 Si.427 태블릿이라 불리는 기하학 점토판이다. 이 점토판은  프랑스 고고학 탐험대가 1894년 현재의 이라크에서 발견한 것으로 플림톤 322보다도 앞선 기원전 1900년에서 1600년 사이에 태블릿은 만들어진 것으로, 고대의 토지 측량사가 직각삼각형을 이용해 정확한 측량값을 구한 점토판이라고 한다.
     
     

    현재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Si.427 태블릿

     

    아울러 예일대학이 소장하고 있는 YBC7289라는 점토판은 기원전 1700년경의 고대 바빌로니아인이 직사각형의 면적을 구한 수학노트라고 하는데, 1913년 콜데바이가 이라크 에사길라 신전 터에 발견한 에사길라 태블릿과 쌍벽을 이룬다. 에사길라 태블릿은 당대의 학생들을 위한 수학 교과서로, 거기에는 바빌론 거대 신전의 밑변과 높이를 묻는 문제가 실려 있다. 그에 대한 정답은 91.2m로서 헤로도토스의 기록 및 콜데바이가 고대 바빌론시(市) 터에서 발견한 거대한 탑의 유지(遺址)와 일치한다. 인류가 구약성서 <창세기> 속 바벨탑의 모델이라 믿었던 바로 그 지구라트(조적조) 신전이다.   
     

     

    EBS '피타고라스 정리의 비밀'에 소개된 YBC7289
    jtbc '차이나는 클라스'에 소개된 YBC7289

    미국 유튜브의 어떤 영상

    루부르 박물관의 에사길라 태블릿

     
    결론을 말하자면 피타고라스의 정리는 피타고라스가 태어나기 이미 천년 전부터 고대인들이 이용하던 수학이었다. 아울러 수천 년 간 인류문명과 함께 불변의 진리로 전해졌던 이 피타고라스의 정리는 만고의 진리도 아니니 평면이 아닌 구면 위에서는 오차가 생긴다. 이를테면 우리 지구와 같은 구체(球體)에서는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180도라는 것 자체부터 적용되지 않는다. 만일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을 더 확대해서 지구라는 둥근 공간으로 나가면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도를 넘게 된다.

     

    따라서 북극점을 중심으로 적도에 이르는 정삼각형을 만들면 그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270도가 되며, 그에 따라 길이와 면적도 변해 피타고라스의 정리가 맞지 않게 된다. 즉, 피타고라스의 정리는 평면공간에서만 유효하다는 것이 EBS '피타고라스 정리의 비밀'의 요지이다. 그래서 비행기 조종사들이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벗어나 구체를 의식한 비행을 하고, 철새는 본능적으로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벗어난 경로로써 비행한다고 하는데, 아래 국립중앙박물관의 메소포타미아 유물들을 보자면 왠지 그 사람들은 이마저 깨달았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국립중앙박물관 메소포타미아관의 전시물
    메소포타미아 5단 곱셈표
    박물관의 안내문
    수로(水路)에 관한 기록
    박물관의 안내문
    맥아와 보릿가루 수령 내역을 적은 장부
    박물관의 안내문
    수호여신 라마의 비 / 기원전 약 1307~1282
    메소포타미아인 / 기원전 8세기 후반~7세기 초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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