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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이강공 탈출 사건과 대동단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4. 10. 21. 20:53
1919년 11월 9일, 한중 국경인 중국 안동(현 단동시)에서 의친왕 이강(李堈, 1877~1955)이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흔히 이강공(李堈公) 사건, 혹은 대동단(大同團) 사건이라 불리는 이 일은 비밀 항일 결사단체인 대동단이 고종의 셋째 아들 이강을 상해임시정부로 탈출시키려다 붙잡힌 사건을 말한다. 대내외에 큰 충격을 준 이 미증유의 사건을 재구성하면 아래와 같은데, 그 전에 이를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 대동단에 대해 알아 보는 일이 선행돼야 할 것 같다.
독립대동단(獨立大同團) 또는 조선민족대동단(朝鮮民族大同團)이라고도 부르는 대동단은 1919년 3.1만세운동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항일 비밀 결사체로서 1919년 3월말 서울에서 조직됐다. 대동단은 귀족, 정·관계, 종교계, 상공인, 청년학생을 가리지 않고 광범위하게 단원을 모집하였던 바, 대규모 항일 민족단체를 지향했음을 알 수 있는데, 대표적 인물로는 김가진, 김찬규, 박영효, 민영달 등이 있었다.
대동단의 활동 중 두드려졌던 것이 '제2차 만세운동'과 '이강공 사건'이었다. 제2차 만세운동은 3.1만세운동의 연장선 같은 것이나 이번에는 무력시위의 내용도 포함돼 있었는데, 같은 해 5월 23일 선언문을 인쇄하던 중 발각되어 최익환, 권태석, 이능우, 엄경섭, 김영철 등이 체포되며 수포로 돌아갔다. 대동단은 같은 해 11월, 상해 임시정부 내무청장 안창호와 공모하여 의친왕 이강을 데려와 임시정부에 참여시키려는 계획을 짰다.
그리하여 11월 9일 정남용, 이을규, 한기동, 송세호 등이 종로 사동궁에서 의친왕을 은밀히 빼냈고 함께 수색역을 출발하였다. 이들은 열차편으로 무사히 압록강을 건넜고 11월 12일 만주 안동역에 도착하였다. 1차 목적지는 아일랜드계 영국인 조지 루이스 쇼가 설립한 무역선박회사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교통국의 역할을 하던 안동 흥륜가의 이륭양행(怡隆洋行)이었다.
안동역에서 내린 일행은 흥륜가로 접어드는 데까지 성공하였다. 하지만 이륭양행을 목전에 둔 지점에서 의친왕의 얼굴을 알고 있던 요네야마(米山) 경부에게 체포됨으로써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후 정남용 등의 대동단원은 평안북도경찰부(平安北道警察部)로 신병이 인도되었고, 이강은 일본으로 압송되었다. 그의 나이 42세 때였다.
만약 이 일이 성사되었다면 한국민이 원해 대한제국을 합병하였다는 일제의 선전을 황족의 입을 통해 분쇄시킬 수 있었을 터였다. 아울러 막 출발한 상해 임시정부의 구심점도 마련할 수 있었을 터, 안창호가 기대한 것도 바로 그와 같은 효과였다. 그러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고, 일본 규슈를 거쳐 도쿄 경시청으로 이송돼 조사를 받던 이강은 이듬해 딸의 결혼식을 구실로 서울로 돌아왔다.
이후 일제의 계속된 도일(渡日) 요청을 거부하고 관훈동 사동궁에 칩거하였다. 그는 이때 일본정부에 의해 공족(公族) 신분이 박탈되었다. 그렇지만 일본 경찰은 여전히 거물인 그를 함부로 할 수 없었던 바, 부근에 상주하며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는데, 이강은 그렇게 반(半)연금상태로 살다 사동궁에서 해방을 맞았다. 하지만 실질적 고난은 그때부터였으니 그는 왕가의 부활을 경계한 이승만에 의해 사동궁 일부를 제외한 모든 재산을 국유화 조치로써 몰수당하며 빈곤한 생활을 영위해야 했다.
한때 영친왕 이은에 앞서는 황세자 후보로서 차기 황제 1순위에 올랐던 그였지만 한국전쟁 때는 보통 사람들과 다름없이 피란 행렬에 서야 했고, 전쟁 후 사동궁에 돌아와서도 궁핍에 시달리다 각계의 노력 덕에 겨우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때도 "황족으로서의 어떠한 예우도 아닌 지원"이라는 전제가 붙었다. 그는 그렇게 잠시 궁핍에서 벗어나 살다 1955년 8월 19일, 정부가 거처로 내어준 안국동 옛 궁실(宮室)인 안동별궁(현 서울공예박물관 자리)에서 영양실조 후유증과 화병으로 죽었다. 당 79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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