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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과 히파티아미학(美學) 2018. 5. 19. 17:51
바티칸 박물관에 그려진 라파엘로 산치오의 '아테네 학당'은 매우 유명한 그림이라 사실 내가 덧붙이고 말 것도 없다. 그림에 대한 전체적인 평은 말할 것도 없고, 여기에 등장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에피쿠로스, 헤라클레이토스, 에우클레이토스(유클리트), 프톨레마이오스, 디오게네스, 피타고라스, 제논, 알렉산드로스(알렉산더) 대왕, 나아가서는 아라비아의 수학자 이븐 루시드에 이르기까지의 인물들에 대해서는 아마도 수천 명 이상이 언급했을 것이다.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아테네 학당의 등장인물
잠시 부언하자면, 이 그림은 지금 바티칸 박물관의 라파엘로의 방이라 불리는 곳에 있지만 원래는 교황 율리우스 2세(재위 1503-1513)의 개인 도서실이 있던 자리였다. 따라서 라파엘로는 종교화 일색이던 바티칸 성당의 이 부속 건물에 특별히 아테네의 아카데미아를 표현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곳에 그려진 인물 등은 모두 시공을 초월해 동원된 사람들이었으니, 그 면면을 대충 훑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그림 중심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의 손가락은 형이상학의 세계인 이데아를 지향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손바닥은 지상의 현실을 지향한다. 플라톤의 얼굴은 자신이 존경한 레오나르드다빈치를 모델로 했다. 그러나 그림에서는 레오나르드다빈치나 미켈란젤로에게서 볼 수 없는 섬세함이 묻어난다. 예를 들자면 플라톤이 옆구리에 끼고 있는 책은 '티마이오스(Timaeus)'라고 하는 형이상학 책이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들고 있는 책은 '에티나(Ethica)'라고 하는 윤리학 책으로, 책과 함께 각각의 손들이 그 지향점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고독한 헤라클레이토스
사색적인 얼굴로 무언가 써내려가는 사람은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로 미켈란젤로를 모델로 했다. 과중한 종교화 작업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가질 수 없었던 미켈란젤로의 고뇌를 표현했을는지도 모른다.(☞ '세상에서 가장 빼어난 조각품')
알렉산드로스와 아리스토테네스
그 유명한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한켠으로 밀렸으니, 여기서는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을 듣는 일개인 뿐이다. 바로 옆에서는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아리스토테네스가 미심쩍은 얼굴로 소크라테스의 강의를 듣고 있다.(이 그림의 주인공이 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아테네의 군인이었던 알키비아데스와 견유학파의 창시자인 안티스테네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디오게네스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햇빛을 쬘 수 있게 비켜달라고 했다는 유명한 일화를 남긴 견유학파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역시 그다운 자유분방한 자세로 중앙 계단에 앉아 뭔가를 읽고 있다.(☞ '알렉산더 대왕과 티레 전투') 이 그림의 주인공이 디오게네스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
뜻밖에 출현한 라파엘로
바닥에 컴파스를 대고 있는 사람은 기하학자 에우클레이토스(유클리트), 등을 돌린채 지구의를 들고 있는 사람은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 그 앞에 천구의 비슷한 구체를 들고 있는 사람은 페르시아의 종교가 조로아스터(짜라투스투라)인데, 등을 돌린 프톨레마이오스와 눈을 마주치고 있는 젊은 청년은 라파엘로 그 자신이다.
왼쪽의 인물
염탐하는 이븐 루시드
무엇보다 주목할 사람은 바로 이사람, 12세기 이슬람 통치 시절의 스페인 철학자요 의학자였던 이븐 루시드다. 그는 무언가를 열심히 계산하고 있는 피타고라스 뒤에서 서판을 염탐하듯 들여다보고 있지만, 당대(12세기)의 의학과 수학은 오히려 유럽을 앞섰다. 그림을 그린 라파엘로에게 내셔널리즘이 배어 있음이었다.
이상 그림 속 등장인물들은 이븐 루시드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한번 쯤은 들어본 이름들이다. 하지만 단 한 사람, 그림 중앙 좌측에 서 있는 여인의 이름은 낯설다. 그녀의 이름은 히파티아(370?-415), 알렉산드리아에 살던 그리스계 로마인이었다.
당대 종교의 희생양이 됐던 비운의 천재 히파티아
그녀는 철학, 수학, 물리학, 천문학에 두루 정통했던 학자로서, 철학적으로는 신플라톤주의(Neo platonism)를 완성했고, 물리학 분야에서는 비중이 다른 두 액체의 상대 비중을 측정할 때 사용하는 하이드로미터(Hydrometer)와 수중 투시경(Hydroscope)을 발명하는 업적을 남겼으며, 수학적으로는 디오판토스의 대수학(Diophantus' Arithmetica)을 정립하였다.(그녀가 정리한 유클리트 기하학 교재는 무려 18세기까지 이용되었다)
뿐만 아니라 천문학적으로도 뛰어났으니, 어릴 적에 프톨레마이오스의 저서 '알마게스트'의 주석서를 쓸 정도의 천재였으며, 그 외 많은 천문학 저서를 남겼는데, '디오판토스의 천문 규칙에 관하여'는 지금도 그 일부가 전해진다. 아울러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의 관장이자 부친인 테온과 함께 천체를 구(球)에 담은 천구의(Astrolabe)를 만들기도 하였다.(케플러의 우주적 발견을 먼저 경험한 사람이라 불려지기도 한다)
아울러 뛰어난 선생님이기도 했으니, 다른 학자들의 현학적이고 신비주의에 치우친 난해한 논리의 설명과 달리 오로지 냉철한 지성에 의지한 그녀의 논리는 이해하기 쉬웠으며 또한 합리적이었다. 이에 그녀가 강의하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아케데미아에는 학자, 철학자 지망생부터 일반 대중에 이르기까지 늘 인산인해를 이루었으니, 멀리는 그리스와 로마에서까지 청중들이 찾아왔으며, 로마제국의 알렉산드리아 총독 오레스테스마저도 그녀의 열렬한 팬이었다. 훗날 퀴리 부인 정도가 비견될까, 그녀는 정말이지 역사상의 전무후무했던 천재 여성이었던 것이다.
더욱이 그녀는 아름답기까지 했던 바, 자신의 제자로부터 '플라톤의 두뇌와 아프로디테의 몸을 가진 사람'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이에 그녀에 향한 연모와 구혼이 끊이지 않았는데, 이때 그녀가 사용했던 유명한 문장이 바로 '나는 진리와 결혼했다'였다.
하지만 그녀에게 모든 것이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결정적으로 불운했던 것은 태어난 시기였던 바, 다름 아닌 로마제국에 기독교 주의가 팽배하던, 그리하여 오직 예수와 하나님의 창조론 외에는 그 모든 자연철학이 무력화되기 시작하던 무렵이었다. 게다가 알렉산드리아 대주교 키릴루스(370-444)는 매우 교활하고 정치적인 인물이었으니, 훗날 콘스탄티노플의 총주교 네스토리우스의 이성설(二性說)을 단죄한 한 장본인이기도 했다.(☞ '창세기의 수수께끼 단어 '우리', 그 비밀의 열쇠를 찾아서 II')
키릴루스는 우선 히파티아의 영향력이 알렉산드리아를 좌우하는 것이 싫었고, 또 그녀가 부르짖는 자연철학과 과학은 그리스도의 논리와는 도무지 합당치 않은 것이었다.(그녀는 유대교의 일신론적 관습에 관심이 없었으므로 당연히 기독교를 숭배하지 않았다) 이에 키릴루스는 415년 3월 베드로를 위시한 교회 내의 광신도들을 선동해 아카데미아의 강의를 마치고 귀가하는 히파티아의 마차를 습격하게 했다. 이에 그녀는 심한 폭행을 당한 후 옷이 찢겨진 채 거의 나체로 알렉산드리아 케라레움 교회로 끌려왔고, 그곳에서 '오스트라코이스(Ostrakois)'라는 도구를 이용한 린치를 당했다.
오스트라코이스는 생굴의 껍질을 말하는 것으로, 기독교인들은 그 날카롭게 쪼개진 굴 껍질로 히파티아의 피부를 도려내었고, 그녀는 결국 그로 인해 죽고 말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성이 안 찼던지 죽은 시신의 뼈와 살을 모두 발라 수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키나론까지 뿌리고 다녔고 나머지는 그곳에서 불태웠다. 알렉산드리아 총독 오레스테스는 이 소식에 분노했지만 대주교 키릴루스와는 유대인 추방 문제로 대립하고 있었던 바, 기독교도들의 더 큰 소요를 염려한 나머지 키릴루스의 사형(私刑)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히파티아의 제자들을 비롯한 많은 철학자와 과학자들은 학문의 자유를 억압하는 이곳 알렉산드리아를 떠나 아테네나 로마 등지로 옮겨갔고,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이래 번성했던 알렉산드로스 대도서관과, 찬연했던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그때로부터 시들기 시작했다.(☞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과 70인역 성서') 종교가 이성을 지배하던 중세 암흑기의 예고편, 그리고 중세의 비극 마녀 사냥의 전주곡과 같은 일이 바로 이곳 알렉산드리아에서 벌어진 것이었다.
라파엘로는 그 비운의 천재 히파티아를 그림 속에서 부활시켰다. 그리고 그녀를 계단 중앙 좌측에 고고하게 배치하여 고대의 비중있던 인물임을 부각시켰으며, 그녀를 묘사함에 있어서는 자신의 천재성을 십분 발휘했다. 모두가 알다시피 라파엘로의 그림은 당대의 유명 화가 중에서도 특히 섬세하고 여성적이다. 그리하여 성모 마리아 등의 묘사에 있어서는 다른 누구보다 독보적인 바, 아래의 두 그림은 이에 대한 더없는 증명이다.
방울새의 성모(1505년)
의자에 앉은 성모 마리아(1513년)
라파엘로가 히파티아를 묘사함에 있어 누구를 모델로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그의 주위에 넘쳐났다는 많은 여자들 가운데의 한 사람일 수도 있을 것이다.(젊고 잘 생겼던 그에게는 여성 팬들이 득실거렸다고 하는 바, 그가 37세의 나이로 요절한 것이 그 일과 상관없지 않았으리라는 소문쯤은 비밀도 아니었다) 어찌됐든 히파티아의 모델이 된 사람은 그 중의 가장 지적이고 현명했던 여성이었음이 분명할 것이다. 그리고 라파엘로는 그녀를 매우 좋아했던 듯 바티칸 성당 내 또 다른 벽화 속의 모델로 등장시켰다.
성사에 대한 토론(Disputa del Sacramento)
그런데 그녀는 남편이 있는 여자로서 라파엘로와는 불륜 관계였으며, 또한 무슨 심보였는지 그 남편인 우르비노바 공작까지 그림 속 파르미네데스(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의 모델로 끌여들였다고 한다. 사실 이런 얘기는 '믿거나 말거나'의 수준이겠지만, '아테네 학당'의 다른 인물의 묘사에서는 사실에 충실하려 애썼던 라파엘로가 히파티아에 있어서는 전래된 그림 속의 얼굴을 전혀 무시했음은 분명해 보인다.
'아테네 학당' 속의 히파티아와 파르미네데스, 그리고 소문에 관해 떠도는 그림
히파티아의 초상이라 전해지는 그림
레이첼 웨이즈가 주연을 맡은 영화 '아고라' 속의 히파티아
영화 '아고라'의 스틸컷
* 사진 및 그림의 출처: Google. jp
- 성서의 불편한 진실들
- 국내도서
- 저자 : 김기백
- 출판 : 해드림출판사 2016.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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