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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서의 변'에 작살난 슬픈 모자의 무덤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5. 9. 7. 22:51

     
    연식이 좀 있는 분이라면 옛 드라마 '여인천하'에서 "뭬야?"를 외치던 경빈박씨라는 여인을 기억하시는 분이 적지 않으시리라 본다. 그 경빈박씨 역을 한 탤런트가 도지원 씨인데 벌써 내년에 환갑이라고 하며(1966년 생) 아직 미혼이라고 한다. 당시 경빈박씨 역을 도지원 씨가 맡은 것은 딱이었다. 경빈박씨는 당대 최고의 미인으로 역사에서 이름 높던 여인이다. 
     
    경빈박씨(?~1533)는 경상도 상주에서 박수림이라는 한미한 사족의 딸로 태어났다. 그는 어릴 적부터 상주 총각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상사병을 앓게 할 정도의 미인이었다고 하는데, 연산군 시절 채홍사들이 지방을 돌며 미녀들을 선발할 때 빼어난 자색이 소문나며 일약 전국구 미인으로 떠올랐다. 따라서 연산군의 흥청(기생)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으나 두 달 후인 1506년(연산군 12) 9월 중종반정이 일어나며 급반전해 후궁 후보가 되었다. 이미 뿌려진 전국구 미인이라는 소문 때문이었다.
     
     

    리즈 시절의 도지원 / 스타뉴스 DB

     
    이렇게 하여 상주 처녀 박씨는 서울로 올라와 후궁 4명 중의 한 명이 되었다. 후궁이라 해도 높은 직첩이지만 그때의 후궁은 그 이상의 가치가 있는 매우 중요한 자리였으니 현재 중전의 자리가 비어 있어 여차하면 왕비도 될 참이었다. (중종의 부인이었던 단경왕후 신씨가 연산군의 중신 신수근의 딸이라 하여 폐서인 되어 쫓겨난 상태임)

     

    그런데 경쟁자인 나머지 후궁들은 모두 쟁쟁한 집안의 여식들로서, 한 사람은 반정 일등공신 홍경주의 딸 희빈홍씨였고, 다른 후보 숙의윤씨와 숙의나씨도 못지않은 양반가의 여식이었다. 그럼에도 경빈박씨는 기죽지 않았다. 나에게는 자랑스런 미모가 있지 않은가?
     
    국왕 중종도 예쁜 경빈박씨를 가장 총애했다. 하지만 대왕대비가 심사위원장이던 중전 심사의 결과는 아쉽게 탈락! 이유는 한미한 집안 출신이라는 것 때문이었다. 중전이 된 인물은 뜻밖에도 숙의윤씨로, 반정 삼등공신 윤여필의 딸이었는데, 일등공신 박원종의 외조카라는 것이 결정타였다는 후문이었다. 그렇지만 임금의 사랑은 경빈박씨를 떠나지 않았으니 중종 4년(1509) 경쟁자들 중에서 가장 먼저 아들 미(嵋, 복성군)를 낳았고 연이어 두 딸을 생산했다. 경빈박씨의 위세는 하늘을 찔렀다. 
     
    뒤질세라, 중전인 장경왕후도 중종 10년(1515) 원자 호(峼, 훗날의 인종)를 생산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엿새 만에 산후병으로 숨을 거두었고, 왕비의 자리는 다시 공석이 되었다. 경빈박씨에게 두 번째 기회가 찾아온 셈이었다. 중종도 박씨를 새 왕비로 삼고자 하였다. 하지만 영의정 정광필이 반대하고 나섰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미천한 집안 출신이라는 것이었는데, 그 '미천함' 앞에서 경빈박씨는 또 한 번 분루를 삼켜야 했다.

     

     

    퇴계로 우리은행 사옥 마당의 정광필 집 은행나무 / 이 나무의 수령은 정확히 530살이다.
    우리은행 사옥 마당의 정광필 집터 표석


    아울러 이때는 이미 장경왕후 소생의 원자가 있었던 바, 박씨가 왕비가 되면 원자보다 먼저 태어난 복성군과의 서열 문제로 복잡해질 소지도 있었다. 이에 조정 내에서는 원자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이미 아들을 낳은 후궁을 새 왕비로 책봉해서는 안 된다는 쪽으로 귀결됐고 이로 인해 경빈박씨(복성군의 모), 숙의홍씨(해안군의 모), 희빈홍씨(금원군의 모) 같은 후궁들도 모두 왕비 후보에서 제외되고 파산부원군 윤지임의 딸 윤씨가 계비로써 새로운 왕비가 되었다. 바로 문정왕후였다. 
     
     

    경빈박씨와 문정왕후 / 드라마 속 인물과 달리 문정왕후는 경빈박씨나 희빈홍씨에 비해 최하 8살이 어렸다.

     
    그런데 새로운 왕비 문정왕후는 나이가 어림에도 강단이 대단한 총명한 여자였다. 그리하여 자신들의 아들을 앞세워 호시탐탐 왕대비의 자리를 노리는 후궁들을 노련히 견제했는데, 이 무렵인 중종 22년(1527) '작서의 변'이라고 하는 희대의 사건이 일어났다. '작서(灼鼠)'는 '불에 탄(灼) 쥐(鼠)'라는 뜻으로서, 꼬리가 반쯤 잘리고 주둥이와 두 눈과 두 귀 및 네 발이 불에 지져 죽은 쥐가 동궁전을 향한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변고가 발생한 것이었다.  
     
    처음에 이 '불에 탄 쥐'를 발견한 사람은 동궁전 소속의 궁녀 두 명이었다. 그런데 이 일은 워낙에 흉칙한 짓인지라 쉬쉬하고 덮고 넘어갈 뻔했으나, 임금인 중종마저 같은 꼴의 쥐를 발견하면서 표면화됐다. 조사 결과 동궁을 저주하는 흉사라고 결론 내려졌고 범인으로는 경빈박씨가 지목되었다. 경빈박씨의 나인들이 이 일을 꾸미며 서로에게 함구를 다짐하는 말을 강녕전 부근에서 들었다는 일부 궁녀들의 증언 때문이었다.
     
                   

    tvN '벌거벗은 한국사' 캡처
    경복궁 강녕전

                               
    간주하자면, 경빈박씨가 원자를 저주해 죽게 하고 자신의 아들 복성군으로 왕위를 계승시키려는 음모로 비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에 경빈박씨 처소의 궁녀들이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다. 하지만 아무리 가혹하게 문초해도 박씨가 범인이라는 자백을 얻어낼 수가 없었다. 이처럼 증거도 없었거니와, 만일 정말로 경빈박씨가 흉사를 꾸몄더라도 불 탄 쥐를 만인이 볼 수 있게 매달아 놓거나, 적어도 임금의 눈에 띌 수 있는 길에 놓지는 않았을 터, 경빈박씨가 범인일 개연성은 현실과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사건은 이런 정황들이 모두 무시된 채 그저 심증으로만 처리되었고, 결정적 증거와 증언이 나오지도 않았음에도 경빈박씨가 범인으로 단정되었다. 이에 1527년 4월 21일 경빈박씨는 폐서인 되었고 아들 복성군과 함께 궁궐에서 퇴출되어 본가가 있는 상주로 유배되었다. 그리고 6년이 지난 중종 28년(1533) 인형으로 만든 사람의 머리를 매달아 저주한 '가작인두의 변'이 일어났고, 이 역시 경빈박씨가 사주한 일로 단정되며 그해 5월 23일 경빈박씨는 사사(賜死)되었다.
     
    이어 사흘 후인 26일에는 복성군도 사약을 받았는데, 사사를 명령한 아비 중종은 "그래도 내 아들이니 시신은 잘 거두어 장사 지내라"는 명을 덧붙였다고 한다. 그렇게 거두어진 시신이 지금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연평리 산 33-47에 누워 있다. 산속에 있는 무덤은 두 기뿐이며 앞쪽이 복성군이고 뒤가 경빈박씨다. 재미를 좇았던 드라마의 영향인지 경빈박씨는 지금도 세인들에게는 '작서의 변'의 범인이다. 역사가들 사이에서도 그저 영구 미제사건쯤으로 취급되다가 소장 학자들의 거듭된 고찰로 인해 지금은 김안로(金安老, 1481~1537)라는 희대의 간신이 꾸민 무고임이 밝혀졌다.    

     

     

    경빈박씨 모자의 무덤은 찾기가 쉽지 않다. 진접읍 연평리 산 33-47 입구의 순흥안씨 묘소 표석을 찾으면 도음이 된다.
    경빈박씨 묘 가는 길 / 보기보다 경사가 급한 산길을 오르면
    산중에 무덤 2기가 나타난다.
    앞에 놓인 것이 아들 복성군의 무덤이다. / 그는 상주 유배지에서 23세로 죽었다.
    묘표
    문석인
    경빈박씨의 무덤은 뒤에 자리한다.
    묘표
    문석인
    경빈묘 뒤에서 본 풍경
    큰 길에서 처음 만난 표지판

     

    차제에 지적하고 싶은 것은 현재 광란의 칼춤을 추고 있는 조은석 특검팀의 공소장 변경에 관해서이다. 오늘 뉴스를 들으니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동기에 김건희 여사가 포함된 사실을 포착한 조은석 특검팀이 12·3 비상계엄 관련 공소장 변경을 추진한다고 한다. 어떻게? "사랑해서 계엄했다고."

     

    한민족 오천년 역사에서 처음 등장하는 이 죄명은 소가 들어도 웃을 일이다. 지난 6월 변호사에서 특검 검사가 된 조은석은 입장문을 통해 "사초를 쓰는 자세로 세심하게 살펴 가며 오로지 수사 논리에 따라 특별검사의 직을 수행하겠다"고 말했다. 사초를 쓰는 사관의 자세로 일하겠다는 것은 칭찬할 만하다. 하지만 역사에는 '작서의 변'과 같이 엉터리 사초를 남기는 사관도 적지 않았다. 조은석 특검이 그와 같은 길을 걷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조은석 특검팀의 팀장 '나쁜 석' / 연합뉴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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