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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재판이 벌어졌던 철원 노동당사와 이재명의 발언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5. 9. 12. 23:14
해방 후 북위 38도선을 기준으로 남북으로 갈라졌던 한반도는 5년 후 전쟁을 맞았다.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일어난 1950년의 6.25전쟁이 그것이다. 이후 3년간 남과 북은 일진일퇴의 교전을 되풀이하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되며 남북 경계선이 바뀌었다. 당시 남과 북은 38도선 부근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가 휴전이 됐는데, 서부전선을 책임지던 유엔군은 즉시 철수하였고 그러자 북한군이 바로 내려와 38도선 이남을 점령했다. 그 땅을 저들은 신해방지구라 부른다.
반면 중·동부전선을 맡았던 국군은 진군하여 경기도의 연천과 포천, 강원도의 철원, 화천, 양구, 인제, 고성, 양양, 속초 등의 지역을 전부, 혹은 일부 점령했다. 우리는 이 지역을 수복지구하고 부르는데, 오늘 말하고자 하는 철원 노동당사는 당연히 수복지구 안에 있었다. 그러니까 철원은 해방 후 8년간 북한의 영토였다가 대한민국의 영토로 편입된 지역으로, 그곳은 행정청이던 노동당사 건물이 지금도 남아 있다. 그리고 그 건물은 해방 후 8년간 북한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가를 증언해 준다.

실지(失地)와 득지(得地) 
해방 직후의 철원 시가지 
해방 직후의 철원 시가지 
한국전쟁 전의 김화 시가지를 제현한 미니어쳐 
김화읍 생창리 '사라진 마을 김화이야기관'의 전시물이다. 
생창리 입주 40주년 기념비 / 전쟁으로 사라진 김화읍 생창리 마을이 재건된 것을 기념해 2010년에 세운 비석이다. 
생창교회 
철원역사문화공원에 재현된 강원도립 철원의원 
강원도립 철원의원의 안내문 / 1920년 건립된 철원제일교회의 앤더슨 선교사가 철원에 구세의원을 설립한 것이 철원지역 서양의학의 시작이라고 설명돼 있다. 
지나다 찍은 김화감리교회 철원 노동당사는 해방 후 북한에 있었고 특별한 자료도 없는 관계로 언제 지어졌는지 명확히 알 수 없다. 대략 1946년경 지어진 건물로 추정할 뿐인데, 더불어 건물의 용도도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밝혀져 있지 않고 있다. 그저 스탈린 시대 사회주의 리얼리즘 건축의 영향 아래 지어진 실용성이 강조된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을 뿐이다. 비록 지금은 뼈대만 남았지만 한눈으로 보기에도 건물은 실용적이고 단단해 보인다.

외관만 남은 철원읍 관전리(官田里)의 노동당사 
1850㎡의 면적에 무철근 콘크리트조 3층 건물로 지어졌다. 
평수로는 대지 942평에 건평 117평으로, 철원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낮은 언덕 위에 건립됐다. 
취조실에서는 사람 머리카락, 인골, 인골을 묶은 철사 등도 발견됐다. 
안내문 
철원읍 지도 / 노동당사 옆으로 강원도립 철원의원이 보인다. 철원군에 관한 조금 더 자세한 기록에서는 철원 노동당사가 1946년 초에서 여름 사이에 지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건물의 용도가 조선노동당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얘기도 있다. 조선노동당은 북조선 공산당과 조선 신민당이 합당하여 결성되었는데 그 시점이 1946년 8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찌 됐든 이 건물은 이후 북조선 공산당의 당사로 쓰였고, 아울러 간첩들의 '대남사업' 및 전쟁준비와도 관련 있는 건물로 쓰였을 것이다.
대한민국이 러시아와 수교한 후 밝혀진 외교문서에 따르면, 해방 후 김일성은 소련군을 따라 북한에 들어와 조선인민공화국을 건국한 직후부터 대남 전쟁 준비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까닭에 강원도 최남단이자 북쪽에서 볼 때 최전선이었을 철원이 첨예한 임무 수행을 했을 것은 불문가지인데, 그 과정에서 벌어진 것이 엄혹한 처단이었다. 빨갱이가 아니거나 빨갱이 사상에 덜 물든 자들은 아무래도 '대남사업' 및 전쟁준비에 덜 협조적이고 혹간은 친 남한적인 행동을 할 수도 있을 터, 이를 방지하기 위한 색출·처단 작업이 벌어졌던 것이다.
증언에 따르면 특히 1953년 북한군이 후퇴하던 시기, 철원 노동당사에서는 죄 없는 많은 주민들에 대한 문자 그대로의 인민재판이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반동으로 낙인찍힌 사람들은 혹간은 당사에서 즉결처분되었고,(작두에 팔뚝이 잘린 끔찍한 사진을 본 기억이 생생하다) 대부분은 이곳에서 약 1km가량 떨어져 있는 사요리 수도국 터로 끌려가 처형되었다. 사요리 수도국은 1936년 일제가 철원읍 주민들의 식수를 마련하기 위해 율이리 안양골에 취수장을 설치하고 그 물을 사요리 정수장으로 끌어들여 공급했던 곳이다.

사요리 정수장의 흔적 수적으로 인원만 적었을 뿐, 그것은 마치 1975~1979년, 캄보디아 폴 포트 정권 아래에서 이루어진 킬링필드와 다름없는 일이었다. 당시 폴 포트가 이끄는 민주 캄푸치아의 준군사 조직 크메르루즈는 국민을 개조한다는 명분아래 정치가와 학자는 물론이요, 노동자, 농민, 부녀자, 어린이까지 무려 전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200여만 명을 살해하였다. 이 홀로코스트는 망명한 캄보디아의 저널리스트인 딧 프란이 '킬링필드 시기'라고 회고하며 이후 나치의 홀로코스트와 더불어 집단학살의 대명사가 되었다. (폴 포트의 민주 캄푸치아 정권은 1979년 베트남의 침공으로 붕괴됐다)

캄보디아 킬링필드에 희생된 사람들의 인골 묘지 와트마이사 
크메르루즈의 학살 / 당시 신문의 삽화를 보다 두 손을 뒤로 묶고 비닐 봉지로 얼굴을 씌워 죽이는 장면에서 나도 잠시 숨쉬기가 어려웠던 기억이 있다. 아래 수도국 터에서 물탱크 속에 수장되거나 총살돼 버려진 사람은 약 300명 정도라고 한다. 이후 철원군 철원읍 사요리 409번지 외 2필지에 존재하는 급수시설은 폐기됐으나 콘크리트 급수탑과 저수조는 지금도 존재한다. 그리고 주변에서 느껴지는 스산함과 을씨년스러움은 지금도 소름 돋게 만드는데, 특히 여전히 물이 고여 있는 넓은 지하 저수조에서 공명되는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는 더없이 공포스럽다.

사요리 수도국 터 급수시설 
내부 / 뜻을 알 수 없는 영어 낙서와 탄흔이 남아 있다. 추정컨테 이 안에 사람들을 몰아넣고 총을 갈긴 듯하며 수복후 그것을 본 미군이 이에 대해 뭐라 적은 듯하다. 
수도국 터 전경 
왼쪽이 시신들이 다수 발견된 지하 저수조다. 
지금도 물이 고인 지하 저수조 / 위쪽에 탄흔이 보이다. 나는 어제 그와 같은 빨갱이 인민재판이 다시 도래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빠졌다. 이재명 대통령이 자의적으로 대한민국 헌법기관의 서열을 정하고 (선출된 권력인 대통령과 사법부가 최고) 사법부조차 입법부의 구조 아래 놓여야 된다는, 삼권분립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언급을 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소름 끼치게도 이렇게 물었다.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 "위헌 얘기하던데 그게 무슨 위헌인가?" 라고.
그가 말한 정당성의 이유는 "최고 권력은 국민·국민주권, 그리고 국민으로부터 직접 선출된 권력"이며, "국회는 가장 직접적으로 국민으로부터 주권을 위임받았으므로 국가 시스템을 설계하는 건 입법부 권한"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사법부는 입법부가 설정한 구조 속에서 헌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고, 사법부 구조는 사법부가 마음대로 정하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즉 국회 내 다수당인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입법을 하는 건 사법부 권한 침해가 아니라 정당한 권한이라는 논리이다.
이는 헌법 체계와 사법 질서를 전면 부정하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좌파사상의 재판관이 포진된 특별재판부가 으쌰으쌰 하는 개딸들의 입김에 따라 재판을 하겠다는 것이니 곧 인민재판과 다름없는 짓을 벌이겠다는 말과 진배없다. 다수 당의 민주당이기에 특별재판부고 뭐고 구성할 수 있을 것인데, 이재명의 말 대로라면 사법부는 선출된 권력이 아닌 지명직이기에 사법부 판사는 선출된 자로 구성된 입법부의 권한에 따라야 한다. 만일 그렇게 되면 삼권분립은 파괴되고 곧바로 민주당 독재 정권이 탄생한다.
특별재판부의 판사가 누가 될 것인가를 따질 필요도 없다. 또 이재명의 말 대로라면 헌법재판소의 판결도 의미 없게 된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이재명을 지지하는 좌파 판사가 다수 포진한 재판관들의 판결에 의해 파면이 결정됐다. 하지만 이재명의 논리 대로라면 지명된 재판관이 대통령을 파면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국민으로부터 선출된 사람이 아니지 않은가? 또 선출된 국회의원을 사법부에서 판단해 당선 무효형을 내라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선출직이 최고 권력이라는 미명 아래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것, 이재명의 머릿속에서는 이것이 가능할는지 모르겠지만 '위헌'에 더도 덜도 아니다.
법률적으로는 지금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에 회부한 내란특별재판부 설치 법안(12·3 비상계엄의 후속조치 특별법)이 위헌이다. 헌법에 근거 없이 헌법상 법원에 속하는 사법기관을 설치하는 것은 헌법 101조에 위배되며, 아울러 104조 법관임명권을 침해하기 때문이다.
특정인, 특정사건을 놓고 특별재판부를 설치한다는 점에서, 이른바 내란사건에 연루된 피고인들의 평등권과 헌법·법률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등 기본권 침해 소지가 크다는 것도 법률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내란특별재판부'를 '내란전담재판부'로 이름을 바꾸는 것은 그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서 입법부가 사법부를 간섭하는 형식에는 변함이 없다.

머리는 새까매지고 얼굴은 새하예져 열변하는 무식한 대통령 / 국민들은 가슴이 새까맣게 타고 머릿속이 새하예졌을 듯싶다.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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