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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정부시 호원동 경흥길과 나선특별시 서수라 녹둔도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5. 9. 16. 22:17

     
    조선시대 서울에서 의주까지의 길이었던 의주로는 비교적 알려져 있는 반면 서울과 경흥을 이어주던 경흥로는 생경하다. 아니 경흥이란 지명조차 생경할 분이 대부분일 터인데, 대강 설명하자면 경흥은 한반도의 동북쪽 끝 두만강 하구에 위치했던 도시로 세종 때 설치한 6진(陣) 중의 하나였다. 지금은 북한 나선특별시에 경흥군의 일부가 포함된 상태이며 현재 북한-러시아 간 자동차도로 다리가 건설 중이다. 
     
     

    2004년 9월 촬영된 북한 러시아 간 두만강철교 / 북한에서는 '조·러시아 우호의 다리'라고 부른다.

     
    경흥이란 도시가 잊힌 데에는 필시 분단 상황이 한몫했을 터이다. 함경북도 최북단의 그 도시를 기억해야 할 현실적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혹시 남북통일이 된다면, 그리하여 강남 수서역에서 열차를 타고 유럽여행을 할작시면 블라디보스토크역(驛)에서 출발하는 블라디보스토크 ~ 페테스부르크 간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타기 위해 경흥을 지나게 될는지도 모른다.
     
    갑자기 이와 같은 몽상가가 된 것은 의정부시 호원동 호원1교 아래에서 발견한 '경흥로의 원형노선과 그 가치'라는 경기도에서 설치한 안내문을 발견했던 까닭이다. 내용을 읽어보니 1770년 실학자 신경준이 집필한 역사지리서 <도로고(道路考)>에 기록된 경기도를 지나는 주요 6개의 도로망(경흥로ㆍ평해로ㆍ영남로ㆍ삼남로ㆍ강화로)에 관한 기록을 토대로 지난 2013년 의주길 개통을 시작으로 경기옛길 코스를 구성했다고 하는데, 

    경기 옛길
    의주로와 경흥로 / <수원일보> 참조
    <도로고> 국역본 / 류명환 역
    <산경표(山經表)> / 영조 때 신경준이 편찬한 책으로 한반도 멧줄기의 발원지와 분포를 강물의 수계를 따져 가계도처럼 그림으로 표시했다.

     
    이 가운데 경흥로는 한성 ㅡ 수유리점 ㅡ 누원(다락원) ㅡ 축석령 ㅡ 송우점 ㅡ 만세교 ㅡ 김화 ㅡ 금성 ㅡ 창도역 ㅡ 회양 ㅡ 철령 ㅡ고산 ㅡ안변ㅡ 함흥 ㅡ 길주 ㅡ 명천 ㅡ 회령 ㅡ 온성 ㅡ 경흥 ㅡ 서수라(西水羅)로 이어지는 코스이나, 안타깝게도 김화에서 그 길이 끝난다. 아래의 강원도 김화읍 생창리는 현재까지는 갈 수 있는 가장 마지막 마을이다. 어서 서수라까지 갈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의정부시 호원동 호원1교
    안내문
    옛 경흥로에서 바라본 도봉산
    포천 영중면의 경흥길 표지판
    김화읍 생창리 '통일로 가는 길'
    김화 생창리 마을 / 이 길의 끝은 군부대로 더 이상 갈 수가 없다.

     
    우리에게 더욱 생경한 서수라(西水羅)라는 마을은 우리나라 국토의 최북단 어항(漁港)으로서, 함경북도 경흥군 노서면(現 선봉특별시 서수라리) 두만강 어귀의 남서쪽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다. 서수라는 조선시대 여진족을 경략하기 위한 서수라보(西水羅堡)가 설치되었던 곳이며, 북쪽의 굴포리는 고려 윤관 장군의 북벌(北伐) 때의 전진기지로 알려져 있다.
     
    ※ 나선시는 2010년 1월 4일 "나선시를 특별시로 한다"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에서의 정령발표로 나진·선봉시가 합쳐져 나선특별시가 되었고 이때 경흥군의 일부가 포함되었다. 옛 경흥군은 그에 앞서 은성군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옛 종성군은 샛별군이 되었다.  
     
     

    나선특별시 전경
    나선특별시 선봉구역 / 서수라리와 인접한 곳이다.

     
    조선시대는 야인(野人)을 방비하게 위해 서수라에서부터 두만강변을 따라 수호파수(守護把守, 현대전의 참호)가 일정한 간격으로 설치되어 있었다. 서수라보 다음이 조산보(造山堡)로 이순신 장군이 조산만호로서 여진족을 방어한 땅인데, 그 조산 땅에 속한 녹둔도가 지금은 러시아 땅이 되어버렸다. 두만강 하구에 토사가 쌓이며 러시아 영토와 붙어버렸기 때문이다. 녹둔도는 32㎢, 여의도 4배 면적의 땅으로서 이 또한 되찾아야 할 우리의 미수복 영토이다.
     
                                

    1750년대 해동지도
    해동지도의 조산과 녹둔도
    그 섬이 토사가 쌓이며 이렇게 되었다.
    녹둔도 지도와 항공사진
    녹둔도의 현재 상황 / 러시아 영토에 속해 있다.
    이 충무공 승전대 비각 / 1587년(선조 20) 조산만호 이순신이 일대를 침략한 여진족과 싸워 승리를 거둔 것을 기념해 세웠다.
    함북 경흥 이충무공 승전대비 / 이순신의 초전(初戰) 기록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5년 전의 일이다.
    나선시에 있는 이순신의 녹둔도 전투 승전 기념비 / 조선중앙TV
    《북관유적도첩》에 실린 이순신의 녹둔도 전투에 관한 글과 그림
    녹둔도(鹿屯島) / 조선시대 사람들은 큰물이 들면 잠기는 이 땅이 '사슴의 엉덩이' 모양새라 하여 녹둔도라고 불렀다. (국제신문 DB)
    녹둔도에서 발견된 가선대부 김인흡의 묘표 (국제신문 DB)
    서수라와 관련된 일제강점기의 사진 2장
    서수라헌병분파대의 현판이 뚜렷하다. / 만주국 시절 일본 관동군과 소비에트 적군 사이에 서수리를 둘러싼 하싼분쟁(장고봉사건)이 일어나 많은 군인이 전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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