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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검정 차일암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5. 9. 17. 17:02

     

    세검정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번 글을 올린지라 새삼 부언할 것이 없지만 구성상 다시 언급하자면,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조선후기 총융청 군사들의 휴식처로 건립한 누정이다. 1976년 서울특별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정자가 있는 이 지역은 한성의 북방 인후(咽喉, 목구멍)가 되기 때문에 조선 영조 때 총융청(摠戎廳)을 이곳에 옮겨 서울의 방비를 엄히 하는 한편, 북한산성의 수비까지 담당하게 하던 곳이다. 

     

    총융청을 이곳으로 옮기면서 군사들이 쉬는 자리로 정자를 지은 것이 바로 세검정인데, 당시 총융청감관으로 있던 김상채(金尙彩)가 지은 <창암집 蒼巖集>에는, 육각정자로서 1747년(영조 23)에 지어졌다고 적혀 있다. 이곳은 도성의 창의문(彰義門) 밖 삼각산과 백운산의 두 산 사이에 위치하며, 주변의 경관이 아름다운 곳으로 탕춘대(蕩春臺)라는 언덕이 있었고, 부근에는 통일신라 때 창건된 장의사(藏義寺)라는 절이 있었다. 원래의 정자는 1941년 화재로 타 버렸으나, 1977년 옛 모습대로 복원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데, 丁자형의 3칸 팔작지붕 건물이다.

     

    세검정이라는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궁궐지 宮闕志>에 의하면, 인조반정 때 이귀(李貴)·김류(金瑬) 등의 반정인사들이 이곳에 모여 광해군의 폐위를 의논하고, 칼을 갈아 씻었던 자리라고 해서 세검정이라 이름지었다고 전한다. <동국여지비고 東國輿地備攷>에는 "세검정은 열조(列朝)의 실록이 완성된 뒤에는 반드시 이곳에서 세초(洗草, 史草를 물에 씻어 흘려 버림)하였고, 장마가 지면 해마다 도성의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물구경을 하였다"고 적혀 있다.

     

    또한, <한경지략 漢京識略>에는 "정자 앞의 판석은 흐르는 물이 갈고 닦아서 인공으로 곱게 다듬은 것같이 되었으므로, 여염집 아이들이 붓글씨를 연습하여 돌 위는 항상 먹물이 묻어 있고, 넘쳐흐르는 사천(沙川)을 거슬러 올라가면 동령폭포가 있다"고 하였다. 그 밖에 세검정과 관련된 시로 정약용의 '유세검정 遊洗劍亭'이 있다. (이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세검정 / 후면이라 생각했으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이곳이 전면이다.
    1907년 헤르만 산더가 찍은 세검정 / 물이 지금보다 많고 계곡의 바위들이 소실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정자도 지금의 위치보다 뒤에 자리했다.
    지금의 세검정초등학교 자리에 있던 총융청
    세검정초등학교 입구의 총융청 터 표석
    겸제 정선의 부채 그림 '세검정' 속의 탕춘대 / 세검정 뒤 바위가 탕춘대이다.
    2021년 1월에 찍은 세검정
    세검정초등학교 안에 있는 장의사 당간지주 / 서울시 내에 있는 유일한 당간지주로 절은 연산군 12년 폐사되었다. .

     

    오늘 말하려는 곳은 차일암(遮日巖)으로, 탕춘대 앞 계류를 끼고 세검정까지 이어져 있는 넓직한 바위를 이르는 말이다. 차일(遮日)은 '햇빛을 가린다'는 의미로서 바위를 살펴보면 지금도 차양막을 치기 위해 기둥을 박았던 구멍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차일암의 명칭은 여기서 유래되었다. 그런데 조선시대 사람들은 차양막 아래서 무슨 일을 했을까? 그보다는 왜 차양막을 쳤을까?

     

    조선시대 차일암에서는 세초(洗草)와 종이의 건조가 행해졌다. 세초는 <조선왕조실록>을 완성한 후 비밀 보존과 종이 재활용을 위해 글을 쓴 종이의 먹을 씻는 일을 말한다. 사관(史官)들은 <왕조실록>을 편찬하여 인출(印出)한 후에는 실록청의 관원들과 함께 창의문 밖 차일암으로 가 실록의 초본(抄本)을 망과 가마니 등에 넣어 먹의 흔적을 씻어낸 다음 가까이 있는 조지서(造紙署)로 보냈다.   

     

     

    세검정과 차일암
    위쪽에서 본 차일암
    차양막을 치기 위해 뚫은 바위 구멍 / 의정부 호원천의 바위 구멍으로 조선시대 경흥로(한성~함경도 경흥까지의 길)를 왕래하는 사람들의 휴식을 위해 설치한 듯하다.

     

    조지서는 조선시대 종이를 만드는 관청으로 세검정 부근에 있었다. 언뜻 외진 곳이라는 느낌이 들지만 당시로서는 최적의 장소였으니 삼각산에서 내려오는 수량 많은 물과 종이 재료를 펴서 말리기 쉬운 너럭바위가 많은 이곳은 조지서의 자리로서는 안성맞춤이었다. 지금 조지서의 흔적은 모두 사라졌지만 종로구 세검정로 9길에는 아래의 표석이 세워져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조지서는 국가에서 사용하는 종이를 만드는 관청으로 1415년(태종 15) 조지소(造紙所)라는 이름으로 설치되었다가 1466년(세조 12) 조지서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곳에서는 국가문서에 쓰이는 표전지(表箋紙), 지폐 용지인 저화지(楮貨紙)와 기타 서적 제작용 종이를 생산하였다. 

     

     

    조지서 터 표석

     

    차일암에서 사초를 씻은 이유는 귀한 종이의 재활용에도 뜻이 있었겠으나 우선은 다른 사람이 사초를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고, 또 고쳐 쓸 수 없게 하기 위함이었다. 조작된 사초를 근거로 실록을 수정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사초는 이렇듯 엄중한 기밀이 보장됐고, 잘 알려진 대로 국왕이라도 열람이 불가능했다. 만일 보게 된다면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이나 악평은 삭제토록 할 것이 뻔할 터, 아예 보지 못하도록 못박은 것이었다.  

     

    그런데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 사초를 고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지난 15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추미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위원장의 발언(조희대 대법원장의 사퇴를 공개적으로 촉구한)과 관련한 대통령 입장을 묻자 "시대적·국민적 요구가 있다면 '임명된 권한'으로서 그 요구의 개연성과 이유에 대해 돌이켜봐야 할 필요가 있지 않으냐는 점에 대해 아주 원칙적으로 공감한다"고 말했다.

    이후 해당 발언이 논란이 되자 강 대변인은 불과 1시간여 만에 재차 기자들을 불러 브리핑을 열어, "(제 말은) 삼권분립 및 선출 권력에 대한 존중감에 대해 '원칙적 공감'이라고 표현한 것"이라며 "이 사안(조희대 대법원장의 사퇴)에 대해 원칙적으로 공감한다는 것은 오독이고 오보"라고 밝혔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앞뒤 맥락을 잘라 오독과 오보를 행한 자'라는 누명을 쓴 기자들이 속기록을 보고 따질 수도 있는 일일 터, 아예 속기록의 해당 내용('원칙적 공감' 발언 부분)을 문제 없도록 고쳐버린 것이었다.

     

    강 대변인의 해당 발언이 위중한 건 바로 삼권분립에 위배되는 위헌적 발언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국회 등 다른 헌법기관의 권한을 치해할 수 없으며 이를 위반할 시는 탄핵 사유가 된다) 대통령 대변인의 발언은 자신이 아닌 대통령의 의중을 전달하는 것이며 그 까닭에 속기록에 기록돼 국가기록물로 보존된다. 강유정 대변인이 그것을 모를 리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추미애 의원의 발언에 원칙적으로 공감한다는 말을 했다가 문제가 되자 급히 사초를 지우고 말을 바꾸는 소동을 야기시켰다.  

     

     

    덜 완성된 옷 같은 것을 입고 나와 덜떨어진 소리를 한 대변인

     

    강 대변인 벌언은 아마도  평소 생각이 반영된 듯싶다. 국회의원들이 삼권분립의 근간을 흔드는 발언을 마구 내뱉으며 대법원장까지 탄핵하려 드는 마당이니 자신도 힘을 얹어주고 싶었던 모양이나, 실은 큰일날 일이다. 국회의원들이야 국회 내 발언에 대한 면책특권이 있으니 아무 거나 떠들어도 상관 없지만 공무원이 저런 말을 하면 탁핵감이다.

     

    이는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그것이 강 대변인의 뇌피셜이 아닌 대통령의 의중이라면 그야말로 큰판이 벌어지게 되는 바, 대통령의 참모들은 '계획도 없고 논의한 적도 없는 일'이라며 서둘러 진화에 나섰고, 강 대변인은 사초를 고치고 재차 브리핑을 가지게 된 것이다.  

     

    강 대변인은 브리핑 때 말을 길고 복잡하게 하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요점을 파악하기 힘든데, 그러한 까닭에 가끔 분명한 어조로 힘주어 하는 말이 있으면 귀에 쏙 들어온다. 이를 테면 이재명이 트럼프와 회담한 후 합의문조차 없이 돌아왔을 때 " 합의문이 굳이 필요 없을 정도로 얘기가 잘 된 회담"이라는 이해하기 힘든 답변도 대통령실의 의중만큼은 정확히 전달되었다. 물론 그것이 얼마나 엉터리 회담이었는가는 대통령 스스로가 밝히며 증명되었지만. (그래서 자신은 싸인을 안 하려 하니 강요하지 말라고 했다)   

     

    강 대변인에 대한 또 한가지 느낌은 브리핑 태도가 매우 오만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본인이 중언부언하며 제대로 된 전달을 못하면서도 (그래서 술먹었냐는 밈도 많이 돌아다닌다) 스스로는 매우 똑똑한 척 지혜로운 척 하는 모양새인데, 거기에  더 나아가 그것이 상대방에 대한 무시나 압박으로도 나타난다. 이러한 태도는 결국 OBS 최한성 기자의 송사를 불러왔는데, 방송으로 사건을 모두 지켜본, 제삼자인 나로서도 화가 나는 일이었다.  

     

    사건을 디테일하게 설명하기는 좀 긴데, (2025년 6월 27일, OBS 소속 최한성 대통령실 출입 기자가 대통령 브리핑룸에서 언론사 사장들과의 비공개 일정을 생방송 중 언급하며 논란이 발생했다) 결론만 예기하자면 최 기자는 대통령실 출근 마지막 날인 지난 16일 "신상 발언을 하겠다"며 "대변인님이 전에 그 잘못된 사실을 말씀을 해서 제가 사이버 폭력을 당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 부분들이 지금 기자들하고도 관계가 있기 때문에, 저는 회사에서도 이제 인사 조치를 당해서 사실 오늘 마지막으로 질문을 드린다"라고 항의성 발언을 했다. 

    이에 대해 강 대변인은 "제가 잘못 발언 한 적 없다. (대통령의) 비공개 일정은 비공개이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여쭤보시는 게 안 된다. 엠바고가 아니다. 성격이 다르다"라며 "여기는 신상 발언 자리가 아니다. 질의응답에 집중해 달라"고 단호하게 잘랐다. 그것이 나에게는 상대방을 이해시키려 하지 않고 힘으로 찍어누르려는 듯해 오만하게 비쳐졌는데, 아무튼 경찰은 최 기자의 강 대변인에 대한 명예훼손 고소를 접수하고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은 앞서 말한 강 대변인이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 요구와 관련해 '원칙적으로 공감한다'고 밝힌 사건에 비하면 큰 사안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금번 강 대변인의 행위는 지탄받아 마땅한 바, 자신이 분명히 한 말에 대해서도 기자들이 잘못 알아들은 것이라며 뒤집어 씌우고(들은 사람들이 다수임에도) 그 책임까지 언론에 돌리는, 스스로 신뢰를 무너뜨리는 일을 했다. 나아가 대통령기록물로 보존되는 사초와도 같은 속기록을 삭제·수정했다는 것은 진실을 은폐하려는 시도라고 볼수밖에 없다. 엄중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 여겨진다.  

     

     

    무엇이 오독이고 오보인가? / 잘못을 하였다면 최소한 사과라도 해야 도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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