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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릉과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5. 9. 11. 20:50
과거 올림픽 게임을 보면 남자보다 여자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구기 종목을 예로 들자면 구기 종목 역사상 최초의 메달(동메달)을 획득한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의 여자 배구를 시작으로,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는 여자 농구가 은메달을 수상했으며,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는 여자 핸드볼 대표팀이 구기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특히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팀은 무려 11회 연속으로 올림픽에 출전한 기록을 갖고 있으며, 햇수만 보면 40년 넘게 빠짐없이 진출해 활약했다. 그중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참가하였던 여자 핸드볼 선수들의 분투를 바탕으로 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란 영화는 지금도 <우생순>이란 이름으로 회자된다. 당시 한국대표팀은 세계 최강의 덴마크를 맞아 2차 연장까지 가는 숨막히는 접전 끝에 34-34로 승부를 가리지 못한 뒤 승부던지기(축구의 승부차기)에서 2-4로 석패했다.

영화 
리얼
이와 같은 성적은 남자 국가대표팀이 접근도 하기 힘든 내용이다. 그래서 한국사에 좀 밝은신 분들은 태릉에 묻힌 조선 중종의 비(妃) 문정왕후의 기운 때문이 아닌가 하는 나름대로의 견해를 내놓기도 했다. 당시 국가대표팀은 서울 태릉 옆에 위치한 태릉선수촌에서 훈련을 했기에 기(氣) 센 여인이었던 문정왕후의 힘이 여자 선수들에게 빙의된 것은 아닌가 하는 진단을 내린 것이었다. (태릉선수촌은 2017년 9월 진천선수촌으로 이사하며 1966년 이래 50년의 역사를 마감했다)

어정쩡한 형태로 남은 태릉선수촌
언급한 대로 문정왕후는 조선 제11대 임금 중종의 부인이며, 13대 임금 명종의 어머니이다. 사실 그녀는 명종의 모후로서 대왕대비가 되기는 힘든 몸이었으나 1545년 12대 임금 인종이 즉위 8개월 만에 급서하는 바람에 운 좋게 그녀의 어린 아들이 국왕(명종)이 됐다. 그리고 그 아들을 대신해 약 10년간(1545~1553년) 수렴청정을 하며 여황제처럼 군림했다. 저 중국 당나라의 측천무후처럼.
그녀가 묻힌 태릉(泰陵)도 측천무후의 건릉(乾陵)처럼 크고 웅장하다. 그래서 태릉이다. 문정왕후 홀로 묻혀 있는 단릉(單陵)이면서도 거대한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왜 홀로 묻히게 되었을까. 중종의 제2계비였던 문정왕후는 제1계비인 장경왕후를 밀어내고 남편 곁에 묻히고자 했다. 그래서 지금의 서삼릉 희릉(장경왕후의 무덤)에 있던 중종의 능을 풍수가 불길하다는 이유를 들어 지금의 삼성동 선릉으로 옮겼다.
이후 자신도 죽으면 그곳으로 가 남편과 함께 묻히고자 했으나 당시 선릉 일대는 저지대의 상습 침수지역으로 비만 오면 습지가 되었던 바, 아들 명종의 반대로 인해 모셔지지 못했다. 그래서 마련한 곳이 서울 동쪽의 태릉인데, 무덤의 크기도 대단했지만 그 부지 또한 어마어마해 훗날 태릉과 강릉(명종의 무덤) 사이에 174,512㎡(약 52,800평)의 태릉선수촌이 마련될 수 있었다.

태릉 전경 
태릉의 장명등 / 아래 건원릉 것에 비해 상륜부가 돋보이는 장대한 석등이다. 
건원릉 장명등 
337cm의 거대한 태릉 무석인 (빌려온 사진임) 
건원릉 무석인은 222cm에 불과하다. 
그리고 태릉 무석인의 얼굴은 매우 서구적이라는 특징도 지닌다. 태릉 조선왕릉전시관 
문정왕후비
지금 한창 시련을 겪고 있는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을 문정왕후와 비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는 여왕처럼 군림하기는커녕 오히려 이재명 정부의 횡포에 시달리고 있는 모양새이니 당장 엊그제만 해도 국회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 법안 소위에서 방통위 조직 개편안이 통과되며 다시 위기를 맞았다. 그러자 이진숙 위원장은 곧 기자 간담회를 갖고 이 법안에 포함된 기존 방통위원장 임기 종료 부칙에 대해 "자신을 찍어내기 위한 법안"이라고 반발했다.
우리가 잘 아는 얼굴들이 포진된 국회 방통위 법안 소위 / 야당 의원들의 불참한 가운데 찍어내기 법안이 통과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방통위 조직 개편안은 사실상 이진숙 축출법임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방송통신위원장으로서 임기가 남아 있는 그녀가 여권의 갖은 압력에도 물러나지 않고 버티자 아예 '방송통신위원회 폐지법'(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설치법)을 만들어 위원장을 축출시키고자 한 것이다. 그 법의 목적이 무엇이며 얼마나 어이없는 개정인지를 이진숙 위원장이 곧 기자 간담회에서 밝혔다.
"방미통위법이 통과되면 직원들은 그대로 승계되지만 정무직 위원들만 직을 잃는데, 지금 방통위 정무직은 위원장인 이진숙, 저 하나뿐입니다."

기자간담회에서 성토하는 이진숙 위원장 아울러 "민주당이 거대 정당이 가진 힘을 유독 방통위에 발휘해왔다. 상임위 추천을 하지 않아 이를 2인 체제로 만들었고, 그를 불법 상황이라 하면서도 해결 시도는 하지 않았다"며 "그러고도 방통위 심의·의결을 문제 삼는 건 오른손을 묶어놓고 왜 왼손으로 밥을 먹느냐는 시비와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또 이 위원장은 그간 자신의 사퇴를 압박해 온 최민희 과방위원장의 발언을 직접 겨냥하기도 했다.
그는 "국회 과방위원장(최민희)은 이재명 정부와 의견이 다른데 왜 그 자리에 있느냐고 묻는다"면서 "방통위는 대통령을 위해 봉사하는 기관이 아니다.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기관이다. 특정 진영도, 대통령의 소유물도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정부와 민주당의 압박으로 위원장직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웠다고 주장하고, "저 한 사람을 뽑아내기 위해 민주당의 경찰, 검찰, 공수처 고발, 감사원 감사 요청 등 다수의 저인망식 고소 고발 건이 있었다"며
"(그 탓에) 재난 지역 피해 주민 수신료 면제, 방통법 폐지 후 시행령, 작년 말 끝냈어야 할 방송국 재허가·재승인도 의결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 위원장은 간담회 막바지 '개편 법안에 대한 위헌 소송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는 "통과 되면 법 판단을 받아볼 것"이라며 "자진 사퇴는 부정과의 합작이자 부정에 대한 협력"이기에 스스로는 먼저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을 것임을 명확히 했다.
※ 민주당은 9월 11일 국회 과방위 전체회의에서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설치법을 통과시킬 계획이며, 이후 25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 추석 전까지 속도전으로 방통위 폐지와 이 위원장의 해임을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재차 말하지만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는 이진숙 위원장을 몰아내고 좌파 성향의 새 위원장을 앉히기 위해 만든 사상 유래없는 통갈이 법안이다.

작년 11월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 탄핵심사 1회 변론 참석을 위해 헌법재판소 법정에 앉아 있는 모습 이렇듯 파이팅을 보이는 그를 볼 때마다 나는 '보수의 여전사'를 너머 '마지막 남은 보수의 횃불'을 대하는 느낌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지난 6월 국무회의에서 3대 특검법이 의결돼 공포될 때, 윤석열 내각의 국무위원들은 영혼마저 팔아버린 채 이 3대 악법에 찬성하는 거수기 노릇을 했다. 알려진 대로 3대 특검법은 이재명과 민주당에 반대했던 과거 윤석열 정부의 관료와 여당 정치인, 아울러 직무에 충실했던 군인까지도 쓸어버리려 만든 무시무시한 법안이다.
그런데 그 서슬 퍼런 국무회의에서 오직 이진숙 방통위원장만이 "3대 특검법이 정치보복으로 비칠 수 있다"는 소신 발언을 했다. 그는 국무위원은 아니나 국무회의 배석자로서 남자 새끼들도 못하는 의로움과 의협심을 발휘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쩨쩨한 이재명으로부터 향후 국무회의 참석 불가의 통보를 받아야 했으며, 최민희를 비롯한 여러 좌파 정치인의 간단없는 공격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불의를 행한 투쟁의 불꽃을 태우고 있다. 그 모습이 마치 과거 태릉선수촌에서 고통과 싸우며 비지땀을 흘리던 여전사와도 같으며, 외젠 들라크루아가 프랑스 7월 혁명을 기념하기 위해 그린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La Liberté guidant le peuple /Liberty Leading the People)> 속의 연인을 보는 듯도 하다. 그는 좌파에 압박에 필시 3년 임기를 못채우게 되겠지만 언젠가 별의 순간을 맞을 것이다.

과천 종힙청사 방통위 건물 앞에 걸린 현수막 

건물 입구 양쪽에 걸린 현수막과 끝없이 늘어선 응원 화환 

청사에서부터 지하철 입구까지 길 양쪽으로 늘어선 응원 화환 
"이진숙 위원장님 힘내세요. 나라를 위해 싸워주셔서 감사합니다." / "악의 정권에 굴복하지 말아주세요! " / "이진숙 위원장님, 힘드시지만 임기 끝까지 지켜주세요." '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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