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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에 존재하는 최치원이 말한 화엄십찰
    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5. 10. 25. 21:48

     
    통일로를 타고 북쪽으로 가다 보면 구파발 사거리 은평스카이뷰 자이아파트 부근에서 전에 없던 석불 입상을 보게 된다. 석불은 시원하게 오픈된 보호각 안에 있어 차 안에서도 눈에 확 들어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옛 청담사 터에 있던 고려시대 석불임을 알지 못했다. 오래전 이 석불을 찾기 위해 구파발 검문소 너머 구불구불한 시골 논밭길을 한참 걸었던 기억이 남아 있기 때문이니, 이른바 은평뉴타운 개발이라 불리는 도시계획이 얼마나 산천을 변화시켰는지 알 수 있다.

     

     

    길에서 본 자씨각(석불보호각)
    이렇게 생긴 석불이다.
    안내문 / 정식 명칭이 진관동 석 보살입상인 모양이다.


    그것이 나쁘다는 소리는 아니다. 아니 오히려 잘 정비해 줘 고마우니 예전 석불 옆으로 온통 밭투성이던 곳에 사지(寺址)를 노출시켜 옛 청담사의 흔적을 살려놨는데, 이렇게 변해버린 자리에 서고 보니 그야말로 금석지감이 새롭다. 아울러 덧없이 흘러간 세월이 문득 야속하기도 하니, 과거 이 석불을 일견한 후 버스를 타기 위해  구파발 검문소 버스 정류장 쪽으로 걸어가다 앞에 멎은 웬 택시가 클랙슨을 울려 놀랐던 기억도 떠오른다. 택시 운전자가 같은 동네 살던 어르신이었으니 덕분에 다음 목적지 부근까지 편히 갈 수 있었다. 아마도 그분은 이미 고인이 되었으리라....

     

     

    옛 사지를 발굴해 '진관탑골문화공원'을 만들었다./ 앞에 보이는 것이 3호 건물지이다. 오른쪽으로 자씨각이 보인다.
    2호 건물지 옆에서 덩치 큰 백인들이 파티를 벌이고 있다.


    언급한 이 석불은 청담사에 있던 진관동 석 보살입상으로 고려전기인 10~11세기에 조성된 것이다. 서울지역에서 고려전기의 불상을 만나기는 쉽지 않으니 북한산 승가사 승가대사상과 구기동 마애석가여래좌상이 있을 뿐이다. (구기동 마애석가여래좌상은 승가사 내에 있다. 하지만 승가사의 소유가 아닌 국가 소유라서 승가사 대신 구기동 마애석불로 불린다) 
     
     

    승가사 승가대사상 / 석상 높이 76㎝, 광배 높이 130㎝이며 1989년 보물(제1000호)로 지정되었다.
    구기동 마애석불 / 높이 5.94m의 대불로 1963년 보물(제 215호)로 지정되었다.


    내가 옛 청담사 터를 새삼 주목하는 이유는 2008년 은평뉴타운 개발 과정에서 '淸潭寺'라는 글자가 적힌 명문(銘文) 기와 5점이 발굴되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기와들에서는 '삼각산 청담사 삼보초'(三角山靑潭寺三寶草)와 같은 문구가 확인되었던 바, 이곳이 신라 최치원이 언급한 신라 화엄종 10대 사찰 가운데 하나인 청담사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다.
     
    최치원은 신라 효공왕 8년(904), 법상화상(法藏和尙)이라는 승려에 대해 저술한 <법장화상전>에서 "해동 화엄의 큰 학문 장소가 10군데가 있으니 한주(漢州)의 부아악(負兒山) 청담사(靑潭寺)도 그중 하나다"(海東華嚴大學之所有十山…漢州負兒山靑潭寺也)라고 적었다. 즉 중국 유학에서 돌아와 해동 화엄종을 연 의상대사가 건립한 화엄 10찰 가운데 중 하나가 이곳 진관동 청담사라는 것이다.
     
    그 10개 사찰 중 현존하는 것도, 사라진 것도 있지만 한결같이 명찰(名刹)들이다. 나열하자면 태백산 부석사(浮石寺), 원주 비마라사(毘摩羅寺), 가야산 해인사(海印寺), 비슬산 옥천사(玉泉寺), 금정산 범어사(梵魚寺), 지리산 화엄사(華嚴寺), 팔공산 미리사(美理寺), 계룡산 갑사(甲寺), 웅주 가야협 보원사(普願寺), 삼각산 청담사(靑潭寺)의 10개 사찰이다.
     
     

    최치원이 말한 화엄십찰 / <불교신문> 자료
    영주 부석사 안양루
    서산 보원사지 / <위키백과> 사진

     
    의상은 전국을 돌며 그야말로 절이 들어서야 할만한 곳에 사찰을 건립했다. 그러한 의상의 눈에 부아악(負兒山, 북한산)이 그냥 지나쳐질 리 없었을 터, 응봉(鷹峰, 해발 235m) 아래 청담사를 짓고 화엄종의 중부 지역 종찰로 삼은 것이다. 청담사지에서는 2008년 발굴조사를 통해 모두 6동의 건물지가 조사되었으며, 고려~조선시대에 이르는 각종 기와와 자기류 등이 출토되었다. 이에 청담사는 조선초까지 존재하다 숭유억불책에 따라 폐사된 것으로 보이는데, 서울시에 존재하는 의상대사의 화엄십찰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하겠다. 
     
     

    2008년 발굴조사 때 드러난 건물지
    '삼각산청담(三角山靑潭)'이라고 적혀 있는 기와
    '삼각산 청담사 삼보초(三角山靑潭寺三寶草)' 명문 탁본

     
    진관사 석 보살입상은 높이가 158.5cm이고, 머리높이는 43.5cm로 고려 전기에 많이 나타나는 약 4등신의 신체 비례를 보인다. 발목 아랫부분은 땅에 묻혀 있었으나 지금은 대좌에 함께 드러났으며, 장방형 얼굴에 살짝 볼살이 붙은 중년 여성의 얼굴이라 석굴암 보살상 같은 느낌도 준다. 이 석 보살입상의 특징 중 하나는 머리에 높게 솟은 보계(寶髻)로 정면과 좌우 측면에 장식이 달린 보관을 착용하고 있다. 이러한 불상의 형태는 신라말~고려초에 나타나는 바, 조성시기를 신라·발해시기까지 소급해 볼 수도 있다.  

     

     

    진관사 석 보살입상의 전신

     

    진관사 석 보살입상의 가장 큰 특징은 수인(手印)으로, 오른손은 가슴까지 들어 올려 엄지와 검지를 맞댄 상품중생인을 하고 있고, 왼손은 손목을 꺾어 옷자락을 감아쥐고 있는 형태인데, 매우 독특하다. 옷은 양쪽 어깨를 모두 덮은 통견(通肩衣)이며, 옷주름선은 U자형으로서 대체로 도식적이지만 옷 속으로 표현된 양감이 두드러져 마치 그리스 표현 양식을 옮긴 미려한 간다라불을 보는 것 같다. 

     

     

    상반신과 수인
    측면

     
    과거에는 절 마당에 있다 석 보살입상 옆으로 옮겨진 '진관동 석 아미타불좌상'은 현재 상반신과 오른쪽 무릎 부분이 파손된 채 하반신과 손, 상반신 일부만 남아 있지만 수작(秀作)이다. 수인은 아미타부처의 아미타정인(阿彌陀定印)을 짓고 있어 아미타불임을 알 수 있다. 아미타정인은 금강정경계(金剛頂經系) 의궤(儀軌)에 나오는 밀교계 도상(圖像)으로 신라 하대에 전래되었으며, 현전하는 아미타정인 불상들 가운데 서울·경기 지역에서 발견된 유일한 아미타정인 불상이고, 가장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점 등에서 미술사적 가치가 크다고 평가받는다. 
     

     

     

    진관동 석 아미타불좌상
    풍기 비로사 석조아미타불좌상의 수인 (빌려온 사진)
    진관동 석 아미타불좌상이 놓인 대좌는 청담사지 출토 석탑 부재이다. 놀랍게도 대리석이다.
    석탑이 놓였던 곳
    석탑 부재에 관한 안내문
    2011년 모습으로, 이 동네가 탑동으로 불리게 된 것이 이 탑으로부터 기인했다. 신기하게도 그 위에 놓인 아미타불좌상이 사라지지 않았다. / 국가유산포털
    청담사탑 부재는 같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신륵사 다층석탑 기단부의 위 아랫돌을 연상케 한다. 조각 수법으로 보아 신륵사 탑보다 훨씬 아름다운 탑이 존재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입구의 3호 건물지
    3호 건물지 안내문 / '삼각산 청담사 삼보초(三角山靑潭寺三寶草)' 명문기와가 출토된 곳이다.
    1호 건물지
    회랑으로 여겨지는 1호 건물지는 출토유물로 보아 고려시대부터 조선전기까지 쓰인 것으로 짐작된다.
    1호 건물지 안내문
    중심 건물로 여겨지는 2호 건물지
    2호 건물지 안내문
    석불보호각 '자씨각' 현판 / 예전부터 전해진 현판을 새로 전각한 것으로 '자씨'는 미륵을 뜻한다. 조선후기의 사람들은 이 석불을 미륵으로 여겼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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