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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칠궁 & 다시 대통령실이 된 청와대
    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5. 11. 15. 20:48

     
    내 생애 마지막 관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칠궁(七宮)에 갔다. 칠궁은 2022년 5월 25일 청와대 관람 후 들른 바 있다. 이후 한 번 더 가 봐야지 하다가 차일피일하면서 못 갔는데, 정부가 다음 달 8일부터 청와대 이전을 시작하겠다고 하니 마음이 바빠졌다. 알다시피 청와대는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가 용산에 살림을 차리며 일반 시민에 전면 개방되었고 바로 곁에 위치한 칠궁 또한 묻어서 개방됐다. 

     

    청와대 뒷길에 본 칠궁 / 과거에는 관람이 불가능했던 곳이다.

     
    칠궁은 조선의 왕(추존 왕 포함)들을 낳은 후궁 출신 어머니 7명의 신위를 모신 곳이다. 알다시피 왕과 왕비는 종묘에 신위가 모셔진다. 하지만 그들 7명은 왕의 어머니이기는 하지만 왕비가 아니었던 관계로 신위가 종묘에 모셔지지 못하고 궁정동에 따로 마련된 칠궁에 모셔지게 된 것이다. 칠궁은 1724년 영조가 후궁 출신인 모친 숙빈 최씨의 신주를 모신 사당 육상궁을 건립한 것이 시작으로, 이후 여기저기 존재하던 다른 후궁들의 사당이 옮겨와 합사됐다.  
     
    칠궁에는 1908년(순종 2년)까지 연호궁, 저경궁, 대빈궁, 선희궁, 경우궁이 옮겨왔고 1929년 덕안궁이 들어오면서 7명의 신위가 봉안된 칠궁이 되었다. 칠궁은 6개의 묘(廟)로 이루어져 있으며 건물을 둘러싼 정원에는 재실, 냉천정(冷泉亭), 초정(草亭), 연못 등이 들어서 있다. 이곳은 이승만 박정희 시절 및 5공 시절에는 일반인은 접근도 할 수 없는 그야말로 비밀의 정원이었다. 경무대 및 청와대와 담벼락 하나를 사이에 둔 까닭이다.  
     

     

    칠궁 재실
    칠궁 전경 / 저경궁 · 대빈궁 · 경우궁의 모습이다.

     
    칠궁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육상궁 (毓祥宮) : 숙종의 후궁이며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의 사당.
    저경궁 (儲慶宮) : 선조의 후궁이며 추존왕 원종(인조의 아버지 정원군)의 생모인 인빈 김씨의 사당.
    대빈궁 (大嬪宮) : 숙종의 후궁이며 경종의 생모인 희빈 장씨(장희빈)의 사당. 
     
     

    대빈궁 / 장희빈의 사당이다. 희빈 장씨는 왕비에도 오른 적이 있었던 바, 칠궁에서 가장 격이 높다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궁궐 기둥처럼 유일한 원기둥이다.
    대빈궁이 있던 곳 / 대빈궁이 옮겨간 곳에 세워진 기상청이 1998년까지 있었다. 지금은 국립기상박물관이 됐다.

     
    연호궁 (延祜宮) : 영조의 후궁이며 추존왕 진종(효장세자)의 생모인 정빈 이씨의 사당. 영조를 낳은 숙빈 최씨의 신위가 함께 모셔져 있다. 육상궁의 현판이 안에 붙어 있으며, 이에 칠궁의 실제 사당은 6개가 된다. 
    선희궁 (宣禧宮) : 영조의 후궁이며 추존왕 장조(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 이씨의 사당.
    경우궁 (景祐宮) : 정조의 후궁이며 순조의 생모인 수빈 박씨의 사당. 
    덕안궁 (德安宮) : 고종의 후궁이며 영친왕의 생모인 순헌황귀비의 사당.
     
     

    연호궁 / 연호궁은 숙빈 최씨의 사당으로 효장세자의 어머니 정빈 이씨의 육상궁과 합사돼 있다.

     
    이 가운데 저경궁, 연호궁, 선희궁은 정식 왕이 아닌 추존왕인 원종, 진종, 장조의 모친 사당이므로 조금 격이 떨어진다 할 수 있다. 가장 격이 높은 곳은 아무래도 왕비까지 올랐다가 격하된 희빈 장씨의 대빈궁이다. 반대로 덕안궁은 가장 격이 떨어진다. 영친왕이 언제 조선의 왕이던 적이 있던가? 아무튼 이 모든 사당이 처음에는 제 각각의 장소에 위치했었으니 <정조실록>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볼 수 있다.
     
    육상궁을 참배하고 봉안각을 봉심(奉審)하였으며 선희궁과 연호궁의 소묘에 술을 올리는 예(禮)를 거행하고 장보각을 살펴보았다. 임금이 근신들과 함께 세심대(洗心臺)에 올라 잠시 쉬면서 술과 음식을 내렸다. 이어 좌우의 신하들에게 이르기를, "임오년(1762년)에 (사도세자의) 사당을 지을 땅을 결정할 때 처음에는 이 누각 아래로 하려고 의논하였으나 동쪽 기슭에 옮겨지었으니 지금의 경모궁(景慕宮)이 그것이다. 그러나 궁터가 좋기로는 도리어 이곳보다 나으니 하늘이 하신 일이다. 내가 선희궁을 배알할 때마다 늘 이 누대에 오르는데, 이는 아버지를 여읜 나의 애통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다." (<정조실록> 정조 15년 3월 기사)
     
    즉 정조는 1791년 3월에 각각의 장소에 떨어져 있는 역대 왕을 낳은 후궁의 사당을 참배하고, 제 아버지 사도세자의 사당을 선희궁 근처에 있는 세심대 아래로 정하려 했다가 주위 신하들의 권유에 따라 현 서울대학병원 오른쪽에 있는 경모궁 자리로 옮겨 지었다는 일화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세심대가 어느 곳인지 특정할 수 없지만, 선희궁을 배알할 때마다 항상 이 누대에 올랐다고 하니 아마도 선희궁 옛 터가 자리한 신교동 서울 농학교(종로구 필운대로 103) 서북쪽 비탈이 세심대이리라. 


     

    서울 농학교 내에 복원된 선희궁
    일제강점기의 선희궁 사진 (∇) / 조선총독부에서 그 자리에 조선 고아의 양육과 시각장애인의 교육 등을 목적으로 하는 제생원 양육부를 설치했다. 서울 농학교의 전신인 셈이다.

     
    차제에 말하고 싶은 것은 왔다리 갔다리 하고 있는 대통령 집무처다. 다 알다시피 이재명은 더불어민주당 후보 시절 '대통령실 세종 이전' 이슈를 선점하며 세종시 지역민과 충청권의 호응을 받았다. 그들은 모두 대통령실이 세종시로 이전할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기대를 배반하고 예전의 궁정동 청와대로 들어가겠다고 하고 있는 것인데, 이에 세종시와 충청권의 반발이 있자 '청와대로 영구히 옮기는 것은 아니고 언젠가는 갈 것'이라고 한다. 어느 세월에~. 천년 만년 대통령을 해 먹으려는 속셈인가? 
     
    대통령실의 청와대 복귀는 지난 6월 결정났다. 그러면서 관련 예비비는 총 259억원이 책정되었는데, 대통령실 대변인은 당시 이 비용이 (윤석열 대통령의) 용산 이전 관련 예비비 378억원의 69% 수준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래서 어이가 없다. 69%이고 백%이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왜 쓸데없이 국민세금을 낭비하는가 하는 것이다. 어이가 없는 것은 대통령실은 옮기되 관저는 쓰지 않겠다고 하는 점이다. 
     
    왜 그런가 했더니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풍수상 터가 안좋다고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좌파인 유홍준은 과거 문재인 후보의 대통령실 이전 공약을 뒷받침하는 '대통령 광화문 시대 자문위원'을 맡으며 "청와대는 반드시 이전해야 한다"며 목청을 높인 바 있다. 그는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고 난 대통령실 이전 공약이 백지화되고 한 후에도 "청와대는 반드시 이전해야 하나 현실적으로 어려운 만큼 장기적 과제로 남기겠다"고 했고, 그 이유로써 든 것이 "풍수상 불길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2019년 1월 3일)
     
    이에 모 신문기자가 풍수상 불길하다는 근거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그는 "수많은 풍수상의 근거"라고 답하며 "풍수상 근거가 있다면 있는 거지요"라고 덧붙였다. 이후 그가 말한 "수많은 풍수상의 근거"를 들어볼 기회가 없었는데, 이재명 대통령실의 청와대 복귀가 결정나자 민망했는지 지난달 22일 국정감사장에서 몇 마디 했다. 자신이 "집무실은 청와대로 돌아가도 관저는 삼청동 안가를 이용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대통령실에) 건의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관저를 쓰지 않는 것이 유홍준의 뜻이라는 것이고, 결국은 풍수상 나쁘다는 것이 이유이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10월 22일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답변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동안 내가 궁금해온 '불길한 이유'를 말했다. 그는 "관저는 본래 거기(현재 위치)에 있을 자리가 아니다"라며 "굉장히 음습한 자리가 돼 가지고 풍수의 문제뿐 아니라 건축가들 입장에서도 생활공간의 위치로 부적격하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만날 하던 말에 건축가들 입장이 덧붙여진 것이다. 그 건축가는 과거 같은 직장인 계동 '공간' 사옥에 근무하던 승효상으로, 둘이 함께 가 직접 관저를 살펴보고, '우물이 있던 자리라 습한 데다 공기 순환도 안 되고 방탄유리로 만들어져 먹고 자는 생활 공간으론 문제가 너무도 많은 집'으로 진단내렸다고 했다.
     
    참으로 궁색하다. 관저를 당신들만 가보았는가? 나도 가 보고 수많은 사람들이 가 보았지만, 누가 그곳을 음습한 곳이라고 여겼겠는가? 높고 넓은 위치에 있는 장소가 공기 순환이 안 된다는 것도 이해가 어렵다. '기생충'에 나오는 반지하 집도 아니고.... 방탄유리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풍수지리와 전혀 다른 문제이다. 굳이 따지자면 오히려 방탄유리는 이재명 대통령이 선호하는 물질이 아닌가?  방탄유리가 싫으면 안 하면 그만인 것이고.  아무튼 덕분에 관저 만드는 데 또 돈이 들어가게 생겼다.
     
    결과적으로 풍수를 믿는 스타 작가 유홍준의 세 치 혀에 국정이 움직이고 혈세가 낭비되는 지경이 됐다. 하지만 유홍준 관장을 탓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나는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국민 세금을 무서워 않고 써 제끼는 것을 보고 아마도 자신의 어릴 적 가난에 대한 보상인가 여겼다. 하지만 그 보상을 제 돈이 아닌 법카나 세금으로 채우려는 것은 옳지 않다. 이번에도 새 집에 살고 싶은 욕망에, 그리고 대통령실에서 밝힌 그대로 '내란 소굴' '내란 중심지'였던 곳을 쓰기 싫은 마음에 청와대 이전을 결정한 듯한데, 거기에 유홍준의 풍수설이 한껏 이용당한 느낌이다.   


     

    청와대 관저 외관 / 관저는 이 축대 위에 위치한다. 그런데 우물이 하필 이 높은 자리에 있었다고? 아래 경무대 관저와도 멀리 떨어진 곳에?
    본래 청와대 관저가 있던 곳 / 가운데 돌 후령통 있는 곳이 옛 청와대의 중심 자리다. 후령통은 관저 현관 지붕 위에 있었다.
    옛 청와대 / 조선총독 관저로 이승만 대통령 때 경무대로 불리던 곳을 1960년 윤보선 대통령이 청와대로 개명했다. 지금의 관저와는 한참 떨어져 있다.
    관람객들로 붐비는 대통령 관저 / 높은 곳에 위치하며 사방이 확 트여 바람이 잘 통한다.
    관저 내의 별채 청안당 / 보다시피 햇빛이 잘들어 전혀 읍습하지 않다.
    일제강점기에 찍은 청와대 / 청와대 터가 본래 경복궁의 후원이었음이 밝혀지며 과거 문재인 시절 청와대 이전 핑계로 이용됐던 조선청독부 관저 운운하던 소리는 쏙 들어갔다. / 왼쪽 건물이 융문당(隆文堂)이고 오른쪽이 융무당(隆武堂)으로 지금은 둘 다 전남 영광 원불교 시설 내로 옮겨겼다.
    이곳 세종시 대통령실 예정지는 또 어떻게 될까? / 오른쪽 위 숲 속에 총리공관이 보인다. 세종시 제공 사진.
    청와대 앞 삼거리
    청와대는 이미 폐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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