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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촌의 숨겨진 역사 VI ㅡ 노천명과 이상범의 집
    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5. 12. 6. 17:45

     

    광해군이 조영한 서촌 인경궁에 대해서는 앞서 '서촌의 잊힌 명소 필운대와 백운정'에서 자세히 설명한 바 있다. 인경궁은 그렇듯 잊힌 궁궐이 되었지만 그 자취가 동네 이름으로 남아 있으니 누상동과 누하동이 그것이다. 인경궁에는 경회루와 같은 거대한 누각이 있었던 바, 그 누각의 윗동네가 누상동이고 그 아래가 누하동이라는 이름으로 남았다. 

     

    예전 누하동이란 동네에 살았던 시인 노천명의 집을 찾은 적이 있다. 고향이 황해도 장연군인 노천명은 7살 때 이곳 서촌으로 왔고, (이후 창신동으로 이사 가기도 했으나) 해방 후 이곳에서 살다가 죽음을 맞이했다. 미혼으로 자식 없이 죽었으므로 흔적을 따로 보전할 사람이 없었던 듯, 그가 살던 누하동 집은 결국 사라지고 말았다. 비록 친일작가라 해도 개인적으로 흔적을 남기고 싶었으나 조금 늦었으니, 누하동 225-1 번지는 한옥 게스트하우스로 리노베이션되어 있었다. 노천명은 이제 자신의 소원대로 이름 없는 여인이 된 듯하다.   

     

     

    개조되기 전의 누하동 225-1 번지 집
    노천명이 살던 집은 이화한옥이라는 이름의 게스트하우스가 됐다. / 벽돌 담 옆 나무 창살 한옥이 노천명이 살던 누하동 225-1 번지 집이다.
    아쉬운 마음에 바로 옆 집을 찍었다.
    정면에서 찍은 사진

     

    친일작가의 집을 왜 기념하느냐고 따지시는 분이 있다면 지금껏 잘 보존된 누하동 178번지 청전 이상범 화백의 집을 찾아가 보라고 말하고 싶다. 일찍이 유홍준이 "청전이 없었다면 20세기 한국화는 얼마나 허전했을까" 하며 극찬한 이상범이지만 노천명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일본 군국주의의 전시문화정책에 동조해 친일행위를 했던 바,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그의 이름이 등재되었다.

     

    하지만 누하동 그의 집은 2005년 4월 15일 등록문화재 제171호로 지정되었다. 그 무렵 친일파 홍난파의 홍파동 가옥 역시 등록문화재 제90호로 지정되어 현재는 홍난파 기념관으로 보존되고 있다. 홍난파는 일본 제국주의를 찬양하는 군가나 노래를 다수 작곡해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포함됐으며,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종로구 홍파동 홍난파의 집

     

    이렇게 볼 때 노천명은 좀 억울한 면이 있다. 매양 친일 척결을 외치지만 친일에 대한 개념조차 일관성 없이 뒤죽박죽인 느낌이다. 다른 점에서 억울한 사람이 누하동 176번지에 살았다. 청전 이상범의 집 바로 옆집에 살던 천경자 화백이다. 천경자는 이 집에서 1962년부터 1970년까지 9년간 살다 서교동으로 이사 갔는데 이상범을 좇아 누하동으로 왔다고 했다. 가옥은 2018년 경 헐려 지금은 자취도 없다.

     

    집이 헐려서 억울하다는 얘기가 아니라 자신이 그린 적이 없는 그림이 진품으로 버젓히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 걸렸기에 하는 말이다. 하지만 천경자 화백은 2015년 사망 시까지 그것이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된 뒤 어느 날,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가 출현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시해범인 전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집에서 압수한 물품 중의 하나였는데, 그 가치를 인정받아 국립현대미술관에 걸렸다. 

     

    천경자 화백은 펄쩍 뛰었다. 그는 머리카락의 붓질의 형태, 어깨 위 나비 형상, 마리 위의 흰옷 등이 자신의 필치가 아니라고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화랑협회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는 진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천경자 화백은 자기 자식을 못 알아보는 부모가 있느냐는 말과 함께 미술계를 떠났고 다시는 붓을 잡지 않았다. 현재 '미인도'는 유족의 항의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내려졌고 도록에서도 제외되었지만 위작이라는 판정은 내려지지 않았다. 미스터리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천경자의 집은 왼쪽 전봇대 옆에 있었으나 지금은 흔적도 없다. 정면으로 보이는 대문이 이상범 가옥으로 2025년 12월 10일까지 휴관이라는 안내문이 걸려 있다.
    이상범 가옥 내부 전경 / 서울시 사진
    이상범 가옥 꽃담 / 서울시 사진
    이상범 가옥 부감 / 가운데 □자 집이다. 뒤로 배화여대가 보인다. 국가유산청 사진
    청전 이상범의 '모운'(暮韻) / 1938년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할 때 출품한 그림으로 해질녘의 산수를 표현했다.
    이상범이 1943년 그린 '일장기 아래의 나팔수'
    위작 논란의 '미인도'(왼쪽)와 천경자 작 '장미의 여인'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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