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륵신앙 & 새 세상을 꿈꾸며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5. 12. 4. 06:07
미륵신앙은 미륵부처나 미륵보살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불교신앙이다. 미륵은 석가모니의 제자로서 미래에 성불하여 석가모니가 열반에 든 뒤 56억7000만 년이 지난 사바세계에 나타나 중생을 구제한다는 부처님이다. 미륵은 석가모니 부처님으로 미래의 최고불이 될 것이라는 수기를 받은 뒤 도솔천이 있는 용화세계에서 설법하고 있는데, 이 미륵이 보다 빨리 지상에 강림하기를 염원하며 수행하는 신앙이 곧 미륵신앙이다.
과거 히트를 쳤던 <태조 왕건>이라는 드라마의 영향인지 미륵이라 하면 후삼국 태봉국의 왕 궁예가 떠오른다. 견훤은 신라의 남은 정예병들을 이끌고 무진주(광주) 임지에 부임했고 그 장병들을 기반으로써 후백제라는 나라를 건국할 수 있었지만, 궁예는 사실 무명의 승려로서 내세울 것이 없던 개털이었다. 하지만 세달사와 칠장사 등에서의 승려 생활을 거치며 터득한 노하우로 어필할 수 있었던 바, 그것이 바로 미륵하생(彌勒下生)신앙이다.
궁예는 자신이 강림한 미륵이라고 구라를 쳤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당시의 혼란하고 피폐해진 당시의 시대상과 맞물리며 신드롬을 일으켰다. 그의 구라가 통할 수 있었던 것은 당대의 사화가 그만큼 혼란했기도 했지만 삼국 초기부터 면면히 이어진 미륵 신앙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370년 고구려에 불교를 전해준 전진(前秦)의 황제 부견은 미륵불을 구하기 위해 서역에 사람을 보낸 전력이 있기도 했던 바, 미륵신앙은 고구려 불교 전래 때부터 존재했음을 짐작할 수 있겠다.
백제에서도 미륵신앙은 크게 성행하였으니 저 익산 미륵사가 동양최대의 미륵 도량이었다는 것으로써 백제 불교가 갈음된다. 후백제말 견훤이 아들 신검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감금된 곳도 금산사 미륵전이었다. 신라는 더 말할 것도 없으니 572년 이차돈의 순교로써 최초로 지어진 사찰 흥륜사는 미륵불을 주불로 모셨으며, 지금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최대의 관람객을 불러 모으는 반가사유상 역시 용화세계에서 생각에 잠긴 미륵불을 신라 장인들이 금동상으로 표현한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의 두 미륵불 / 빅 히트를 쳤지만 사실 이 같은 구도는 불교 교리상 실현되기 어려운 구도다. 미륵불 두 분이 동시에 현현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뿌리 깊은 미륵신앙 때문인지 민간에 전래되는 미륵불에 얽힌 설화도 상당하며, 그와 같은 미륵불은 제주도에서부터 산간 오지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발견된다. 제주의 미륵불상은 따로 복신미륵(福神彌勒)이라 불려 기복신앙의 대상임을 그대로 드러내는데 자복신, 자복미륵, 큰어른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제주항 건입포구 부근 옛 만수사 자리에 있는 복신미륵 동자복(東資福)과 제주시 용담1동 용화사 내 있는 복신미륵 서자복(西資福)이 대표적이다.

동자복 미륵 / 286cm이며 고려 후기의 것으로 짐작된다. 
동자복 미륵 부근의 건입포구 
서자복 미륵 / 273cm 복신미륵의 상반신이다. 필시 바다 일에 관련된 기복(祈福) 대상으로 세워졌을 것이다. 
서자복 미륵 부근의 용연 입구 바다 
용연 최근에 만난 미륵불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부처님은 경기도 안성 매산리사지 미륵불이다. 동네의 이름은 미륵당 마을로서, 마을 안에 있는 거대한 미륵을 모신 당우에서 유래되었다. 당우 안에는 경기도 유형문화재인 5.6m의 큰 석불이 모셔져 있다. 이 석상은 매산리 석불입상으로 불리고 있으나 보관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아 미륵불임에 분명하다. 현재 이곳에 있던 절터의 흔적은 깨끗이 사라졌지만 석불만은 옛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길고 그윽한 눈매가 마치 살아 있는 사람을 보는 듯하다. 시대는 고려 때의 것이다.
근방의 고려시대 유명 석불로는 고려 태조 때 만들어진 논산 개태사지 석조여래삼존상과 광종 때 만들어진 논산 은진미륵(관촉사 석조보살입상)이 있으나, 앞서도 밝힌 사적인 견해를 다시 비추자면, 개태사지 석불은 맹하고, 은진미륵은 퀭하다. 따라서 생기를 느끼기 어려운 반면, 미륵당 석불은 그 길고 그윽한 눈매가 마치 살아 있는 사람을 보는 듯하다. 그래서 그 앞에 서면 왠지 신비감이 느껴진다.

매산리 석불입상의 상체 부분 
보호각 안의 매산리 석불입상 과천시 갈현동 정부청사 부근 보광사에서 만난 고려시대 미륵불은 대단히 토속적이다. 이 미륵불은 원래 이곳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시흥 문원리 폐사지에서 옮겨온 것인데, 마모는 심하지만 형체는 온전한 편으로서 가슴의 Y자형 옷깃과 연꽃봉오리를 잡고 있는 왼손 및 그 왼손을 받치고 있는 오른손을 살필 수 있다. 고려시대 경기 지방에서는 이와 같은 미륵불이 많이 만들어진 듯하니, 따로 맥(脈)이라 할 것까지는 없겠지만 서울 강서구 방화동 약사사 및 미타사 석불입상과 조각 형태가 흡사하다.

보광사 미륵불의 전면 
우측면 / 정식 명칭은 문원리사지 석조보살입상이며 높이는 1.7m이다. 미륵불을 모신 약사사와 미타사가 있는 강서구 개화산은 1740년(영조 16)대 겸재 정선이 양천현령(陽川縣令)으로 재직하며 두 점의 그림을 남겼는데 모두 산세가 웅장하다. 하지만 과장이 좀 담겼으니 실은 해발 128미터의 야트막한 산이다. 그림의 화제인 개화사는 지금은 약사사로 바뀌었고 사세(寺勢)도 그림 속만 못하다. 본래 개화사 마당에 반쯤 묻혀 있던 석불입상은 지금은 대웅전에 모셔졌는데, 갓모양의 지붕돌에 두 손에 꽃나무를 들고 있어 미륵불임을 알 수 있다.

<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과 <양천팔경첩(陽川八景帖)> 속의 '개화사' 
약사사 삼층석탑 / 높이 4m로 13세기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39호. 
대웅전 내의 약사사 석불입상 
약사사 석불입상 / 높이 3.3m이며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40호로 지정되었다. 
약사사 안내문 
부근의 개화산 봉수대 
개화산 전망대에서 본 풍경 / 행주대교, 행주산성, 북한산이 보인다. 
'개화사'를 비롯해 겸재 정선이 그린 부근의 산수화를 안내문에 담았다.
미타사 역시 개화산에 있었으나 한국전쟁 당시 개화산 전투가 벌어지며 소실되었다. 그 절 터에 조선시대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미륵불이 김포평야를 굽어보고 있다. 본래는 이보다 위쪽에 있었으나 개화산 전투에서 산화한 장병들의 위령비와 호국공원이 조성되며 아래쪽으로 옮겨졌다. 위령비는 1950년 남침한 북한군이 맞서 싸우다 김포와 개화산 전투에서 산화한 육군 제1사단 1100여 명의 장병들 및 김포지구 예하 사령부 소속 무명용사들의 충혼을 기리기 위해 1994년 조성됐다.
미타사 불상군 
미타사 석불입상 
미타사 석불입상의 좌측면 / 높이 320cm이며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49호로 지정되었다. 
미타사 석불입상 안내문 
왼쪽 바위 위에 새로운 미륵좌상이 세워졌다. 
호국충혼 위령비 
개화산 호국공원 안내문 이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자는 어제, 그와 같은 남침을 자행한 북한에게 대해 "대북전단에 대해 사과하고 싶으나 종북몰이가 걱정이다"라는 헛소리를 했다. 그는 또 '북한에 억류된 약 10명의 한국 국민'에 관한 외신 기자의 질문에 "처음 듣는 이야기"라고 했다. 또 그전에는 "요즘 세상에 인터넷 뒤지면 다 나오는데, 대북 방송 쓸데없이 왜 하느냐"고도 했다. 북한 주민은 인터넷을 못 쓴다는 상식조차 없는 것인지, 아니면 알고도 딴 척하는 것인지....
그는 또 "싸울 필요가 없는 평화 체제를 확고하게 구축하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별로 안 좋아하는, 돈 드는 합동군사훈련을 안 해도 되지 않냐"고도 했는데, 옳고 그름을 떠나 용어 사용부터 바로 했으면 한다. 합동군사훈련은 문자 그대로 육·해·공군 등이 합동으로 하는 훈련이고, 한·미 간의 훈련은 연합훈련(ROK-US combined exercises)이라 부른다. 이러니 '훈련 때의 땀 한방울이 실전에서의 피 한 방울'이라는 소리 또한 알 턱이 없을 듯하다.

어제 12.3계엄 1주년을 맞아 
국회 앞에 모인 시민들은 
이런 무식한 대통령이 물러나고 
새 시대가 도래하길 간절히 원했다. 
지하철 내에 모인 사람들도 물론이다. / 이재명은 좌파 시민들과 함께 행진하겠다고 해 국회 경비실 앞에 MBC와 JTBC 방송 부스가 설치되기도 했으나 경호 문제로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행진했으면 재미 있는 일이 벌어질 뻔했는데.... '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모산 불국사와 유창석 변호사 실종사건 (3) 2025.12.08 서촌의 숨겨진 역사 VI ㅡ 노천명과 이상범의 집 (7) 2025.12.06 동서 분당의 주역 김효원의 반전 매력 (2) 2025.12.01 서촌의 숨겨진 역사 V ㅡ 연산군과 종교교회 (3) 2025.11.25 서촌의 숨겨진 역사 IV ㅡ 안평대군의 비해당 (6) 2025.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