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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의 숨겨진 역사 III ㅡ 체부동교회와 금오재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5. 11. 20. 20:45
서울 종로구 체부동은 조선시대 체찰사부(體察使府)라는 관청을 설치했던 데서 유래되었다. 따라서 체부동은 서촌의 심장부라고도 할 만한데, 조선왕조의 멸망과 더불어 급 침체되었다가 지금은 옛 낡은 한옥들이 카페, 음식점, 주점, 갤러리, 게스트하우스 등으로 탈바꿈하며 사시사철 탐방객들이 몰리는 핫플로 변모해 가고 있다. 어릴 적부터 근방을 지날 일이 많았던 나는 이와 같은 변화가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체찰사부의 체찰사는 외적이 침입하거나 내란이 일어나는 등의 비상시에 임명되어 군대를 거느려 지휘하던 군인으로 요즘으로 치면 계엄사령관쯤 되는 사람이었다. 또 이곳에는 외금위영(外禁衛營)이라고 하는 도성 수호의 임무를 맡은 부대가 있었던 바, 과거 이곳에 있었던 금청교(禁淸橋=禁橋)는 금위영에서 유래되었다. 지금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에서 건너편 먹자골목 입구에 걸쳐 있던 금청교는 1928년 백운동천 복개 공사를 하며 사라졌다.

1928년 철거되는 금청교 
과거의 금청교는 이러했을 듯. / 사진은 창경궁 옥천교로, 금청교가 사라지며 옥천교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가 됐다. 
금위영을 뜻하는 금영(禁營) 명 기와 / 한양도성박물관
하지만 체부동은 양반의 마을이 아니라 중간 계급 정도의 군인들과 장흥고, 사온서, 의영고, 내자시 등에 물품을 납품하던 상인들이 모여 살던 중인 마을이었다. 그리하여 구한말에는 선교사들이 그들 중인을 타깃으로 한 개신교 교회를 하나쯤 세웠을 법하나 자취나 기록으로서 전하는 것은 없다. 일대의 가장 오래된 교회는 1924년 6월 30일 시작된 체부동성결교회로 무교정교회(현 중앙성결교회) 누하동 지교회로서 출발했다.
* 장흥고(長興庫) : 조선 시대, 궁중에서 쓰는 돗자리, 종이, 유지 등을 조달하거나 관리하던 관청. 경복궁역 3번 출구 앞에 장흥고 터 표석이 있었으나 원래 위치대로 바로잡아 서울지방경찰청 건물 앞으로 이전됐다.
* 사온서(司醞署) : 조선시대 궁중에서 쓸 술과 감주의 공급을 맡아보는 관아를 이르던 말.
* 의영고(義盈庫) : 조선 시대, 호조에 속한 기관으로, 기름, 꿀, 후추, 채소 등의 관리를 맡아보던 관청.
* 내자시(內資寺) : 조선 시대, 대궐에서 쓰는 쌀·채소·과일 등의 생필품 공급 및 직조, 연회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아.

정부종합청사 뒷길의 사온서 터 표석 
의영고 터 표석 / 뒤로 정부종합청사가 보인다. 
내자시 터 표석 / 내자동이 여기서 유래됐다. 뒤로 세종마을음식문화거리 입구가 보인다.
하지만 당시 예배당 건립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한 중인(中人) 가정집에서 창립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시작했다. 이후 기도실의 명목으로 현재의 자리에 작은 초가집을 매입하여 사용하다가 1931년 교인들의 성금으로 지금의 고딕형식 교회를 건립했고, 1943년 일제 탄압으로 교회가 폐쇄된 후에는 빵 공장으로 운영되기도 했다. 해방 후 교회는 다시 원활히 운영되었으나 지역 주민의 감소로 1997년 강서구 등촌동으로 이전했고,(등촌동 영광교회) 체부동교회는 지교회로 지속되다가 지역 개발과 더불어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에 봉착했다.

체부동성결교회 / 2020년 사진이다.
이에 건물을 팔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는데 2014년 뜬금없이 중국인 사업가가 새로 건물을 짓겠다며 거금을 제시했다. 만일 이때 교회건물이 넘어갔다면 일대는 필시 중국인 촌이 되었을 텐데, 다행스럽게도 교회 측에서 거절했고, 대신 서울특별시에서 건물 보존을 위한 서울미래유산 지정과 함께 매입 예산 마련에 나섰다. 그 결과 2018년 '체부동 서울생활문화지원센터'로서 새롭게 탄생하였던 바, 건물 외형은 그대로 지켜지고 다만 첨탑의 십자가만 내려졌다. 건물은 현재 지역민의 행사 장소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

체부동교회 부감 (뉴스앤조이 DB) 
출입구 쪽 
골목길 쪽 
모서리 
두 개의 문이 있던 자리 / 동쪽 벽에는 건축 초기에 만든 2개의 출입문 흔적이 남아 있다. 유교 사회의 영향으로써 남녀 유별한 출입문을 내었다. 오른쪽 문은 남성이, 왼쪽은 여성과 아이들이 이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금 멀리 잡아 보았다. 
체부동 서울생활문화지원센터 안내문
체부동교회가 의의를 갖는 것은 서촌에 지어진 최초의 개신교회 건물이라는 것 외에, 여러 가지가 섞여 있는 건축방식으로 인해 근대와 현대의 경계를 이루는 건축사적 건물로서의 의의도 지닌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벽돌을 쌓는 조적방식으로, '불식(프랑스식) 쌓기'와 '영식(영국식) 쌓기'를 더불어 볼 수 있으며, 최근에 쌓은 벽에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미국식 조적법도 나탄나다. 건축물의 천정을 받치는 트러스 역시 고식(古式)이다.
건물은 전체적으로 같은 단에 벽돌의 긴 면과 짧은 면이 번갈아 보이도록 쌓는 '불식(프랑스식) 쌓기'로 지어졌고, 해방 후 교회를 증·개축할 때는 영미권의 영향으로 한 단에는 긴 면만, 다른 단엔 짧은 면만 보이도록 하는 '영식(영국식) 쌓기'가 활용됐다. 최근에 쌓은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미식 쌓기'다. 즉 체부동교회는 구한말의 시대적 아픔과 해방, 전쟁 등 우리나라 역사가 투영된 건축물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불식 쌓기'와 '영식 쌓기'가 대비되는 벽 
'영식 쌓기'와 '미식 쌓기'가 대비되는 벽
섞여 있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불식(프랑스식) 쌓기'나 '영식(영국식) 쌓기'는 사례를 보기도 힘든 경우다. 명동성당을 비롯해 연식 있는 조적조 건물은 대부분 '화란식(네덜란드식) 쌓기'가 대종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화란식 쌓기는 영식 쌓기와 거의 동일하지만 길이켜에서 벽이나 모서리 부분에 칠오토막(본 벽돌의 7.5 크기)을 사용하여 영식쌓기에 비해 간편하다.
명동성당은 1892년 8월 5일 정식으로 기공식을 가진 후 공사에 들어갔으며 1896년 프와넬 신부가 남은 공사를 마무리했다. 이때 모두 중국 산둥반도 출신의 조적공을 채용했는데, 이들이 사용한 조적공법이 화란식으로서, 산둥반도 교주만 일대가 독일 조차지였던 시절 독일 기술자에게서 배운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명동성당보다 먼저 지어진 중림동 약현성당도 마찬가지로 화란식 쌓기가 쓰였다.

'화란식 쌓기'로 지은 명동성당 
화란식 쌓기 칠오토막의 용례 
'체부동 생활문화지원센터'로 바뀐 후의 변형된 교회 내부 / 다목적 홀로 목적을 바꾼 내부의 '체부홀'은 리노베이션할 때 많은 공을 들인 곳이다. 공연의 질을 좌우하는 잔향 시간을 늘리기 위해 천장을 트러스 구조로 복원해 높이를 높였고, 전면의 벽돌은 길이 쌓기와 마구리 쌓기를 반복해 음이 난반사되는 것을 막았다. 
천정의 고식 트러스는 그대로 살렸다. 
벽 광창 쪽의 트로스 체부동 교회는 본시 붉은 벽돌의 조적조 본당과 바로 옆의 한옥으로 구성돼 있던 관계로 서울시가 인수해 수리할 때 한옥 건물도 함께 리노베이션 되었다. 이 한옥이 원래 체부동교회의 출발점으로, 시작 당시 금요일에 5명의 아이를 모아 예배를 보았다는 일화가 있어 생활문화지원센터로 레노베이션하면서 한옥 이름을 따로 '금오재'로 지었다고 한다. 현재 본당은 음악연습실과 연주회장 및 집회공간으로, 금오재는 지역주민 휴식 공간과 세미나실 등 시민·지역 주민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교회 벽과 금오재 / 전신주 오른쪽 건물이 금오재다. 
금오재 
금오재 문 
지역 주민 휴식 공간 '마실' 
지역 주민 커뮤니티 공간 '세미나실' / 지붕에 염색한 천을 늘어 놓았다. 
내부 꽃담 / 보수 공사 중 덧칠한 회벽 안에서 발견되었다. 1930년대의 것이다. 
꽃담의 위치를 볼 수 있는 '서울사랑' 사진 
세미나실 내부 / 다섯 명의 아이들이 예배를 올린 곳으로 최초의 교회 유년학교라 할만하다. '서울사랑' 사진 
금오재 외관 / 교회 본당은 340.82㎡, 금오재는 79.34㎡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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