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국방력 와해를 절감하는 중이다. 1조 8천억 원 국방비가 지급되지 않은 사상 초유의 사태를 겪은 게 엊그제인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 김여정의 무인기 침투 운운 발언에 대한민국의 온 부처가 마치 호떡집에 불난 듯 호들갑이다.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이라야 당 내 서열이 54위 정도에 불과하다. 겨우 이 정도 처녀아이가 발언 하나를 던지자 국방부, 통일부, 나아가 청와대까지 나서 북한 달래기, 비위 맞추기에 나섰던 바, 꼴사납기 그지없다.
이게 보냈다는 무인기인가?
한국정부가 이렇듯, 우리는 보낸 적이 없다, 기종도 우리 것과 다르다, 따라서 민간에서 보낸 듯하니 무인기를 보낸 그 나쁜 놈을 붙잡아 처벌하겠다는 식으로 싹싹 빌고 나서자, 김여정은 "그나마 한국 국방부가 연명을 위한 현명한 선택을 했다"며, 우리 정부가 처리하는 것 봐서 대응 수위를 결정하겠다고 한다. 참으로 어이가 없다. 자신들은 무인기를 수없이 보내놓고 우리는 보내면 안 된다고 하는 것도 어불성설이거니와, 대통령까지 나서, 군경합동수사팀을 구성해 신속하고 엄정하게 수사할 것을 지시했다 하니 그야말로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는 굴종적 행위가 아닐 수 없다.
난방비가 모자라고 사기마저 꺾여 오들오들 떨고 있을 군장병들을 생각하며 남한산성을 찾았다. 한겨울에 남한산성에 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곳으로 피난 온 인조 임금과 대소신료, 괜히 따라 들어왔던 수많은 백성들이 얼마나 고생했을지 절감된다. 춥고 배고픈 것도 힘들었겠지만 신남성을 점령한 청군(淸軍)이 홍이포로 연일 성내(城內)를 때려댔던 바, 행궁에 살던 인조 임금은 얼마나 괴로웠을까 싶다. 그 괴로움을 실록은 다음과 같은 한 줄로 표현했다. 이 표현이 <인조실록>에 16번이나 나온다.
상(임금)이 남한산성에 있다. (上在 南漢山城)
남한산성으로 들어가는 군인과 백성들 / 영화 '남한산성'에서.신남성의 위치신남성 서돈대 / 당대에는 없었고 영조 때 축성된 것이다.
신남성은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과 광주시 경계에 있는 검단산 정상의 성이다. 병자호란 당시 조선군은 이 성까지 미처 신경을 못 썼는지 청군에 선점당했다. 그러면서, 워낙에 멀리 떨어져 있으니 별일 없을 거라 자위했지만 하지만 상황은 정반대였다. 청군은 535m에 이르는 검단산 꼭대기까지 홍이포 7, 8문을 끌고 올라와 훤히 내려다보이는 남한산성을 향해 방포했고 급기야 포탄이 행궁까지 떨어졌다. 임금은 혼비백산하지 않을 수 없었고, 결국은 얼마 못 버티고 성을 나와 항복해야 했다.
청군이 사용한 홍이포 / 실학박물관남한산성 행궁정문 한남루행궁 앞 침괘정 / '창'을 베게 삼는다는 뜻으로, 무기를 제작하는 사무를 담당하는 곳으로 추정된다.남한산성 연무관 / 1625년(인조 3)에 창건된 후 중앙 군영인 수어청 본영과 광주유수의 집무처로 사용되었다.인조가 항복하러 나온 서문 우익문
이는 1954년 베트남이 프랑스군을 상대로 대포를 산 정상까지 끌고 올라가 승리한 디엔비엔푸 전투(Battle of Dien Bien Phu)와 흡사하다. 당시 프랑스군은 베트남군(베트민)이 험준한 산악 지형을 뚫고 중화기를 운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으나 베트남군은 무게가 2톤에 달하는 105mm 곡사포를 밧줄로 묶어 오직 인력과 자전거로만 해발 1,000m 이상의 산 정상까지 끌고 올라갔다. 이후 프랑스군 진지를 위에서 내려다보며 정밀 타격했고 비행장이 파괴되며 고립무원에 처한 프랑스군은 결국 항복했다.
대포를 끄는 베트민프랑스군 요새를 함락시킨 베트민 / 디엔비엔푸 전투의 상징 같은 사진이다.
무릇 전쟁이란 이런 독종 마인드가 있어야 이긴다. 항상 느끼지만 저들 베트남인들의 외세에 대한 대응은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 2016년 중국의 경제보복 이후 시종일관 저자세로 대응했던 우리 대한민국과 달리 베트남 국민들은 결기를 표출하며 거국적으로 중국에 저항했다. 그리하여 수도 호찌민 시를 비롯한 곳곳에서 반중시위가 일어 100여 명이 부상당한 것을 필두로 모든 국민이 합심하여 중국과 맞서 싸웠던 바, 흡사 전쟁도 불사할 분위기로 치달았다. 중국상품 불매 차원쯤을 훨씬 넘어선, 매우 극렬한 국민 저항운동이었다. (그래도 중국은 대응하지 못했다)
저들은 15세기 초 자국을 침입한 명나라 영락제의 대군을 10년 동안 싸워 패퇴시킨 바 있고, 제국주의 프랑스 및 미국을 격퇴한 화려한 전력도 있어서인지 외세와의 전쟁에 있어 우리만큼 겁을 안 먹는다.(알다시피 베트남은 미국과 싸워 이긴 지구상의 유일한 나라다) 언제든 한번 해보려면 해보라는 식이다. 실제적으로 1979년, 베트남은 통일 전쟁 직후 자국을 쳐들어온 중국의 20만 대군을 주력군을 투입하지 않고도 보기 좋게 물리쳤고, 당시 중공군은 불과 29일 만에 약 7만 명의 사상자를 낸 채 국제적 망신 속에 허겁지겁 물러가야만 했다.
그러한 역사적 이유에서인지 베트남은 우리보다 경제 수준이 훨씬 낮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이나 미국이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2014년 베트남의 반중국 시위가 격화되어 베트남 주재 중국공장들과 대사관 차량이 방화되었을 때도 중국 외교부의 반응은 그저 유감이란 것이었고, 오히려 미국은 이를 기화로 적극적으로 베트남을 거들고 나섰다. 아무리 작은 체구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싸움에서 한번 이기고 나면 큰 덩치의 놈들도 감히 까불지 못하는 것과도 같은 이치랄까?
현재의 국력으로 베트남이 중국과 맞짱을 뜬다면 베트남은 필패겠지만, 그만큼의 피해를 주겠다는 그들의 깡다구를 중국은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중국이 우리를 두려운 상대로 보고 있다는 느낌은 전혀 없다. 중국은 물론이요 북한도 우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실사격 훈련도 하지 않고 입으로 빵, 빵 총소리를 내는 군대, 총 대신 삼단봉을 지니고 경계 근무에 나서는 군대를 무서워할 나라는 세상에 없다. 그러니 김여정이란 처자가 저렇듯 막되먹은 행동을 보이는 것인데, 그럼에도 우리는 눈치를 살피며 설설 기기 바쁘다.
인조가 남한산성에 머물던 1637년 새해 설날 아침. 인조는 청군(淸軍)에게 술과 고기와 떡을 하사했다. 겉으로는 명절날 이웃과 음식을 나누어 먹는 미풍양속을 보여주겠다는 것이었지만 속으로는 우리 좀 잘 봐 달라, 살살 좀 다뤄달라는 비굴함이 내재된 행동이었다. 하지만 조선정부의 이 같은 선의는 거부당했다. 청군은, 우리는 먹을 음식이 많으니 가지고 가 너희 왕에게나 주라고 했다. 비굴한 속내까지 들켜버린 모양새다. 우리도 북한에게 그런 꼴을 당한 적이 있지 않았나...?
제2차세계대전의 영웅 윈스턴 처칠은 "과거를 잊은 민족이나 국가에겐 미래가 없다(A nation that forgets its past has no future)"고 했고, 스페인의 철학자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는 "과거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자들은 과거의 일을 반복하고야 만다. (Those who cannot remember the past are condemned to repeat it.)"고 했다. 우리나라의 신채호 선생도 이와 비슷한 말씀을 하지 않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