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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전쟁 홀로코스트 양평 대학살
    우리역사 비운의 현장을 가다 2026. 4. 13. 13:29

     

    앞서 '그리스 공산당과 한국전 참전 기념비'에서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의 양민 학살이 자행된 남한강변 상리(上里) 얼음창고 터 사진을 게재한 바 있다. 북한군은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으로 허리가 끊길 위험에 처하자 서둘러 북한으로 도망갔는데, 이때 김일성의 명령에 의해 전국 곳곳에서 우익 세력과 그 가족을 '반동분자'로 규정하여 몰살시키고 후퇴했다. 여주군 상리에서도 마찬가지의 학살이 이루어졌던 바, 많은 우익인사들이 상리 얼음창고 안에서 목숨을 잃었다.

     

     

    북한군의 양민 학살이 자행된 남한강변 상리 얼음창고 터
    여주지역에서도 많은 민간인이 학살됐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지난 2011년, 33명의 신원미상 유해를 발굴했다. (경기일보 사진)
    여주박물관 수장고에 모셔진 33인의 유골 (경기일보 사진)
    영월근린공원에서 본 상동 / 옛 여주군 상리 지역

     
    남한강변에서의 학살은 양평군 양근리에서도 있었다. 학살을 자행한 자들은 일대의 북한군이 아니라 남쪽으로부터 후퇴하던 북한군이었다. (양평은 인민군의 퇴각로여서 피해가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1950년 9월 25일 밤, 북한군은 양평 일대에 살던  공무원 · 군경가족 · 지역유지 등 600여 명을 색출해 양평군청 인근의 강변으로 끌고 왔다. 그리고 모래톱에 이미 파놓은 긴 구덩이 앞에 사람들을 늘어서게 한 뒤 무차별 사격을 가했다. 

     

     

    강변의 '6.25 양민학살현장비'
    희생자 매장지로 추정되는 장소의 안내판 / 뒤에 보이는 다리가 양근대교이다.


    북한군은 이에 그치지 않고 확인살해까지 하였던 바, 구덩이 안으로 들어와 사람들을 대검과 죽창으로 마구 찔렀다. 이후 휘발유를 뿌려 불을 지른 후 흙으로 덮고 퇴각했다. 따라서 생존자가 있을 수 없었는데, 다행히 이에 앞서 탈출한 사람들이 있어 기록이 남을 수 있었다. <경인일보>에 따르면 이때 살아남은 박대식 옹(작고)은 다음과 같은 증언을 남겼다.
     
    "철사로 팔을 묶기에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나를 묶을 차례에서 철사가 모자랐다. 내무서원이 철사를 가지러 간 사이 강으로 도망쳤다. 다리에 총알을 7발이나 맞았지만 살았다"고 했고, 김유택 씨(87·전 양평문화원장)는 "우리 형도 잡혀갔지만 양근대교 쪽으로 달아나 살았다"고 했다.
     
    김 씨는 이어, "그 일이 있고 며칠 뒤 국군이 도착했다. 그때서야 나도 장인어른의 시신을 찾으러 모래톱으로 달려갔다"며, "시신 썩는 냄새 때문에 쑥으로 코를 틀어막은 수천명의 사람이 가족의 시신을 찾기 위해 아우성치는 모습은 생지옥을 보는 듯 처참했다"고 말했다. 

    양평문화원은 1950년의 비극을 잊지 말자며 2016년 6월  학살 지점 앞 강변에 비석을 세웠다. 그러나 정확한 학살 지점은 1973년 팔당댐이 생기며 물속에 잠겨버렸는데, 김유택 씨의 장인을 비롯해 당시 시신을 찾지 못한 많은 희생자 및 일가족 몰살로 수습될 수 없었던 유해들도 함께 잠겨버렸다. 그외 위쪽 떠드렁산 일대도 양민 학살 장소라는 증언이 있었다. 

     

     

    유해 매장 추정지
    '6.25 양민학살현장비' / 경원대 장삼현 교수의 조시(弔詩)가 새겨졌다.
    내역이 적힌 뒷면 수비기(竪碑記)
    양근대교와 떠드렁산
    유해 매장 추정지 안내판
    인근의 양근천
    양평군청 앞에서 본 남한강과 양근대교

     
    이른바 '양평 대학살'은 단일 민간인학살사건으로는 경기도 최대 규모로, 피살자가 1천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1952년 발간된 <대한민국통계연감>에 따르면 6.25전쟁 중 인민군과 좌익에 의해 학살 당한 남한의 민간인은 총 122,799명이며, (납북자는 총 84,532명) 전라남도 지역 피살자가 43,511명으로 가장 많았다. (전체의 72.6%) 

     

    음으로 전라북도(5,603명), 충청남도(3,680명), 경기도(2,536명), 서울시(1,383명), 강원도(1,216명) 순이며, 경상남도(689명), 충청북도(633명), 경상북도(628명), 제주도(23명)에서는 1000명 이하의 패해자가 나왔다. 이 가운데 철도경찰 62명은 따로 분류되었으며, 남자가 44,008명, 여자가 15,956명으로 집계됐다.

     

    여성 피살자 15,956명 가운데 13,946명이 전남 지역에서 피살됐는데, 피살자가 집중된 전남 지역에서도 특히 영광군의 피해가 가장 컸다. (전남 지역 피살자 43,511명 중 절반에 가까운 21,225명이 영광군에서 피살됐다) 영광지역 여성 피살자는 전국 여성 피살자의 절반에 가까운 7,914명에 달한다.

     

    이처럼 전라남북도에서 많은 피살자가 나온 것은 북한군의 점령 기간이 길어 좌익 활동이 활발했기 때문인데, 그중에서도 특히 영광군은 국군의 수복이 늦게 이루어진 까닭에 피살자가 많이 발생했다. 좌빨들이 국군을 피해 마지막으로 달아난 곳이 영광군이었던 바, 광기와 공포에 질린 좌빨들의 무차별적 살육이 일어났던 것이었다. 

     

     
    2020년 영광 불갑산 민간인 희생자 발굴 모습 / 진실화해위원회 사진
    평양의 조금 특별한 사진 / 1950년 10월 초, 개성과 서울 지역에서 끌려갔던 공무원 약 2천 명이 대동강 인근 기암리에서 학살됐다. 쫓기는 북한군이 더 이상 데려갈 수 없어 죽인 것인데, 당시 납북당한 남한 민간인은 8~9만 명에 이르렀다.
    함흥 지역에서 퇴각하는 인민군들이 무자비하게 학살한 함흥 주민들의 시체. (미래한국 사진) / 전라북도 전주의 피살자라고 잘못 알려져 있다.

    함흥시의 학살자 / 모두 1만 2,000여 명에 이르는 무고한 양민들이 죽었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사진출처: 美 국립문서기록보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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