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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철로 팔린 제1연평해전 참전 참수리호 & 서해해전 요약정리우리역사 비운의 현장을 가다 2026. 5. 9. 16:38
2002년 6월 29일 오전 발발한 제2연평해전은 한국전쟁 이후 남북한 군대가 격돌한 최대 전투로서, 어언 14년이 지났음에도 지금도 생생하다. 필시 '연평해전'이라는 감명 있게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지 않은 분이라 할지라도 성인이라면 누구나 그때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니 공교롭게도 그 기억은 월드컵 4강 신화와 맞물린다.

그런데 공교롭다는 것은 오로지 우리 측의 생각일 뿐 북한은 그렇지 않았다. 북한군은 월드컵 터키와의 3·4위전이 열리던 날을 노려 계획적인 군사 도발을 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한일 월드컵 3, 4위전이 열리는 날인 6월 29일을 D-데이로 잡았던 바, 그날 오전 '등산곶 684호' 등 경비정 2척이 NLL을 고의 침범했다. 그러자 우리 해군의 '참수리 357호정'이 차단 기동을 하며 경고 방송을 하였는데, 바로 그 순간 북한 경비정이 85mm 전차포로 참수리호의 조타실을 향해 선제 기습 포격을 가해왔다.

제2연평해전의 시작 
연평해전 포스터 / 배우 김무열이 유영하 대위 역을 맡았다. 
전쟁박물관의 참수리 357호정 바로 그 순간, 영화 전개의 다소의 느슨함에 지루함을 느끼던 나는 정신이 바짝 나 스크린을 응시했다. 그때부터 눈을 뗄 수 없는 전투 신이 전개되었는데, 영화의 전투 신은 철저히 사실을 바탕으로 촬영되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약 25분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북한 경비정은 반파된 채 퇴각했고, 초반에 집중포화를 당한 참수리 357호정은 결국 침몰했다. 우리 군은 정장(艇長)인 윤영하 소령 등 6명의 전사자와 18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전사자 가운데 정장 윤영하 소령은 초탄 명중 이후 4분 후인 37mm 포탄이 함교에 명중해 아비규환이 된 찰나 저격수의 총탄에 등을 피격당해 전사했고,(이후로는 부상당한 이희완 중위가 전투를 지휘함) 조타장 한상국 상사는 적의 공격이 집중되는 상황에서도 조타기를 놓지 않고 승조원의 안전을 위해 키를 유지하는 사투를 벌이다 전사했으며, 조천형 상사는 20mm 벌컨포 사수로 응전하던 중 적의 집중 사격을 받아 방아쇠를 잡은 채 전사했다.

참수리 357호정 조타실 
치열했던 전투의 흔적이 남은 현측(舷側) 
초반 집중포화를 당한 조타실과 포탑 / 한상국 상사와 조천형 상사가 전사한 곳이다. 황도현 중사는 20mm 벌컨포 사수로 마지막 순간까지 두 손으로 방아쇠를 잡고 대응 사격을 하다 전사했으며, 서후원 중사는 M60 기관총 사수로 중앙 갑판에서 빗발치는 적의 총탄에 맞서 필사적으로 싸우다 전사했다. 의무병 박동혁 병장은 자신의 부상을 뒤로한 채 동료들의 응급처치를 위해 뛰어다니다 중상을 입었으며, 3개월간의 투병 끝에 병원에서 전사했는데, 영화 속에서는 박동혁 병장(당시 상병)의 죽음이 가장 가슴아프게 그려진다.

방문객 어린이가 황도현 중사의 전사 모습이 재현된 벌컨포 포탑 안을 들여다 보고 있다. 
서후원 중사가 전사한 중앙 갑판 
참수리 357호정 안내문 / 길이 37m, 폭 6.9m, 승조원 31명, 총배수량 170t, 최대속도 38노트(70km/h)의 고속정이다. 이날 북한군의 도발은 앞서 1999년 6월 15일에 일어났던 제1연평해전의 패배를 복수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일련의 해전 발발의 원인은 북한 경비정들이 1999년 6월 7일부터 꽃게잡이 어선 보호를 명분으로 NLL을 반복적으로 침범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리하여 6월 15일 오전, 결국 교전이 발생하였던 바, 우리 해군은 북한 함정을 밀어내기 위해 선체를 직접 부딪치는 '밀어내기 작전'을 수행했다. 이 과정에서 북한 함정이 먼저 25mm 기관포 사격을 가해오자 우리 군이 즉각 응사하며 대규모 교전으로 번졌다.

제1연평해전의 실제 상황 / 오른쪽이 우리 해군의 참수리 325호정이다. 교전은 약 14분 만에 종료되었으니, 북한은 어정 1척 침몰되고 경비정 5척이 크게 파손된 채 달아났다. 반면 우리 측의 피해는 거의 없는 완승이었다. 이와 같은 전과를 거둔 참수리 325호정은 1999년 제1연평해전에 이어 2009년 대청해전에도 참전했다. 대청해전은 2009년 11월 10일 오전 11시 27분경, NLL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과 대한민국 해군 고속정 사이에서 발생한 해상 교전이다.
이날 북한 해군 서해함대 소속 등산곶 684호 경비정은 NLL을 약 2.2km 침범하여 남하하였고, 우리 군이 연평해전 이후 간결해진 전투수칙에 따라 경고 방송과 경고 사격을 실시했다. 이에 북한군이 참수리 325호정에 응사하며 교전이 시작되었으나 전투준비가 철저했던 덕에 교전은 단 2~3분 만에 종료되었다. 이날 대한민국 해군은 단 한 명의 부상자나 함정 피해 없이 완벽한 승리를 거둔 반면 북한 경비정은 반파되어 화염에 휩싸인 채 퇴각했으며, 약 3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됐다.

2009년 대청해전 전황도 / 연합뉴스 DB 이상 제1연평해전과 대청해전에서 승리를 거두었던 참수리 325호정(PKM-325)이 기념 보존 대신 고철로 매각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알려진 소식에 따르면 해군은 2022년 퇴역한 참수리 325호를 올해 1월 매각해 폐처리했다. 한때 기념물로 보존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었지만 결국 고철로 처리된 것이다.
해군은 역사적 의미를 고려해 한때 안보 전시물 지정 여부를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비용 대비 효과가 낮다고 판단했다는데, 그 이유에는 평택 2함대에 이미 제1연평해전 전승기념탑이 건립됐고, 제2연평해전 참전 함정인 참수리 357호정이 전시돼 있어 상징성이 중복된다는 평가도 고려됐다고 한다.
하지만 일반인이 평택 2함대에 전시된 참수리 357호정을 보려면 사전에 관람 신청을 하고 허락을 받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른다.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 홍보도 안 돼 있어 사실 관람이 쉽지 않다. 그래서 나처럼 전쟁박물관의 복제물 '참수리 357호정'을 찾게 된다. 볼 수 없는 평택 2함대 내의 참수리 357호정은 사실 있으나 마나 한 존재이다.

평택 2함대 내의 참수리 357호정과 제1연평해전 기념탑 반면 북한은 1968년 1월 23일 동해에서 나포한 미국 함선 푸에블로호를 1990년대 말 경 평양 대동강 변의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야외 전시장으로 옮겨 일반인과 관광객을 위한 반미 교육 및 전시용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 큰 배를 어떻게 동해에서 서해로 옮겼는지는 지금도 미스터리다. 조각내 철도를 통해서 옮겼을 가능성도 짐작됐지만 조각을 낸다 해도 터널을 통과하기에는 너무 컸던 바, 위장을 철저히 한 후 공해를 거쳐 서해로 갔다고도 했다.

평양 대동강변에 전시 중인 푸에블로호 / 푸에블로호는 나포 당시 승조원 83명 중 1명이 사망하고 그 외 승조원은 11개월 후 송환됐으나, 배는 미반환된 채 미국에 대한 전리품으로 이용되었다. 우리나라는 매년 3월 넷째 금요일을 '서해수호의 날'로 지정해 서해에서 발생한 3대 사건인 제2연평해전(2002년), 천안함 피격(2010년), 연평도 포격전(2010년)으로 희생된 55명의 호국 영웅들을 기리고 있는데, 올해는 3월 27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의 기념식이 끝난 뒤 이재명 대통령이 희생자 유가족에게 한 말이 화제가 되었다.
이재명은 유가족들과 인사를 나누며 퇴장하던 중, 천안함 폭침으로 전사한 고(故) 민평기 상사의 어머니 윤청자 씨 등이 "북한한테 사과를 받도록 노력을 해달라"고 호소하자 "(우리가) 사과를 하란다고 해서 (북한이) 사과를 하겠습니까?"라고 답해 국민들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아무렇지도 않았거나, 잘했다고 박수를 친 국민들도 있었겠지만) 알았다, 노력해 보겠다는 평이한 대답이 더 나았을 성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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