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한국을 중국의 일부로 본 손문과 장개석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6. 5. 11. 17:53

     

    우리들은 모택동의 공산당과 달리 국민당의 손문과 장개석은 한국에 우호적이었고 더 나아가 한국의 독립을 도왔다고 생각한다. 배우기를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다. 교과서에는 2차세계대전 중 열린 카이로 회담(1943년 11월 22일부터 26일까지)에 대해 설명하며, 국제적으로 한국의 독립을 처음으로 명문화한 회담이라는 점과, 적당한 시기(in due course)에 한국을 자유롭고 독립적인 국가로 만들 것이라는 내용이 포함되었음을 강조한다. 그 사진에 장개석이 있다.

     

     

    교과서에 실린 카이로 회담 사진 / 왼쪽부터 장개석, 루스벨트, 처칠, 송미령(장개석의 부인)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교과서적인 내용일 뿐 장개석의 속내는 달랐다. 장개석 부부가 그 먼 카이로까지 날아간 건 연합국의 일원으로 전후의 상황을 논하자는 것도 있었지만 사실 미국으로부터 10억 달러 가량의 차관을 얻고자 함이 목적이었다. 당시 장개석은 일본과는 별개로 모택동과의 치열한 내전을 벌이고 있었던 바, 돈이 필요했던 것인데, 송미령의 은밀한 요구에 루스벨트가 의외로 선선히 수락하자 장개석은 놀라며 크게 기뻐했다.

     

    루스벨트는 루스벨트 대로 생각이 있었다. 그는 당시 일본이 점령 중이던 버마 전선에 중국이 참전하면 손 안대고 코를 풀 수 있다고 여겼던 것이었으니 10억 달러쯤은 꿔줄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아무튼 기쁨에 넘친 장개석 부부는 11월 26일  오후 루스벨트를 재차 찾아 감사를 표하고 버마 수륙공동작전을 논의했다. 아마도 그쯤에서 장개석의 머리 속에서는 한국의 독립이 다시 없던 일이 되었을 것이니 모택동의 대반격이 없었다면 평소 그가 생각했던 한반도 속국화가 이루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장개석은 자신의 사부 손문과 마찬가지로, 대만과 한반도는 원래 중국 것이었으나 일본에 빼앗긴 영토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그것은 두 사람뿐 아니라 대다수 중국인의 생각이었는데, 특히 정치가였던 장개석은 일본의 패망으로 2차세계대전이 끝난다면 한국은 '다시 중국의 속국이 돼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까닭에 불가능하리라 여겨졌던 모택동의 본토점령이 현실화되지 않았다면 장개석은 최소한 구한말 원세개 식의 총독 정치로라도 한반도를 속국화했을 것이다.

     

    1934년 3월 27일 장개석의 일기에는 그와 같은 속내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내용인즉, "대만과 한반도를 되찾자. 이곳은 한나라와 당나라의 일부였던 땅이다. 그래야만 우리는 황제의 자손으로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는 것이었고, 1934년 4월 등 중일전쟁 전후로의 대내외 강연에서는 "동북(만주)의 실지를 회복할 뿐 아니라 조선도 옛날부터 중국의 영토였기 때문에 수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손문의 유훈을 받들어 대만, 조선 등을 회복하여 중화질서를 재건하려는 당시 국민당 정부의 대중국 민족주의적 구상(일종의 조공 책봉 체제 회귀)에 기반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연구한 전 신라대 사학과 배경한  교수는 "카이로 회담을 통해, 미국의 외교 전략에 따라 강대국의 지위를 갖게 된 중국은, 신탁통치에 의한 전후 한반도 문제 해결이라는 미국 주도의 방안에 동조하면서, 사실상 한국 임시정부에 대한 지지를 포기했다"고 말한다. 

     

     

    배경한 교수가 제시한 일본 서적 <중국 국치지도의 비밀을 풀다> 속 지도 / 이것이 당시 중국인들의 일반적인 영토관이었다.

     

    나아가 장개석은, 종전을 앞두고 미국이 한국에 진공(進攻)할 때 중국군도 참여하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하였고 재정적 원조와 민간 투자의 확대 등을 포함한 한국에 대한 지원책을 검토하면서 영향력 확대를 노리기도 했다고 한다. 이것을 보면 카이로선언이 발표되기 이전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이승만을 통하여 충칭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승인해줄 것을 적극적으로 요청한 행동 등은 그야말로 동상이몽에 다름 아니었다. 

     

    장개석은 손문의 생각을 구체화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도 말했지만, 손문의 한반도에 대한 인식은 고루하기 그지 없었으니 그는 조선을  종속적 관계로 여겨왔다. 그리하여 한반도를 중국의 옛 속국이자 보호령으로 간주했던 바, 1921년 구이린 연설 등에서 한국, 베트남, 미얀마 등을 "중국의 잃어버린 영토"로 표현하며, 이들이 독자적인 주권 국가라기보다 중화 질서 속의 일부라는 인식을 보였다. 

     

     

    황푸군관학교 개교식 후 찍은 사진 (중앙이 손문과 장개석이다)

     

    나아가 손문은 중국이 혁명을 완수하고 국력을 회복하면 과거 청나라의 속방이었던 지역들이 다시 중국으로 복귀할 것이라고 여겼는데, "중국이 부강해지면 태국, 한국, 베트남 등이 스스로 중국의 한 성(省)으로 복속시켜 달라고 요구해 올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아울러 그는 1924년 일본 고베에서 발표한 대(大)아시아주의 강연에서 서구의 '패도(覇道)'에 맞서 동양의 '왕도(王道)'를 주창하며 중국과 일본의 연대를 외쳤는데, 이 과정에서 조선과 같은 주변 약소민족의 독립은 중국의 안보와 이익을 위한 수단적 가치로만 여겼다. 이에 당시 조선의 지식인 안재홍 등은 손문의 대아시아주의가 일본의 침략을 묵인하거나 중국 중심의 새로운 패권을 정당화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하며, 그의 인식에 한국(조선)이 결여되어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구이린은 우리나라 관광객이 많이 가는 광서성 계림(桂林)을 말한다. / 손문은 1921년 12월 구이린 시에서 행한 연설에서 베트남, 조선, 미얀마, 티베트, 타이완 등은 과거 중국의 속국이거나 속지였다고 언급하고 실지(失地) 회복의 의지를 피력하는 제국주의적 사고를 보였다.

     

    역대 중국 정치 지도자들의 이와 같은 생각은 지금도 변함 없는 듯하니, 2017년 4월 (6~7일)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은 미중 정상회담에서 트럼프에게 한반도가 과거 중국 영토의 일부였다는 말을 했으며, 이 얘기를 들은 트럼프는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고 말했다.

     

    "시진핑 주석이 중국과 한국의 역사 이야기를 시작했다. 북한이 아니라 한국 전체의 이야기였다. '중국과 한국은 수천 년의 역사다. 많은 전쟁도 있었다. 한국은 사실 중국의 일부였다'(Korea actually used to be a part of China)는 내용 등이었다. 이때 '한국은 북한이 아니라 한국 전체'(Not north Korea, Korea)라고 했다. 나는 10분간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쉽지 않으리라는 걸 깨달았다.(And after listening for 10 minutes, I realized that it's not so easy)" 

     

     

    이런 소리를 지껄였음에도 한국은 별다른 반응이 없다. 이러니 중국이 한국을 계속 얕잡아볼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댓글

아하스페르츠의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