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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정 황보인에 대한 역사의 재평가 & 느닷없는 월드컵 예상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6. 5. 31. 00:06
한국전쟁 당시 전라도 지역은 인민군이 빠르게 점령(1950년 7월)하면서, 기존의 지주-소작 관계가 급격히 뒤집히는 계급투쟁이 가장 많이 발생한 곳으로, 이 과정에서 지방 좌익(남로당원, 소작농 등)이 지주나 우익 인사를 고발하거나 인민재판을 통해 처형한 사례가 다수 보고되었다.
특히 전남 영광, 함평, 화순 지역은 지방 좌익 세력이 강했던 곳으로, 인민군 점령기에 지주, 기독교인, 경찰 가족들이 '반동분자'로 몰려 집중 학살되었다. 유형을 보면 평소 지주에게 원한이 있던 소작농이나 머슴이 북한군에 고발하거나, 직접 좌익 치안대에 가담하여 지주를 죽창 혹은 낫 등의 농가구로 살해한 사례가 많았다.
자료를 검색하다 보면 무수한 피살자가 등장하는데, 혹간 미담처럼 지주를 뒷산에 숨겨주거나, 인민재판장에서 인민군에게 "이 사람은 우리를 사람으로 대접해 준 착한 사람이니 절대 반동이 아니다"라고 앞장서서 변호하며 목숨을 담보로 보호했던 예가 나타난다. 대표적으로 소설 <태백산맥>에 출현하는 전남 벌교의 실존 인물이었다는 김사용 등을 들 수 있다.

벌교읍 김범우의 집이라는 팻말이 붙은 고가옥 / 안내문에 따르면 원래 대지주였던 김씨 집안 소유의 집이다. 조정래는 이 집을 <태백산맥>의 주인공의 한 사람인 김범우의 집으로 삼았다. 
김범우의 집 사랑 / 김범우는 소설 속 양심을 갖춘 품격있는 대지주 김사용의 아들이다. 그러니 이 집은 김사용의 집이라 하는 편이 정확하겠다. 주소는 전남 보성군 벌교읍 봉림리 312이다. 사례별로 보면, 독립운동가를 지원했다고 알려진 지주 중에서 좌익 계열 독립운동(사회주의 운동)을 지원했거나 혹은 본인이 참여했던 지주들은 인민군 점령 시기에도 '민족주의자' 또는 '양심적 지주'로 대우받아 화를 면했다. 아울러 소작인들에게 가혹하지 않았거나 평소 지역 사회에 베풀었던 지주들은 인민군이 들어왔을 때 마을주민(소작인)들이 그들을 보호해주거나 처벌 대상에서 제외해달라고 청원하여 살아남는 경우가 있었다.
반면 정치적 전향과 위장으로 살아 남은 경우도 있었으니, 살아남기 위해 좌익단체(인민위원회 등)에 이름을 올리거나 적극적으로 협력하며 생존을 도모한 이들도 존재했다. 또 자녀들의 덕을 보는 경우도 있었다. 지주의 자녀 중 대학 교육을 받으며 사회주의 사상에 경도되어 좌익 활동을 했던 경우, 그 자녀의 영향력 덕분에 집안 전체가 '반동'의 굴레에서 벗어나기도 했던 것인데, 의외로 많은 사례가 발견된다. 앞서도 말했지만 사회주의 사상은 이론만큼은 이상향인지라 당대의 많은 지식인들이 이에 경도되었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그들의 이름을 나열하기 어렵다. 그 지식인들의 아들들은 지금도 생존해 있고, 개중에는 전국구 정치인으로 이름을 떨치는 자들도 있는 바, 사소한 일에 목숨 걸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충은 알 것이라 생각한다. 좌파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는 일제 부역자 프레임을 걸려다 그 정치인의 아비까지 얽혀 중간에 흐지부지된 예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생각인데, 어쩌면 영원히 묻힐 수도 있는 노릇이다. (사실 그래도 어쩔 수는 없다) 그래서 그 대신 이상과 비슷한 스토리의 옛날이야기를 하려 한다.
1453년 5월, 멀리 동로마제국에서는 침입자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트 2세에 의해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몰려 있을 때, 조선에서는 수양대군의 쿠데타 모의가 구체화되고 있었다. 수양대군은 그해 11월 마침내 계획을 실행에 옮겼던 바, 우선 충정로 1가 지금의 농업박물관 자리에 살던 절제(節齋) 대감 김종서의 집을 찾아가 철퇴를 내리쳐 그를 제거했다. 이른바 계유정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어 수양대군은 권람이 이미 열어 놓은 돈의문(서대문)을 통해 사대문 안으로 들어간 뒤 단종임금을 만나 거짓 역모를 고변했다. 김종서, 황보인 등이 안평대군을 왕으로 추대하려는 역모를 꾸미고 있는 사실을 사전에 인지해 지금 그 일당을 주살 중이니 전하께서 지금 그 일당을 궁으로 불러달라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김종서 일파로 분류되어 한명회의 <살생부>에 적힌 영의정 황보인, 조극관, 이양 등은 건춘문 안에서 철퇴에 맞아 즉사하고, 윤처공, 이명민, 조번, 김대정, 원구 대감 등은 자택에서 한명회가 보낸 자객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계유정난의 현장 경복궁 건춘문 앞서도 말했지만 지금의 종로구 재동 이름은 그로부터 유래되었으니, 한명회가 보낸 자객들에 의해 이곳에 살던 윤처공, 이명민, 조번 등의 문무대신을 살해당했을 때 그들이 흘린 피와 피비린내를 덮기 위해 동네 사람들이 재(灰)를 가지고 나와 뿌렸다는 데서 비롯됐다. 그리고 실제로 선혈이 낭자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방불케 하는 일이 2025년 벽두부터 한남동 대통령관저와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벌어졌고 많은 사람들의 생과 사가 갈렸다.

또 다른 역사의 현장 / 2025년 벽두, 공수처의 집행을 저지하기 위해 한남동 대통령관저 앞에 모인 사람들. 
또 다른 역사의 현장 /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이 있었던 2025년 4월 4일 아침, 재동 입구에서 찍은 사진이다. 하지만 그 생사의 검을 휘두른 자들의 판단이 옳았는가는 여전히 설득력이 부족한 바, 그 옳고 그름에 대한 역사의 심판이 이어지리라는 것이 대다수 사람들의 생각이다. (그대로 묻혀도 어쩔 수는 없지만) 그리고 1453년 11월 10일 밤에 죽은 영의정 황보인(皇甫仁, 1387~1453)에 대한 역사적 심판은 이미 끝났던 바, 정권욕이 있었다는 것은 저들(수양대군 파)의 일방적 주장일 뿐, 그런 생각일랑 전혀 없었으며 항상 선왕(문종)의 유지를 받들려 노력하였고 강직하였다는 평가이다.
아울러 성품이 인자하고 자애로워 자신보다 낮은 이들도 함부로 대하지 않아 다른 이들의 호감을 많이 샀는데 일례로 계유정난에 휘말려 가문이 멸문의 위기에 처하자 그 집 여종인 단량이 황보인의 손자 황보단(皇甫端)을 데리고 경상도 연일현(경상북도 포항시 연일읍)까지 피신하여 평생 숨어 키움으로써 가문의 대를 잇게 되었다는 내용이 <나무위키>에 실려 있다. 이 때문인지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성동리에 영천 황보씨(永川 皇甫氏) 집성촌이 있다고 한다.
영천 황보씨는 사실상 단일 본관이다. 역사적으로 황해도 황주를 본관으로 하는 '황주 황보씨'도 존재했으나, 현재는 대부분 영천 황보씨로 통합되었거나 인구가 극히 미미하여 대한민국에서는 영천을 유일한 본관으로 여긴다. 한국의 서문(西門)씨에 '여음 서문씨'가 있기는 하지만 사실상 안음(安陰) 단본인 것과 같다. 흔히들 오해하지만, 록발라드계의 황녀(皇女)급 가수 서문탁(西門卓)은 서씨가 아니라 서문씨를 빌려온 예명이며 본명은 이수진이다. 서문씨가 있나 생각할 분도 계시겠지만, 유명한 소설 <금병매>의 주인공인 서문경(西門慶)이 서문씨이다.
갑자기 성씨 이야기를 꺼냄은 황보인의 성씨가 황(黃)이 아니라 황보로, 복성에 외자 이름임을 강조해 밝히려는 것이지만, (드라마에서 종종 황대감으로 등장하는 까닭에) 며칠 후로 다가온 월드컵에서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스페인 전에서 보여준 황보관 선수의 캐넌 슛과 같은 멋진 골을 기대하고자 함도 있다. 그 슛을 쏜 황보관도 황보씨로 황보인과 같은 영천 황보씨이며, 그룹 샤크라 출신의 황보(황보혜정)도 같은 본관이다.
1990년 6월 17일 이탈리아 우디네에서 열렸던 FIFA 월드컵 조별 리그 2차전 스페인 전에서 전반 43분 최순호가 프리킥 기회를 얻어냈다. 최순호는 슬쩍 딴 데를 보며 공을 밀었고 이것을 달려들던 황보관이 차 무려 114km/h의 캐넌 슛을 성공시켰다. 내가 생각하는 한국선수 역대 최고의 월드컵 골로서 그 '대포알 프리킥'은 이탈리아 월드컵 베스트 5골에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당대의 졸전이 되풀이되어서는 안될 것이니, 이 골은 당시 한국 팀이 기록한 유일한 득점으로서, 한국은 조별리그 E조에서 3전 전패(1득점, 6실점)를 기록하며 조 4위로 광탈락했다.
그때의 감격을 다시 한번! 
선수 시절의 황보관 / 인터풋볼 사진 
샤크라 시절의 황보 / 나무위키 사진 덧붙이자면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은 2014년 브라질 월드컵 3경기와 함께 내가 보았던 역대 최악의 졸전이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은 아직도 기억하시는 분이 많겠지만 당시의 감독은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 주인공 중의 한 명이자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청소년대표 감독을 맡아 동메달의 기적을 이룬 홍명보였다. 당시 홍 감독은 본선 조추첨 후 "세 팀 모두 해볼만 하다"며 자신감을 피력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때 대한민국은 러시아 · 알제리 · 벨기에와 함께 H조에 속했는데, 러시아와 알제리는 행운이라 여길 만큼 만만한 상대였고, 톱시드 배정을 받은 벨기에마저 다른 톱시드 국에 비하면 그리 강팀으로 여겨지지 않은 까닭이었다. 당연히 대한민국 국민들도 '이번에도 또 일내는 것 아닌가' 하는 기대에 부풀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팀은 기대에 달리 1무 2패에 그치며 조 최하위로 16강에서 탈락했다.스코어를 말하자면, 1차전은 러시아와 1:1로 비기며 그런대로 무난한 출발을 보였지만 2차전은 전반 38분 동안 세 골을 얻어맞으며 2:4로 패했다. 월드컵에서 아프리카 국가에 패배한 첫 번째 경기이기도 했다. 3차전은 이미 2승을 거둬 본선 진출을 확정한 벨기에를 맞아 자비로움을 기대했지만 전반 44분 상대 선수1명이 퇴장당한 수적 우위 속에서도 결과는 0:1이었다. 한마디로 허무한 월드컵 16강전이었다.
국민들의 슬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홍명보 감독은 벨기에 전이 끝난 뒤 가진 인터뷰에서 별로 미안해 하는 기색도 없이 "(비록 졌지만) "우리 선수들이 이번 경기를 통해 많은 경험을 했을 것"이라며 자위했다. 하지만 KBS 이영표 해설위원은 "월드컵은 경험하는 자리가 아니라 입증하는 자리"라며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세간의 평가도 마찬가지로서 3경기 모두 전술 구사력이 부족했다는 혹평을 받았는데, 현지에서 선수들이 벌인 광란의 파티로 인해 또다른 공분을 샀다.
뭘 잘했다고...? / jtbc에 보도된 대표팀의 음주가무 회식 장면 
거취를 묻는 데 대한 홍명보 감독의 영혼 없는 대답 이후, 대표팀 구성 과정에서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할 경기력 대신 친분을 따라 선수를 선발했다는 '의리 발탁', '정실 인사' 논란도 거셌는데, 그 와중에 홍 감독이 월드컵 훈련 기간 동안 땅 투기를 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세인들을 거듭 분노케 했다. 월드컵을 앞두고 축구국가대표팀이 소집돼 훈련하는 기간 동안 홍 감독이 수차례 땅을 보러 다녔으며, 한국판 비버리 힐스라고 불리는 신흥 부촌인 성남시 분당구 은중동의 땅을 구입했다는 구체적인 뉴스도 보도됐다. 부근 공인중개사의 놀랄 만한 증언들도 뒤를 이었다. 결국 그는 옷을 벗어야 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24년 7월 7일, 그가 다시 축구국가 대표팀 감독으로 내정됐다. '땅명보', '돈명보'의 소리 외에 온갖 비난의 소리가 끊이지 않음에도 대한축구협회는 2026 북중미 월드컵을 이끌 차기 대표팀 감독으로 홍명보를 선택했다. 그런데 월드컵을 앞둔 어제, 홍 감독의 뒷배로 알려진 정몽규 대한축협회장이 월드컵 후 물러날 의사를 표명했던 바, 이제 홍 감독의 거취는 오롯이 월드컵 성적에 좌우되게 되었다.
나의 판단으로는 그간 홍명보 대표팀이 보여준 것이 없어 내내 불안불안하기만 하데, 중국 언론은 대한민국이 북중미 월드컵 A조 1위로 가장 먼저 16강에 오를 것이라 예상해 어안이 벙벙하다. 대한민국이 상대팀인 체코, 멕시코,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비교했을 때 객관적인 전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으며, 손흥민·이강인 중심의 빠른 역습이 상대 팀들의 약점을 완벽하게 공략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인데, 구체적 이유는 다음과 같다.
- A조의 평준화: 조별리그 A조에 톱시드(개최국 멕시코)를 제외하면 절대 강자가 없는 만큼, 한국이 충분히 조 1~2위를 노릴 수 있는 상황으로 분석된다.
- 상대 팀들의 약점 분석:
- 체코: 강력한 피지컬을 보유했으나 발이 느려 한국의 스피드 축구에 취약할 것으로 보았다.
- 멕시코: 홈 버프는 강력하지만 핵심 미드필더의 부상 이탈로 중원 싸움에서 허점이 생길 것으로 예상했다.
- 남아공: 높은 활동량과 체력을 갖췄으나 골 결정력에 문제를 보여 공략이 수월할 것으로 평가했다.
반면 대한민국의 확실한 무기는 손흥민, 이강인으로 이어지는 '핵폭탄급' 공격진이며, 한국 팀의 스피드가 상대 수비를 허물기에 충분한 파괴력을 가졌다고 평가했다. 한국팀의 실력과 함께 중국 AI의 수준도 판단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어찌 됐든 오! 필승 코레아~ 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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