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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5 부정선거 & 깡패 임화수와 내무부장관 최인규의 최후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6. 6. 5. 21:59

     

    과거 인기 드라마였던 '야인시대'의 부정선거 모의 장면이 금번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맞물려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그중 수많은 누리꾼들이 소환해 재조명한 장면은 2003년 9월 22일 방영한 121회로 정치깡패 임화수(배우 최준용)가 1960년 3·15 부정선거를 앞두고 부하들과 부정 수법을 모의하는 대목이다.

     

    임화수는 "자유당은 총 투표수 중 4할을 사전투표하기로 했다"고 하자 한 부하가 "그만큼 투표자들의 용지를 우리 쪽으로 빼내야 하는데 국민들이 용지를 받지 못하면 가만히 있겠느냐”고 우려한다. 이에 임화수는 "그 무식한 국민들이 뭘 알겠어? 용지가 안 나왔으면 그냥 안 나왔나 보다 하겠지"라며 면박을 주었다. 투표용지를 빼돌려 국민들이 투표를 못하게 만들겠다는 스토리인데, 같은 스토리는 아니겠지만, 결과적으로 같아 많은 국민들이 투표용지 부족으로 소중한 참정권을 포기해야 하는 놀라운 일이 6월 3일 선거에서 벌어졌다. 

     

     

    임화수가 부하를 면박주는 화제의 장면 / 임화수 역을 한 최준용은 대표적 우파 연예인이라 흥미롭다.

     

    아니, 빼앗겼다는 말이 옳을 것이다. 헌법상 보장된 권리를 자유 민주주의 대한민국에서 대놓고 빼앗긴 것인데, 그 수가 얼마인지 파악조차 되지 않고 있다. 참으로 한심한 현실로서, 이와 같은 참정권 빼앗김에 항의하기 위해 잠실 7동 2투표소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알려진 대로 잠실 7동 2투표소는 투표용지 부족으로 밤 10시까지도 투표가 종료되지 못했고, 그 상태에서 공무원으로 보이는 자에 의해 문이 잠겼던 문제의 현장이다. 

     

    황당한 상황이었지만 덕분에 투표소로 쓰였던 우성아파트 경로당에는 약 2000명 정도가 투표한 투표함 2개가 그대로 남게 되었다. 물론, 부정선거의 증거라며 투표함의 반출을 주민들과 시민들이 막았기 때문이다. 공무원들에 의한 1차 반출이 시민들의 강한 반발로 무산되자 다음날 오전 선관위 관계자로 보이는 자가 나타나 "선거 과정에 일부 부진한 점이 있었다. 여러분들에게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하다"며 말을 꺼낸 후,

     

    "(투표함을 가져가) 개표를 마쳐야 당선 확정을 할 수 있다. 당선이 확정돼야 선거 효력에 대한 법적 절차를 밟을 수 있다. 그래야 부정선거인지 아닌지도 판단이 가능해진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현장에 모인 사람들은 "우리를 바보로 아느냐", "개 돼지로 인식하느냐"며 더욱 강하게 항의하고, 이런 식으로는 투표함을 반출할 수 없다고 버텼다. 관계자는 오세훈 후보가 당선자로 확정됐다는 말도 했으나, 시민들은 그것은 이 일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일축했다.

     

    선관위 관계자들이 복귀하는 과정에서 "이 사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책임 있는 말을 하고 가라"며 시민들이 차량을 막아서는 바람에 피아가 뒤엉키는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선관위 관계자들은 철수했고, 전후로 2박3일 간의 투표함 사수 농성전이 벌어졌다. 그곳이 아파트 안이라 모인 시민들은 구호나 큰 함성을 외칠 수 없었지만 낮게 애국가를 부르는 모습에서 비장함이 읽혔다.

     

    그러한 가운데 주민이라는 분이 나와 시끄럽다고 항의했고, 그러자 모인 시민 중 한 분이 나서 나도 주민이라며 응수하는 장면이 목격되기도 했는데, (그냥 주민이 아니라) 참정권을 박탈당한 주민이라는 응수에 주위에서 응원의 박수가 터져나왔다. 그밖에는 이렇다 할 마찰 없는 조용한 시위가 진행되었다. 

     

     

    투표소 앞에서 연설하는 전한길 쌤
    저녁이 되자 더욱 불어난 사람들

     

    가끔 이름과 얼굴을 알 만한 유명 인사들이 와서 현장에 모인 사람들을 격려했고, 사람들은 이에 힘을 얻는 듯했다. 하지만 또 가끔 비가 내려 시민들을 지치게 하였는데, 비는 어둠과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오늘 6월 5일, 새벽어둠이 걷히며 대규모의 경찰기동대가 투입되었다.

     

    이에 그때까지 남아 있던 약 1천 명의 시민들이 긴장하며 나름대로의 방어선을 구축했다. 하지만 7시 30분경 시작된 반출 시도에 지키는 사람이 적었던 뒷문 쪽이 뚫리며 결국 모두 사지가 들려 끌려나갔고, 그 과정에서 크게 흥분한 경찰의 볼썽사나운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이 장면의 동영상이 있다. 이 자는 조사받아야 마땅하다) 물론 경찰은 투표함 수거에 성공했다. 

     

    이후의 과정은 직접 보지 못하고 동영상을 통해 보게 된 것들인데, 그렇게 저항하며 들려나가는 사람들 가운데 피를 흘리는 부상자들도 있었다. (이들은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것이 21세기의 대한민국이 맞는가 눈을 비비는데, 끌려나가는 사람 중에 어제 내 앞에 서서 물통을 나눠주는 등 솔선수범을 보였던 젊은 처자도 있어 가슴이 아팠다. (내가 현장을 뜨며 다른 사람에게 벗어주고 왔던 우비도 그 처자가 챙겨준 것이었다) 그리고 분노했다. 

     

    투표함 회수는 선관위의 요청에 행안부가 호응한 것이라고 한다. 폭력 외의 불법성은 없나 모르겠다. 투표함 반출에는 정당참관인이 있어야 된다고 알고 있는데.... 아무튼 경찰은 투표함을 확보해 개표소인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으로 이송했고 시민들도 그곳으로 이동해 집회를 이어갔다. 이때부터 저녁까지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엄청난 인파가 몰려든 것으로 안다.  

     

     

    반출되는 투표함 / 투표함에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입니다"라고 쓰여 있다. (연합뉴스 DB)
    개표소인 핸드볼경기장 앞에 모인 시민들이 "재선거!"를 외치고 있다.

     

    앞서 '야인시대'를 이야기를 잇자면, 그 드라마에서는 탤런트 임선택이 내무부장관 최인규의 역을 맡았는데, 싱크로율에서는 무척 떨어진다. 물론 닮아야 될 이유는 없지만, 이승만 대통령의 맹목적 추종자로 3.15 부정선거를 진두지휘한 최인규의 역할로 후덕한 얼굴의 임선택은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는다. 최인규는 본래 생긴 모양새도 하관이 빠르고 강퍅하게 생겼다. 관상은 과학이라더니 하는 행동도 생긴 대로였던 듯하다. 

     

     

    탤런트 임선택
    내무부장관 최인규

     

    3·15 부정선거는 당시 집권 여당이었던 자유당 정권이 장기 집권과 이기붕의 부통령 당선을 목적으로 자행한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대규모 선거 부정 사건이다. 

     

    1960년 3월 15일, 이날 있었던 정·부통령 선거에서 팔순 노인이던 이승만은 4선에 성공하고 이기붕은 부통령이 된다. 하지만 대통령 유고 시(고령의 이승만이 언제 죽을지 모르므로) 대통령직을 승계해 정권을 이어가겠다고 생각한 부통령 후보 이기붕과 자유당 정권은 대대적인 부정선거를 저질렀고, 그 정점에 이기붕과 최인규가 있었다.

     

    그리고 이 사건은 국민들의 거센 분노를 일으켜 4·19 혁명으로 이어졌고, 결국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와 자유당 정권의 붕괴를 가져왔다. 이후 5.16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뒤, 4.19 전후 수하 깡패들을 동원해 폭력으로 학생들의 시위를 막으려 했던 임화수와 부정 선거를 획책한 대통령경호실장 곽영주, 내무부장관 최인규 등은 군사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3.15 정·부통령 선거 포스터
    5대 대통령에 당선된 이승만과 이기붕 / 이 두 사람은 압도적인 표차로써 정·부통령이 되었으나 (1960.3.17. 동아일보)
    이기붕의 죽음 / 이기붕 일가는 4.19 혁명이 일어나자 집단자살하였다. (1960.4.26. 조선일보)
    망명길의 이승만 대통령 / 결국 이승만은 퇴위하여 하와이로 망명하게 된다.(1960.5.29 경향신문)
    서대문 이기붕의 집 세간살이를 끌어내 불태우는 4.19혁명 때의 사진
    4.19도서관이 된 이기붕의 집
    당시 반공예술인단 단장,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회장 등의 직함을 갖고 있던 임화수는1960년 4월 18일 발생한 '고대생 습격 사건'을 주도한 죄로 군사법정에서 사형이 확정됐다.
    4월 18일 깡패들의 테러로 쓰러진 고려대생들 / 조선일보 정범태 기자의 특종사진으로 4.19 혁명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다.
    사형 직전의 곽영주 / 이승만 경호처장이었던 곽영주 경무관은 4·19 혁명 당시 시위대를 향한 '경무대 앞 발포 명령'과 '정치깡패 비호' 혐의로 군사법정에서 사형이 확정됐다.
    청와대 분수 옆 4.19 최초 발포 현장 표지 동판
    곽영주와 최인규의 최후 / 곽영주, 임화수, 최인규, 일세를 주름잡던 이들 세 사람은 같은 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들이 죽은 서대문형무소 사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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