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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신(軍神) 김종오 장군 & 국방장관 안규백 일병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6. 6. 21. 22:23
춘천지구전투는 6·25전쟁 초기 국군이 춘천·홍천 지역으로 쳐들어온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여 국군의 조기 붕괴를 막아낸 전투로 '춘천대첩'이나 '춘천·홍천 전투'라고 불리기도 한다. 춘천지구전투는 국군 제6사단이 춘천 홍천 방면으로 공격해 온 북한군 제2군단 2사단과 12사단을 맞아 1950년 6월25일부터 27일까지 3일간 춘천 옥산포, 소양강, 봉의산 일대에서 민ㆍ관ㆍ군이 혼연일체로 싸워 이긴 6.25전쟁의 첫 승전이다.
국군은 이 전투에서 북한군 1개 사단 병력을 궤멸시켜 춘천과 수원을 거쳐 서울을 포위하려던 북한군의 '3일 작전'을 좌절시켰다. 까닭에 춘천지구 전투는 낙동강지구 전투, 인천상륙작전과 함께 6·25 전쟁의 3대 전승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하는데, 전쟁 초기 대한민국 국군이 거둔 사실상 유일한 전술적·전략적 대승리라는 점에 더욱 가치가 크다. 그런데 전쟁 초기 대한민국의 전군(全軍)이 속절없이 밀릴 때 국군 제6사단은 어떻게 이런 눈부신 전과를 이룰 수 있었을까?
우선은 사단장 김종오 대령의 개인적 역량을 꼽을 수 있다. 전쟁 발발 직전인 1950년 6월 10일, 만 29세의 나이로 제6사단장에 부임한 김종오 대령은 전방을 수 차례 시찰한 결과 북한군의 중장비 집결 등 이상 징후를 파악했다. 그는 또 시찰과정에서 붙잡은 무장공비의 진술 등을 통해 북한의 남침이 있을 것을 예상하고 전 장병의 외출 외박을 전격적으로 통제함과 함께 각 주둔지의 경계를 강화하였다.아울러 강한 정신교육을 겸하여 실전을 방불케 하는 전투훈련을 실시하였던 바, 16포병대대는 비전투병과인 군의관조차 포병 사격을 지휘할 수 있게 되었다. 북한군과의 초전(初戰)인 춘천시 역골 전투부터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 제6사단 7연대 연대장 임부택, 7연대 1대대장 김용배, 7연대 대전차포중대 2소대장 심일 등의 영웅들이 모두 김종오 사단장의 휘하에서 역량을 발휘한 군인들이다.

김종오(金鍾五, 1921~ 1966) / 일본군 육군 소위, 우익 학병단, 군사영어학교 1기생(1946년)으로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이후 제1연대장을 거쳐 한국 전쟁 개전 무렵 6사단의 사단장이 됐다. 
전쟁기념관의 김용배 준장 흉상 / 제6사단 7연대 1대대장으로 춘천지구 전투와 동락리 전투에서 공을 세우고 압록강 초산 진격해 태극기를 꽂는 역사적인 전공을 세웠다. 1951년 7월 제7사단 5연대장(대령)으로 보직을 옮긴 후, 강원도 양구 토평리 지구 전투에서 중공군에 맞서 싸우다 적의 포격으로 전사했다. 
전쟁기념관의 심일 소령 흉상 /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재학 중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하여 1949년 5월 육사 8기로 임관했다. 춘천지구 전투에서 제6사단 7연대 대전차포중대 2소대장으로 특공대를 이끌고 북한군의 자주포를 파괴하는 큰 공을 세웠으나 1951년 1월 26일 영월지구 전투에서 전사했다. 
의암호 주변의 춘천지구전적비 
부근에 있는 춘천지구전적기념관 & 전시된 세이버 전투기 
춘천지구전적기념관에서 바라본 의암호 
의암호 부감 
중도 선착장에서 본 의암호와 춘천대교
그는 이와 같은 대비로써 조선인민군 2만4천 명의 새벽 춘천을 기습공격을 차단하였던 바, 조선인민군(이하 북한군) 2사단은 병력 40% 이상의 전력을 상실한 채 춘천지역 점령을 실패하고 말았다. 김종오의 6사단은 춘천전투를 통해 6월 25일에서부터 27일까지 3일간 춘천지역을 사수함으로써 북한군의 진군을 성공적으로 차단하였으며, 육군본부 명령에 따라 충주로 철수하였다. 이와 같은 김종오의 활약은 국군 주력 부대가 한강 방어선을 구축하고 미군과 유엔군이 증원될 귀중한 시간을 확보해 주었다.
이후 김종오는 충북 음성 무극리·동락리 일대로 침투한 북한군 15사단을 기습하여 적 2,100여 명을 사살하는 대승을 거두었다. 이것이 동락리 전투로서, 이때의 공로로 전 장병이 1계급 특진하는 기록을 세웠으며, 김종오 대령 역시 1950년 7월 준장으로 승진했다. 인천상륙작전 후 6사단을 이끌고 가장 먼저 북진한 그는 1950년 10월 26일 압록강 초산에 도달해 한만 국경에 최초로 태극기를 꽂기도 했다.

1950년 10월 26일 초산진에 진격한 6사단 7연대 1대대 병사가 수통에 압록강 물을 담는 역사적 사진이다.
김종오는 전쟁 후반기인 1952년에는 제9사단장으로 부임하여, 철원 국경선 부근에서 중공군 3개 사단을 상대로 치열한 공방을 벌였고 백마고지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백마고지 전투는 1952년 10월 6일부터 10월 15일까지 강원도 철원읍 북방의 395고지(백마고지)를 두고 9사단과 중공군 제38군이 펼친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고지 쟁탈전으로 열흘 동안 무려 12차례의 공방전이 벌어졌으며, 고지의 주인이 24회나 바뀌는 처절한 혈투로서 유명하다.

철원 백마고지 / 해발 395m의 높지 않은 능선이나 철원평야와 주요 보급로를 장악할 수 있는 핵심 요충지이다. 만약 이곳을 빼앗겼다면 아군의 방어선이 남쪽으로 크게 후퇴할 위험이 있었다. 
백마고지 전적관에 전시된 MG50 기관총 / 고열에 휘어진 총렬이 치열했던 전투를 대변한다. 
백마고지 전적관 전시물 / AP 통신은 "이곳의 중공군이 전선에 있는 중공군 중의 베스트"이라고 한 유엔군 장군의 말과, 9사단장 김종오 소장의 "우리 부대 장병들의 사기는 지극히 왕성하나 피로하다"라는 말을 타전했다. 
옛 백지고지 전적비 / 9사단 백마 마크가 뚜렷하다. 이 전투를 승리로 이끈 국군 제9보병사단은 이후 '백마부대'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얻는다. 
2022년 백마고지에서 발굴된 조응성 하사의 유해 / 그는 1952년 5월 아내와 어린 두 딸을 두고 입대했다. 
백마고지전투에서 승기를 잡은 9사단장 김종오가 밴플리트 미8군사령관을 안내하고 있다. 밴플리트가 몹시 흡족한 표정이다. 
백마고지를 점령한 후 환호하는 국군 
백마고지 전투 승리를 격려하는 김종오 장군 / 1965년 4월 육군 대장으로 예편 후 전쟁 중 얻은 폐질환으로 1966년 3월, 45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이에 비해 안규백이라는 인간은 여러가지로 대별된다. 길게 얘기할 것은 없고, 대한민국 국방장관 최초로 방위병 출신이라는 기록을 낳은 그는 최전방 일반전초(GOP) 경계 병력을 현재 2만 2,000명에서 6,000명 수준으로의 단계적 감축안을 발표하고, 드론사령부 해체, 방첩사령부 해체, 3군 사관학교의 통폐합, 육사 지방 이전 추진 등 국방력 약화에 앞장 서고 있어 국민들의 안보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다.GOP 경계 병력을 현재의 4분의1로 감축시키겠다는 계획은, 그것이 다 이루어지도 전인 지금, 이미 휴전선은 북한군의 놀이터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회자되고 있다. 실질적으로 DMZ 내 영토를 빼앗긴 셈이라는 분석도 있다. 국방부장관이라는 자가 오히려 북한에 영토를 들어바치고 있는 꼴이다.

화제가 된 안규백 국방장관의 거수 경례
이에 국방부장관이 아니라 북한의 부역자가 아니냐는 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급기야 국민 탄핵에 처해져, 국방부장관 탄핵을 요구하는 국민청원 참여자가 사흘 만에 필요 인원인 5만 명을 넘어섰다. 국군방첩사령부 해체와 3군사관학교 통합 등 국방 정책에 대해 반발 여론과 예비군 사망 사건에 대한 반향이 나타난 모양새다. 안규백이 국민 탄핵 대상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도 청원에 참가하려 했더니 벌써 탄핵 필요 인원이 충족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1표 보탰다) 국민들의 불안과 불만이 얼마나 지대한가를 알 수 있다.
국회 국민동의청원 게시판의 청원자는 "국방부 장관은 헌법상 국가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책무를 수행해야 할 최고 책임자"임에도 "방첩사령부 해체와 핵심 기능 분산, 예비군 사망사건 등에 대한 책임 있는 조치 부족으로 국가 안보와 장병 안전에 대한 국민적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청원 취지를 밝혔는데, 좌빨들을 제외하고는 누구나 공감하리라 여겨진다. 하루빨리 통과되기를 고대해 본다. 물론 민주당 의원이 다수인 마당이라 통과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고대해 본다. 나라가 무너지는 것을 저들인들 바라겠는가?'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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