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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빨에게 암살당한 김호익 총경 사건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6. 6. 14. 22:23
윤석렬대통령 변호인으로 널리 이름을 알린 김계리 변호사가 최근 다시 뉴스를 탔다. 윤석열 재판 1심 선고 직후 보인 눈물의 배경을 SNS를 통해 해명했기 때문인데, 그 내용이 화제가 되었던 것이다. 13일 김 변호사는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제가 울었던 건 대통령(윤석열)이 30년 선고받아서가 아니다"라고 전제하며,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무기징역이 선고됐을 때도 울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김 변호사는 앞서 지난 1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재판장 이정엽)에서 윤 전 대통령이 일반이적·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징역 30년을 선고받은 후 법원을 나서며 눈물을 보인 바 있다. 당시 그는 "이 사건을 준비하면서 단 한 번도 유죄가 선고될 것으로 생각한 적이 없다"고 말하며 울먹였다. 그러면서 김 변호사는 "이 사건이야말로 중계되고 기록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재판이 공개됐다면 감히 유죄를 선고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SNS에 적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 법률대리인단인 김계리 변호사 / 뉴스1 DB 사실 이번 판결은 어이없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1심에서 징역 30년의 중형을 선고받은 핵심 이유는 '12·3 비상계엄 선포 명분을 만들기 위해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을 지시하여 국가 안보 위기를 고의로 조성하고 대한민국의 군사상 이익을 침해했기 때문'이라는 판시에 따른 것이다. 남북이 휴전 상태로 대치하고 있고, 북한에서 무인기를 남한에 침투시키는 상황에서 우리가 북한에 무인기를 보내는 것이 무슨 죄인가? 그러면 미국이 RQ-4 글로벌 호크와 같은 무인기를 띄워 북한을 정찰하는 것도 죄가 되는가?

BBC 뉴스가 게재한 북한 무인기 / 2022년 12월 북한 무인기 5대가 한국 영공을 침범해 비행했다고 한국 군사 당국이 밝혔을때 BBC가 게재한 사진이다. 
깜놀! 북한무인기(UAV)의 수준이 장난이 아니다. / 2023년 7월 북한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군사 퍼레이드에 등장한 북한 무인항공기이다. (TASS 연합뉴스 DB) 다시 말하지만, 윤 전 대통령 등이 북한을 심리적으로 자극해 도발을 유도하고, 국지전 등 무력 충돌이나 국가 안보 위기 상황을 인위적으로 조성하려 했다고 한 재판부의 판시는 정말로 어처구니가 없다. 그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인가? 그러나 이것이 김 변호사가 울먹인 이유는 아니었다.
그는 SNS에 자신이 눈물을 흘린 진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변론을 준비하며 민주노총 간첩 지령을 분석하면서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이 박혀 암약하고 있는 간첩들이 너무 많다는 걸 깨달았다"며, "소름 끼치고 무서웠다"고 말했다. 그는 그것을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음에 원통해 운 것이었다.

김계리 변호시 결국 눈물 펑펑 아마도 몰랐던 사실을 깨달았던 모양인데, 아직 나이가 어린 탓일 게다. 예전에는 간첩, 무장공비가 해안 등을 통해 몰래 침투했지만 지금은 여권을 들고 공항을 통해 당당히 들어온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 대한민국에게 그들을 척결할 의지가 없을 뿐더러 정보도 미약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는 그간 국정원 등 최일선의 미약한 정보력에 놀란 경우가 많았으니, 일례로 국정원은 김정은에게 김주애 외에 첫째 아들이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고 국회에 여러 차례 보고한 바 있지만, 지금은 그런 얘기가 쏙 들어갔다.
외국 정보국의 정보와도 다르며 현 북한의 돌아가는 상황과도 다르기 때문이다. 또 그 전에는 김정은의 아내가 2005년 인천에서 열린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에 이른바 미녀 응원단의 일원으로 남한을 방문했던 사실조차 모르다가 북한 조선중앙TV를 통해 김정은 제1비서의 부인으로 공개된 리설주가 2005년 남한을 방문한 적이 있었음이 확인되자 (2009년 결혼) 2012년 뒤늦게 사실을 인지하여 국회에 보고한 바도 있다.

2005년 인천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 북한응원단 속의 리설주 대한민국 최고정보기관인 국정원은 이런 기본 사실조차 파악하고 있지 못하는 존재인데, 게다가 2024년 1월 1일부로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이 전면 폐지되고 경찰로 이관되었던 바, 대북방첩 및 간첩 수사 권한마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말하자면 간첩들이 대놓고 활약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것이니 1992년 대한민국의 수많은 지식인들을 포섭해 간첩으로 만든 이른바 남한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의 거물 간첩 이선실과 같은 존재는 알 수도 없고 잡을 수도 없게 됐다.
김계리 변호사는 이번 재판 준비 과정을 통해 무엇인가를 인지하여 말한 것인지 "이번 재판이야말로 중계되고 기록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재판이 공개됐다면 감히 유죄를 선고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했고, 아울러 "문재인 정부는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없앴고, 이재명 정부는 방첩사를 해체했다"며 현 정부의 안보 정책을 비판하기도 했다.
이처럼 소리 없이 다가온 덧없는 방첩 붕괴 시즌에 있어, 지금은 세간에서 잊혀진 그러나 충격적이었던 사건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초기인 1949년 8월 12일에 일어난 김호익 총경 암살 사건이다. 김호익 경감(사후 총경 추서)은 앞서 '롯데호텔 부근에 살았던 역관 홍순언 이야기'에서 언급했던 '국회 프락치 사건'의 수사 책임자로 좌빨 국회의원들을 일망타진했다가 남조선노동당(남로당)의 지령을 받은 간첩 이용운에게 저격당해 피살되었다.

'국회 프락치 사건'을 보도한 신문 / 사진은 제헌국회의 부의장을 지냈던 좌빨 국회의원 김약수이다. 당시 36세의 이용운은 과감하게도 서울시 경찰국 사찰과 중앙 사찰 분실(중앙분실장실)의 김호익을 직접 찾아갔다. 당시 이용운은 군복을 착용하였고 김호익에게 위조 명함을 건넸다. 그리고 김호익을 명함을 살펴보려 시선을 떨군 사이 권총을 빼 7발 전부를 발사해 암살했다. 이용운의 정체에 대해서는 남파간첩이었다는 설과, 좌파사상을 가진 남로당원이었다가 남파간첩에게 지령을 받았다는 설이 있다.

지금의 세종대로 광화문 앞에 있었던 서울시 경찰국 건물 (왼쪽) / 그 뒤는 한국일보 사옥이며 오른쪽으로 붙은 듯 보이는 건물은 경기도청이다. 서울시 경찰국과 경기도청 건물은 1986년까지 존속했다. 
세종대로에서 본 의정부 터 / 이곳에 서울시 경찰국이 있었다. 이용운은 현장에서 즉시 체포되었다. 그는 심문 과정에서 자신을 "인민의 이름으로 반동을 처단한 영웅"이라 주장했으나, 변호사의 조언을 받은 듯 재판 과정에서는 자신의 행위가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한 충정이었고 특히 남로당의 지령을 받은 바 없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자신의 행위가 이적행위로 판명되었을지도 몰라도 그 동기가 이적행위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자신은 간첩이거나 간첩에 포섭된 자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검찰관은 이용운의 범행목적이 인민공화국을 수립하려는 남로당의 의지에 편승한 것으로, 李는 이에 가담하여 약 2년 간 특수훈련을 받고 남한의 군사기밀 기타 정보수집 책무를 맡았다고 했다. 아울러 金경감을 살해한 동기는 남로당의 지령에 의한 것이며 이것은 소위 9월 공세를 완수하기 위한 파괴공작의 하나였다고 주장하며 총살형을 구형했다. 검찰관이 교수형이 아닌 총살형을 구형한 것은 '무자비한 살인에 대한 경고의 목적'이라고 하였던 바, 당시 좌빨들이 얼마나 기승을 부렸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총살형은 받아들여져 이용운은 중앙고등군법회의에서 국방경비법 위반(간첩 및 이적행위) 혐의로 사형(총살형)을 선고받고 처형되었다. 총살 장소는 서울 근교 수색 육군사형장과 용산 육군사격장의 설이 겹친다. 일부 기록 및 언론에 따라 용산 육군사격장으로 언급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국회 프락치 사건'으로 구속된 제헌 국회의원들은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대부분 형무소에서 나와 북한으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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