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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동식 목사 납북사건 이야기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6. 6. 23. 00:56

     

    2025년 12월 3일, 이재명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 1년을 맞아 청와대 영빈관에서 개최했던 외신 기자회견에서 매우 난감했던 적이 있다. 이때 미국의 북한 전문 매체 NK뉴스 기자가 "약 10명의 한국 국민이 북한에 잡혀 있는 상황이다. 이 대통령은 북한에 잡혀있는 한국 국민의 가족에게 어떤 메시지를 줄 것이며, 이들의 석방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할 것인가?"라고 묻자 크게 당황한 모습을 모였다. 예상치 못한 전혀 뜻밖의 질문에 한방 먹은 이재명은 "처음 듣는 얘기"라며 버벅거렸다.

     

    이재명은 대통령은 취임에 즈음하여,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라는 선서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 내에 자신이 자유와 복리를 책임질 억류자 신분의 국민이 있다는 기본 사실조차 몰랐던 것이다.  

     

    이어 이재명은 배석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을 향해 "한국 국민이 잡혀있다는 것이 맞느냐, 어떤 경위로 언제인가" 물었다. 위 실장은 "(북한에) 들어가서 그냥 못 나오는 경우거나, 아니면 알려지지 않은 무슨 다른 경위로 붙들려 있는 경우가 있다"며 "(억류된) 시점은 파악해 봐야 할 것 같다"고 답했다. 이에 언론은 위성락조차 정확한 현황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고 보도했지만, 나는 이 정도라도 알고 있는 위성락에 진심으로 경탄했다.  

    현장 상황 설명을 잇자면, NK뉴스 기자는 "(한국인 북한 억류에 대해) 박근혜와 윤석열 정부는 성명을 냈는데, 문재인 정부에선 성명이 없었다"며, "이 대통령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은데, 어떤 노력을 할 것인가"라고 재차 질문했다. 그러자 이재명은 "아주 오래전에 벌어진 일이라서 개별적인 정보가 부족하다"며 "상황을 좀 더 알아보고 판단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후일담을 말하자면 이 같은 질문으로 이재명을 당혹케 한  NK뉴스 기자는 개딸로부터 비난의 문자 폭탄을 맞았다고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12월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새롭게 선 민주주의, 그 1년' 외신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지금까지 확인된 바로는, 현재 북한에는 2013년 억류된 김정욱 선교사, 2014년 억류된 김국기·최춘길 선교사 등이 무기 노동교화형을 선고받은 뒤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은 채 억류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가족들은 지난 10여 년간 단 한 장의 사진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에 앞선  2000년, 중국에서 탈북자들을 돕다 북한에 끌려 갔던 김동식 목사는 2001년 2월 중순경 사망 순교했다.

     

    간단히 경위를 말하자면, 당시 53세였던 김동식 목사는 고신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미국 영주권자였다. 그러던 중 이른바 북한의 '고난의 행군' 시기(1996~1999년)에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중국으로의 탈북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이들을 도울 결심을 하고 중국으로 갔다. 그는 중국 연길에 터전을 마련하고 중국 내 장애인에 대한 봉사 및 탈북자들에 대한 남한 송환을 지원했다. 특기할 점은 그가 젊은 시절 교통사고를 당해 몸이 불편한 가운데서도 중국의 장애인과 탈북자를 지원하는 활동을 했다는 것이다.

     

    김목사는 특히  탈북 고아들을 돌보는 데 힘을 기울였던 바, 연변에서 '사랑의 집'을 설립해 운영하는 한편 북한 내 고아원들과 라선시에 인도적 지원을 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인 1999년 무렵, 중국 내 체류 탈북자가 30만 명에 이를 정도로 극성하자 김 목사는 자연스럽게 유명 인사가 되었고, 1999년 10월 탈북자 13명을 몽골을 통해 한국으로 입국시킨 일이 주목받으며 북한의 타깃이 되었다. 그는 결국 2000년 1월 16일 연길의 한 불고기 식당에서 9명(혹은 그 이상)의 북한 공작원들에게 납치돼 북송됐다.

     

    납치 후 북한은 김 목사에게 자진 입북했다는 진술을 회유했지만 거부당했고, 이후 고문 등 가혹 행위를 당한 끝에 이듬해인 2001년 평양에서 숨졌다. 김 목사인 부인인 주양선 씨의 말에 따르면, 김 목사는 납북된 지 1년 6개월 만에 심한 고문과 영양부족으로 지병이 깊어졌으며, 85kg의 몸무게가 35kg으로 줄어든 영양실조의 상태로 사망했다고 한다. 주양선 씨 등은 오바마 상원의원(후일 대통령이 됨)과 함께 박길연 당시 유엔주재 북한대사에게 서한을 보내 김동식 목사의 납치에 대해 해명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2004년 말, 중국에서 김동식 목사를 납치했던 북한 공작조 중의 한 명인 류 모(某)라는 자가 한국에서 체포되었다. 그는 북한 국가보위부의 지시로  김 목사 외에도 최소 15명의 탈북자를 강제납북시킨 공작원이었는데, 그가 붙잡아 북송시킨 자는 일반 북한 동포가 아니라 북한 내부실상을 잘 알아 남한에 갈 경우 문제가 될 만한 인물과 반북활동 관여자들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60년대 말 북한 남성과 결혼한 탈북일본인 여성과 그 자녀들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특별한 정보가 아니라 당시 KBS를 통해 보도된 내용으로, 류 씨는 지난 2001년 국내에 들어와 건설현장 노동자 등으로 일해 오다 붙잡힌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에는 이렇듯 간첩 체포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김동식 목사의 생사는 전혀 밝혀지지 않았었다. 이후 김 목사의 사망이 확인된 후, 한국에서는 여러 교회와 시민단체가 김 목사에 대한 유해송환 운동본부를 결성하고 대대적인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이후 미국 시민권자인 김 목사의 가족들은 북한 당국에 손해배상을 촉구하는 소송을 워싱턴 DC 소재 미국 연방법원에 제기했고, 미 법원은 2015년 북한 정권이 유족에게 3억 달러(약 3,300억 원)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지만 이행되지 않고 있다. 만일 김 목사의 유족들이 이재명 대통령에게 김 목사에 대한 유해송환을 촉구했다면 뭐라 했을까? "보내달란다고 해서 보내주겠습니까"라고 했을까, "근데 뭐 어쩌라고요"라고 반문했을까? 아니면 "처음 듣는 얘기"라고 답했을까?    

     

     

    김동식 목사 부부
    김동식 목사 납북 규탄 시위 / 연합뉴스 DB
    김동식 목사 생사확인 및 송환촉구 시위 / 크리스천투데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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