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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강 너머 16강으로? / 한국팀이 이집트를 대파했던 기억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6. 6. 26. 18:53

     

    '박스컵(Park's Cup)'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신 분들이 아직도 적지 않을 듯싶다. 박스컵은 1970~1990년대 우리나라에서 개최되었던 '코리아컵 국제축구대회'의 옛 별칭으로 정식명칭은 '프레지던트 컵', 즉 대통령 배 쟁탈 국제축구대회였는데,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성을 따 흔히 박스컵으로 불리었다. 프레지던트 컵 대회는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이 1970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한 것을 계기로 국내 최초의 국제 축구대회로서 창설되었다.

     

    이후 1971년 5월 2일 서울운동장(동대문운동장)에서 제1회 박스컵 대회가 열렸고 개막식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정장과 구두 차림으로 직접 시축했다. 당시 아시아권에서는 국제 축구대회로서 말레이시아의 메르데카컵과 태국의 킹스컵이 유명했다. '메르테카'는 자유·독립의 뜻으로 1957년 말레이지아가 영국으로부터 자유를 쟁취한 것을 기념해 만든 대회이고, 킹스컵은 태국이 1968년 푸미폰 국왕의 즉위를 기념해 만든 대회였다. 당시 아시아권에서는 한국· 말레이시아·태국·버마(미얀마) 등이 강국이었다. 

     

    제1회 프레지던트 컵 축구대회 시축 광경
    제1회 박스컵 대회 개막식에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시축했던 공이 뒤늦게 발견돼 축구역사박물관에 전시됐다. 박정희의 친필 사인이 보인다.

     

    제1회 대회에서는 대한민국과 버마가 공동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박스컵 대회는 당시 볼거리가 없던 대한민국의 최고 흥행카드로 부상했고, 1976년 제6회 대회에서는 말레이시아와의 개막경기에서 1:4로 끌려가며 패색이 짙었으나 후반 교체 출전한 차범근 선수가 종료를 약 7분 남겨둔 시점에서 연출한 5분간의 해트트릭의 기적으로써 4:4 무승부를 이루며 국민들을 열광케 했다.

     

    이후 박스컵 대회는 국민들의 성화에 힘입어 아시아권을 벗어나 유럽, 남미 팀도 참가하는 국제대회로 발전했으나 독일이나 영국팀 등이 좋은 성적을 거둔 경우는 없었다. 당시 참가했던 영국팀의 한 선수들에게 소속을 물었을 때 리버풀의 어느 식당 이름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는 리버풀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그야말로 순수한 동네 클럽팀 출신의 선수였다.   

     

     

    차범근 , 그 신화의 시작

     

    아무튼 박스컵대회는 78년 제8회 대회부터 북미, 유럽, 그리고 아프리카의 대표팀 및 프로팀들이 초청되어 범세계적인 대회로 확대되었고,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서거 후에는 '코리아컵'으로 이름을 변경하고 우승 상금을 5억원으로 올렸다. 그러자 이를 노린 유럽 남미의 클럽팀과 아프리카 국가대표팀이 출전했는데, 내가 본 경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1987년 6월 10일 경상남도 마산시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 이집트전이다.

     

    TV로 중계됐던 이 경기에서는 정말로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경기 도중에 이집트 선수들이 하나 둘, 갑자기 쓰러진 것이었다. 그렇다고 경기를 중단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니 상대팀 선수가 거의 그라운드에 누운 무방비 상태에서 한국팀은 적어도 4골을 넣었다. 스코어는 순식간에 4:0이 되었다. 처음에 골을 넣았을 때 흥분하던 아나운서와 해설자도 4골째에는 흐지부지 말을 흐렸다. 그러다 곧 주심에 의해 경기가 중단됐다. 그리고 중계방송도 중단됐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집트 선수들은 정말로 여독(旅毒)의 피로에 쓰러졌던 것일까? 그 이유를  6월 10일 날짜가 설명한다. 바로 1987년 6월 항쟁이 시작되던 날이었던 것이다. 당시 마산은  3.15 부정선거, 부마민주항쟁을 잇는 대규모 민주항쟁이 일어났고 경찰은 미친듯 최루탄을 쏴댔던 바, 이 최루가스가 바람에 날리면서 경기가 진행 중이던 마산종합운동장 주경기장을 덮쳤고 최루가스에 내성이 없던 이집트 선수들이 속수무책으로 쓰러지게 된 것이었다. 

     

    경기는 대회 주최측에 의해 사상 초유의 몰수 무승부 경기로 처리됐고 이후 재경기가 치러졌다. 내가 새삼 당시를 이야기함은 이번 미주월드컵에서 죽을 쑨 한국대표팀이 1승 2패에도 32강에 갈 수 있다는 희망적인 소식이 들려왔고, 이어 32강전 상대로서 G 1위인 이집트와 맞붙게 된다는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물론 확정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 이기면 미국-보스니아 승자와 16강을 겨루게 되어 8강까지도 바라볼 수 있다는 김칫국이 벌써부터 밥상머리에 올라와 있는 형국이다. 혹시라도 천운으로 이 시나리오가 성립된다 해도 홍명보가 코치석에 없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남아공 전 패배 후 기자회견하는 홍명보 / 이 친구는 안 되다고 내가 몇 번이나 얘기했잖아.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맞붙었던 알제리 감독이 "이렇게 작전 없어 뵈는 감독은 처음 봤다"고 한 얘기를 전하면서.... (당시 알제리는 전반에만 세 골을 몰아치며 4:2로 승리했고, 홍명보 감독의 한국팀은 최종성적 1무 2패를 기록하며 조 최하위로 광탈락했다)
    1971년 제1회 박스컵 대회에서 공동우승을 차지한 한국과 버마(미얀마) 축구대표팀 주장이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고 있다. 단독 우승을 이끌지 못한 한국 대표팀 주장 김정남의 표정이 어둡다. 당시에는 기대 성적에 미치지 못하면 우승을 해도 이런 표정을 지었구나.... (이 대회는 1999년을 끝으로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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