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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직도 남은 양공주의 추억 / 삼각지 기지촌과 동두천 성병관리소
    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6. 7. 2. 21:47

     
    '양공주'는 과거 주한미군이 주둔했던 서울의 용산·이태원 및 전국 각지의 기지촌에서 주로 미군을 상대로 성매매나 유흥업에 종사하던 여성들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사전적으로 '양공주'는 한국에서 미군 기지촌 주변에서 일했던 여성들을 비하하여 부르던 말로 정의되지만, 나는 그 단어로부터 비하의 느낌을 받아 본 적이 없다. 그보다 흔히 불려졌던 '양갈보'라는 극비하의 비칭에 익숙했던 까닭일까....?
     
    호칭이 그러했을진대 그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긍정적일 리 없었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한국전쟁 이후 국가 재건과 외화벌이가 절실했던 시기에 그들처럼 외화 획득에 헌신한 직업군도 드물다. 정부도 미군의 사기 진작과 달러 획득을 위해 기지촌을 방조·장려했다. 1960년대 기지촌 여성들이 성매매로 벌어들인 수입이 한국 GNP의 25%를 차지했다는 자료가 존재한다. 세계 최빈국의 바닥을 딛고 일어난 경제성장에 있어 그들의 헌신과 눈물이 존재했음을 역사가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놀랍게도 그 기지촌이 있었던 용산우체국 맞은 편에서부터 삼각지 역까지의 골목이 지금도 남아 있다. 그리고 용산역사박물관에도 그들 애환의 편린이 남아 있다. 그들의 헌신과 눈물을 잊지 않으려는 박물관 측의 노력을 감사히 여긴다. 
     
     

    용산역사박물관
    용산역사박물관 내 미군기지에 관한 부스
    미군 기지촌과 양공주에 대한 설명문
    그곳의 풍경을 그린 벽화
    서울용산우체국
    풍경 1 / 서울용산우체국 길 건너 옛 기지촌이 시작되는 곳
    풍경 2 / 스산한 입구
    풍경 3
    풍경 4
    풍경 5
    풍경 6
    풍경 7
    풍경 8
    풍경 9
    풍경 10
    풍경 11 / 옛 적산가옥을 개조한 카페 피요르드
    풍경 12 / 피요르드의 굴뚝
    풍경 13
    풍경 14

     
    정부는 그들을 '민간 외교관'으로 미화하기도 했지만 인권을 지켜주지는 않았다. 이를 테면 성병에 걸린 미군이 특정 여성을 지목하면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해당 여성을 '낙검자 수용소'에 감금하여 치료를 강제했다. 양공주들이 질병 치료와 격리라는 명목으로 감금된 그곳의 공식 명칭은 성병관리소였지만 흔히 낙검자 수용소로 불렸다. 낙검자(落檢者)란 국가가 실시한 성병 검진에서 불합격(떨어짐) 판정을 받은 사람을 뜻한다.
     
    1960년대에 미군 및 성매매 여성들 사이에서 매독, 임질 등의 성병이 크게 유행했다. 이에 미군은 성병 관리를 대한민국 정부에 요구했고 정부는 능동적으로 대처했다. 이에 국가 주도로 의사를 배치해 국가예산으로 무료 검사 및 진료를 실시하는 성병관리소가 곳곳에 세워졌다. 경기도에는 동두천, 의정부, 파주 등 여섯 곳이 있었고 부산과 군산에도 세워졌다. 문제는 그곳이 복지정책의 장소로서 위장된 채 실제적으로는 강압적인 치료와 감금이 행해졌다는 것이다.
     
    미군들은 그곳을 '몽키하우스'라는 속어로 불렀다. 감금된 한국 여성들이 낙검자 수용소(성병관리소) 쇠창살 너머로 구조를 요청하는 모습이 마치 철창 안의 원숭이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하나만을 봐도 양공주들에 대한 처우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알 수 있으니, 병증이 심한 여성에는 여성 기준치의 10배가 넘는 양의 페니실린이 강제로 투약되기도 했다고 알려져 있다. 치료 과정에서의 고통이나 모욕감에 자살을 시도한 경우도 있었다. 

     

    경기도 동두천시 상봉암동 8번지 소요산 입구에 위치한 동두천 낙검자 수용소는 전국에 산재하던 낙검자 수용소 중 유일하게 원형이 보존된 건물이다. 이곳은 1973년경부터 운영을 시작해 1996년에 폐쇄되었다. 전체 면적은 대지 및 임야 3필지 6,406.8㎡으로서, 이후 약 30년 동안 방치되어 오다가 현재는 시민단체와 철거 여부를 두고 갈등을 빚고 있다. 동두천시는 철거를 추진하고 있으나 시민단체는 아픈 역사를 간직한 근현대 유산으로 보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동두천 낙검자 수용소의 창살
    동두천 낙검자 수용소
    전국 낙검자 수용소 중 유일하게 원형이 보존된 건물이다.
    휴게시설로 보이는 건물로 남아 있다.
    2024년 9월 철거 예정을 보도했던 <인천일보>의 사진

     

    대표적 반대 시민단체인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은 2024년 10월 13일 새벽 4시, 동두천시가 포크레인으로 몽키하우스를 기습 철거하려는 시도를 제지한 후 아예 근방에 천막을 치고 감시농성에 들어갔다. 폐허로나마 지금껏 건물이 보존되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인데, 오늘 찾아가 보니 100일 넘게 천막농성을 했다는 김대용· 최희신 공동대표를 비롯한 관계자들이 얼마나 모기에 시달렸을까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이동수의 그림 / 시민단체는 '국가폭력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성찰하는 인권·평화 박물관으로 보존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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