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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중 가장 용감했던 미군 미야무라 히로시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6. 7. 6. 17:14
6.25 전쟁 중 가장 용감했던 장병 중의 한 명으로 박관욱 일병을 꼽은 적이 있다. '전설의 스나이퍼들과 한국군 박관욱 일병'에 실린 부분을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1952년 12월 노리고지 전투에서 보여준 1사단 소속 박관욱 일병의 활약은 가히 전설적이다. 그는 당시 중공군이 점령하고 있던 경기도 연천의 노리고지를 뺏기 위한 전투에 참가했는데, 중공군의 완강한 저항에 소대장 전원이 전사하고 이병과 일병 몇 명만이 살아남았다. 그리하여 패색이 완전히 짙어질 즈음 박관욱 일병이 무거운 브라우닝 자동소총을 메고 적진으로 돌진하는 돌출행동(?)을 보였다.

M1918 브라우닝 자동소총 / 흔히 BAR(Browning Automatic Rifle)로 불리던 30구경 자동소총으로 20발의 자동사격이 가능했다. 

BAR는 들고 쏘기도 하나 무거워서 대개 아래처럼 거치해 쏜다. 박 일병이 홀로 진지를 향해 돌격해오자 중공군들은 오히려 당황한 듯 사격을 멈추고 바라보았는데, 박 일병은 그 틈을 이용해 적진에 자동소총을 난사했다. 당연히 중공군 쪽에서도 반격이 있었다. 하지만 박 일병은 용케 엄폐해 응사했고, 쓰러지고도 다시 일어나 적들을 공격했다. 그로 인해 우리 군은 고지의 적군이 얼마 없음을 판단할 수 있었으며, 이에 총공격을 감행해 고지를 탈환할 수 있었다.
이 모습을 대대 관측소에서 지켜보던 미 제1군 단장 폴 윌킨스 켄달(Paul W. Kendall) 장군은 "군 생활 30년을 넘게 했지만 저렇게 용감한 사람은 처음 본다. 저 병사는 초인이다!"며 경탄해 마지않았다고 한다. 이 공으로 박 일병에게는 미군 훈장 중 세 번째로 격이 높은 '은성 훈장(Medal of Silver star)'이 수여됐다.

"That soldier is a superman!" 박관욱 일병은 그때 "우리가 이 고지를 점령하면 상관과 동료들의 죽음에 보답할 수 있을 거 같기에 몸을 아끼지 않았다"는 말을 했다 한다. 그는 이 일로 인해 미군들 사이에서 '노리고지의 불사신'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더불어 진급도 했으나 4개월 후인 1953년 3월 12일 연천 임진강 전투에서 중공군의 포탄에 의해 전사하고 말았다.

여주 남한강변 그리스군 참전 기념비 / 그리스군은 특히 연천 노리고지 전투에서 중공군과 치열한 교전을 벌였다. 6·25 전쟁 중 휴전회담이 진행되던 1952년, 임진강변에 위치한 표고 110m의 전략적 요충지인 노리고지(경기 연천군 왕징면 고장리 일대)를 확보하기 위한 양측의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져 1952년 가을부터 겨울에 이르기까지 한국군·유엔군과 중공군·북한군은 10여 차례 이상 고지를 뺏고 빼앗기는 쟁탈전을 벌였다. 
그리스로 돌아가는 전사자 유해 / 그리스군은 총 4,992명의 군인을 파병했으며 이 중 192명이 전사했다. (부상 543명, 포로 3명) 그렇다면 6.25 전쟁 중 가장 용감했던 미군은 누구였을까? 아마도 미야무라 히로시(宮村 浩)였을 것이다. 일본계 미국인이었던 그는 그는 미국 육군 제3보병사단 소속 분대장(하사)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홀로 중공군 50여 명을 사살하고 전우들을 구한 전쟁 영웅이다. 이에 그는 대한민국과 미국 양국에서 최고 무공훈장을 받았다. 한국 정부에서는 2014년 그를 초청해 최고 무공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을 수여했다.

미야무라 히로시가 하사 시절 찍은 사진 미야무라는 1925년 미국 뉴멕시코 갤럽의 탄광촌에서 광부들을 상대로 식당을 운영하는 일본인 이민자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제2차세계대전 말기 일본계 미국인들로 구성된 제442보병연대 소속으로 자원입대하여 첫 군 복무를 시작한 미야무라는 종전 후 전역했으나 6·25 전쟁이 발발하자 예비역으로 자원 입대하여 한국에 오게 되었다.
이후 1951년 1951년 4월 24일 밤, 경기도 연천 대전리에서 중공군의 대규모 기습 공격을 당하게 되었다. 그 엄청난 쪽수에 미야무라 하사는 분대원들을 후퇴시키고 그들의 안전 후퇴를 위해 홀로 남아 중공군과 백병전을 벌였다. 그는 참호 밖으로 뛰어 나가 다가온 적 10여 명을 어둠을 이용해 대검으로 찔러 살상시켰는데 그 과정에서 자신도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개의치 않고 연이어 기관총을 연사(連射)해 50명이 넘는 중공군을 사살했고, 실탄이 바닥 난 뒤에는 수류탄을 던져 저항했다. 하지만 결국 중공군의 포로가 되었고, 이후 북한군에 인계되어 약 28개월(2년 4개월) 동안 북한의 포로수용소에서 고초를 겪게 된다.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과의 치열한 교전이 펼쳐졌던 연천 대전리산성 
대전리산성 꼭대기에서 본 한탄강과 전곡 읍내
미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최고 무공훈장인 '명예 훈장(Medal of Honor)'을 수여했다. 그러나 이때 그는 포로 상태였던 바, 신변의 위험을 우려해 수여 사실을 극비(Top Secret)에 부쳤다. 이에 그는 미군 역사상 전무후무한 비밀 명예 훈장 수상자가 되었는데, 이 훈장을 1953년 휴전 협정과 함께 이루어진 포로 교환으로 석방된 뒤 아이젠하워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전달받았다.
전역 후 그는 뉴멕시코 갤럽에서 자동차 정비소와 주유소를 운영했으며 2022년 11월 29일 향년 97세로 별세했다. 갤럽 시는 영웅의 죽음을 기려 '미야무라 디스트릭트'를 헌정하고, 고등학교와 지역의 다리에도 그의 이름을 붙였다. 미국은 이러한 예가 꽤 있다. 하지만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전몰 병사나 소영웅을 헌정한 예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마지막으로, 누구나 조금은 이상하게 여길 궁금증을 대신 묻고 답하려 한다. 미야무라는 왜 6·25전쟁에 자원 참전했는가 하는 것이다. 그 이유를 함께 참전한 일본계 미국인 5600여 명이 답한다. (이들 중 255명이 전사했다) 이들은 1900년대 초 미국으로 이민 온 1세대 일본인의 자손으로 당시 '잽'(Jap, 일본인의 비칭)들은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 이후 스파이로 몰려 수용소에 강제 이주당하는 등 갖은 시련을 겪었다. 이들이 미국인들의 백안시에서 벗어나는 일은 미국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주는 일밖에 없었다.
일본인 이주민 2세 중 미군 입대자가 많은 것은 그 때문일 터였겠는데, 이들 '잽'을 중심으로 구성된 미 육군 100보병대대와 442보병연대의 용맹성은 매우 유명했다. 이들은 2차세계대전 중의 유럽 전선에 파병돼 독일군과의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던 바, 두 부대는 미 육군 역사상 최다 무공훈장 수상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미야무라의 용맹성을 미국에 대한 과잉 충성의 산물로 여겨서 안 된다. 그는 훗날 연천 대전리 전투를 이렇게 회상했다.
"내 동료들이 죽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내가 한 행동이 결코 영웅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2022년 11월 별세했을 때 뉴스에 보도된 사진이다. / 목에 건 훈장이 그가 받은 '명예 훈장'이다. 
말년의 미야무라 히로시 / 미국 의회 명예훈장협회 홈페이지 사진 
동두천시 벨기에 ·룩셈부르크 참전 기념비 / 벨기에와 룩셈부르크는 6·25 전쟁 당시 연합부대인 '제1벨기에 대대'를 편성해 참전해 임진강 전투 및 철원·금화 지구 전투에서 분전했다. '제1벨기에 대대'는 총 3,498명의 벨기에군과 85명의 룩셈부르크군이 소속되었고 103명(벨기에 101명, 룩셈부르크 2명)이 전사하고 513명이 부상당하는 희생을 치렀다. 
춘천시 에디오피아 참전기념비 / 에티오피아 군은 총 3518명이 참전해 전사자 121명, 부상자 536명 등 총 657명의 인명피해를 입었다. 에디오피아 군은 황실근위대가 참전해 특히 용맹하였던 바, 연천·화천·철원·양구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의외로 생소한 미국 참전기념비 / 경기도 가평군 북면 카이저길 45-23에 있다. 6·25전쟁 당시 미군은 총 1,789,000명이 참전했으며, 총 13만 7,250명의 인명 희생을 치렀다.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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