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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틀막법 시행 첫날에 떠오른 기훼제서율과 연산군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6. 7. 7. 16:09

     
    오늘은 그간 말 많았던 정보통신망법(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시행일이다. 2025년 10월 더불어민주당 최민희·윤준병 의원이 대표발의한 이 법은 아래와 같은 우여곡절을 거쳐 결국 국회를 통과해 오늘부터 시행되게 되었는데, 개인적으로는 노란봉투법과 더불어 근간의 최대 악법이라고 생각한다.
     
    이 법은 허위·조작 정보 근절과 피해자 구제를 목적으로서, 악의적 가짜뉴스에 대해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 등을 부과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으나, 근본적으로는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이기에 '입틀막법'으로도 불리운다. 나로서는 과거 유신시대나 5공시대에도 경험하지 못한 폭압적인 법안이라 당황함을 너머 어안이 벙벙하기까지 하다. 
     

    역사적으로는 조선 초기에 이와 비슷한 법이 있었다. 기훼제서율(棄毁制書律)이라는 법이다. 왕명(조서, 전교 등)이나 관아의 인장을 고의로 버리거나 훼손한 자를 처벌하던 중국 대명률(大明律)의 법규인데, 이것을 조선정부가 준용하여 썼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이 죄를 지은 자는 장형 100대에서 참형에 이르는 극형에 처해졌다.
     
    여기서 '기훼(棄毁)'는 내다 버리거나 훼손한다는 뜻이고, '제서(制書)'는 임금이 내린 교서나 명령을 의미한다. 즉 이 법은 왕의 절대적인 권위와 명령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것으로서, 단순히 문서를 훼손하는 것을 넘어 국가의 기강을 흔드는 중죄로 다루어졌다. 조선시대에는 왕의 명령을 어기거나 왕실의 법도를 짓밟는 행위를 엄벌하기 위해 이 법을 강도 높게 적용했는데, 그 용례가 경기도  고양시 대자동 '연산군 금표비(禁標碑)'에 남아 있다.  
     
    연산군은 재위 시절인 1504년 자신을 비방하는 한글(언문)로 된 투서가 발견되자, 앞으로 한글을 쓰거나 소지한 자를 '기훼제서율'로 처벌하라는 어명을 내렸다. 또 자신의 사냥터 주변 출입 금지 구역을 무단으로 침범한 자를 '기훼제서율'을 적용해 참수하라(禁標內 犯入者 論棄市 誓物處斬)는 내용을 돌에 새겨 세웠는데, 이것이 '연산군 금표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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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산군 금표비 / 경기도문화재 88호
    연산군 금표비 각자(刻字)

     
    아울러 연산군은 같은 해인 1504년, 말조심을 경고하기 위해 만든 신언패(愼言牌)를 신하들의 목에 차게 했다. 신언패에는 중국 후당(後唐)의 재상 풍도가 지은 4구의 한시가 쓰여 있었다. 이른바 '설시'(舌詩)라는 그 시의 내용의 다음과 같다.
     
    口是禍之門(구시화지문)
    舌是斬身刀(설시참신도)
    安身處處牢(안신처처뢰)
    閉口深藏舌(폐구심장설)
     
    입은 재앙을 부르는 문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
    어디에 있든 몸이 편안하리라
     
    정보통신망법은 이에 손색 없다. 따라서 21세기의 '기훼제서율'나 '신언패'라고 불러도 어색함이 없을 테지만, 이 같은 시대착오적이고도 폭압적인 법을 강요하는 정권이 어찌 오래 갈 수 있으랴. 그것을 역사가 증명해주니 연산군은 그로부터 2년 후인 1506년(연산군 12년) 9월 2일 중종반정이 일어나 조선 최초의 폐주(廢主, 폐위된 군주)가 되어 강화도 교동도로 유배되었다. 그리고 두 달 후 그곳에서 죽었다. 
     
     

    교동도 연산군 유배지 / 연산군 유배지라고 추정되는 곳에 만들어졌다.
    재현된 연산군 위리안치소 / 연산군은 탱자나무가 둘러처진 이곳 초가에서 두 달을 살다 31살의 나이로 죽었다. 역병이 표면상의 이유지만 위리안치로 민간의 접촉이 없던 자가 역병이라니 어울리지 않는다. 필시 독살되었을 터이다.
    도봉구 방학동 연산군과 부인 거창군 신씨의 묘(오른쪽) / 연산군 사후 7년 부인이었던 폐비 신씨가 도성 근방으로의 이장을 요구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져 사위였던 구문중의 묘 위에 자리가 마련되었다.
    연산군 묘역 / 화살표가 연산군 무덤으로, 앞줄 왼쪽이 연산군의 사위 구문중, 오른쪽이 딸 휘순공주의 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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