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의 일본 사찰들과 종묘 앞 개발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6. 7. 8. 20:07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일제강점기 서울에는 조선인 거주 지역인 '북촌'과 일본인 거주 지역인 '남촌'을 중심으로 수십 곳의 일본 사찰이 건립되었다. 대부분의 일본 사찰은 1945년 광복 이후 철거되거나 다른 용도로 변경되었는데, 대표적 5곳을 꼽자면 다음과 같다.
동본원사(東本願寺) 경성별원 : 남산 조선신궁 아래 쪽 중구 예장동 일대에 위치했던 대규모 일본 사찰로, 현재 서울 지하철 4호선 명동역 인근이다. 당시의 축대가 남아 있다.

동본원사 경성별원의 본당 
동본원사 서울 별원 (화살표) / 건너편으로 조선통감부가, 좌측으로 명동성당이 보인다. 
동본원사의 축대 / 그 위에 한양교회가 세워졌다. 서본원사(西本願寺) 경성별원 : 조선은행(한국은행) 본점 뒤편, 일본인 거주지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었다. 현 중구 소공동 132번지 일대이다.
묘심사(妙心寺) : 일본 임제종 소속 사찰로, 종묘 건너편인 종로구 장사동 182번지, 현 종로 세운상가 앞 '다시세운광장' 자리에 위치했다.

'다시세운광장' / 통로는 세운홀 입구이다. 세운홀은 '다시세운광장'의 지하에 조성된 다목적 문화 공간이다. 광명사(光明寺) : 종로구 경운동 89-3번지, 현 수운회관 일대에 자리했던 일본 진언종 계열의 사찰이다. 당시 천도교 중앙총부와 가까운 곳에 본당이 있었다.
용광사(龍光寺) : 용산구 한강로3가 11번지, 현 원불교 서울교당 자리에 있던 일본 진언종 사찰로, 용산 일대에 거주하던 철도 종사자 및 군속을 중심으로 포교했던 곳이다.

용광사 법당 / 지금의 청와대 자리에 있던 융문당(隆文堂)을 옮겨와 본당으로 사용했다. 
원불교 서울교당 / 뒤 하이원빌리지는 원불교 소유의 주거시설인 듯. 
주변은 지금 젊은이들의 핫플이 됐다. / 이곳은 옛 적산건물을 개조한 유명 고기집이다. 금강사(金剛寺) : 서대문구 현저동 독립문 근처에 있었던 조동종(曹洞宗) 계열의 사찰로, 독립운동 유적지 서대문형무소와 매우 인접한 곳에 위치했다.
이 가운데서 어저께 내가 찾아나선 곳은 종로구 장사동의 묘심사 터이다. 묘심사에 관해서는 앞서 '서울 한복판에 자리했던 일본사찰 묘심사'에서 자세히 언급한 바 있다. 내가 묘심사를 특히 주목한 것은 그 절의 본당으로 조선 행정부의 하나인 호조(戶曹)의 당상대청(堂上大廳=본청) 건물을 옮겨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한 나라가 망해 피지배국이 되고, 그 나라의 행정부 건물이 지배국 승려에게 팔려 사찰의 당우로 전락한 예는 좀처럼 보기 힘든 경우이다.
호조는 본래 현 교보빌딩 위 KT 자리에 위치했다. 호조 당상대청은 문자 그대로 당상관(정3품 이상의 고위관료)만이 자리할 수 있는 곳으로, 최고 책임자인 호조판서(장관, 정2품), 호조참판(차관, 종2품), 호조참의(차관보, 정3품)가 근무했고, 그 옆 건물인 낭청대청(郎廳大廳)에는 호조정랑(국장, 정5품)이나 좌랑(과장, 정6품)과 같은 중간 간부급의 실무책임자들이 근무했다.

호조 당상대청 위 호조 당상대청은 전해지는 호조의 유일한 사진이다. 그런데 위 당상대청 사진을 자세히 살펴보면 용마루에 흡사 卍(만)자와 같은 문양이 보이기도 하고, 건물 앞에는 식수된 나무들과 석탑도 보인다. 조선시대에는 정청(政廳) 앞에 식수하는 법이 없었고, 석탑을 세우는 것은 더더욱 말이 안 된다. 그러므로 이 건물이 과연 호조 당상대청인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데, 알고 보니 이 사진은 호조 당상대청이 일본에서 건너온 일본 임제종 승려에게 팔려 묘심사( みょうしんじ)라는 절의 선원(禪院)이 된 후 촬영된 것이었다.
호조는 1895년(고종 32) 행정부를 개편할 때 탁지아문(度支衙門)으로 개칭하며 이후 탁지부가 되었다. 그리고 대한제국이 일제에 병탄된 후 육조의 건물이 철거되거나 팔려 나갔는데, 탁지부의 건물은 일본에 건너온 승려가 매수했다. 이것이 이상하게 들릴는지 모르겠지만, 구한말에 들어온 종교는 언더우드의 장로교와 아펜젤러의 감리교로 대표되는 기독교뿐만이 아니었으니 일본에서 건너온 일본 불교 종파들도 허다했다.
대표적인 것이 1877년, 개항 이듬해에 들어온 정토진종 오타니(大谷)파와 1889년 일본 승려 다케다 한시(武田範之)가 가져온 조동종이었다. 이후로도 정토종, 일련종, 임제종, 진언종 등이 들어왔는데, 이 가운데 교세가 가장 컸던 것은 정토진종과 정토종으로, 이들 불교는 총독부의 지원을 받으며 무주공산의 조선 불교계를 마음껏 헤집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인즉, 조선의 불교는 오백 년 이상 탄압을 받아 이미 지리멸렬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이에 조선말의 불교는 그저 무속류의 미신에 섞여 명백을 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니, 구한말 헐버트(Homer B. Hulbert, 1863~1949)와 함께 육영공원의 선생으로 고빙된 길모어(George W. Gilmore)는 자신이 북한산에서 만난 조선의 승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읊었다. 그의 저서 <서울풍물지(Korea from it’s Capital: with a Chapter on Missions)>라는 책에서는 조선의 불교뿐 아니라 조선이라는 나라에 이미 망국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음이 읽혀진다.
"그들은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는 염불을 중얼거리며 굉장히 낡은 절에 몰려 있다. 그들은 어떠한 군사적·종교적 의무도 수행하지 않으며 머리를 삭발한 채 서성거리고 있다. 그들에게 질문을 해보면 그들은 깊은 확신이나 종교적 원리를 믿는 것이 아니라 정부에서 주는 쌀로 일신의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듯했다. 나는 그들 가운데서 한 사람의 진정한 불제자도 만나 보지 못했다. 그저 사람들의 향토색 짙은 노래를 부르며 그의 절을 위한 보시로 재물과 현금을 받고자 북이나 꽹가리를 치는 모습을 보았을 뿐이다."
서울시가 낡은 세운상가를 일대를 정비하며 조성한 종묘 앞 '다시세운광장' 아래에는 세운홀이 있다. 세운홀은 '다시세운광장'의 지하에 조성된 다목적 문화 공간으로, 2022년 8월부터 2024년 12월까지 종로구 예지동 47번지 일원 3만1042.4㎡를 대상으로 한 정비 사업 때 발굴된 조선초~일제강점기까지의 건물 유구를 보존해 놓았다. 그 중에는 중부관아의 터도 확인되었지만, 시대별로 구분돼 나열돼 있는 것이 아니라 시루떡처럼 중첩돼 있어 건물 하나 하나를 확인하기는 힘들다. 아무튼 단편적으로나마 조선의 흥망성쇠를 바라볼 수 있는 곳으로서 묘심사 터도 필시 이곳에 중첩돼 있을 것이다.

세운홀 입구 



세운홀 지하 유구(遺構) 
세운홀 안내문 

근·현대 유구 안내문 
이곳에서 발견된 근대 유물 / 일제강점기의 문패로서 일대에서 출토된 조선시대 유물들과 함께 세운홀 상설전시장에 전시돼 있다. 
'다시세운광장'에서 바라본 종묘 뒤늦게나마 이곳을 찾은 이유는 이번 6.3지방선거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이 재선됐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기존의 '높이 제한'을 백지화하고 종묘 앞 세운재정비촉진지구(구 세운상가 일대) 내 건물 최고 높이를 140m 이상으로 대폭 완화하는 초고층 개발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계획이 실행되면 세운홀의 지하유구는 모두 사라질 것이기에 다녀온 것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내가 다녀온 다음날인 7월 8일 오늘, 국가유산청이 세운재정비촉진지구 내 고층 재개발 계획을 저지하고자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 장관의 '직권 취소 절차'에 착수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국가유산청이 관련 절차가 실제로 완료되면 세운4구역 재개발 사업에 급브레이크가 걸릴 전망이며 지자체와 행정부 간의 힘겨루기가 또 한 번 치열하게 펼쳐질 터이다. 서울 시민이 오세훈을 찍어 준 것은 개발 쪽에 무게를 실어준 것일 터인데, 국가유산청이 왜 뒤늦게 몽니를 부리고 나서는지 모르겠다. 옛 것도 좋지만 사람이 우선 아닌가? 사람 살 곳 부족해 주택값이 치솟는 서울특별시이거늘, 주상복합이고 뭐고 자꾸 지어 공급을 늘려야 할 것 같은 데 말이다. 아무래도 좌파 행정부이다 보니 개발로 주택을 공급하는 것보다는 벽화 그리기로 일관했던 박원순 시대를 동경하는 것 같다.
'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푸른 언덕이 있는 동네 용산구 청파동 (5) 2026.07.11 ‘서울미래유산’에 선정된 통일교 원본부교회 (9) 2026.07.10 서빙고의 역사 (8) 2026.07.04 아직도 남은 양공주의 추억 / 삼각지 기지촌과 동두천 성병관리소 (4) 2026.07.02 롯데호텔 부근에 살았던 역관 홍순언 이야기 (4) 2026.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