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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6. 7. 14. 18:38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세상을 놀라게 한 정말로 큰 사건이 있었다. 1996년 9월 18일 발생한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으로 그해 11월 5일 종료될 때까지 무려 49일 동안 전 국민을 불안에 떨게 만들었다. 두 달 가까이 강원도 지역을 헤집었던 무장공비들은 미시령과 진부령이 갈라지는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진부령 쪽 3㎞ 지점인 연화동에서 무장공비 총 26명 중 마지막 2명이 사살당하며 끝이 났다. 유명한 매바위 인공폭포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강릉 무장공비 최후 섬멸지 / 연합뉴스 DB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은 1996년 9월 18일 새벽, 강릉 앞바다를 지나던 택시기사가 전방 50m 해상에서 발견한 수상한 물체를 신고함으로부터 시작됐다. 수상한 물체는 좌초된 북한의 상어급 잠수함이었다. 하지만 그 잠수함은 무장공비들을 싣고 온 것이 아니라 이미 침투한 간첩들과의 접선을 마치고 돌아가다 암초에 걸려 좌초당한 것으로, 한마디로 억세게 운이 나쁜 경우였다. 군경이 도착했을 때 승조원 26명은 이미 내륙으로 달아난 상태였다.

좌초한 북한 잠수함 이들은 강릉 강동면 안인진리 해안을 통해 내륙으로 침투했고, 일대에는 군 최고 수준의 방어준비태세인 '진돗개 하나'가 발령되며 대규모 탐색·격멸작전이 시작됐다. 이때부터 연화동 전투로 마지막 2명이 사살될 때까지 청학산 작전, 단경골 작전, 괘방산 작전, 칠성산 작전, 보광리 작전, 목계리 작전, 오대산 지역 작전, 노인산 지역 작전 등의 탐색·격멸작전이 펼쳐졌다. 작전에는 군과 예비군, 경찰 등 연인원 150만 명이 투입됐다.
이 과정에서 무장공비 11명은 시신으로 발견됐고 13명은 사살했으며 1명은 생포했다. 시신으로 발견된 11명은 동료들에게 살해당했으며 전투력이 부족했던 자로 여겨진다. 그리고 휴전선 인근에서 팔 한 짝이 발견되며 흔적을 알린 그 팔의 주인은 월북한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 생포된 사람은 조타수 이광수로, 그는 남한의 군경과 싸우지 않고 되도록 빨리 휴전선을 넘어 월북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생각에 독자적으로 행동하다가 강릉경찰서 강동파출소 소속 경찰 2명에 생포됐다. 군경은 잠수함을 비롯해 367종 4천12점을 노획하는 전과도 거두었다.

사살된 무장공비 그러나 우리 측의 피해도 만만치 않았으니 군인 12명, 예비군 1명, 경찰 1명, 민간인 4명이 목숨을 잃었다. 부상당한 군인도 27명이나 됐다. 언뜻 생각해도 큰 피해가 아닐 수 없는데, 생포된 이광수의 말을 들으니 이해가 가기도 했다. 무장공비들은 북한군 특수부대인 인민무력부 정찰국 22전대 대원으로 당시 북한의 극심한 식량난에도 흰쌀로 지은 정량의 밥과 보약이 지급되던 정예부대원이었다.

생포된 이광수 / 1965년 생으로 전향 후 대한민국 해군 안보교육 교관으로 정착했다. 이중 이병희 중사, 표종욱 일병의 경우는 특히 가슴 아팠다. 첫 전사자인 이병희 중사는 레펠 강하 후 약 20m 전방에서 무장공비의 총을 맞고 전사했다. 그 과정에서 짧은 교전이 있었던 듯 이병희 중사의 탄창에서는 5발이 발사돼 있었는데, 부검 과정에서 머리를 관통당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생존자 이광수 증언에 의하면 무장공비들은 남한 국방군을 만나면 노란색을 보고 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한다.
즉 당시 육군의 헬멧에는 노란색 삼각형의 비표가 부착되었고, 가슴에는 노란색 계급장이 부착돼 있었던 바, 머리와 심장을 정확히 명중시킬 수 있었다. (그후 헬멧의 비표는 없어지고 계급장도 검은색으로 교체됐다) 이병희 중사는 제대일이 지났음에도 어려운 집안 형편에 장기복무를 신청하여 복무하던 상황이었기에 안타까움을 더 했다.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을 상기하는 '리멤버 9·18 훈련'에 참가한 육군 22사단 수색대대 장병들이 강원 고성지역에서 탐색·격멸작전을 위한 헬기 레펠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DB 표종욱 일병의 죽음은 군의 오판에 나의 분노까지 불렀다. 당시 표 일병은 강원도 인제 부근 부대에서 복무 중이라 가족들은 표 일병이 어떻게 되지나 않을까 가슴을 졸이던 상태였는데 느닷없이 표 일병이 탈영했다는 통고를 받았다. 작업 중 실종됐으니 탈영이다, 혹시 집에 오거나 전화가 오면 부대로 즉시 연락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며칠 후 TV 뉴스를 보던 표 일병의 누나는 소스라쳤다. 인제 연화동 계곡에서 사살된 무장공비 2명의 유류품 가운데 자신이 동생 입대 전 사준 금장 손목시계와 똑같은 시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부대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표 일병이 산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는 소식이었다. 발견 장소는 실종된 장소에서 500m 정도 떨어진 곳으로, 철사로 목이 감긴 시신은 낙엽에 덮여 있었으며 속옷만 입은 상태였다. 공비들이 표 일병을 살해하고 군복과 물건을 뺏어간 것이었다. 그런데 가족들의 악몽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으니, 다음날 헌병대로부터 "표 일병 아직도 연락 없냐. 숨겨도 소용없다. 빨리 자수시켜라"는 전화를 받아야 했다.
그뿐 아니라 표 일병은 전사자 명단에서 제외돼 특진 추서도, 보상도 받지 못했다. 가족들은 너무도 억울했지만 달리 하소연할 곳도 없었던 바, 그 누나가 일간지 독자란에 다음과 같은 요지의 편지를 보냈다.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때 사망한 표 일병의 누나이다. 내 동생은 군부대의 쓰레기를 태우러 홀로 쓰레기 소각장에 갔다가 무장공비에 의해 살해당했다. 그런데 전에는 부대로부터 탈영 통지를 받았다. 죽은 무장공비가 써놓은 노트 쪽지가 없었다면 영원히 탈영병이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뿐만 아니라 내 동생은 전사자 명단에서 제외돼 국가유공자도 되지 못했다. 군은 무슨 근거로 내 동생이 그저 당했다고만 여기는가? 내 동생이 무장공비와 싸우다 전사했는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뉴스에서 밝힌 친구 김길성의 말에 따르면, "(종욱이는) 성격이 항상 밝구요, 또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 항상 도맡아서 하는 성격이기 때문에 친구들이 다들 좋아했다"고 할 정도로 원만한 사람이었고, 186cm의 훤칠한 키에 건장한 체격의 소유자였다. 그는 책읽기를 좋아했고 방송사 PD를 꿈꾸었다고 한다.

생전의 표종욱 군 / 1남2녀 단란한 가정의 장남이었다. 이후 故 표종욱 일병에 대해 무장공비에게 피살된 전사자임이 인정되어 1계급 특진(상병) 추서와 함께 국립묘지 안장, 국가유공자 지정 및 유족 보상이 이루어졌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른 실종도 마찬가지겠지만 군에서의 실종은 특히 가족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 실종이 사망으로 이어졌을 때는 더더욱 말할 것도 없다.
지금 이재명 대통령은 2026년 7월 12일 오전, 동해 NLL 인근 해상에서 경비 임무를 수행하던 해군 호위함 승조원이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태릉CC에서 한가롭게 골프를 쳤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 의혹은 목격자와 태릉CC 인근 상인들이 목도한 경비원들의 움직임을 근거로 하여 현재 정치권과 온라인을 중심으로 강하게 제기되고 있으나 청와대는 공식 확인을 거부하고 있다. 해당 병사는 이튿날인 7월 13일 오전 숨진 채 발견됐다.
이에 혹시나 해서 어젯밤 9시 뉴스를 보았지만 이에 관련된 소식은 한 마디도 없었다. 그 시각 이재명 대통령이 서울 태릉CC에서 골프 라운딩을 시작했다는 의혹은, 앞서 2021년 12월 24일 故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처장의 발인 날,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이 SNS에 산타클로스 복장을 하고 춤을 추는 영상이 게시된 일과, 유족들이 이 사실을 기자회견을 통해 직접 언급하며, 이 후보가 조문이나 조화 없이 고인을 모른다고 부인한 것에 더해, 발인 날 산타 복장을 하고 춤추는 모습을 보고 깊은 배신감과 참담함을 느꼈다고 밝힌 일을 소환했다.

문제의 장면 / 네이트뉴스 DB 아울러 이재명 대통령(당시 경기도지사)이 지난 2021년 6월 17일 경기도 이천 쿠팡 물류창고 화재 발생 당일, 맛 컬럼리스트라는 직업을 가진 황교익 씨와 함께 유튜브 채널용 '떡볶이 먹방'을 촬영한 사실도 재소환했다. 해당 화재는 오전 일찍 발생해 진화 작업 중 50대 소방 구조대장이 고립되는 등 큰 인명 피해가 우려되는 심각한 상황이었는데, 구조대장인 김동식 소방령은 안타깝게도 순직하고 말았다.
이에 관해 부적절한 처신이라는 비판이 커지자 이 지사 측은 실시간으로 화재 상황을 보고받으며 지휘를 하고 있었고, 당일 오후 부지사를 현장에 급파했다고 해명했다. 이후 이 지사는 "더 빨리 현장에 가지 못해 국민께 심려를 끼쳐드렸다"며 사과했다.
아직까지는 의혹 단계지만, 만일 이번 골프 라운딩 의혹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이재명 대통령은 어떤 말을 할까? 실종 사실을 보고 받지 못했다고 할까, 아니면 실종 사실은 보고 받았지만 일요일이라 예정 대로 라운딩을 했다고 할까? 혹시 있을지도 모를 트럼프 대통령과의 라운딩을 대비해 그간 연마한 골프 실력을 선보일 겸해서 부득불 태릉CC에 나가게 되었다고.

"안규백 국방장관은 라운딩을 하지 않았다." 그밖에는 아몰랑 
파주 적군묘지 북한군 묘역 / 강릉 무장공비들이 이곳에 묻혔나 봤더니 1구도 없었다. 당시 사망한 24명의 시신은 남북 합의에 따라 사건 발생 동년도인 1996년 12월 30일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전원 송환되었다고 한다.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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