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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모라비드 왕조와 모리타니아 공화국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6. 7. 20. 22:15
지브로올터(Gibraltar) 해협은 지중해와 대서양을 이어주는 좁은 관문으로 10Km라는 짧은 거리를 두고 유럽 대륙과 아프리카 대륙이 마주한다. 지브로올터라는 지명은 아라비아어 '지바 울 타리크'에서 비롯되었으니 곧 타리크의 바위라는 의미이다. 타리크는 아프리카로부터 이 해협을 건너 이베리아 반도(지금의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위치한 지역)를 점령한 사라센 제국의 장수로서, 필시 배 위에서 아래의 바위를 본 이슬람 사람들이 그 이름을 갖다 붙였으리라.

지브로올터 타리크의 바위 / 멀리 모로코의 탕헤르 땅이 보인다. 
지브로올터 해협에서 본 타리크 바위 / HELLE HOLLIS 블로그 사진 ※HELLE HOLLIS에는 다음과 같은 안내도 실려 있다. (2026년 6월 16일 최종 업데이트)
지브롤올터는 스페인 최남단에 위치한 작은 영국 해외 영토로, 스페인 도시인 라 리네아 데 라 콘셉시온과 육로로 분리되어 있습니다. 매일 수천 명의 사람들이 라 리네아를 건너 영국적인 분위기와 지중해성 기후가 어우러진 이 독특한 경험을 즐기기 위해 이곳을 찾습니다. 본 가이드에서는 자동차로 지브로올터를 방문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안내해 드립니다.
자동차로 지브로올터를 방문하는 경우 유효한 여권 또는 신분증과 운전면허증이 필요합니다. 헬레 홀리스에서는 렌터카를 이용해 지브로올터까지 운전해서 갈 수 있습니다. 지브로올터 내 주차 공간이 제한적이므로 많은 여행객들이 라 리네아에 차를 두고 갑니다. 지브롤터에서는 담배와 술이 더 저렴하지만, 스페인으로 돌아갈 때는 엄격한 제한이 적용됩니다. 혼잡 시간대를 피하고 항상 차량 관련 서류를 소지하십시오.

지브로올터 방문객들 
지브롤올터의 위치 711년 타리크 장군을 필두로 스페인을 정복한 이슬람 세력은 향후 약 780년간 지금의 스페인·포르투칼 땅을 지배하다 스페인 기독교 세력의 레콩귀스타(고토 회복운동)로 인해 1492년 완전히 물러나게 된다. 영화 '엘 시드(EL SID)'는 레콩퀴스타의 분기점이 된 1094년 발렌시아 전투를 배경으로 제작된 영화이다. 주인공이었던 찰턴 헤스턴은 이제는 고인이 됐고 영화도 고전의 반열에 오른 지 오래지만, 가끔 TV에서 방영되는 이 영화는 지금 보아도 여전히 재미있고 감동적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히스패닉 지역에 세워진 엘 시드의 동상 / 스페인 고토 회복의 영웅 로드리고 디아즈는 훗날 성웅 '엘 시드'로 추앙받으며 곳곳에 동상이 세워졌다. 
'엘 시드'의 포스터 
'엘 시드'의 마지막 전투 장면 / 뒤에 보이는 성이 발렌시아 성이다. . 평생을 이슬람 세력과 싸워온 엘 시드는 발렌시아의 왕이 돼 달라는 부하들의 청을 거부하고 스페인 국왕 알폰소 6세의 충신으로서 최후를 맞이한다. 영화에서는 화살을 맞고 사경에 든 로드리고가 병사들의 사기를 위해 이슬람 벤 요세프와의 마지막 전투에 참전하는 것으로 그려졌는데, 당시 벤 요세프는 북아프리카 무라비트 왕조(알모라비드)의 지도자로 유수프 이븐 타슈핀으로도 불린다.

전투 중 화살을 맞은 엘 시드 
화살을 맞고도 출전을 강행한 엘 시드 
저항하는 벤 요세프 무라비트 왕조(1040년~1147년)는 북아프리카의 베르베르인이 건국하여 마그레브(북아프리카 서부)와 이베리아반도 남부를 지배했던 이슬람 수니파 왕조이다. 서구권에는 알모라비드 왕조(Almoravids)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다. 무라비트 왕조의 기원은 현대의 모리타니아 및 세네갈 북부 지역의 베르베르 부족에서 출발했다. 어원은 아랍어 '알 무라비툰(Al-Murabitun)'에서 유래했으며, '성채(리바트)에서 전투태세를 갖춘 자들'이라는 뜻이다.
무라비트 왕조는 사라센제국의 후예답게 이슬람 정통 강경파(말리크 학파) 성향의 근본주의 운동으로 세력을 확장했다. 이후 북쪽으로 진격하여 모로코 지역을 통일하고, 1070년 새로운 중심지인 마라케시를 건설하여 수도로 삼았다. 이는 오늘날 '모로코' 국명의 어원이 되었다. 이어 이베리아반도 알 안달루스 지역으로 진출하였는데, 당시 스페인 지역의 이슬람 소왕국(타이파)들이 기독교 세력의 국토회복운동(레콩귀스타)으로 위기에 처하자 이들을 돕기 위한 참전이 계기가 되었다.
1086년, 제4대 국왕 벤 요세프는 사그라하스 전투에서 카스티야·아라곤 연합군을 대파했다. 이후 분열되어 있던 타이파들을 무력으로 병합하여 북아프리카와 이베리아 남부를 아우르는 거대 제국을 완성했다. 하지만 초기의 종교적 순수성으로 무장했던 세력이 안달루시아의 화려한 문화에 동화되면서 지배층이 점차 나태해졌고, 12세기 중엽 또 다른 베르베르계 이슬람 개혁 세력인 무와히드 왕조(알모하드)가 발흥하여 마라케시를 함락하면서 100여 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무라비트 왕조의 최대 영역 그런데 어제 신기하게도 무라비트 왕조의 후예를 보았다. 물론 실제로 만난 것은 아니고 사진을 보았는데 아프리카 북부 베르베르인과 흑인의 혼혈인 듯했다. 내가 본 사람은 다름 아닌 아프리카 모리타니아 무함마드 울드 압델 아지즈(Mohamed Ould Abdel Aziz) 전(前) 대통령으로, 모리타니아는 옛 무라비트 왕국과 인종(무어족 60%, 흑인 40%)과 지역이 겹치는 관계로 자국의 역사로 편입해 가르치고 있다.

모리타니아의 위치 
무함마드 울드 압델 아지즈 전(前) 아프리카 대통령 
무함마드 울드 가주아니(Mohamed Ould Ghazouani) 현 대통령 / 모리타니아 의 제9대 대통령으로, 독립 이후 최초로 이루어진 평화적 정권 교체의 주인공이다. 전형적인 베르베르인이다. 압델 아지즈 대통령(재위 2008~2018년)은 재위 말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초대로 북한을 방문한 적 있다. 그런데 김정은의 홀대로 인해 조기 귀국 소동을 벌인 일화가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 출연한 태영호 전 공사, 이일규 전 참사 등 전직 북한 고위 외교관 출신에 의해 폭로되었는데, 나는 이것을 기사화한 msn의 기사를 읽었다.
사건의 발단은 2018년 북한 정권 수립 70주년 기념행사(9.9절)에 초청된 모리타니아 대통령이 차별적인 자리 배치 등 편파적인 의전에 불만을 품으며 시작됐다. 당시 김정은 위원장은 중국이나 쿠바 등 북한과 전통적으로 가까운 이른바 '주요국' 대표단만 집중적으로 챙기고, 모리타니아 등의 아프리카 나라는 찬밥 취급을 했는데, 이에 모욕감을 느낀 모리타니아 압델 아지즈 대통령이 "난 더 이상 이 행사에 참석하지 않겠소!"라며 전격적인 보이콧과 함께 조기 귀국을 선언했다.

김정은을 째려보는 압델 아지즈 대통령 / 가운데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에이. 드러워서.... 그냥 가버리자. 그리고 정말로 공항으로 출발했다. 이에 당시 북한의 명목상 국가수반이었던 89세의 고령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직접 수습에 나섰으니, 김영남은 공항에서 무려 4시간 동안 압델 아지즈 대통령을 붙잡고 애원한 끝에 겨우 발길을 돌리게 만들었다. 이 사건은 철저히 강약(强弱) 약강(弱强)의 전근대적인 사대적 외교를 보여주는 북한의 단면을 본 듯해 조금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돌아오기는 했지만 아직 화가 안 풀린 압델 아지즈 대통령과 눈치를 살피는 김정은 / msn DB 앞서도 말했지만 북한은 해방 후 일제가 남긴 산업유산(수풍수력발전소, 부전강·장진강·허천강수력발전소, 흥남질소비료공장, 아오지 중화학공장, 황해제철소, 청진제철소, 성진 고주파중공업소, 평양 군수공장 등)과 소련의 지원으로 공업화를 추진해 1970년대 초반까지 남한보다 훨씬 잘 살았다. 그리고 그와 같은 경제력을 이용해 제3세계(비동맹 기구) 외교에서 훨씬 앞서 나갔으니 1970년대 중반까지도 북한은 외교에서 대한민국에 확실한 우위를 점했다.
당시 북한은 제3세계 국가에서 서방 제국주의로부터 막 독립한 매력적인 '비(非)백인 산업화 소국'의 발전 모델로 비쳤다. 특히 아프리카 대륙에서 그러했으니, 거의 모든 나라가 북한과 수교했고 우간다, 앙골라를 비롯한 몇몇 나라는 강력한 우방 체제를 구축했다. 위에서 말한 모리타니아 공화국도 그중의 하나였으니 모크타르 울드 다다(Mokhtar Ould Daddah) 초대 대통령과 무함마드 후나 울드 하이달라(Mohamed Khouna Ould Haidalla) 제4대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했다.
특히 모크타르 울드 다다 대통령은 1967년과 1974년 두 차례에 걸쳐 북한을 방문하여 친교를 과시했지만, 지금은 위와 같은 꼴이 됐다. 이는 중·러에게만 의존하는 북한의 한심한 외교력을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한데, 우리 대한민국도 북한 못지않게 외교에서 질질 싸고 있으니 북한으로서는 찌질이 안규백이 국방장관에 앉아 있는 일과 더불어 여간 다행스럽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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