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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딕' 속 일등항해사 스타벅그리 멀지 않은 옛날의 우화 2026. 7. 21. 22:10
우리나라는 고래잡이가 전면 금지된 포경금지국이다. 1986년부터 국제포경위원회(IWC / Internatinal Whaling Commission)의 결정을 수용한 결과이다. 반면 일본은 고래잡이가 자유롭다. 일본은 2018년 9월 브라질에서 열린 IWC 총회에서 자신들이 제출한 제한적 상업 고래잡이 허용안이 부결되자 이에 반발해 그해 12월 전격적으로 탈퇴를 선언했다. 이에 포경을 반대하는 대표 국가 호주와 뉴질랜드에서는 외무 장관 명의의 즉각적인 비난 성명을 내었고, 영국 환경부 장관을 비롯한 각국의 비난 성명이 이어졌다.
우리나라는 9월 브라질에서 열린 IWC 총회에서 특유의 눈치보기로 기권표를 행사했고, 이후 일본의 탈퇴에 대해서도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았는데, 그때 나는 좀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이제부터 동해의 고래는 모두 일본 차지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물론 일본이 동해에서만 고래잡이를 하지는 않겠지만 왠지 동해의 어족자원을 속수무책으로 빼앗긴 기분이었다. 알려진 대로 동해의 고래잡이는 선사시대부터 1980년대까지, 수천 년 간 우리의 주된 생업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입구의 3D 처리한 울주 반구대 암각화 속 그림 
배마다 10~20명이 타서 작살을 내리꽂는 광경이 그려진 울주 반구대 암각화 고래잡이 그림 
<울산시지> 1987년판에 실린 울산 장생포항의 고래 / 1970년대 장생포에서는 한 해 700~800마리의 밍크고래를 포획했다. 
'만원짜리를 물고 있는 개' / 울산 장생포 고래문화마을에 조성된 '장생포 옛마을' 입구에 옛 영화를 상징하는 이 같은 조형물이 세워졌다. 연합뉴스 DB 고래잡이를 반대하는 이유는 뜻밖에도 선한 마음씨 때문이다. '그깟 인간의 짧은 미감(味感)을 만족시키기 위해 애꿎은 동물 하나가 오랜 시간 고통 속에 몸부림치다 죽어야 하는가'하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목소리로 만만치 않으니, 대상의 덩치 차이가 있을 뿐 고래를 잡는 것과 낚시를 하는 것이 뭐 다를 게 있냐는 주장을 한다. 덩치를 논하자면 우리가 좋아하는 참다랑어(일반적으로 참치라 불리는)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아래는 고래잡이 찬성론자의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포획 수 관리에 의해 개체수와 생태계를 제대로 유지할 수 있다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포경 반대 국가는 그에 대한 논리적 반대를 못하고 '포경은 구식', 또는 불쌍하다는 감정적 이유, 즉 자신들의 가치관에 상반된다는 이유로 반대한다. 이것은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
허먼 멜빌(Herman Melville, 1819~1891)이 <모비딕/Moby Dick>을 쓸 때는 당연히 포경 논쟁은 없었다. 멜빌은 뉴욕의 부유한 무역상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12세 때 아버지의 사업 실패와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가세가 기울었다. 이후 생계를 위해 은행 종업원, 농장 일꾼, 시골학교 교사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포경선 선원이 되어 태평양 등의 바다를 떠돌았다. 그는 그 시절의 생생한 경험을 그려낸 <모비딕>이란 소설을 1851년 발표했다.
여담을 덧붙이자면 1851년은 우리나라 철종 2년으로, 그해 4월 프랑스 포경선인 나르발호가 전라도 나주목 現 신안군 비금도 앞바다에서 좌초되었다. 이때 조선 관헌들은 표류된 20여 명의 선원들을 구출하고 식량과 의복을 제공하며 인도주의적인 보호를 제공했다. 이 사건은 병인양요(1866년)에 15년 앞서는 한국과 프랑스 간의 최초 접촉이었는데, 이것을 보더라도 당시 세계적으로 고래잡이가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
서양에서 독도를 이르는 리앙쿠르 암초(Liancourt Rocks) 역시 1849년 독도를 발견한 프랑스 포경선 리앙쿠르호의 이름에서 유래했던 바, 당시도 동해는 고래잡이의 보고였던 것 같다. 소설 <모비딕>에서 에이해브(Ahab) 선장이 자신이 평생을 뒤쫓던 흰 고래 모비 딕을 발견해 사흘간의 사투를 벌이는 곳도 일본 근해인데, 어쩌면 그곳이 동해일는지도 모른다.

리앙쿠르 암초가 표기된 세계지도 
구글뿐 아니라 대부분의 세계지도가 그렇다. <모비딕>은 포경선 피쿼드(Pequod)호의 에이해브 선장이 자신의 다리를 한쪽 앗아간 거대한 흰 고래 '모비 딕'에게 복수하기 위해 벌이는 광기 어린 추격전과 그 고래와의 사투를 그린 이야기이다. 이 소설은 단순한 모험담을 넘어 인간의 집착, 자연의 무자비함, 신과 운명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담은 거대한 담론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이 소설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 일부 작가들만 작품성을 인정했을 뿐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으니, 그가 1891년 72세에 죽을 때까지 겨우 3,200부가 팔렸다고 한다.
하지만 소설의 가치는 그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1919년에 부활했다. 미국의 작가이자 평론가인 칼 반 도렌이 <모비딕>을 미국 낭만주의의 정점이라고 극찬하면서부터인데, 이후 <모비딕>은 재평가받기 시작했고 미국에서 멜빌은 단테, 셰익스피어, 밀턴, 도스토옙스키에 견주는 위대한 작가의 한 사람으로 평가받았다. 미국뿐 아니라 영국에서도 크게 인기를 끌었으니 <모비딕>은 서머셋 몸이 선정한 세계 10대 소설의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모비딕> 초간본 
허먼 멜빌 
에이해브 선장이 좇던 모비 딕과 동종(同種)의 향유고래 오래전 <모비딕>을 읽었을 때의 감상평을 말하자면 우선 지루했고 특별한 감동도 없었다. (책도 무지 두껍다) 하지만 이 소설을 영화화한 <백경(白鯨)>은 재미있게 보았다. <백경>은 흰 고래라는 뜻으로 1956년 제작된 그레고리 팩 주연의 어드벤처물이다. 에이해브 선장 역을 맡은 그레고리 팩의 광기 어린 연기와, 모비딕과의 사투에서 피쿼드호가 침몰한 후 홀로 살아남은 선원 이스마엘은 아직 기억에 남아 있다.
이스마엘은 모비딕과의 싸움에서 목숨을 잃은 친구 퀴퀘크 소유의 나무 관(시체 보관용 상자)을 구명튜브 삼아 붙잡고 바다를 표류하다 근처를 지나던 포경선 레이첼호에 의해 극적으로 구조되며 유일한 생존자이자 목격자가 된다. 이스마엘과 친하게 지내던 온몸에 기괴한 원주민 문신을 새긴 남태평양 출신의 작살잡이 퀴퀘크도 기억에 남고, 시종 침착한 성격의 소유자로 그려진 1등 항해사 스타벅의 얼굴도 떠오른다. 요즘 핫한 커피숍 스타벅스는 바로 그의 이름을 갖다 붙인 것이다.

영화를 표지로 한 소설 <모비딕> 
포경선 피쿼드호의 에이해브 선장은 배의 마스트에 스페인 금화를 못박아 전시한 후 흰 고래를 발견한 사람에게 금화를 통째로 주겠다며 선원들의 사기를 북돋웠다. 
에이해브 선장의 모비 딕을 향한 집착 
에이해브 선장에 충고하는 일등항해사 스타벅 

모비 딕을 발견하고 접근하는 에이해브 선장 



모비 딕과 사투를 벌이는 에이해브 선장 스타벅스 논쟁이 한창일 때 누군가는 "소설 속 스타벅이 커피를 너무 좋아해 그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소개하기도 했지만 그건 틀린 얘기다. <모비딕>에서 스타벅은 커피광(狂)이기는커녕 커피를 타 마시는 장면도 등장하지 않는다. 스타벅스는 1971년 세 사람의 동업자가 미국 시애틀에서 커피상점을 열 때 시애틀이 태평양을 바라보는 무역항이라는 데 기인했으라는 것이 중론이다. 동업자 중 누군가가 <모비딕>을 감명 깊게 읽었으며, 차분하고 이성적인 성격의 항해사 스타벅을 특히 좋아했음이다.
스타벅은 모비 딕을 잡겠다는 일념으로 광인(狂人)에 가까운 행동을 보이는 에이해브 선장을 향해 다음과 같은 충고를 한다.
"말 못 하는 짐승에게 복수를 하겠다니요! 그 고래는 그저 맹목적인 본능으로 선장님을 공격했을 뿐입니다! 이것은 광기입니다! 이성 없는 존재에게 분노를 터뜨리는 것은 신을 모독하는 짓처럼 보입니다, 선장님."(Vengeance on a dumb brute!" cried Starbuck, "that simply smote thee from blindest instinct! Madness! To be enraged with a dumb thing, Captain Ahab, seems blasphemous.)
"저는 고래를 잡으러 이곳에 왔지, 선장님의 사적인 복수를 도우러 온 것이 아닙니다. 선장님이 복수에 성공한들 그것이 난터켓(미국 매사추세츠주의 아름다운 휴양 섬) 시장에서 기름 몇 통의 가치라도 되겠습니까?"
1, 2차 특검이 먼지까지 털었을 것 같은데도 오늘, 종합특검 수사기간을 8월 23일까지 연장하는 이른바 3차 종합특검법안이 국민의힘 필리버스터를 가볍게 뚫고 본회의를 통과했다. 수사 인원도 150명으로 증원한다고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체 무얼 바라 실익도 없는 특검을 이토록 밀어붙이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마치 허상의 고래를 만들어 좇는 듯도 하다. 그의 밑에는 관료들이 피쿼드호의 선원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을 터인데, 만류하는 스타 벅 같은 사람도 하나 없는 것 같다.

'3대 특검법'의 국무회의 의결 / 2025년 6월 10일 이재명 정부의 '1호 법안'으로 상정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특검법이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민생은 갈수록 어려워만 가는데 이재명은 아직도 일모도원(日暮途遠)이다. 이번에도 거부권 행사는 없을 것이다. '그리 멀지 않은 옛날의 우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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