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맵고 시원했던 둔촌동 초천약수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6. 8. 4. 20:30
胡椒(호초)는 매운맛을 내는 양념 '후추'의 한자말이다. '호초'가 소리 내기 좋게 '후추'로 바뀌었다.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유럽인들이 인도 항로를 개척한 것이 향신료를 구하기 위함이라 해서 이해가 잘 미치지 않았는데, 지금은 후추를 구하기 위해서라고 명확히 가르친다고 한다. 물론 후추도 인도의 향신료 중의 하나였지만 후추가 대종을 이루었기에. 아무튼 후추가 세계사를 바꾸었음은 분명하다.
후추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정확한 연도는 알 수 없으나, 고려 시대에 송나라와의 교역이나 원나라와의 관계 속에서 처음 전래된 것으로 추정한다. 공식 문헌 기록으로는 <고려사>에 공양왕 1년(1389) 유구국(오키나와)에서 후추를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 때 들어온 외국 물건에는 모두 胡 자가 붙었다. 이를 테면,
호두(胡桃, 서역에서 들어온 복숭아 모양의 열매), 호밀(胡麥, 중앙아시아 등지에서 전해진 보리 종류), 호떡(胡餠, 중국 북방지역에서 전래된 떡), 호적(胡笛, 서남아시아에서 원나라를 거쳐 들어온 취악기), 호주머니(바지에 직접 붙어 있는 주머니 / 우리나라는 본래 호주머니가 없었고 복주머니와 같은 것을 부착하고 다녔음) 등이다. 물론 호초(후추)도 그때 들어왔다.
다시 胡椒로 돌아와 말하면, 호초가 들어오기 전에 우리나라에는 초(椒)가 있음이었다. 椒는 산초나무로, 그 열매가 알싸한 맛을 내는 까닭에 우리나라의 고유의 향신료로 쓰여 왔다. 오늘 말하려는 둔촌동 초천(椒泉) 역시 물맛이 알싸했기 붙여진 이름이다. 쉽게 말하자면 천연탄산수였던 것이다.

우리가 많이 보아온 산초나무 열매 
천연탄산수로 유명했던 둔촌약수터 / 지금은 둔촌고등학교 내에 표석만 남았다. 둔촌동은 강동구에 위치한다. 앞서도 언급했거니와 서울시 강동구 둔촌동은 고려 말의 학자이자 정치가인 이집(李集, 1327~1387)의 호 둔촌(遁村)에서부터 비롯됐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둔촌은 '시골로 피해 숨다'는 뜻이지만 실은 이집의 강골 성향을 반영한 아호이니, 그는 공민왕 17년(1368년) 신돈의 전횡을 탄핵하였다가 박해를 받고 멀리 남경의 촌구석까지 달아났다.
이후 남경 부근의 일자산(一字山) 토굴에 숨어 생활하다 신돈이 실각한 후 개경으로 돌아갔는데, 이집은 이때 은거 당시의 고난을 잊지 않고 새기려 호를 둔촌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실제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둔촌동 보훈병원 뒤의 일자산 둔굴은 그가 은거했던 곳이라 전하며, 조선 현종 10년(1669) 둔촌동과 가까운 암사동 옛 암사(岩寺, 바위 절) 자리에 이집을 기리는 구암서원이 세워졌다.

둔촌동 산8-18 일자산 둔굴 
일자산 둔굴 안내문 / 플레이트 계단 밑에 둔굴이 있다. 
암사동 산1-1 구암서원터와 구기비(舊基碑) 잘 알려지지 않은 얘기지만 둔촌동 보훈병원이야말로 둔촌동 초천을 증거하는 유산이다. 조선 후기의 문신 홍경모가 경기도 광주군의 연혁·인문지리·행정 등을 수록하여 1847년에 편찬한 읍지 <중정남한지/重訂南漢志>에도 초천(椒川)약수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초천약수는 근래에 들어 재발견되었던 듯하니 <매일신보>1938년 6월 9일 자 기사에는 경기도 광주군 구천면 둔촌리에서 7종의 유효 성분을 가진 약수가 발견되었으며 위장병과 피부병 등에 효험이 있다는 기사가 실려있다.

약수(藥水) 발견 기사가 실린 <매일신보> 이곳 우물의 알싸한 물맛을 본 광주군 구천면 길리(현 강동구 길동)에 사는 박흥업 씨가 조선총독부 위생과에 성분을 의뢰했고 그 결과 7종의 유효 성분을 가진 광천수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다는 것인데, 이후 이곳으로 전국의 위장병, 피부병, 산후병 등을 가진 환자들이 몰려들어 아침부터 줄을 섰다는 여러 신문기사를 찾을 수 있다. 아래 <경향신문>에 난 둔촌약수터의 위치가 둔촌동 보훈병원과 겹치는 바, 환자들이 몰린 그곳에 자연스럽게 병원이 위치하게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1983년 7월 2일자 <경향신문> 그런데 이 <경향신문>의 기사는 1983년 7월 2일 자로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이다. 즉 그때까지도 약수터가 존재했던 것이니 나의 뇌리 속에 둔촌약수터의 풍경이나 알싸한 물맛이 잔존할 만하다. 어린 나는 둔촌약수의 물맛에 푹 빠졌던 것일까, 이곳에 같이 왔던 아버지께서 "배 아프니, 너무 많이 마시지 말라"고 했던 말도 생각이 난다. 표석 안내문에 따르면 이곳에서 솟아나는 천연탄산수는 지금의 생수처럼 사대문 안 각 가정에 배달되기도 했고, 상탕·중탕·하탕이 있었다고도 하는데, 그것까지는 기억이 안 난다.
이와는 별개로 박경룡의 <서울 역사 이야기>에도 둔촌약수터에 얽힌 전설이 실려 있다. 월선이라고 하는 기생에 관한 이야기다. 월선은 자신이 사모하던 선비가 당파싸움에 휘말려 죽음을 당하자 형리를 매수하여 시신을 빼내 둔촌약수터 부근에 무덤을 만들고 시묘살이에 들어갔다. 그러던 중 월선은 그의 미모에 흑심을 품은 젊은이에게 능욕을 당하고 월선은 원통함에 무덤 옆 소나무에 목을 맨다. 다음 날 새벽, 동네 나무꾼이 나무를 하러 산을 올랐다기 이를 보았고, 급히 소나무에서 내려 약수터에서 물을 떠서 마시게 하니 월선의 숨이 돌아왔다고 한다. 이후 월선은 입산하여 여승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아무튼 이렇게 무더운 날은 차고 알싸한 천연탄산수가 최고인데, 아쉽게도 둔촌약수는 도시화에 밀려 사라져버렸다.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초정리에서 생산되는 초정약수라도 배달시켜 먹어야 할는가 보다. 초정약수의 '초정(椒井)' 역시 椒 자를 쓰는 바, 천연탄산수임이 틀림 없겠는데 물맛은 내 기억 속의 둔촌약수보다 조금 슴슴하다.

미디어데일의 초정약수 사진 

둔촌약수터 표석과 표석 뒷면의 안내문 
부근의 중앙보훈병원 
길 건너로 일자산 입구와 
옛 둔촌주공아파트 자리에 지어진 올림픽파크포레온 아파트 단지도 보인다 
근방에 '약수터'라는 버스 정류장도 존재한다. 
일대의 도로명인 진황도로(秦皇島路)는 강동구의 자매도시인 중국 허베이성 친황다오(진황도)시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는데, 중국에도 둔촌로나 천호로 같은 게 있는지 모르겠다. '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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