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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착한 사마리아인 법' 이야기(III)
    신 신통기(新 神統記) 2019. 7. 10. 00:40

     

    * 성서의 '착한 사마리아 사람'과 기독교 해석의 오류.


    소개가 늦었지만 성서에 나오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누가복음 10:29-37)



    로마 린다 의과대학의 착한 사마리아인 상

    캘리포니아 로마 린다 의과대학 메디컬 센터 앞에 이 브론즈를 세웠다. 아마도 인명 중시 사상을 강조하는 뜻에서 브론즈를 만든 듯한데, 죽어가는 유대인을 모른 척 지나가는 유대 제사장과 레위인을 세워놓은 것이 인상적이다.


    렘블란트의 '착한 사마리아인'

    렘블란트는 성서의 착한 사마리아인을 주요 작품 소재로 삼았다. 그래서 이에 관한 동판화와 드로잉 등 여러 작품을 남겼는데, 위 그림은 1930년대에 그려진 유화이다. 착한 사마리아인이 여관 주인에게 피해자를 신신당부하는 장면을 그렸다.(26x21cm. 영국 런던, 윌리스 컬렉션 소장)


    반 고흐의 '착한 사마리아인'

    다른 화가들과 달리 성서 스토리의 소재 삼기를 즐기지 않던 고흐였지만 '착한 사마리아인'과 '피에타'의 두 작품은 들라크르와의 그림을 모사해 남겼다. 피해 유대인을 힘겹게 말 위에 얹는 착한 사마리아인을 그렸다.(1890년 작. 73x59.5cm. 네덜란드 오테를로, 크뢸러 뮐러 미술관 소장)



    거창한 쓰임새와 달리 예수가 인용한 이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는 간단하다. 옛날에 한 유대인이 길을 가다 강도를 만나 옷을 모두 빼앗기고 흠씬 두들겨 맞아 빈사의 지경이 되었는데, 이를 본 유대교 제사장과 제사장 직급의 레위인도 모른 척 지나갔지만, 이교도이자 이방인인 사마리아인은 그 유대인을 정성껏 치료하고, 나아가 제 돈을 들여가며 돌보았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상의 스토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유대인과 사라미아인 두 종족간의 역사적 배경을 알 필요가 있다. 마침 그에 관한 내용을 '교회가 곧 성전이라는 착각'이라는 글에 실었던 바, 그 내용을 옮겨 적기로 하겠다.


    이미 여러 번 설명한 대로 솔로몬 왕의 사후 이스라엘은 북이스라엘 왕국과 남유다 왕국으로 분열된다.(BC 931년) 남북 분단기간 동안 북이스라엘 왕국은 남유다와는 내내 적대관계였을 뿐더러(우리나라 남북한처럼) 앗시리아에 병합된 약 150년의 기간 동안 앗시리아인과의 혼혈이 이루어져 같은 민족이라 부르기도 어색할 지경이 되었다.(그들의 명칭도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사마리아 사람으로 불렸는데, 이는 분단시대의 북이스라엘의 수도가 사마리아였던 까닭이다) 


    그리고 그들은 훗날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 원정 시절, 다시 그리스인과의 2차 혼혈이 이루어져 정통 유대인과는 더욱 멀어지게 된다. 이에 사마리아 사람은 유대인과는 아예 다른 민족이 돼버리고 마는데, 그동안 그들의 여호와 숭배 신앙은 이민족의 종교와 혼합돼 본래의 색깔마저 상실한다. 두 민족이 결정적으로 원수가 된 것은 기원전 128년 하스몬 왕조 시절에 시작된 전쟁으로, 하스몬의 하르카누스 왕은 이때  사마리아인의 그림신 산 성전마저 완전히 파괴시켰다. 그 두 민족은 그와 같은 불편한 상태로서 예수 시대를 맞게 된 것이었다.


    ~ 신약성서에 등장하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에 대한 일화는 그들과 유대인과의 희미한 핏줄의 유대(紐帶)를 말해주는 예이다. 한때 100만에 이르렀다는 사마리아인은 지금은 800명 정도만 남아 있다고 하는데, 정서적으로나 외형적으로 유대인보다는 아랍인이나 팔레스타인인에 가깝다고 한다.



    사마리아의 위치

    사마리아는 옛 북이스라엘 왕국이 다스렸던 위의 지역에 대한 통칭이나, 북이스라엘 왕국의 수도였던 도시를 지칭하기도 한다. 또 다른 이름 세바스테(Sebaste)는 사마리아의 로마식 호칭이다.


    오늘날의 그리심 산(왼쪽)과 에벨 산


    그리심 산 정상의 사마리아 성전 유적

    사마리아인은 자신들의 메시아가 이 산 정상으로 강림한다 믿고 있다.

    그리심 산 정상의 사마리아인 축제

    그들이 둘러싸고 있는 중앙의 두루마리는 '사마리아 5경'(모세 5경)으로 사마리아인의 경전이다. 원본은 그리스도 시대 이전에 만들어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구약성서 사본 중의 하나이다.


    사마리아인의 유월절 축제

    그들은 아직도 구약의 율법 대로 어린 양을 잡아 번제(燔祭)한다.


    수도 사마리아의 유적

    북이스라엘 왕국은 수도를 세겜, 페느엘, 디르사에 이어 사마리아로 옮겼다. 북이스라엘 왕국 당시의 유적은 앗시리아에 의해 파괴되었고 지금 남아 있는 유적은 기원전 1세기 헤롯 왕 때의 것이다.

     

    수도 사마리아의 유적

    헤롯 왕은 사마리아를 재건하고 로마식 이름인 세바스테로 개명했다. 그는 위의 포룸과 극장 외에 여러 건물을 건축했으나 66~70년 유대 독립전쟁 시 대부분 파괴되었다.


    황폐화된 유적

    사마리아의 유적은 20세기 초 미국 하바드 대 고고학 팀에 의해 일괄 발굴되었으나 이후 돌보는 사람이 없어 다시 황폐화되었다. 자신들의 직접적인 선조가 아닌  탓에 팔레스타인인도 이스라엘인도 무관심하니 극장을 비롯한 모든 건물들이 미복원 상태로 방치돼 있다. 



    예수가 인용한 이 이야기에는 메시지가 분명하다. 좁은 유대 땅에서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이웃끼리 서로 화합하여 잘 살라는 것이다.(앞서도 얘기했지만 유대 · 사마리아 · 갈릴리 땅을 다 통틀어도 겨우 우리나라의 호남지방 면적에 불과하다) 그러면서 예수는 동족인 유대 제사장과 (전통적으로 제사 일을 맡아보던) 레위인을 들먹인다. 그런 자보다 선한 마음씨를 지닌 사마리아 사람이 이웃으로써 훨씬 더 바람직하다는 것이었다.(이 예수의 말에는 다른 알레고리칼한 해석을 들이댈 필요도 없다. 예수가 말한 그대로, 성서에 써 있는 그대로 이해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위 착한 사마리아인의 스토리에 관한 다소 엉뚱한 글을 읽었다. 여기서 엉뚱하다 함은 단지 내 생각일 뿐, 그 글은 이미 기독교 내에서 공인된 글로 인터넷에서도 같은 취지의 글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 글들의 요지는 빈사의 피해자를 그냥 지나친 파렴치한 유대 제사장과 레위인에 대한 변명으로서, 요약을 하자면, 그들이 빈사의 유대인을 도와주지 않은 까닭은 파렴치하거나 몰인정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죽은 사람을 만지면 부정을 타 제사를 드릴 수 없기 때문에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율법 상 어쩔 수 없이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글들이 공통적으로 예시한 율법이 레위기의 것인데, 그 대목은 다음과 같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 말하여 이르라.

           그의 백성 중에서 죽은 자를 만짐으로 말미암아 스스로를 더럽히지 말려니와(레위기 21:1)


    또 한 가지, 유대 제사장과 레위인에 대한 변명으로 올라온 내용은, 오히려 그들의 현명함을 칭찬하는 글이었다. 당시 예루살렘에서 여리고 가는 길은 아주 유명한 강도 출몰지역이었는데, 그 방법도 교묘해서 여자나 어린 아이를 밑밥으로 쓰는 경우도 많았다는 것이다. 즉 여자나 어린 아이를 일부러 다친 척 뉘여놓고 행인이 말에서 내리면 바로 덮쳐 금품을 빼앗고 상해를 입히기 때문에 말에서 내리는 행위는 매우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글은, (여호와께) 제사를 올려야 되는 제사장이나 레위인은 특히 조심을 해야 한다고 덧붙이며, 이러한 전후사정도 모르고 그들을 나쁜 사람이라 매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 길에서는 그러면 안 된다는 것쯤은 상식적인 일이었다고 소개하며, 유대 제사장이나 레위인은 죽게 된 사람을 못본 척 지나친 냉혈한이 아니라 율법에 따라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며 자신을 위험에서 보호할 줄 아는 현명한 사람이라고도 했다.

     

    단언컨대 이상의 글을 쓴 사람들은 여러모로 성직자로서 자격이 없는 자들이다. 한 묶음으로 싸잡아 말하자면, 유대 제사장과 레위인이 얼마나 특별하고 고귀한 직책인지 모르겠지만, 또 그들이 하는 일이 얼마나 고결한 것들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들이 사람의 생명보다 존귀할 수는 없다. 그들이 그렇듯 생명보다 직분을 우선시하는 것은 무릇 구약성서의 가르침 때문이다.(일반적 생각과는 다르게) 따라서 성서의 글귀에 눈이 가리워질 수밖에 없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가지만, 사람의 생명을 구하지 않고 지나쳐버린 행동에 당위성을 두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형편없는 사고방식이다.  


    더불어 윗 글에는 창작적 요소도 매우 다분하니, 당시 예루살렘에서 여리고 가는 길이 아주 유명한 강도 출몰지역이었다든가, 쓰러진 척 가장해 강도짓을 했다든가 하는 것들은 모두 글쓴이가 지어낸 말들이다. 당대의 예루살렘 · 여리고 길은 단 하나밖에 없는 통행로로서, 두 대도시를 잇는 까닭에 노상강도가 출현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길이 유명한 강도 출몰지역이라는 것은 역사적으로 전혀 근거가 없는 말이며, 특히 쓰러진 척, 죽은 척 가장하여 행인들을 현혹했다거나, 말에서 내리지 않는 것이 상식이었다거나 하는 둥의 이야기는 그저 제사장과 레위인을 변호하기 위한 100% 창작일 뿐이다.


    이상의 것들은 그들이 말을 탔을 것이라는 가정에서 빚어낸 이야기이나, 그들을 포함한 대다수의 행인들은 도보로 그 길을 걸었을 것이다. 이것이 상식적인 생각이다. 상식의 단어가 나왔으니 말이거니와, 윗 글의 저자는 예수를 비상식적인 사람으로 만들었음에도 그 실수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글쓴이는 그 길에서 사람을 도우면 안 된다는 것은 상식적인 일이었다고 설명했지만, 예수가 제자들에게 말한 것은 분명 그러한 길에서 사람을 도우라고 하는 '비상식적인' 가르침이었다.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만일 윗 글을 트럼프의 딸 이방카나 유대인 제사장이 썼다면 혹 공감할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기독교인이 자판을 두드릴 일은 아닐 듯싶다.



    2017년 예루살렘 '통곡의 벽' 앞에 선 이방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승인케 만든 장본인이 아닐까 한다.( '하나님이 장난친 도시 예루살렘 I')


    남편 재러드 쿠슈너와 이방카

    이방카는 2009년 유대인 재러드 쿠슈너와 결혼하며 장로교 기독교에서 유대교로 개종한다. 이에 그녀는 마리 이바나 트럼프의 본명 외에 야엘이라는 유대식 이름을 갖게 되는데, 개종의 이유는 재러드 아버지가 보수주의 유대교도(Modern Orthodox)였던 까닭이다. 물론 재러드도 마찬가지다.  


     


    예수는 이르기를,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했다.(마태복음 5:17) 그리고 장황할 정도로 길고 오래 구약의 율법에 대한 개선 방법을 가르친다.(이것이 이른바 신약 New Testament이다)


    같은 장에 실려 있는 내용은 아니나 위 착한 사마리아인에 관한 이야기도 율법의 미진함과 폐해를 지적하며 (제자들에게) 너희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인데, 요즘 기독교인들이 그 잘못된 율법을 두둔하는 이유를 정말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여기서 내가 안다는 것은 기독교도들의 잘난 체와 똥고집이고, 모르는 것은 진실을 애써 덮으려는 그들의 마음이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옛 길


    옛 길의 위치



    예전 사진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요즘 길


    '착한 사마리아인 여관'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언덕 마루에 위치한다. 이곳은 히브리어로는 '붉은 언덕'이란 뜻의 '마알레 아두밈'으로, 아랍어로는 '자비의 여관'이란 뜻의 '칸 엘- 하트루라'라 불리는데, 오히려 아랍어 지명에 의미가 실려 있다.


        예전 사진


    최근 사진(본관 뒤쪽으로 부속건물이 연결됐다)


    '칸 엘- 하트루라'의 가장 오래된 사진



    마당의 비잔틴 시대 유적

    이곳이 성서의 착한 사마리아인과 연관된 곳이라는 것은 그저 전승일 뿐이며 이 건물도 1903년 오스만 제국 시대에 경찰서 건물로 지어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비잔틴 시대, 그리고 그 이전의 유물들이 다수 출토됐던 바, 그저 전승으로만 취급하기도 힘들 법하다.


    지금 이곳은 박물관으로 쓰인다.(입구 사진)


     * 그림 및 사진의 출처: google 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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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스페르츠의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