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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무엘에 관한 잡담(III) - 혼령과 사울 왕 죽음의 진실
    신 신통기(新 神統記) 2019. 7. 12. 00:32


    앞서 '사무엘에 관한 잡담 II'를 이야기할 때만 해도 '올해는 확실히 예년보다 덜 덥다'고 여유를 부렸던 것 같은데, 때가 되니 여지없이 무덥다. 그래서 이번에도 납량특집으로 내가 재미있게 본 로맨틱 호러물 하나를 소개하려 하는데, 어쩌면 이 영화가 II편에서 물은 질문의 답이 될는지도 모른다. II편을 쓴지도 오래됐으니 그 질문을 다시 상기해보자면,   


    앞서 I 편에서 말했듯 사울 왕은 다음날의 길보아 산 전투에서 대패해 세 아들과 함께 죽음을 당하는 바, 사무엘의 혼령이 말한 예언은 정확히 들어맞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사람들이 예언의 정확성보다도 더 시선이 꽂히는 쪽은 당연히 무당이 불러낸 사무엘 혼령이다. 나 역시 예전부터 이 유령의 정체를 궁금히 여겨, 여기저기 물어도 보고 책도 찾아보고 했지만 이에 대한 명확한 답은 여지껏 찾지 못했다. 솔직히 성서학자들은 이에 대해 말하기를 꺼려하는 분위기이니, 어느 쪽을 답해도 성서의 본질과는 벗어나기 때문이다. 그 어느 쪽이란 것을 정리하면 대강 다음의 3가지로 대별된다.


    1. 이때 나타난 유령은 영매의 초혼(招魂)에 의해 나타난 사무엘의 진짜 혼령이다.


    2. 이때 나타난 유령은 사무엘의 혼령이 아니라 무당이 복화술 같은 속임수를 이용해 사무엘의 혼령이 나타난 양 꾸민 것이다.


    3. 이때 나타난 유령은 무당과는 별개로 여호와께서 하데스(Hades, 영계)에서 불러 올린 사무엘의 진짜 혼령이다.  


    과연 이 가운데 답이 있을까? 그리고 그 답은 성서의 본질과 맞는 것일까?



    "어찌하여 나를 불러 올려 성가시게 하느냐?"

    왕짜증을 내는 사무엘의 영혼.(사무엘상 28:15) 사진은 영화 '컨저링'의 스틸컷.



    2006년에 개봉된 영화 '일루셔니스트'는 19세기 합스부르크 왕조 시절,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홀연히 나타나 사람들의 넋을 뺀 세기의 마술사 아이젠하임(에드워드 노튼)의 피빛 로멘스를 그린 영화로서, 그 클라이막스는 당연히 아이젠하임이 죽은 소피(제시카 비엘)의 영혼을 무대 위로 불러내는 광경이다.(소피는 황태자 레오폴드의 약혼녀이자 아이젠하임의 옛 애인이다) 이후 영화는 환상적인 마술과 함께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데, 아무튼 이때 무대 위로 불려 올려진 소피의 혼령에 대한 정체는 위에 예시한 답 2번에 가깝다.(그럼에도 영화는 매우 짜임새가 있어 관객들은 시종 긴장을 풀지 못한다)





    소피의 영혼을 불러낸 일루셔니스트


    '일루셔니스트'의 포스터



    꼭 들어맞는 경우는 아니지만 이 영화는 사무엘기에 나오는 사무엘의 혼령에 대한 충분한 답을 선사한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죽은 사무엘이 혼령으로 현현(顯現)하여 사울 왕의 죽음을 예언하는 성서의 내용(사무엘상 28:5-19)에 대해 설명할 길은 실로 막연하다. 그렇지 않는다면 결국 1번이나 3번 답을 택해야 하는데, 그럴 경우 영혼, 즉 귀신이라는 것을 믿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위 질문에 대해 1번(이때 나타난 유령은 영매의 초혼에 의해 나타난 사무엘의 진짜 혼령이다)이나, 3번(이때 나타난 유령은 여호와께서 영계에서 불러 올린 사무엘의 진짜 혼령이다)을 택한다.


    따지고 보자면 사실 이건 무리가 아니다. 성서는 신구약 전반에 걸쳐 이 귀신이란 존재를 두루 인정하고 있어서 성서에서 귀신의 존재나 엑소시즘(악령추방 행위)을 찾아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예수가 매양 하던 것이 귀신을 몰아내거나 귀신들린 자들 속에서 귀신을 내쫓아 병을 치료해주는 일이기도 하거니와, 베드로는 가히 청출어람으로 그의 그림자만 봐도 귀신이 달아날 지경이고,(사도행전 5:15-16) 나아가 예수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바울까지도 귀신들린 자에 대한 엑소시즘을 쉽게 행한다.(사도행전 16:16-18)


    ~ 이런 것을 보면 기독교는 정말로 미신에 가깝다. 그럼에도 목사님들이나 신부님들은 예수나 예수의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는 이른바 신유의 은사를 행한 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떠든다. 그러면서 자신도 슬쩍 그와 같은 능력이 있음을 내비치기도 하는데, 이럴 때면 정말이지 쫓아가서 한 대 쥐어박고 싶다.(미워서가 아니라 정신 좀 차리라고 ^^)


    아무튼 기독교의 세상에서는 사탄 마귀가 도처에 넘쳐 나는데, 가만히 보면 그들은 이런 귀신을 미워하는 게 아니라 교묘히 이용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존재하지도 않는 사탄에 얽힌 일화')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기독교의 최고 신이자 유일신인 여호와마저도 귀신을 애용(愛用)하고 있는 바, 사울의 몸 속에 이 악령을 넣다 뺐다 하며 사람을 가지고 논다.


    ~ 이렇듯 귀신이 범람함에도 국내에서는 여전히 이것들의 개념이 미정립되어서 개역성서 사무엘기의 악신(惡神)은 개역개정판에서는 악령으로 바뀌었다. 반면 영역성서는 변함 없이 evil sprit이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 하시는지라. 사무엘이 이르되, 내가 어찌 갈 수 있으리이까. 사울이 들으면 나를 죽이리이다 하니.....


    이에 사람을 보내어 다윗을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뺴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하시는지라.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죄하게 한지라. 사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왕을 번뇌하게 하온즉 원하건대 우리 주께서는 당신 앞에서 모시는 신하들에게 명령하여 수금을 잘타는 사람을 구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들고 와서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더라.(사무엘상 16:1-23)



    렘블란트의 '사울과 다윗'

    여호와가 사울의 몸에 악령을 주입하매 사울은 정신병자가 된다. 다윗은 수금을 타 그의 정신병을 치료하였던 바, 요즘으로 치자면 뮤직 테라피 같은 것일 텐데, 짐작컨대 사울과의 만남을 위한 사무엘기 저자의 설정으로 여겨진다.(62x50cm. 1629-1631년 경. 독일 프랑크 푸르트, 슈테델 미술관 소장)


    렘블란트의 또 다른 '사울과 다윗'

    (130.5x164cm. 1655-1660년 경. 네덜란드 헤이그, 마우리초우스 미술관 소장)



    말했다시피 위의 사울과 다윗은 이스라엘과 유대의 왕들 가운데 유이(有二)하게 여호와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아 왕위에 오른 자이다. 하지만 사울은 오로지 아멜락 성의 모든 생명(남녀노소 및 가축까지 포함한)을 쳐죽이지 아니한 죄로, 말하자면 쓸데없는 인정을 베푼 죄로 여호와의 노여움을 사게 되고(사무엘상 15:2-11) 이에 여호와는 위의 내용처럼 다윗을 새로운 왕으로 세우려 획책한다. 그와 같은 계획의 도구로써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동원되고 있음이다.


    말하자면 여호와는 악령을 사울의 몸 속에 집어넣어 죄를 짓게 만들고는 그 죄값으로써 목숨을 빼앗은 셈인데, 여기에 시골 마을 엔돌의 무당이 동원되었던 것이다.(선무당이 조연이라니, 정말로 어이없음. 주연 여호와, 조연 사무엘의 혼령과 시골 무당. 이건 정말 아니지 않나? )


    ~ '사무엘에 관한 잡담 I'에서 말한 대로, 여호와는 과거 아멜락 사람에 대한 원한으로서(출애급 시절 히브리인을 공격한 죄로) 사울 왕으로 하여금 아멜락 성을 함락시키도록 명령한다. 그런데 이때 사울은 성의 모든 생명을 진멸하라는 여호와의 명령을 어기고 아각 왕과 그의  모친을 살려준다. 여호와는 사울의 이런 인정을 괘씸히 여겨 결국 길보아 산 전투에서 사울을 죽게 만들고 이스라엘 왕을 다윗으로 교체시켰음인데, 그에 앞서 여호와는 아멜락 성 전투에서 생포된 아각 왕과 그의 모친을 (직접) 칼로 찍어 쪼개 죽인다.(사무엘상 16:32-33/여호와의 잔인함이야 익히 알고 있는 바이나 이건 너무 심했음 )


    이상 보았다시피 여호와는 영(Sprit)이 아니라 변덕스러움과 잔인한 성격의 육체를 지닌 존재이다. 이와 같은 존재를 무엇으로 상상하건 그것은 각자의 마음이겠지만, 사무엘기에서 출몰하는 많은 유령들은 분명 여호와와는 무관한 사무엘기 저자의 창작들이다. 나는 이것을 시대적 한계로 보고 있지만 요즘에도 미신에 목을 메 할매 귀신이나 동자 귀신의 점집을 찾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면 그것이 반드시 미개한 시절 탓이라고는 못할는지 모르겠다.


    다만 사무엘기의 저자는(아마도 한 사람은 아닐 듯하지만) 구약의 저자 중에서도 미신에 대한 믿음이 강한 자임에는 확실해 보인다. 사무엘기의 온갖 귀신들은 필시 그 믿음에의 투영일 터인데 하나님의 주변에까지 귀신들을 끌어다 붙임은 좀 지나치다 싶다.(이와 같은 각본은 좀 짜증나 )


    그런데 따지고 보면 사무엘기 저자의 심정도 딴은 이해가 가니, 한때 사울을 그렇게 좋아해 기름까지 부어놓고는 곧 싫증을 느껴 다윗으로 교체시키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변덕을 달리 이해시킬 방도가 없었을 법도 하다. 사무엘기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사울은 분명 왕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던 사람이다.(사무엘상 11:22) 그럼에도 여호와는 억지로 (기골이 장대한) 그를 추대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만드는데,(11:23-24) 사울은 이에 어쩔 수 없이 왕이 되었음에도 제 나라 이스라엘을 위해 헌신하였던 바, 믹마스 전투를 비롯한 대소 전투에서 승리하며 초대 왕국의 반석을 닦는다.


    하지만 사울은 위에서 보여진 대로 오직 아멜락의 적들을 싸그리 죽이기 않았다는 이유로써 미움을 받아, 대다(代打) 다윗에게 후달리게 되고 결국은 블레셋 군대에 포위돼 비참하게 죽는다.(☞ '사무엘에 관한 잡담 II') 일견 억울해 보이는 그와 같은 사울의 죽음을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이번에도 귀신을 동원하는 수밖에 없었을 터, 결국은 죽은 사무엘까지 혼령으로 출현해 사울을 저주하고 그의 패전을 예언하도록 꾸미기에 이른 것이다.

     


    믹마스 전투 전황도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그의 부하가 믹마스 언덕을 공격하자 사울 왕의 군대가 게바를 공격하고 이에 블셋군이 후퇴하는 상황이 표현됐다.



    전투가 벌어졌던 믹마스 골짜기

    사울 왕의 마지막 전투가 벌어졌던 길보아 산


    사울 왕의 죽음

    사울은 길보아 산 전투에서 화살을 맞고 결국 블레셋 군의 포위 속에 자살을 선택한다. 그는 조국 이스라엘을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오직 여호와의 눈 밖에 난 죄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내가 보기는 의로움으로 인해 '팽' 당한 케이스다. 게다가 그는 후세의 기독교도들에게 스스로 교만하여 하나님께 불순종하다가 죽은 패역한 자로 매도되고 있는 바, 혹시라도 영혼이 존재한다면 수천 년간 스트레스 만빵이었을 듯싶다.



    * 그림 및 사진의 출처: google 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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