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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매에 나온 간송미술관의 불상 2점
    미학(美學) 2020. 5. 25. 06:32

     

    오는 27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케이옥션에서 열리는 경매에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보물 문화재 두 점이 나온다고 한다. 아래의 불상 두 점으로, 간송미술관이 보유한 문화재를 경매에 내놓은 것은 문을 연 이후 82년 만에 처음이란 점에서 떠들썩하지만 사실 이 불상들은 간송미술관 명의의 보물이 아니라 개인 소장품이다. 얼마 전 타계한 전성우 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장이 가지고 있던 물건이라는 얘기다.

     

    뉘앙스가 언뜻 몰래 소장하고 있던 물건이라는 느낌을 주나 그것은 절대 아니고 엄연히 보물로 지정되어 간송미술관 보화각에 전시돼 있던 불상이다. 그리고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해 경매에 내놓았다고 하니 재단을 확장하기 위한 무리한 경영 같은 것을 염두에 두는 사람도 있지만 그 직접적인 이유는 막대한 상속세다. 위에서 말한대로 얼마 전 간송(澗松) 전형필의 장남이던 전성우 관장이 타계하셨는데, 간송 전형필 이래로 수집된 미술품이 5000여 점에 이르는 바, 상속세가 작을 리 없다. 간송미술관의 미술품은 국가가 아닌 개인 소유의 물건이기 때문이다.(다만 국보·보물 등 지정문화재에 대해서는 면세된다)

     

    개인적으로는 특별법 같은 것을 만들어 면세해줄 수 없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우선은 평등이라는 법률상의 원칙에 어긋나고, 그로 인해 야기될 산더미 같은 문제들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 불상 두 점의 경매 소식에 주목하며 안타까워 하는 것은 경매에 즈음하여 느닷없이 제기된 '가품' 의혹 때문이다. 이번 경매에 내놓는 불상은 보물 284호 ‘금동여래입상(金銅如來立像)’과 보물 285호 ‘금동보살입상(金銅菩薩立像)’로 지정된 문화재임에도 말이다.(두 불상의 경매가는 각 15억원씩 30억원으로 추정된다. 물론 그보다 더 올라가겠지만 세금 내기도 바쁠 것 같다)

     

     

     

     

    경험으로 보자면 가품 운운하는 소리가 나오게 된 이유는 우선은 불상이기 때문이고(불상은 이와 같은 경우가 왕왕 있다) 다른 하나는 개인 소장품이기 때문이다. 개인 소장품이라 만만히 본다는 게 아니라 그만큼 잘 알려지지 않아 설명이 부족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찾아보니 아닌 게 아니라 그러한 면이 없지 않은 바, 나름대로 몇 자 덧붙이고자 한다. 먼저 아래의 보물 284호 ‘금동여래입상’에 대한 전문가(국가문화유산포털)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머리 위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정수리 부근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솟아있다. 얼굴은 원만하고 눈은 감고 입을 오므리면서 미소를 짓고 있는 듯하여 보는 이에게 감동을 준다. 꾸밈없는 미소를 띤 얼굴은 삼국시대 불상양식의 특징을 반영한 것으로 이 불상의 격을 높여주고 있다. 아랫배를 조금 내밀고 서 있는 신체는 부드러우면서도 자유로운 자세를 취하고 있다. 

    옷주름도 엄격한 좌우대칭에서 벗어나, 가지런한 듯하면서도 오른쪽 어깨의 옷이 흘러내릴 듯 자연스럽게 표현되었다. 포개진 옷주름은 중국 북위의 조각양식에서 온 것이며, 발목 위로 올라간 옷의 아랫자락은 마치 치마 주름처럼 표현되었는데, 이런 수법들은 얼굴의 표현과 함께 과도기적인 북위 양식의 영향을 거쳐 나타난 새로운 특징이다. 대좌(臺座)는 아래 부분이 8각이며 각 면에는 같은 모양이 뚫을새김되어 있다.”

     

    다만 백제 지역에서 유행했던 봉보주보살상과 일본 초기 불상이 형성한 교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평가를 내려 마치 백제불인 양 설명하고 있음은 유감이니, 이 불상의 시기는 통일신라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면 무난하다. 이것은 무엇보다 불상의 대좌가 제작시기의 명문(銘文)*이 있는 감산사 석조 아미타여래입상(국보 82호)과 판박이기 때문인데, 시대가 가장 좌우되는 옷주름도 통일신라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여겨지는 경주 굴불사 사방불(四方佛, 사면석불)의 동면(東面) 약사불과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다.

     

    * 광배 뒷면에 성덕왕 19년(720) 집사부 시랑 김지성(金志成)의 명복을 빌기 위해 조성했다는 글이 새개져 있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굴불사 사방불은 8세기 중엽 경덕왕 때 조각되었으나 모두 같은 시기에 제작된 것은 아니고 동면과 서면의 불상만이 그때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이 중 특히 동면 약사불은 위 '금동여래입상’과 같은 옷주름을 가지고 있는데, 이와 같은 옷주름은 삼국시대 불상 중 매우 드문 형태이다. 또한 이 불상은 지금 일본에 있는 통일신라 불상과도 부분 부분이 흡사한데, 얼마 전 한국에 일시 귀향한 부처와 여래의 모습은 아래와 같다.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의 일본 소재 통일신라불

     

    감산사 석조 아미타여래입상 대좌(국립중앙박물관)

     

     

    보물 285호 ‘금동보살입상'에 대한 전문가(국가문화유산포털)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머리에는 인동무늬 비슷한 장식이 새겨진 보관(寶冠)을 쓰고 있으며 얼굴은 긴 편이다. 얼굴의 표현은 매우 특징이 있는데, 가늘게 찢어진 눈과 앞으로 내민 입술, 툭 튀어나온 광대뼈가 어울려 토속적 인상을 강하게 풍기고 있다. 삼도(三道)가 없는 긴 목, 원통형의 몸은 삼국시대 불상의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옷자락은 양쪽에 대칭으로 뻗쳐서 새의 날개깃처럼 표현하였는데 매우 인위적이고 도식적이어서 사실감이 없다. 양 어깨에 걸쳐서 내려오는 큼직한 구슬장식은 허리 밑에서 X자 모양으로 교차되는데, 너무 밑으로 쳐진 느낌이다.↘

     

     

     

     

     

    ↖도금이 많이 벗겨져 있는 대좌는 원형으로 단층이며, 끝이 비교적 날카로운 8잎의 연꽃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경상남도 거창군에서 출토되었다고만 전해질 뿐 확실한 유래는 알 수 없다. 양쪽으로 뻗쳐진 옷주름 표현, 구슬장식, 두 손으로 구슬을 잡고 있는 모습 등에서 6세기 말이나 7세기 초의 특징을 보인다.”

     

    이 불상은 출토지 등과 관련해 ‘금동여래입상’과는 반대로 신라불인 양 설명돼 있으나 백제 양식으로 만들어진 통일신라 초기 불상이다. 그 근거로는 여러가지를 복합적으로 찾을 수 있는데, 우선은 머리에 쓴 보관이 중국 남조(~당)의 형식이고 옷주름과 구슬 장식은 동시대의 것으로 분류된 '선산군 출토 금동관음보상입상'(국보 183호)과 흡사하다. 또 구슬 장식은 '부여 규암면 출토 금동 관음보살입상'(보물 195호) 등의 백제불과 유사하며 대좌 역시 같은 양식을 보인다.

     

     

     '부여 규암면 출토 금동 관음보살입상' 부분

     

     

    ※ 후기: 지나친 관심이 부담되었던 것일까, 케이옥션 경매에 나왔던 위 불상 두 점은 응찰자가 없어 유찰되었다가 한참 뒤인 8월 23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후원회의 금전적 지원을 받아 구입했다. 구입가격은 두 점을 합쳐 30억원 이하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문화재청은 간송박물관이 불상을 내놓은 이유가 유물로 인한 상속세가 아니라는 점을 밝혔는데, 국보·보물 등 지정문화재는 상속세가 비과세되고, 비지정문화재라도 공익법인인 미술관 등의 전시에 쓰일 때는 상속세의 징수가 유예된다는 설명이었다.

     

    소문과 달리 실제로는 간송 일가의 문화재 상속세 부담은 거의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으며, 간송 일가의 재정적 압박은 2013년부터 행해온 대중 전시와 문화사업에 따른 결과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간송 측이 말하는 비용은  문화재의 상속과 관련된 게 아니라 부동산 등 문화재 외의 재산에 대한 상속세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제의 불상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특별 공개됐다.(9.28~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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