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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회루 차경(借景)의 미(美)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0. 7. 11. 23:50
한국의 예술과 건축을 논할 때 자연과의 관계를 빼놓으면 딱 절반만 얘기하는 것이다. 한국의 예술과 건축은 규모가 크던 작던 간에 자연과의 조화를 최우선으로 쳤던 바, 그것이 반(半)을 먹고 들어간다. 이렇듯 자연이 예술과 건축을 좌우하는 나라는 아마도 우리나라 외에는 없을 듯싶다. 우리는 그것을 늘 보아 왔고 그래서 너무 눈에 익은 탓에 오히려 모르는 경우가 있지만 외국인들은 우리나라 예술·건축과 자연과의 조화를 경탄해마지 않는다.
그것을 흔히 차경(借景)이라 부른다. '(예술과 건축에) 경치를 빌려다 놓는다'는 것인데 이런 말 역시 우리나라밖에 없을 듯싶다. 얼마 전 문득, 새삼 그 차경을 느낀 뷰(view)가 있어 포스팅하려 한다. 언젠가는 쓰일 때가 있겠거니 해서 찍어온 사진들을 훑어보다가 스쳐 지나가는 경복궁 경회루의 사진에 멈춰 서서 다시 되돌려봤다. 경회루 지붕 서편에 걸린 낮은 구름과 같은 착시를 저 인왕산이 만들어 내고 있었다.
경회루(慶會樓)는 경회루지(池)라는 장방형의 인공연못 위에 지어진 조선 최대의 누각(34.4x28.5m)으로 경복궁과 함께 건립되었으나 1412년 연못을 넓히면서 다시 크게 지어졌다. 이후 임진왜란 때 전소된 것을 1867년(고종 4) 흥선대원군이 재건했으며 팔작지붕에 이익공이다. 공간구성은 철저히 주역의 원리를 좇아 음양을 의미하는 24개의 바깥 사각기둥과 24개의 안쪽 원 기둥을 두었다.
아울러 바깥 24개의 기둥은 24절기를 의미하며, 2층의 12개 난간(軒)은 1년 열두 달을, 16개 기둥과 4개 분합문은 64괘를 의미한다.(16x4=64) 중앙의 3칸은 임금의 자리인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를 뜻하며 8개 기둥은 8괘를 뜻한다.
연못에는 경회루가 놓여 있는 곳과 두 개의 작은 방도(方島)인 만세산까지 총 3개의 섬을 만들었다. 경회루가 있는 곳에도 총 3개의 다리를 만들었는데 각 별과 달과 해를 의미한다. 이 중 해를 의미하는 남쪽 다리가 임금의 통행로인 어교(御橋)다. 경회루는 연산군 때 가장 화려했다 하는 바, 그 이유는 채붕이라 불리는 색실, 색종이, 색 헝겊 등으로 울긋불긋 장식을 했기 때문이니 화려 했다기보다는 무당집처럼 요란하게 경회루를 꾸몄던 것 같다.
경회루의 차경을 즐기려면 2층 누각에 올라가서 봐야 제격이라고 하는데, 2005년 6월 경회루가 일반인에게 처음 개방된 이후 연 1회 정도 누각에 입장할 기회가 주어지는 듯하다. 하지만 오르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개방 기간 내 예약을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인데, 그 예약이 번개 같이 끝나기도 하거니와 운 좋게 잡은 기회가 코로나 19 여파로 사라지기도 한다. 내년에는 운이 닿을런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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