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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천의와 혼천시계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1. 4. 8. 01:00
우리가 세종대왕의 작품으로 자랑을 하며 만원권 지폐의 도안으로 넣은 '혼천의'라고 하는 천문관찰기구는 세종대왕 때의 것이 아니며, 더불어 '혼천의'도 아니라는 사실을 앞서 말한 바 있다.(☞ '혼천의에 관한 진실') 말한 그대로 그것은 혼천의가 아니라 1669년 과학자 송이영(宋以潁)이 국왕의 명에 의해 만든 혼천시계라는 자명종 시계의 일부이다. 그리고 세종 때 만들어진 혼천의는 만들었다는 기록만 있을 뿐 실물은 전하지 않는다. 까닭에 그 당시 정초·박연·김진 등이 만들었다는 천문관찰기구는 그 형태를 짐작하기 힘들다.
그런데 한국조폐공사는 무슨 배짱으로 그것을 혼천의인 양 만원권 지폐에 집어넣었을까? 아마도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일일 것이다. 그것의 용도가 뭔지도 모름은 물론이요, 그 복잡한 기구가 어떻게 조정되며 어떻게 사용되는지도 모르는 채 남들이 혼천이라고 하므로, 그래서 자신들도 그렇게 알고 있었으므로 집어넣은 것이다.(솔직히 그 기구는 도안으로서 욕심이 나니 그 '틀' 자체가 폼난다)
그런데 이렇게 되고 보니 문제가 생겼다. 중국 네티즌들이 "우리 것을 도둑질해 갔다"고 항의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거두절미하고 그에 관한 기사를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이제 보니 그것이 문제화된 것은 만원권 화폐 발행 초기로 생각보다 꽤 오래되었다)
한국은행이 지난 1월 발행한 새 만원권 지폐 도안에 대해 중국 언론이 "한국이 자국 문화를 모두 제 것인 양 도둑질하고 있다며" 소리를 높이고 있다. 문제의 발달이 된 것은 바로 새 만원권 지폐 뒷면에 그려진 천체운행 관측기인 혼천의(渾天儀)다. 신콰이보, 신화통신 등 중국 언론이 최근 앞 다퉈 한국이 혼천의를 비롯해 금속활자인쇄술, 측우기, 콩국(豆醬) 등 엄연히 중국이 발명한 것을 한국이 자국 고유의 것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고 보도해 반한(反韓) 감정과 혐한(嫌韓) 감정이 더욱 격화되고 있다.
1669년 조선조 천문학자 송이영이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혼천의는 국보 230호로 등재돼 있지만 당초 새 만원권 지폐 뒷면 도안 도입을 두고 한국에서도 논란이 많았다. 일부 학계에서는 "혼천의는 중국에서 유래된 것이므로 지폐에 사용하기는 곤란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국은행은 해명 자료를 통해 "중국서 처음 고안됐어도 우리만의 독창성을 갖고 있는 문화유산이다"며 "세종대왕 때 혼천의가 제작됐다는 기록도 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새 만원권 뒷면에 도안된 그림이 혼천시계 전체를 채택했어야 하는데 혼천시계의 일부분인 혼천의만 채택돼 중국의 오해를 샀을 것이라는 주장도 대두되고 있다. 중국은 혼천의는 중국 동한(東漢) 시대 천문학자 장형(張衡)이 발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기원전 300년경 중국의 천문학자 석신(石申), 감덕(甘德), 무함(巫咸) 등과 같은 사람들에 의해 천문에 대한 전통을 이어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네티즌들은 "한국이 자국의 문화를 침탈하려 한다"며 "왜 한국의 지폐에 중국 것을 사용하느냐"고 아우성이다.
중국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에서 발간되는 신콰이보(新快報)는 최근 '한·중 문화 전쟁'이라는 특집기사를 싣고 있다. 이 신문은 한국이 오는 2008년까지 자국의 문화유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려 한다는 '문화 공정설' 등 근거 없는 기사도 보도하고 있다. 신문은 한국이 이처럼 중국 문화유산을 통째로 훔쳐가려고 하는 계획은 2003년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같은 중국의 분노는 2005년 한국이 1000년 전통의 민속축제인 '강릉 단오제'를 유네스코에 세계 무형 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면서 더욱 커졌다. 이를 앞두고 2004년 중국은 "단오절은 중국의 명절이기도 하다"며 "아시아권의 보편적인 공유 문화를 한국이 단독으로 문화유산으로 신청하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중국과 공동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해 논란이 된 바 있다..... (2007. 12. 18 '뉴시스')다른 언론도 이에 주목했다.
22일 발행되는 1만원 권 신권 도안의 ‘혼천의(渾天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고 22일 경향신문이 보도했다. 우리의 독창적 과학창조물인 혼천시계(국보 230호)에서 혼천의만 떼내 신권에 담아서다. 신문은 혼천의가 중국에서 유래된 천문관측기구로, 이를 마치 혼천의가 우리의 대표적 과학유물인 양 혼동할 수 있다고 전했다.
1만원 권 신권 앞면에는 세종대왕 초상화, 뒷면에는 천상열차분야지도와 보현산 1.8m 망원경, 혼천의 등의 도안이 들어가 있다. 신문에 따르면, 서울대 국사학과 문중양 교수는 이에 대해 “혼천시계의 과학적 원리는 기계장치에 담겨있다”며 “혼천의는 시계의 운행에 종속돼 돌아가는 일종의 부속품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문교수는 또 “혼천의는 원래 중국에서 유래된 것으로, 우리 지폐에 사용하기는 곤란하다”고도 했다.
과학사를 전공한 한 문화재위원은 “한국은행 직원이 와서 문의하기에 혼천시계와 혼천의는 성격이 다른 만큼 혼천시계 전체를 사용해야 한다고 답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행 김두경 전 발권국장은 이에 대해 “혼천시계의 박스형 디자인이 화폐에 어울리지 않아 보조 소재로 혼천의를 넣게 됐다”고 설명했다.
신문은 한국은행측이 ‘도안상의 편의’만 고려해 과학적·역사적 의미를 무시했다고 지적했다. 또 이같은 혼선이 빚어진 것은 화폐도안자문위원회에 과학사 전공 학자들이 한 명도 포함되지 않은 탓도 크다고 했다. 한국은행의 화폐도안자문위원회(총 10명)에는 미술사·산업디자인학과 교수 5명이 외부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2007. 1. 22. '조선닷컴')
요점을 말하자면, 중국애들의 주장이 과히 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동양 최초로 지구 자전설을 주장한 천재과학자 홍대용은(지구의 둘레는 9만 리로 하루 12시간에 한 번 돈다고 했다) 1765년 북경에서 60일을 머물며(그는 작은아버지 홍억이 동지사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갈 적에 따라갔다) 북경 관상대의 천문기구를 보고 속된 말로 환장을 했다. 그와 같은 천문기구가 우리나라 조선에는 없었다는 얘기이다.(☞ '민족의 얼, 북두칠성(II)')
위에서는 "새 만원권 뒷면에 도안된 그림이 혼천시계 전체를 채택했어야 하는데 혼천시계의 일부분인 혼천의만 채택돼 중국의 오해를 샀을 것이라는 주장도 대두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혼천의만 따로 떼내 도안으로 넣은 것이 문제인 것처럼도 말하지만, 사실 그것도 말이 안 된다. 그 혼천시계의 부품인 혼천의 역시 중국 혼천의 모양을 그대로 답습했기 때문이니, '표절의 표절'이라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또한 그렇게 되면 만원권 앞면의 세종대왕과의 연관성도 없어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게 된다.
문제는 그것뿐이 아니니, 고려대학교에 소장된 국보 230호 혼천시계가 1669년 과학자 송이영이 만든 혼천시계, 혹은 그 시대 언저리에 만들어진 것이 아닌 19세기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기 있다.(그럴 경우 국보 지정이 취소될 수도 있는 중대한 문제가 발생된다는데, 앞서도 말했지만 그 혼천시계는 1930년 인사동에서 엿장수의 리어카에 실려 있던 것을 고려대학교 설립자인 인촌 김성수가 구입해 학교에 기증한 것이다. 그것이 국보 230호가 됐고, 그 부속품 하나가 만원권 지폐의 도안이 돼 한˙중 간이 시끄러운 것이다)
그것이 19세기 것이라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첫 번째는 혼천의 안에 있는 지구의에 그려진 세계지도에 호주가 한문으로 '가본달리(嘉本達利)'라고 적혀 있는 점이다. '가본달리'라는 명칭은 1800년 중국의 장정부(莊延敷)가 제작한 ‘지구도’에 처음 표기된 지명이므로 17세기 지도에는 나타날 수가 없다는 것이다.(우리나라 지도에서도 최한기가 1834년 제작한 '지구전후도'에 처음 등장한다)
두 번째는 혼천시계에 달려 있는 '탈진장치'이다. 이 '탈진장치'는 진자의 주기성을 이용해 정확한 시간을 조절하는 기계 장치로서 1657년 유럽에서 최초로 발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단 12년 만에 조선에서 똑같은 장치가 만들어져 사용되었다는 것을 상상하기 힘든 바, 시대적으로 그보다 훨씬 뒤처져야 말이 된다는 것이다.
다만 혼천시계 자체의 우수성은 인정되니 충북대 이용삼 교수는 "이 혼천시계는 물이 동력원이 아니라 추와 진자를 동력으로 사용한 시계로, 서양의 시계와 동양의 혼천의가 결합되어 운행하는, 전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유산"이라고 했고, 동양과학사의 대가인 영국의 조지프 니덤 교수는 "조선의 혼천시계는 동아시아 시계학사에서 획기적인 유물로 전 세계에 널리 알릴 만한 가치가 있는 유물"이라 언급한 바 있다.
아무튼 이 혼천의의 문제는 앞서 제기된, 금속활자, 측우기, 단오, 그리고 최근의 김치, 한복 종주권 싸움의 한가운데 서 있는 예민한 문제인데, 그것이 혼천시계의 일부라 할지라도 중국의 혼천의를 모방한 것이 분명한 이상, 다른 주장으로서 우리 것임을 고집하거나 혹은 논쟁에서 피해 가거나 하는 것은 옳지 않다. 특히 그것이 세종대왕 때 만들어진 것이라는 주장은 정말로 말도 안 되는 것이니 세종로 세종대왕 동상 앞의 설치물은 하루빨리 치우는 게 좋고, 만원권 지폐의 그것도 다음 화폐 도안이 바뀔 때 당연히 빠져야 한다.
그런 근거 박약한 유물들은 중국애들과의 싸움에서 오히려 약점을 노출시키는 격이니, 금속활자, 측우기, 김치, 한복 같은 정당성 100%의 유물에도 공격의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단오 풍속의 경우 중국과 공유되는 면이 없지 않은 바, 100% 우리 것이라 하기는 힘든 구석이 있다) 이는 그야말로 소탐대실이니 '한자'(漢字)나 '온돌' 같은 큰 것을 놓칠지도 모른다. 아니 "한국의 문화 강탈에 잘 맞서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는 저들에게 정말로 당할는지 모른다.
잘 아는 중국인(오리지널보다 더한 조선족)에게 온돌이 우리 한민족 고유의 문화라고 했더니 노골적으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추운 지방에서는 어느 곳이나 공통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문화를 어떻게 한민족의 것으로 국한시켜 말할 수 있느냐, 증거 있느냐"는 것이었다. 이에 "그렇다면 너희는 (증거) 있느냐? 우리는 고구려 벽화에서부터 면면하다"고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고구려는 본래 중국의 한 변방"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조금 더 나갔다. "그럼 한문(漢文)은? 한문도 너희 거니?"
그러자 상대방이 눈을 소눈깔만큼 크게 뜨며 되물었다. "당연하다. 한족(漢族)이 만든 문자이니 한문이라 하는 거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초지종을 설명해주었다. "한문의 기원은 은(殷)나라 때의 갑골문으로 그 상형문자가 한자의 기원이 된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그런데 그 은나라를 세운 민족이 한족이라는 근거가 없다. 오히려 민족의 뿌리를 따지자면 예족이나 맥족 같은 동이족에 가깝다고 한다. 북쪽 유목민이었던 동이족의 한 부족이 황하 쪽으로 옮겨 가 은허(殷墟) 지방에 정착해 세운 나라가 은나라이고, 그들이 사용한 문자가 한문의 원형인 갑골문이니 한문은 동이족, 곧 한민족의 문자가 되는 것"이라고.
상대방이 몹시 황당하다는 얼굴 표정을 지어 보이며 다시 "증거 있느냐" 물었다. 그래서 밥 먹던 숟가락을 식탁 위에 가볍게 쳤다. "이거! 은허로 간 동이족이 바로 이걸 가져갔거든. 우리들은 이거 없으면 밥을 못 먹으니까." 어리둥절해하는 상대에게 다시 설명을 이었다. "한·중·일 삼국에서 숟가락을 사용하는 민족은 오직 우리 한민족뿐이야. 그건 당신도 잘 알 거야. 그런데 은허에서 바로 이 숟가락이 많이 나왔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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